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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울음이 죽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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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이 죽다]
김선근 시집 / 현대시세계시인선 076 / bookin (2017.06.05)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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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이 죽다
김선근
가망이 없다며 그들은 노모를 안방에 뉘어놓고 눈 속을 서둘러 떠났다 노부는 노모의 자글거리는 엉덩이 똥을 닦으며 울었다 노모는 눈을 뜨지 않았다
한겨울이었다 발목까지 눈이 잠겼다 올가미에 걸인 고라니처럼 나는 울었다 노부는 두어 걸음 뒤따라오며 울었다 까마귀도 울었다 귀를 막고 혀를 뽑아 눈[雪] 속에 묻었다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았다 봄이 와도 눈은 그치지 않았다
어떤 항해
김선근
인도人道에 걸터앉아 휘청이는 사내
어깨가 씰룩거린다
술 한 잔 늘어날 때마다
절망이 성큼성큼 다가섰다고
주저리주저리 육두문자를 섞어 바닥에 흘린다
무릎 사이로 깊이 가라앉은 머리
자위하듯 몸을 웅크린다
잊었던 꿈들이 저울질해댈 때
절망의 집착력은 더 강해지는 법
발버둥을 치고 목숨을 걸어도
무엇 하나 얻지 못하고
누군가 간절히 기다려도
차마 그곳으로 향하지 못할 때 있다
사내의 접혔던 몸이 피어오른다
무릎 사이 오래 품었던
천 근 같은 닻을 걷어 올린다
초저녁 바람이 심상찮다
깃발처럼 흔들리는 돛대
사내의 항해가 위태롭다
일몰
김선근
갈라져 아름다운 것을 보았지요
해를 짊어지고 밭이랑 속에서 사신
엄니의 손등처럼
물결에 갈라진 수천 조각 빛들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처럼 반짝여요
엄니의 가슴에 콕콕 못을 박듯
모래밭에 발자국을 새겼지요
자식 허물을 숨기듯 파도는
발자국을 지우며 연신 너스레 떨어요
거친 손 행여 자식 기죽일세라
수세미로 닦아대던 엄니는 바다가 된 것일까요
발목을 쓰다듬는 파도가
엄니의 손바닥처럼 거칠거칠해요
수평선에 널어놓은 넋두리를
담쏙담쏙 걷어가요
평생 짊어졌던 해를
이제야 내려놓으셨나요, 엄니
참 붉네요
상수리나무로 만든 상의 이력
김선근
아무도 그가 사랑방 모서리에 자리한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 아버지의 아버지 때도 이미 그곳에서 흰 무명천을 덮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으레 그곳은 집안 내력을 수십 년 지켜본 그의 자리였다. 아버지 불륜도 장녀의 첫 경험도 어머니 눈물도 장남의 사춘기도 그는 고스란히 쟁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의 아들의 아들에게 밟혀 다리가 부러졌다. 마지막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 모르는 것, 느닷없이 수십 년 집안 내력이 새어나갔다. 평생을 그랬듯 말없이 마당가로 나앉았다. 비가 내렸다. 잊었던 근간이 꿈틀거렸다. 잎이 자라고 뿌리가 내리는 꿈을 꾸고 있었다.
