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서울 명동 은행회관 2층에서 조선일보와 국가경영전략 연구원(이사장 강경식)이 공동 주최한 "한자교육 초등학교부터 실시하자!"는 토론회가 있어서 가 보았는데 그 진행 태도와 방법도 상식 밖이고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대토론회] ‘中-高 선택과목’ 한자교육 실태 (조선일보2002.06.12)
{image1_left}주제발표자와 사회자를 포함 초등학교 한자 교육 찬성자는 주제발표자(서울대 민형식 교수), 토론자 1(성균관대 한문과 진재교 교수) 토론자2(염리초교 주선홍교사)와 사회자 포함 4명에다가 반대자는 건국대 조오현 교수 1명으로서 아주 불공평한 짜임새에다가 사회자의 진행 태도가 너무 한자파 편이고 잘 짠 각본대로 진행하는 것 같아 유치해 보였다. 그 날 상황을 적어 본다.
1. 토론 3일 앞인 6월 9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 조선일보의 후원을 받아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실시하라"는 토론회를 여는 데 토론자의 짜임새가 찬성4 : 반대1로서 반대쪽이 적으니 반대쪽 참관인을 데려와도 좋다고 연락이 왔다고 해서 이른 아침이지만 반대 쪽 몇 사람이 가기로 했다.
2. 그런데 조선일보의 지난날 태도로 보아 그 토론회에 반대 토론자를 한사람만 부른 것은 검은 속셈이 있는 것이 뻔한 데 그들 들러리를 서줄 까닭이 없으니 가지 말라는 주장이 강했다. 그러나 이왕에 조오현 교수가 간다고 했고 엉뚱한 사람을 내세워 더 여론을 조작할 수도 있으니 증인이 되기 위해 참석하자고 해서 나도 대자보뉴스 기자로서 취재 겸 갔었다.
3. 06시 50분쯤 토론장으로 가니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분들 중 토론 사회를 볼 분과 연구원장이란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이하기에 참관하러 왔다면서 이름을 주고받은 뒤 토론장으로 들어가라기에 안을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대기실로 나와 조금 있으니 한글 쪽 조오현 교수도 오고 주최측에서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조찬회 모임으로 보였는데 경제 부총리 지낸 분, 경제단체 부회장으로 보이는 분과 이름난 회사의 사장, 교수들, 돈 많고 쟁쟁한 분들이 보였다.
4. 동석한 낫선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빵과 음료수가 나오고 있는 데 한글 쪽 참관자에게만 주최측 사람이 와서 회원은 3만원, 회원이 아닌 사람은 7만원이라고 돈을 내라고 했다. 들어 올 때 돈 받는 것을 본 일도 없고, 미리 그런 설명도 없이 어서 와 앉으라고 해놓고 밥상머리에서 돈 달라고 조르니 그런 사실을 모르고 온 우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토론자 조 교수가 와 달라해서 그런 사정을 모르고 왔으니 조 교수에게 내용을 알아보자고 했다. 조금 있다가 한글 쪽 최기호 교수가 이름패를 받아 오고 우리에게도 음식을 나왔다. 뒤에 알고 보니 토론자 조오현 교수가 돈을 냈다고 했다.
5. 주제 발표를 하고 반대 쪽 조 교수는 발표하기 전에 "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주최측에서 원고는 인쇄물 1쪽 정도로 쓰라고 강조해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 보니 찬성 쪽의 주제 발표자는 15쪽, 토론자들은 4쪽 정도로서 사람도 4:1로 불공평하고 원고까지도 그러니 섭섭하다"고 말문을 열고 발표했는데 말소리가 컸다. 그런데 사회자는 발표가 끝난 조 교수에게 국회로 가야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 비꼬는 듯 들렸다.
6. 그리고 한자 쪽 토론자 진 교수가 발표한 뒤 방청석에서 한자 쪽 한 분에게 말하게 하고 한글 쪽 최기호 교수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최 교수는 먼저 토론자 편성과 진행이 불공평함을 지적하고 한자파 토론자가 "북한이 한글전용 했으나 문제가 있어 한자 교육에 열심이다"는 식으로 말한 것과 "한글 쪽은 왜 영어 조기 교육은 반대하지 않고 한자 조기교육만 반대하느냐"는 등 몇 가지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아 주었다.
