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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을 넘기며 봄이 절정을 향하고 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대지에는 싱그러운 새순들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고, 겨울을 나기 위해 두꺼운 껍질로 몸을 에워쌌던 고목에도 생동감이 가득하다. 유난히도 춥고 긴 겨울이었다. 아직은 뜬금없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며야 할 때도 있지만, 한낮 햇살에는 어머니 미소를 연상케 하는 온화함이 넘쳐난다. 흔히 사람들은 요즘 봄이 짧아졌다고들 말한다. 잊을 만하면 심술을 부려대는 꽃샘추위와 어느새 성큼 다가설 무더운 여름을 놓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나들이가기 좋은 계절, 긴 겨울을 무사히 난 자신에게 휴가를 주는 건 어떨까? 어물대다가는 또 1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형형색색 화려하게 몸단장을 한 상춘객들 틈에 끼어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는다.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고속열차에 비하면 초라한 실내지만 오래 전 추억들을 곱씹을 수 있기에 즐겁기만 하다. 두런두런 이어지던 대화소리는 이내 덜컹거리는 기차소리에 잦아든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한가롭기만 하다. 네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경상북도 청도. 왁자지껄 함께 내린 일단의 관광객들은 때마침 한창인 소싸움축제장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청도군은 경상북도 최남단에 위치한 농촌지역으로, 경남 밀양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너른 경작지는 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과수 농사가 잘되어 청도반시로 알려져 있는 씨 없는 감과 당도가 높고 향이 좋은 복숭아가 유명하다. 이 지역에는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비슬산(1,083m) 등이 10대 명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중 용각산(693m)은 봄이면 정상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진달래 군락지와 비 오는 날 운무가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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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용각산 전경. 정수리 부근 진달래군락지가 시야에 잡힌다. 2 용각산 어깨능선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걷는다. 일대에는 복숭아밭이 즐비하다.
- 분홍 물감을 풀어놓은들 이보다 더하랴
용각산 아래 매전면 두곡리를 산행들머리로 잡았다. 복사꽃이 한창인 과수원이 즐비하고, 고만고만한 크기의 전답이 늘어선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회관을 기점으로 임도로 들어선다. 용각산 초입은 어깨능선까지 이어진 임도가 나 있다. 막 시작한 산행이지만 마음속에는 분홍빛 산정에 대한 기대가 만발했다. 꽃놀이라도 가는 듯 가벼운 흥분과 함께 높이를 더한다. 30분 정도 오르면 발아래 집들이 성냥갑마냥 작아진다. 임도·등산로 갈림길 표지판을 만나면 산길로 접어든다.
솔숲 아래 오솔길은 낙엽이 깔린 묵은 길이다. 정상까지 큰 오르내림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도 좋다. 이름 모를 산새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가볍게 살랑대는 봄바람에 땀이 날 새가 없다. 등산로 곁에는 봉분 여러 기가 자리하고 있다. 흙에서 나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보는 것 같아 숙연함을 느꼈다.
- 용각산은 전체적으로 육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산행 도중 변변한 바위를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산세다. 도심 속 잘 정비된 등산로에 익숙한 이라면 계단 없는 산길이 어색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랜만에 밟아보는 흙의 느낌은 외려 정겹기만 하다. 산행길은 외길이므로 길 잃을 염려는 접어둬도 좋다. 간혹 갈림길을 만나지만 어김없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갈림길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1.9km, 다리쉼을 한다손 치더라도 한 시간 안팎이면 정수리에 올라설 수 있다. 간벌이 어지럽게 된 등산로를 따르다 짧은 너덜지대를 만났다면 정상이 지척이다. 짧은 오르막에 올라서면 저마다 자태를 뽐내는 진달래들이 멀리 바라보이기 시작한다.