풍장
김선근
삼복더위, 축축 늘어지는 한낮
망가진 우산 하나
죽어서도 꼿꼿하네요
거친 하늘 받아내던 그가
중심 한 번 내어준 적 없는 그가
시든 풀밭에 버려져 있네요
작은 걸림에도 쉬이 등 돌리는
타협이 난무하는 세상 한가운데
꼿꼿이 서 있어 본 적 있나요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던 그가
지켜야 할 게 있는 거라며
붉은 녹에 휩싸여 삭아가네요
장마
김선근
뒷집볕이가문제였어
어른들이밤꽃필때밤나무밑에가지마라했거든
대나무숲에서별이가볼일을보는데
죽순한놈이확달아올라쑤욱자라게된거야
다른죽순들도덩달아쑥쑥자라하늘을찔렀어
구멍난하늘에서비가새기시작했지
초여름이른장마가시작되었던거라
한달이넘도록비가그치질않았어
그해농사는피륭이었지
별이의환한엉덩이가화근이었어
쉿!이건나만아는비밀이야
이팝나무
김선근
먹고 살기 참 빡세더라. 목 터져라 노래 부르고 술 취해 돌아오는 길. 길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 하늘을 봤어. 엄니가 쌀밥을 듬뿍 퍼서 내게 내밀더라고, 사람은 밥심이여, 밥을 잘 먹어야 공부도 잘 하는 거여. 안에서 곯은 놈은 밖에서도 곯는 거여. 들어설 때나 나설 때나 늘 밥이었지. 객지 나간 형제들 밥을 끼니마다 부뚜막에 퍼놓곤 했어. 엄니는 나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내가 조놈처럼 이쁘던가. 엄니가 내민 쌀밥 한 술 넙죽 받아먹고 나니 눈앞이 환해졌어. 끄응, 다시 일어서 봐야지.
수행 중
김선근
벽면을 오르던 민달팽이
비가 그치고 점액질이 말랐다
미동도 않은 채
까마득한 벽 한가운데
점으로 박혔다
하안거할 곳 찾아가다 그만
번쩍, 열반에 드시었다
그 자리
김선근
아버지도 홀로 사는 시골집
쥐코밥상에서 무엇을 잡수셨나
간장에 마른 반찬 하나
어린 나를 기다리던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흔들린다. 당신처럼
욕심
김선근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똥구멍이 찢어진다는 말이에요
먹을 것 없던 시절
섬유질 많은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
똥 눌 때마다 똥구멍이 찢어졌지요
꾸역꾸역 삼킨 거친 말[言]들
어디로 나올까요
옆구리 찢고 나올까요
등 찢고 나올까요
욕심은 똥구멍이 없다는데
그대의 그곳은 안녕하신지요
갑질
김선근
개망초 꽃밭에 양귀비
하얀 민초民草 사이
붉게 피었다
젊은 여자 무릎 꿇고
경비는 따귀 맞는다
다름이 죄가 되는 세상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뙤약볕 속, 한생애 살다가
너도 지고 나도 질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
오묘한 거리
김선근
아버지 친구 돌아가신 날, 여느 날처럼 전화를 걸어 밤에 비가 오고 기온이 떨어진다고 꼭 보일러를 틀고 주무시라 하고 별일 없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
팔순 넘은 아버지께 당신 친구 죽음을 말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아버지는 친구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멋쩍어서 서로 아무 일 없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저쪽에서 나는 이쪽에서 문상했다. 호상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
아빠 없어도 살 수 있제?
김선근
친구놈이 목을 맸어
벌이도 변변찮고 사는 게 팍팍해서
전날 딸래미에게 물었다더구만
아빠 없어도 살 수 있제?