7. 다시 한자 찬성 토론자 더 발표한 뒤 시간이 없다면서 방청석에서 간단히 한마디만 할 사람이 없느냐기에 내가 일어나서 [1] 오늘 명성 높은 분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토론자 편성도 불공평한 데다가 갑자기 한글 쪽 방청객에게만 회원이 아니니 7만원 회비를 내라하니 놀라고 실망했다. [2] 중 고등학교에서 한문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중 고교 교육을 개선하고 그래도 안 되면 초등학생에게 가르치자고 해야지 중 고교 교육은 그대로 두고 왜 어린 학생들 잡으려 하나? [3] 10 여 년 전 초선일보가 '한자 혼용이 국제화라 난리 피고 학술원에서 한자파인, 한자 옥편 만든이에게 학술원상 줄 때에 우리 나라 최고 한문학자인 임창순 선생님을 찾아가 뵈니 "지금 한자 전문가 양성하고 옛 책 국역하는 것이 급한데 엉뚱하게 저러고 있으니 ..." 하시며 한 숨을 쉬시더라. 한자 조금 알면 국역에 힘써달라. [4] 지금 인터넷 이용자가 2500만이고 초고속 가입률이 세계 으뜸이라지만 애들이 오락이나 하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해 어린이들에게 한문 교육 할 것을 제의한다. [5] 끝으로 삼일운동 33인 중 한 분인 백용성 스님이 감옥에서 쓰신 글 한 토막 읽고 마치겠다며" 한문으론 우리 백성들이 똑똑해질 수 없으니 내가 감옥에서 나가면 한글 쓰기와 국역사업에 힘쓰겠다" 는 글을 읽어주고 세종과 백용성 스님과 임창순 선생님 정신을 본받길 호소하고 마쳤다.
7. 그 뒤 조선일보 기자가 내게 와 이름을 묻기에 명함을 주니 한문은 어떻게 쓰느냐고 했다. 왜 묻느냐고 하니 기사에 쓸 때 필요하다고 하기에 "내 이름은 한글이다. 기사에 내 이름 넣지 말라. 내가 오늘 온 것은 조선일보가 여론 조작을 할 까봐 걱정이 되어 왔다. 이게 무슨 큰 기사거리라고 쓰려느냐? 쓸 테면 바르게 써라. 안티조선운동이 왜 일어났는지 알라"고 말했다.
8. 그리고 마지막 토론자로 교육부 장학관이 발표를 한 뒤 사회자는 토론자에게 "잘 처리하면 승진에 반영될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이냐? "물으니 그 분은 당황하고 말을 못했다. 그러니 사회자는 "언제까지 해결 할 거냐? "고 또 다그치기에 내가 벌떡 일어나 "사회 똑바로 보시오. 무슨 대답을 강요하시오" 소리치니 사회자는 내일 조선일보를 보라며 끝냈다. 무언가 각본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9. 그런데 나는 바뻐서 서둘러 행사장을 나왔는데 그 모임 간사가 필자(이대로) 때문에 행사 망쳤다며, 나도 없는 데 비난하는 것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차재경 국장이 보다못해 " 그 사람이 못할 말했느냐? 토론자도 한글쪽은 한사람만 불러놓은 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 손님을 초대해놓고 밥상머리에 앉혀놓고 돈내라 한 것은 잘 했느냐? "고 대꾸하니 "언제 초대했느냐? 토론은 조선일보가 다 계획한 일이다" 고 큰소리치며 30대쯤으로 보이는 대학강사란 이가 60인 차국장 몸을 밀치며 시비를 걸어 멱살잡이까지 하는 것을 조오현 교수가 "참석해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하니 자기는 보낸 일이 없다며 건국대학교 조오현 교수 연구실까지 가서 그 전송문을 보고 자기가 보낸 것은 아니나 미안하다며 그 전송문 복사본을 가지고 갔단다.
{image2_right}그런데 그 뒷날 조선일보가 전면에 꽉 차게 보도한 글을 보고 놀랐다. 내가 그렇게 편파보도를 하지 말라고 기자에게 부탁까지 했는데 [대토론]이란 말머리로 그날 토론회 사실보다 교묘하게 초등학교 한자교육 강조한 기사를 전면에 꽉 채운 것을 보고 너무 실망했다. 이른 새벽부터 가서 멱살 잡히고 토론자가 밥값까지 내면서 그 여론 조작에 들러리 선 생각을 하니 부끄런 마음까지 들었다. 그 토론장 분위기는 초등학교 한자교육은 어려운 분위기였다. 한자쪽 토론자 모두 한글전용는 대세이고 찬성하지만 초등학교 한자교육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 토론자로 나온 분이 시행은 어렵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성균관대 진 교수와 교육부 박 장학관의 이야기는 토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선 지 한마디도 없고 참석하지 않은 정책국장 글과 서울대 학생 중 한자 문맹이 많고 어린이들이 한자검정시험 열심히 본다는 등 뻔한 재탕 기사로 가득 채운 것을 보고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토론회가 잘 끝난 것 같아 나는 글을 쓰지 않으려다가 어떤 식으로든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되어 이 글을 쓴다.