문득 왁자지껄한 사람소리에 걸음을 옮기니 아주머니 여럿이 산나물을 캐고 있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외지인들을 맞이한 그들은 산행 후 소싸움축제장도 들러 보라고 연신 당부했다. 매해 이맘때 개최되는 청도소싸움축제는 그 역사가 1,000년을 헤아린다. 총 상금 규모 1억2,000만 원이 넘는 큰 대회이기도 하다. 행사기간에 맞춰 경기장 주변에는 먹거리장터와 축하공연장이 들어서고, 유등축제와 각종 축하공연도 열린다 하니 찾아봄직하다.
오름이 끝나고 고만고만한 크기의 바위들이 켜켜이 쌓인 정상부에 들어서자 절로 탄성이 터졌다. 분홍빛 군무 속에 정상은 피고 지길 반복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아득해졌다. 흡사 분홍 물감을 풀어놓은 듯 정상 일대는 활활 불타고 있었다. 채 개화되지 않은 나머지 꽃망울들까지 개화되면 더욱 장관을 이룰 게 분명했다. 구름 속에 몸을 숨겼던 해가 모습을 드러내자 분홍빛은 한층 더 선연해졌다.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수고는 보상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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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흐드러지게 피어난 진달래에 가려 보일락 말락 하는 용각산 정상. 2 정상 오르기 전 만나게 되는 유일한 너덜지대. 용각산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육산의 모습이다.
- 용각산 진달래는 산의 북사면에 집중되어 있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것도 많아 한창때는 꽃 터널을 이룬 곳도 많다. 먼저 올라온 등산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에 비경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서만큼은 누구나 사진작가나 모델이 된 듯하다. 정상석 곁에 서면 아래로는 청도군 일대가, 시선을 멀리 두면 영남알프스 마루금이 아득히 펼쳐진다.
산행거리 9km 남짓,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어
한참을 노닐다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남녀노소 누구나 동심으로 돌아간 모습. 지천으로 피어난 진달래 밭에는 봄맞이 등산객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오후 늦도록 끊이질 않았다. 진달래 군락지 한가운데로 난 외길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케 했다. 200여 m를 내려서면 나무 표지판과 만난다. 여기서 왼쪽은 청도 투우장, 오른쪽은 선의산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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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임도·등산로 갈림길. 정상까지의 거리는 1.9km로 30분 남짓이면 올라설 수 있다. 2 산행 도중 만나는 진달래들은 정상에서 만나게 될 풍광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다.
- 선의산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오르막들로 이어진다. 소나무와 잣나무, 낙엽송 등이 해를 가린 숲에 들자 서늘함이 느껴졌다.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 때면 잡목들 사이로 조망되는 풍경에 시야를 돌려본다. 등 뒤로 바라보이는 용각산은 잘 가라며 분홍빛 손수건을 흔들어 주는 듯했다.
567봉 직전에는 두곡리 절골로 내려서는 등산로가 나 있다. 이곳을 지나며 하산기점인 713봉까지 꾸준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이마에 땀이 배어날 즈음 713봉에 올라선다. 산의 모양이 선녀가 옷을 풀어헤친 것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선의산(756m)이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정상부에 조망을 위한 데크가 마련되어 있어 멀리서도 식별할 수 있다. 풍수가들은 선의산 정수리의 기운을 받으면 인근 마을에서 여덟 명의 정승이 태어난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 때 일인들은 그 기운을 끊고자 산정에 쇠말뚝을 박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은 그 자리에 ‘일제 만행-쇠말뚝 뽑은 곳’이라는 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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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용각산 진달래는 아직 채 개화되지 않은 꽃망울이 터지는 오는 4월 말 절정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2 용각산 진달래군락지 전경. 산의 북사면에 집중되어 있다. 멀리 선의산(746m)의 너른 품새가 시야에 들어온다. 3 날머리로 내려서고 있는 모습. 두곡리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 하산은 713봉에서 두곡리 방향으로 뻗어 내린 능선을 따른다. 초반 경사가 다소 가파르지만 10분 정도 내려서면 이내 유순해진다. 유의할 점은 713봉 꼭대기에 올라서야 하산로를 찾을 수 있다는 점. 이곳만큼은 표지판이 따로 없기에 무심히 지나칠 경우 뜻하지 않게 선의산까지 오르는 해프닝을 겪을 수 있다. 하산을 완료하기까지 1시간 안팎이면 충분하다.