배시시 그냥 웃더라네
변소에서 어린놈이 통곡을 했어
아빠 없으면 못 살아, 어떻게 살아
내가 아빠 죽인 거야, 미안해서 어떡해
다시 만나면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줄 거야
못할 짓 많이 하는 세상
하찮은 말도 다 때가 있더라
이런 날은 꼭 비가 와, 씨부럴
팽이
김선근
중풍환자가 차에서 내리며 휘청거린다
늙은 아내가 옆구리를 감아 부축한다
휘청거릴 때마다 힘껏 일으켜 세운다
그의 위태로운 직립
한때는 그도
꼿꼿한 나무였던 때 있다
하늘을 반듯하게 받치고 서 있던 적 있다
단풍 들었네
김선근
거리 곳곳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대출광고들
위력만점, 재생 불가의 지뢰밭
일족一族을 정리해주는
직장인 자영업자 프리렌서
최저 7%~36% 010-0000-0000
담보 무보증 즉시 각종 대출
지뢰 밟고 사지 잘린 사람
뛰어내리러 다리에 가면
난간에 붉게 펄럭이는
장기 최고가 매입 010-0000-0000
수퍼킹그레이트완전무결
권태
김선근
간밤엔 바람도 불지 않았다
별똥도 떨어지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뉴스도 없었다
매일 앉아 있는 책상
변하지 않는 창 밖 풍경
게으른 아침이다
텃밭에 나서니
오이꽃 하나 가지꽃 하나
잘라낸 뚱딴지에 돋아난 새싹 한 촉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이꽃 가지꽃이 피었어
뚱딴지를 아예 뽑아버려야 되겠어
어디냐, 오늘은 뭐할 거냐
뻔한 하루를 묻고 또 묻고
do
김선근
샤프펜슬이 추락했어요. 주둥이를 바닥에 처박고 더 이상 심을 뱉어내지 않아요, 손잡이 깨진 컵옆구리 찢긴 타이어, 돌 빠진 라이터, 아쉽지만 안녕,
사람을 뛰어넘으려는 사람의 손을 주머니가 꽉 물고 있어요. 그들은 품질검사원이에요. 삐뚠 것들을 찾아 한숨을 불어넣어요, 세상이 풍선처럼 부풀어요. 창이 닫혀있어 날지 못해요. 창을 여는 것은 손가락이에요. 그들이 검사를 시작해요.
바닥은 소리를 뱉지 않은 죄, 나뭇잎은 침묵한 죄, 하늘은 손을 잡아주지 않은 죄, 그들이 포승줄에 줄줄이 묶였어요, 하늘이 손을 꺼내주지 않아 풍선이 날 수 없대요. 그들은 세상을 불량이라고 낙인찍었어요, 더 이상 꿈을 뱉지 않아요, 창은 더욱더 견고하게 닫혀버리고 그들은 추락했어요. 주둥이가 꺾였어요. 이제 다시 날지 않을 거예요.
속없이 살기
김선근
부모는 소작농으로 살았다 힘들다는 담배농사를 지었다 술꾼인 땅주인은 담배매상일이면 찾아와 술을 마셨다 취기 오른 땅주인은 담배를 연달아 심으면 땅이 기력을 잃는다며 소작료를 해마다 올렸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창자 한 토막씩 꺼내어 버렸다 버려야 땅이라도 빌렸다 도전賭錢 갚으면 입에 풀칠할 만큼만 남았다 아버지는 밤마다 몸을 돌돌 말고 잠을 잤다 버려진 창자는 똬리를 틀고 뒤척이다 아버지를 데리고 산으로 가버렸다 빈 술주전자 마당에 뒹구는 날이었다
맛보기
김선근
요즘은 식품 코너마다 경쟁하듯
음식 한 조각씩 떼어 시식을 시켜준다
맛을 먼저 보라는 것이다
사람도 한 점씩 떼어
맛보기 코너를 만들면 어떨까
이런저런 편린들, 도덕道德 소스는 필수
불량스런 엉덩이는 도덕 소스로 간을 맞추고
선생 스타일 뒤통수는 납작하게 두들겨 간을 맞추고
도둑은 도덕 소스에 담가놓고
투박한 손은 껍질을 벗겨 올려놓고
맘대로 맛보고 공평하게 사 가기 하면 어떨까
사람 시식 코너
사고 안 사고는 독자 마음
호접몽
김선근
한 걸음 한 걸음 더디게
산길을 오르는 노인
잠시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이
기억을 되찾아낸 지팡이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흰나비 한 마리가
낮아진 무덤 위를
나풀나풀 날았다
혹시나, 시詩
김선근
물속을 다 훑어도 오늘은 예신조차 없다
예신이 꼭 본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느닷없이 오는 본신도 있다
느닷없는 것을 챔질하면 대부분 헛것이다
헛챔질에 놀란 물고기는
더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입질을 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시詩
여태껏 더듬더듬 희망 한 점 건져보려
혹시나 혹시나, 매일매일 세상에
미끼를 던져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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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푸르던 여름의 기억도 붉던 그날의 일도
다 잊었다
먼 길 떠날 때는 몸을 가벼이 하라는 말씀만
단단히 붙들어 매었다
이제 시작이다
세상의 차디찬 말씀들 견딜 수 있겠다
2017년 05월
김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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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근 詩集 [※울음이 죽다※]
[ 해설 ] -
눈 위를 걸어간 발자국
우대식 / 시인