나는 이번 토론을 보면서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것을 실감하고, 우리 지도층 의식에 너무 실망했고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을까 답답했다. 또 조선일보가 왜 저렇게 한글 죽이기에 광분할까 의문이 더 커지고 변한 것이 없는 태도에 씁쓸했다. 우리를 돈 내라 해서 토론장에서 몰아내려다가 안 되니 자신들 각본대로 되지 않은 것이 무척 분했을 지 모르나 그렇게 밖에 못할까 안타깝다. 한글 한자 문제는 민감한 것이고 국민들이 많은 것이니 그렇게 자신들끼리만 떠들어 봤자 더 추해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저들이 아무리 한글을 죽이려 해도 죽지 않을 것임과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안 될 일임을 강조하면서 아래 실제 토론회 참석해 발표한 교육부 박삼서 장학관 글과 참석하지 않은 이상섭 정책국장 글을 참고로 올린다.
- 조선일보 보도된 글-
[대토론회] 정부입장/“한자교육 효율성 높이게 우선” (이상갑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실장)
현재의 문자교육 정책은 한글 전용이라는 민족의 이상 실현, 실질적인 민족문화의 계승 창달, 한자가 혼용되는 현실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 수립한 것이다.
어휘 교육의 효율적 보조수단으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의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그리고 전통문화의 이해 소양을 높이는 차원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데는 전제되거나 해결해야 할 사항이 많다.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은 아동의 흥미와 적성, 인지발달을 고려해 수준에 맞는 학습지도가 되도록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하고, 교재개발(인정도서)을 다양화하는 등 한자교육의 효과가 실질적으로 확보되도록 노력하면 현재의 정책 틀 안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앞으로 문자교육 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국민적 합의와 중지를 모아 한글 전용과 국한 혼용 주장의 장점을 모두 살리는 방향에서 한자·한문 교육에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강구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우리 부에서는 사회 여론을 광범위하게 청취하는 등 신중하게 조사·연구·검토할 것이다.
토론회에서 진짜 발표한 '초등학교 한자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문 (교육인적자원부 장학관 박 삼서)
1. 우리 나라는 문자 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한글전용론과 국한문혼용론의 논쟁이 광복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논쟁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보다는 쟁론이 고조되어, 문자사용에서의 장단점을 주창하는 일반적 논리를 훨씬 뛰어넘는 애국 논쟁으로까지 발전하였다고 하겠다.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가르쳐야한다' ,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많다'고 하는 논의도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하여 본 토론문의 내용은 교육인적자원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아니라, '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 논의 실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앞으로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 문제를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한 토론자의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혀 둔다.
2. 현재, 우리나라의 어문정책(국어정책)은 주지하다시피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법률 제6 호, 1948 .10. 9)에서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라고 한 조문에 근거하여 수립, 수행되고 있다. (문화관광부) 그리고 어문교육(국어교육) 정책은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한글전용이라는 이상 실현, 실질적인 민족 문화 계승 창달, 한자 혼용이라는 현실과의 조화 도모' 등을 그 배경과 방향으로 삼고, 교과용도서 표기 방법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광복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실천되어 왔다.