산행을 마쳤다면 허기를 달랠 차례. 청도역 인근에는 추어탕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권할 만하다. 특이한 점은 다른 곳과 달리 추어탕을 조리할 때 미꾸라지와 잡어를 섞어서 사용한다는 점. 다소 밋밋하다 느낄 수 있으나 맑은 국물을 선호하는 이라면 선호할 법하다. 차 시간이 남았다면 청도역 인근에 열리는 재래시장에 들러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한창 제철을 맞은 한재미나리를 비롯해 각종 싱싱한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산행길잡이
매년 4월 말~5월 초를 기대하시길
- 진달래를 보기 위해 용각산을 찾는다면 4월 말부터 5월 초가 제격이다. 이 시기에 찾는다면 아직 채 터지지 않은 꽃망울까지 가세해 더욱 장관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예년의 경우 4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는 평년보다 길어진 꽃샘추위로 개화시기가 다소 늦게 도래했다.
산행 들머리는 원점회귀가 가능한 매전면 두곡리가 무난하다. 몇 갈래 길이 더 있긴 하지만 산행 후 승용차 회수나 산행거리 등을 감안하는 게 좋다. 들머리와 날머리는 두곡리마을회관으로 동일하다. 이 중 임도로 올랐다가 정상을 경유해 마을 북쪽으로 내려오는 게 낫다. 거꾸로 갈 경우 오르막 거리가 꽤 길고, 가파른 곳도 많아 쉬이 지칠 수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능선으로 이웃한 선의산(756m)까지 연결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지도상 713봉에서 20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하산은 북릉을 따르다 704봉 가기 전 갈림길에서 오른쪽 암자골 방향으로 내려서며, 날머리는 두곡리마을회관으로 동일하다. 용각산 정상을 200m 내려선 뒤 만나는 첫 갈림길에서 청도 시내에 위치한 투우장까지 갈 수도 있다. 거리는 6km이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용각산 산행은 전체적으로 무리 없는 등산로라 초보자에게도 권할 만하지만 긴 하산거리가 부담스러운 이는 스틱을 챙기도록 한다. 마을에는 이렇다 할 식당이나 가게가 없으므로 식수나 산행식은 사전에 미리 준비한다.
교통 대구·부산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청도지역의 산들은 큰마음을 먹고 채비해야 하는 대상지였다. 하지만 고속도로 개설로 승용차를 이용해 반나절이면 전국 어디서나 접근이 가능해졌다. 청도IC에서 나와 첫 교차로에서 청도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이후 모강사거리에서 운문 쪽으로 좌회전한 뒤, 20번국도를 따라 8km 남짓 달린다. 두곡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면 2km 채 못 가 마을회관에 닿게 된다.
대중교통은 기차 편이 수월하다. 버스를 이용해 청도로 가려면 인근 대구에 내려 바꿔 타야 하기 불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06시 10분, 06시 45분, 07시 14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이용한다. 4시간 남짓 소요되며 요금은 성인 기준 2만2,300원이다. 상행은 17시 58분, 18시 21분, 19시 29분에 청도역에 정차한다. 반대 부산에서 출발할 경우 역시 무궁화호가 05시 05분, 05시 40분, 06시 35분에 부산역을 떠난다. 1시간이면 청도에 도착하고 요금은 5,000원이다. 청도발 부산행 열차는 수시로 운행하며 막차는 23시 56분까지 있다.
청도역에 내렸다면 도보 3분 거리인 청도공용버스터미널(054-372-1565)에서 운문사 방면 버스를 타고 덕산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기차 시간에 맞춰 오전 9시, 9시 20분, 10시 40분, 11시 30분에 차가 있다. 20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1,400원이다. 청도터미널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2시, 4시 30분, 5시 50분, 6시 20분에 정차한다. 버스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면 택시(청도택시·054-373-8282)를 이용한다. 요금은 1만1,000원 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