김선근 시인의 시는 일상의 국면을 바탕으로 한다. 사물인 경우 말할 것도 없고 더욱이 관념의 경우도 친숙한 감정 또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까닭에 작품을 접하면서 이질적 괴리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이러한 시작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시를 읽게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다만 그 반대급부로서 새로움이 부족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시를 여러 번 읽으면서 그러한 문제점을 고스란히 받아내겠다는 완강한 시적 태도가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바, 끝없이 육체성을 해체시키고자 하는 몸부림이 그것이다. 세계의 일체 현상을 지극히 동양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적 태도는 지나친 수식이나 장황한 언급을 극도로 회피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순간, 찰나와 같은 불교적 시간 개념이 그의 시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이유도 위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육체란 때로 거추장스러운 것/ 탈피를 꿈꾸었다’(「통증 풀어쓰기」 부분)는 고백은 어쩌면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사유의 바탕일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일원론적 세계는 삶의 결과보다는 방식 혹은 과정에 주목하게 한다. 그 안에 나를 포함한 가족과 민달팽이와 오래된 미래와 그리움이 고여 있다. 그의 시는 그 샘물을 길어 올리는 작업이다.
갈라져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지요 ― 별이 된 어머니
이 시집의 많은 부분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사에 그 끈이 닿아 있다.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이 땅의 전형적인 어머니이다. 그러니 외형적으로 보자면 특별하달 것도 없을 터이지만 감정의 무게 중심 역할을 어머니라는 뚜렷한 실제이자 관념을 통하여 조절하고 있다. 어머니는 늘 텅 빈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어머니의 상징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물 묻은 맨발이 찍은 발자국들이/ 툇마루에 물방울로 찰랑입니다’(「현비유인안동권씨신위」부분)라고 어머니를 추억할 때 어머니는 순결의 원형성을 내포하고 있다. 삶이라는 거친 과정을 통과한 후 남게 되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의 투명한 껍질과 같은 것이 어머니의 형상이다. ‘당신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 앉아/ 열어놓은 대문을 봐요/ 환해진 골목에/ 우르르 쏟아진 별들이 몽실거려요/ 아! 당신이 오셨네요’(「현비유인안동권씨신위」부분). 별이 가진 상징성이야말로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텅 빈 공간에 뜬 별이 어머니의 상징이라는 것은 절대절명의 순결성을 뜻한다. 그 순결성의 근원을 찾는 일이 김선근 시의 본래를 드러내는 일이 될 터이다.
쌀독 바닥을 보기 두려운 엄니는
얼마 남지 않은 쌀알들을 곱게 펴
바닥을 감추곤 했다
컴컴한 겨울, 암투병하던 엄니
눈 위를 걸어갔는데
발자국이 찍히지 않았다
― 「어머니의 비밀」 전문
어머니의 비밀은 가난했던 유년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쌀 혹은 밥이야말로 어머니와 등가의 상징성을 띤다. 쌀 또는 밥을 관장하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연을 하나하나 기억해둔 어린 시선이 시적 화자의 시선이 된다. 쌀독 바닥을 감추던 어머니,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어린 아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까지도 그 기억을 은밀히 공유하며 내면화시켜 왔던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가 세상을 등진 시간은 당연히 ‘컴컴한 겨울’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겨울 세상을 등진 어머니의 발자국이 지상에 찍히지 않았다는 것은 한없이 가벼워진 어머니의 육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눈 위에조차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육체의 소멸과 더불어 순결성을 내포하고 있다.