교과용도서 표기 방법과 연관하여 현재까지 문자교육의 변천은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 1~3학년은 1945년부터 지금까지 한글전용 1945-1965 1965-70 1970-75 1975- 지금까지 4-6학년 국한병용 국한혼용 한글전용 국한병용 중 학교 국한병용 국한혼용 한글전용 국한병용 고등학교 국한병용 국한혼용 한글전용 국한병용
위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국한혼용 교육은 1965년에서 1969년까지 초등학교 4학년 이상에서 이루어졌다. 1970년부터는 대통령 특별 지시에 의하여 한글전용이 전격적으로 실시되었고, 1975년부터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자를 다시 병기하게 되었으며, 이후 이러한 문자교육 정책의 기본 틀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한글 전용론과 국한혼용론의 논쟁은 정치적 전환기마다 표면으로 부상하여 초등학교 한자교육 문제를 비롯하여 정책이 검토된 적은 있었지만 변화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민 교수의 발제문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한자는 원시적인 글자인데 한글은 현대적인 글자임, 한자는 글자 기계화의 발달을 더디게 함, 한자를 버리려는 것은 세계적인 경향임, 한자는 우리 사고의 폭을 좁혀왔음" 등의 몇 가지 주장을 예거로 삼는다. 이에 대하여 국한혼용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국어의 올바른 이해와 표현, 어휘력 신장,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및 문화의 정체성과 경쟁력 신장, 인성교육의 효과적 실천, 한자문화권의 조화와 beseto(be:beijing, se:seoul, to:tokyo) belt 구축" 등과 같은 사항을 들어 강조하였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에는 모두 일리가 있고, 그리하여 어느 한쪽은 나름대로 세부논리를 앞세워 상대의 주장을 논박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대척적(對蹠的) 국면에서 한자교육을 초등학교에서부터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데에는 교육의 효과가 실질적으로 확보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하므로 논쟁의 불씨를 당장 사그라지게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전용 측이나 국한혼용 측 모두 민족의 정체성 교육을 주장의 배경으로 삼고 있어, 양측이 주장하는 장점을 모두 살리면 한자교육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엿보인다.
3. 민 교수는 몇 가지 주장과 쟁점을 중심으로 양측의 의견을 대비시키고, 특히 한글전용론자 중에도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 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아 그 동안 부수적 논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두 주장 사이에는 말과 글의 문제를 혼동하는 것이 많고, 나아가 감정적 논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는 등 논쟁에서 몇 가지 파생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이 필요한 이유 7가지를 들어 주장의 논지를 확고히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의 논지에 토론자는 좀더 생각을 넓혀 볼 여지가 있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하여 단견이나마 부연해 보고자 한다.
먼저, 국어교육이 잘못 되어 한맹(漢盲)을 양산한다는 국어교육에 대한 접근 방식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국어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문제와도 직결되며, 따라서 한자교육을 국어교육에서 도외시했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여 전공서적을 읽지 못한다는 연결은 비약이 심하다. 즉, 현재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는 한문과목이 설정되어 있으며, 국어 교과서에서도 괄호에 한자를 병기하고, 어휘 학습 중심으로 한자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국어교육에 그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둘째로, '국민의 전통문화 소양을 높이려면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는 논리를 일반화하는 데는 전제되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다. 전통문화의 개념과 이의 교육 내용이 무엇이며, 또 전통문화를 한자교육을 통해서만 학습할 수 있는가, 한자교육을 통하여 어떻게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을까 등은 더욱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소양은 한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하여 넓혀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옛날의 한문전적을 직접 독파해야 전통문화를 이해, 계승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셋째로, 문자 및 언어 교육은 어릴 때일수록 좋으므로 한자교육도 초등학교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조기 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학문적 이론이 서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아동의 능력이나 흥미를 고려하지 않고 한자교육을 조기 도입하는 것은 한글전용론 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아동에게 가혹한 학대를 자초할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식, 정보 사회에서는 심신의 성장과 발달에 따라 배워야 할 것들이 구분되어 능력과 적정, 선택권을 보장하면서 아동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아주 평범한 명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넷째로, 중국, 일본의 한자 문화를 이해하려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조기 한자 교육이 유익하다는 관점에도 고려의 폭을 더욱 넓힐 필요가 있다. 동북아 문화권 형성에 적극 참여하여 동양권을 제어하려면 한자를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힘이 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자체는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와는 다르며, 한자를 안다고 하여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는 한자교육보다는 중국어나 일본어를 조기 교육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다섯째로, 한문과목을 국어과 선택과목에 편입하는 문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교육과정 편제상에는 '한문'과 '국어'는 별도의 교과목으로 설정되어 있고, 교사 자격증도 구분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국어교육으로서 한문을 독서, 작문, 문학 등과 동등한 위치에 놓을 수 있는 지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1,2차 교육과정에서 한문을 국어에 포함시킨 것은 교육 목표와 내용의 동질성에 근거하기보다는 교육의 여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여섯째로, 북한에서의 한자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외래어를 배격하며 문화어 보급을 우리의 한글전용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실천했던 북한은 한자교육에 관심을 두고 학교급별 한자교육 체계를 구체화했다. 