김선근의 시에서 어머니가 현현하는 육체성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뒤란 깊숙이 스며든 그리운 그림자’나 ‘두 손 모아 방안까지 모셔온/ 어머니 향기’(「추석 전야」부분)와 같이 일상의 이면에 서려 있는 기운으로서 어머니를 확인하게 된다. 다른 말로 바꾸면 어머니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정령과 같은 존재이다.
빈 술주전자 마당을 뒹구는 날 ― 뼈로 남은 아버지
어머니가 흔적 혹은 기운으로 존재하는 상징이라면 아버지의 형상은 삶의 현실적 비애에 더 직접적으로 선을 대고 있다. ‘땅에 떨어진 나방처럼/ 날갯짓 잃은 노래’(「아버지」 부분)라고 아버지를 비유하고 있다. 아버지의 비애는 생활에서 비롯된다. 농경을 근간으로 한 빈농으로서 어려움이 바로 그것이다.
부모는 소작농으로 살았다 힘들다는 담배농사를 지었다 술꾼인 땅주인은 담배매상일이면 찾아와 술을 마셨다 취기 오른 땅주인은 담배를 연달아 심으면 땅이 기력을 잃는다며 소작료를 해마다 올렸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창자 한 토막씩 꺼내어 버렸다 버려야 땅이라도 빌렸다 도전賭錢 갚으면 입에 풀칠할 만큼만 남았다 아버지는 밤마다 몸을 돌돌 말고 잠을 잤다 버려진 창자는 똬리를 틀고 뒤척이다 아버지를 데리고 산으로 가버렸다 빈 술주전자 마당을 뒹구는 날이었다
― 「속없이 살기」 전문
가난한 소작농으로서 자신의 창자까지 다 빼내주고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비극적인 삶은 ‘밤마다 몸을 돌돌 말고 잠을 잤다’는 표현에 오면 절정을 이룬다. 아버지의 죽음이 ‘빈 술주전자’로 그려지면서 비극성이 한껏 고양되어 있다. 조악한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이 시가 비극적인 것은 어떠한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험악한 현실이 그러했다는 사실의 확인만이 있을 뿐이다.
어머니를 추억하는 것과는 달리 아버지를 추억하는 장면은 훨씬 더 팍팍한 현실에 입각해 있다. 이는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내면적 인지가 상당히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어머니에 대한 내면적 인지에 성스러운 종교성이 내포되어 있다면 아버지에 대한 내면적 인지는 사바세계의 번뇌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아버지 홀로 사는 시골집
쥐코밥상에서 무엇을 잡수셨나
간장에 마른 반찬 하나
어린 나를 기다리던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흔들린다, 당신처럼
― 「그 자리」 전문
아버지에 대한 태도가 연민에 가까운 것은 불우한 현실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린 나를 기다리던 그 자리’는 아버지와 나의 연대의 공간이면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의 또 다른 먼 미래라는 확인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더욱 절실한 것으로 만든다. 김선근이 노부부나 늙은 사람에 대해 그릴 때 언제나 선의의 눈빛을 보내는 이유도 자신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삶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육체성이 소멸된 어머니, 그리고 그 건너편에 완강히 육체로 남은 아버지의 형상이 이번 시집의 주된 두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양귀비와 민초民草 사이 ― 알레고리적 상상력
김선근 시인의 시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상의 세계를 알레고리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시에서 알레고리는 우화적 상상력을 비롯하여 언어유희나 의유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그 실현이 가능하다.
김선근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표현하려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비슷하게 만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럴 경우 발생하는 풍자나 연민 등을 통하여 이 세계에서 그나마 바람직한 삶의 양상이 무엇인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교훈성을 내포하는 측면이 있다. 세태에 대한 풍자는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는 탓에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그 지향하는 바의 것이 시인의 세계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살펴볼 부분이다.
개망초 꽃밭에 양귀비
하얀 민초民草 사이
붉게 피었다
젊은 여자 무릎 꿇고
경비는 따귀 맞는다
다름이 죄가 되는 세상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뙤약볕 속, 한생애 살다가
너도 지고 나도 질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
― 「갑질」 전문
민초로 상징되는 젊은 여자와 경비, 그리고 갑질을 하는 양귀비들. 꽃밭의 풍경을 우리 사회의 풍속으로 환원하였을 때 세상은 그리 살 만한 곳이 못된다. 무릎을 꿇고 따귀를 맞아야 하는 을과 민초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사회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갑과 을이라는 모든 관계 설정의 기초가 물질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은 후기 자본주의의 저열한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람살이의 여러 형용들은 무시된 채 자본만이 사람을 평가하는 수단이 되었을 때 그 세계, 다른 말로 그 꽃밭은 황폐화되고 말 것이다.
이 시는 그러한 반성을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근본적으로 너와 나라는 존재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친숙한 듯한 알레고리는 대중들에게 시대적 의미를 쉽게 전달하며 현재 세계에 대한 성찰적 시각을 제시한다.
중풍환자가 차에서 내리며 휘청거린다
늙은 아내가 옆구리를 감아 부축한다
휘청거릴 때마다 힘껏 일으켜 세운다
그의 위태로운 직립
한때는 그도
꼿꼿한 나무였던 때 있다
하늘을 반듯하게 받치고 서 있던 적 있다
― 「팽이」 전문
「팽이」라는 시는 한 사내의 일생을 그린다. 병든 말년의 사내를 서서히 그 속력이 다해 쓰러져 가는 팽이에 비유함으로써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삶을 우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팽이는 속력이 줄어들수록 흔들림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크게 흔들리는 중풍 환자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연민의 그것이다. 절정의 속력으로 ‘하늘을 반듯하게 받치고 서 있던’ ‘꼿꼿한 나무’는 이제 누구의 부축 없이는 그 나마의 흔들림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병들었다. 시인은 그것을 가리켜 ‘위태로운 직립’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존하는 누구도 완벽한 직립은 없다는 점에서 ‘위태로운 직립’이란 인간 보편의 삶에 대한 성찰적 경구에 가깝다.
늙은 여인의 일생을 ‘호미’에 비유한 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호미를 쥐고 한 평생을 살던 여인이 ‘쪼그려 땅을 파던 모양대로 걷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 여인이 호미와 같은 형상으로 비추어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릎 끌어안고 양지에’(「호미」 부분) 앉아 있는 여인의 형상은 담벼락에 걸린 호미와 등가의 존재인 것이다. 이렇듯 병들고 소외되어 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의 눈빛이 단순히 사물 하나의 속성에 비유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전체의 속성과 연관하여 비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삼복더위, 축축 늘어지는 한낮
망가진 우산 하나
죽어서도 꼿꼿하네요
거친 하늘 받아내던 그가
중심 한 번 내어준 적 없는 그가
시든 풀밭에 버려져 있네요
작은 걸림에도 쉬이 등 돌리는
타협이 난무하는 세상 한가운데
꼿꼿이 서 있어 본 적 있나요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던 그가
지켜야 할 게 있는 거라며
붉은 녹에 휩싸여 삭아가네요
― 「풍장」 전문