그러나 그 실제에서는 우리보다도 한자교육이 활성화되지 못하였다고 직접 교육을 담당한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로, '모국어 교육이란 현재의 언어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언어도 익히는 것을 포함한 개념'이라고 하면 한자도 모국어가 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 우리의 고유 언어는 분명히 한글이지 한자는 아니다. 더욱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단순히 문직성(lteracy)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여 한자를 모국어 범주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유네스코쿠리에]와 [컬처스] 등 학술 관련 잡지는 세계적으로 비중심 지역과 비서구적 민족 언어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힘센 외래어(우세어)나 한 민족어와 다른 민족어 간의 혼성아(lingua franca)가 민족어를 대신하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지구상에는 5천 개 이상의 민족어가 생존하는데 , 이들 언어 중 상당수가 해마다 20-30개씩 점진적으로 영어 등 우세한 언어로 대체되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소멸의 추세를 감안할 때, 미래의 세계에 언어사용의 구도는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하여 스페인 노벨상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는 "21세기에는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등 4개 언어만 남고 나머지는 지역적 방언이나 시어(詩語)로만 존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말과 글의 우수성에 대한 자긍심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우리로서도 이러한 언어 지형도의 변화 추세를 강 건너 불 바라보듯 할 수만은 없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은 우리 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 언어의 변화 추세를 감안하여 한자교육의 문제도 미래 지향적인 정책 설계에 다음 몇 가지를 고려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1> 한글전용론과 국한혼용론 모두 자기 주장의 논리에 상대의 것을 흡인하려고만 하지 말고 거시적 차원에서 그 간극을 좁혀야 한다. 즉, 우리말이 가지는 두 가지 특장(特長), 표음적 자질과 표의적 자질을 어떻게 조화시켜 교육의 장으로 수렴시킬 수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2> 한자교육을 국어교육에서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 가는 좀더 세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자는 '분해적 연관어 학습'으로 어휘력을 효율적으로 신장시키는 데에는 유용하다. 그러나 어휘교육이 국어교육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국어교육의 본질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3>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이 실시되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아동의 인지 발달과 지식 수용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한자교육이 또 다른 소질의 계발을 가로막거나 짐이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의의 장을 초등학교로 좁혀 놓으면 해결의 실마리는 멀어 보인다. <4> 한자문맹의 해결은 초,중등 공교육에서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학습자 스스로의 학습 열망도 요구된다. 기초, 기본 교육을 완성하는 데 공교육의 책무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공교육이 전문 지식으로서의 모든 소양을 책임 짓기에는 21세기 지식, 정보 사회에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5> 한자 혼용과 병용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이의 교육적 적용 방법을 확연히 할 필요가 있다. 혼용은 한자를 문맥에서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고 병용은 한자를 괄호 속에 병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병용과 혼용은 교과서 표기 방법에서부터 다르며, 당연히 교수, 학습 방법도 달라야 함은 물론이다. <6> 한자교육과 한문교육을 구분하여 현안 문자교육 정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자교육, 한문교육을 동시에 해결하려 하면, 현안으로 대두한 문제의 원천적 해결방법이 서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한자교육의 관심 못지 않게 한글의 세계화에도 힘써야 한다. 한글은 소리글로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므로 한자교육은 한글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상보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8> 어문정책과 어문교육 정책의 유기적 강화가 필요하다. 어문정책은 학술적 배경과 교육 활동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두 정책의 긴밀한 협조는 국가 차원에서 일관되고 효율적인 정책을 펼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프레이저가 지은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에는 '숲의 왕'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제가 지키는 성역 안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도망쳐 온 노예가 그 가지 하나를 꺾는데 성공하면 사제와 결전을 벌일 자격이 주어지고, 사제를 죽이면 숲의 왕이라는 통치권을 갖게 된다. 이렇게 상대를 제거해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숲의 왕'을 차지하는 원리를 교육 문제, 특히 한자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할 수는 없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의 문제는 흑백 논리로 접근하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21세기에는 민족의 긍극적 이상 실현을 목표로 하여 한글전용과 국한혼용 양자의 장점을 모두 살리면서 국력 소모적 논쟁을 하루 빨리 불식시켜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논쟁 불식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우리'에게는 국가 발전을 위하여 하나가 되는 민족정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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