버려진 우산을 의인화한 이 시는 문면에는 자세히 나타나지 않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정성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자신이 불편하면 못 견디는 사람들, 그리고 타협이 난무하는 세상이 진정 괜찮은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은 풀밭에 버려졌지만 자신의 중심을 지니고 있는 우산과 대비되면서 우리로 하여금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더욱이 때가 되면 ‘붉은 녹에 휩싸여 삭아가’는 것이야말로 지켜야 할 도리라는 시적 진술은 더 철학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앞에 말했듯이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라는 일원론적 세계는 삶의 결과보다는 방식 혹은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다. 이러한 비판적 성찰은 인생의 비의를 깨우쳐 또 다른 삶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날마다 세상에 미끼를 던져놓다 ― 시 쓰기의 괴로움 혹은 즐거움
김선근의 시 가운데 몇 편은 시에 대한 메타적 관점을 보여준다. 많은 시인들이 시란 무엇인가 스스로 묻는 작업을 해온 것이 사실인데 김선근 시인도 역시 동일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 마지막 부분에 배치된 시편이「혹시나, 시詩」라는 작품이다. 시인으로서 강렬한 자의식은 자신이 쓰는 행위에 대한 자기 응시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 시를 맨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도 아마 시집 전체에 대한 통찰의 욕망에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물속을 다 훑어도 오늘은 예신조차 없다
예신이 꼭 본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느닷없이 오는 본신도 있다
느닷없는 것을 챔질하면 대부분 헛것이다
헛챔질에 놀란 물고기는
더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입질을 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시詩
여태껏 더듬더듬 희망 한 점 건져보려
혹시나 혹시나, 매일매일 세상에
미끼를 던져놓는다
― 「혹시나, 시詩」 전문
시 쓰기 행위를 낚시에 비유한 이 시는 시 쓰기의 고심참담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신과 본신은 낚시에서 고기가 미끼를 무는 신호와 같은 것이다. ‘오늘은 예신조차 없다’는 고백은 일상에서조차도 시를 감지하고 싶다는 열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느닷없이 오는 본신도 있다’는 시구에서 시인이 얼마나 세심한 감각의 촉수를 세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시란 언제든지 끌어올릴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과 감각의 길항 속에서 온몸이 하나의 미늘이 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한번 잘못 낚아 올리면 모든 일은 허사가 된다. 그것은 감정과 태도를 정비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정신을 파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혹 다른 일을 하더라도 시에 정신이 팔린 탓에 정확히 해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옛사람은 이를 들어 시마詩魔라 하지 않았는가?
시마에 들면 머리 빗기도 귀찮다는 말은 진실로 사실이다. 그가 이토록 시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래 전에 생활을 이유로 시를 멀리했던 과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처자식 굶는데 그깟 시詩 나부랭이가 뭐라고
십 년을 내팽개쳤다 다시 돌아오니
시詩만 야속하게 삐쳐 있더라
가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평생을 꼬드겨 보라는 듯
돌아보지도 않더라
― 「앙칼진 시詩」 부분
젊은 날 가장으로서의 생활은 시를 내팽개치게 만들었고 이제 다시 돌아와 시를 쓰고자 할 때 시는 돌아앉아 있다. 아주 떠난 것도 아닌 상태라는 말은 생활의 전선을 복무하면서도 그가 시를 잊은 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늘 보살펴주지 않았던 시는 그에게 냉큼 다가오지 않는다. ‘매일매일 세상에/ 미끼를 던져놓는다’는 행위는 시적 회개를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의 전 생애를 시에 투신하겠다는 결의를 포함하고 있다. 시란 복잡 미묘한 실체인 까닭에 아마 그의 시 낚기는 영원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시詩’.
김선근 시인의 시는 친근하면서도 우리라는 공동체의 관계를 생각게 해주는 측면이 많았다.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올바른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또한 시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자의식은 앞으로 더 많은 시 작업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한다. 더 멀리 가시라. 누군가는 이런 시를 썼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후회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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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저릿저릿한 가족사 풀어놓은 늦은 ‘첫 항해’ 부디 지치지 않길
오래 방황하던 김선근 시인이 드디어 “무릎 사이 오래 품었던/ 천 근 같은 닻을 걷어 올리”(「어떤 항해」)고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조금 늦었지만 배를 띄웠으니 끝까지 가야되지 않겠는가. 첫 항해에 그는 저릿저릿한 가족사를 담담히 풀어놓았다. 다음엔 무엇으로 독자의 가슴을 흔들어놓을 것인가. “혹시나 혹시나, 매일매일 세상에/ 미끼를 던져놓”(「혹시나 시시」)고 고민할 詩人이 안타깝기는 해도, 기왕 詩의 바다에 닻을 올렸으니 어쩔 것인가. 험한 그 길은 “잡힐 듯 잡힐 듯, 아무리 돌고 돌아도/ 흙먼지만 일”(「꼬리잡기놀이」) 수도 있고, “헛챔질에 놀란 문물고기”처럼 더 깊이 숨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어이 끄집어내고야 말 것이다. 맘에 드는 시 한 편 빚어내는 일이 월척 한 수 낚는 일만 못할 리 없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시인의 길, 부디 지치지 않길 바란다. ― 황희순 시인
인간의 삶을 알레고리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친근한 시편들
김선근 시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일상의 세계를 알레고리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시에서 알레고리는 우화적 상상력을 비롯하여 언어유희나 의유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그 실현이 가능하다. 「팽이」라는 시는 한 사내의 일생을 그린다. 병든 말년의 사내를 서서히 그 속력이 다해 쓰러져 가는 팽이에 비유함으로써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삶을 우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 늙은 여인의 일생을 ‘호미’에 비유한 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호미를 쥐고 한 평생을 살던 여인이 ‘쪼그려 땅을 파던 모양대로 걷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 여인이 호미와 같은 형상으로 비추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병들고 소외되어 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의 눈빛이 사물 전체의 속성과 연관하여 비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김선근 시인의 시는 친근하면서도 ‘우리’라는 공동체의 관계를 생각게 해주는 측면이 많다.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올바른 삶은 무엇인가 대한 문제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또한 시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자의식은 앞으로 더 많은 시 작업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한다. 더 멀리 가시라. 누군가는 이런 시를 썼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후회하는 자이다. ― 우대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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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근 시인∥
∙ 196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내고,
∙ 고교 때부터 구미에서 살고 있다.
∙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 현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 2007년 『현대시선』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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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책소개 > 중에서
알레고리적 상상력으로 인간의 삶을 풀어낸 김선근 시인의 첫 시집『울음이 죽다』
2007년『현대시선』신인상을 수상한 김선근 시인이 데뷔 10년 만에 첫 시집 『울음이 죽다』를 출간했다. 김선근의 첫 시집의 많은 부분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사에 그 끈이 닿아 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이 땅의 전형적인 어머니이다. 그러니 외형적으로 보자면 특별하달 것도 없을 터이지만 감정의 무게 중심 역할을 어머니라는 뚜렷한 실제이자 관념을 통하여 조절하고 있다. 시 속의 어머니는 늘 텅 빈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어머니의 상징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김선근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흔적 혹은 기운으로 존재하는 상징이라면 아버지의 형상은 삶의 현실적 비애에 더 직접적으로 선을 대고 있다. ‘땅에 떨어진 나방처럼/ 날갯짓 잃은 노래’(「아버지」 부분)라고 아버지를 비유하고 있다. 아버지의 비애는 생활에서 비롯된다. 농경을 근간으로 한 빈농으로서 어려움이 바로 그것이다. 어머니를 추억하는 것과는 달리 아버지를 추억하는 장면은 훨씬 더 팍팍한 현실에 닿아 있다. 이는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내면적 인지가 상당히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어머니에 대한 내면적 인지에 성스러운 종교성이 내포되어 있다면, 아버지에 대한 내면적 인지는 사바세계의 번뇌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현대시세계 시인선 076 / 김선근 시집 『울음이 죽다』| 작성자 북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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