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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신앙강좌
Ⅱ. 범부(凡夫, Prthagjana)의 개념적 발전
–– 약한 자들을 위한 구원의 정토교리
정희수 / 위스콘신대 불교학 박사과정, 본지편집위원
범부라는 개념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산스크릿 경전 본문에 나타난 중생(衆生, Sattva)의 개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생(sattva) 이라는 언어가 범부(Prthagjana)라는 용어보다 그들 본문에 자주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트바'는 일반적으로 '강성을 가진 모든 존재'를 가르킨다. 예를들면, 바수반두(世親. Vasubandhu)가 지은 아비달마 구사론 (阿毘達磨俱舍論)에 의하면 중생의 업(業.sattvakarman)이 우주를 형성했다고 전제한다.주1)
그것은 처음 비생명을 만들었고 다음에 생명을 창조했다고 한다. 생명을 만들므로 그것은 육도(六道)를 짓게 되니 이는 바로 우리들 중생이 업에 따라서 여섯가지의 존재양식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신적인 존재(deva), 인간(manusa), 싸우는 마귀(asura), 동물(tiryag - yoni), 배고픈 귀신(preta), 그리고 최저의 존재로서 지옥(naraka)이다. 모든 중생은 이 육도중의 한 가지 양상으로 존재하며 영구적으로 그들안에서 윤회하게 된다.
불교의 태동 이전에 인도의 토착적인 종교들은 일반적으로 이와같은 업의 윤회를 실재로 사려했으며 아주 수동적으로 육도의 세계중에서 보다 높은 위계에 재생할 것을 염원하여 왔을 뿐 그들은 이 순환되고 반복되어지는 윤회의 굴레를 넘어선 초월의 경지를 감안하지 못하였다.
불교는 바로 이런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제공했다.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는 바로 인간해방을 향한 적극적인 묘사이며 가르침이다. 이렇듯이 육도윤회의 굴레를 초월했던 사람을 성지(聖智, aryajana) 또는 성자(聖者)라고 불렀으며 육도윤회 가운데 계속 굴레지워진 존재양상을 범부라고 일컬었다.
어원학적으로 말하면 프르타그자나(prthagjana)는 프르타크(prthak), "범(凡)"- (보통)이라는 말과 자나 (jana), "부(夫)"- (사람)이라는 두 음절이 복합되어진 명사이다. 주2) 여기서 주목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범부가"인간의 근기(根機)"가 열등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이는 인도에서 불교사상이 발전되어질 때 이미 선행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프라크르타자나 (prakrtajana, 자연인)나 사마자나 (samajana, 보통사람)라는 두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묘사할 때 쓰여졌던 것과 같이 동의어로서 사용 되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가 역사적으로 전개되어가면서 그 의미는 정치적으로 다른 의미들을 내포하게 되었다. 모니에르 윌리암스( Monier Williams)는 그의 산스크릿어 사전에서 범부라는 말을 '보통 저속한 사람(a common vulgar person)'이라고 사용했다. 주3)
아마 이 번역은 앞으로 우리가 논의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는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있다. 왜냐하면 범부라는 말은 소승과 대승 양쪽에서 다같이 깨달음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열등한 근기의 사람에게 사용되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아르야자나(聖者,aryajana)라는 말을 아라한과 보살에 적용한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사용되어졌다. 범부의 구별되는 두 가지 특징은 진리(法, Dharma)에 대한 무지와 끊임없는 윤회를 여전히 반복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범부라는 개념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 거룩한 진리를 깨닫거나 거룩한 지혜나 인내를 갖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실패한 존재를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범부는 불법의 연기적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가당착에 빠져서 자신의 존재양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집착해 왔다. 무지로 인해서 그는 연기(綠起, pratityasamutpada)의 보편적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육도 윤회의 굴레 속에서 지친 반복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보통 모든 사람들이 자기존재양식에 집착하므로 실제 이루어가야 할 해탈(解脫), 즉 인간해방의 세계로 나가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보겠다.
여기서 보다 더 고찰하여 보고싶은 것은 불교사상의 발전역사 속에서 범부라는 개념이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다. 아마 우리가 부처님 당시의 사람들을 대략 두 가지의 범주로 구분해도 좋을 것이다. 즉 하나는 아르야자나(aryajanas, 聖)로서 이미 윤회의 굴레를 초월했던 자들이며, 다음으로는 프르타그자나(prthagjanas, 凡夫)인 윤회의 반복을 초월한 해탈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이다.
그리고 범부들을 월등한 형태와 아주 열등한 상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중에 월등한 형태는 윤회의 굴레를 초월한 거룩한 사람들(聖者)이 되기 전의 후보자들이며, 열등한 상태의 범부를 "어리석은 범부"(bala - prthagjana)라고 칭한다.
아래의 도포를 통해 설명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Ⅰ. 거룩한 사람들 (聖者, aryajana)
Ⅱ. 범부들 : (凡夫, prthagjana)
ㄱ. 성자의 후보자들 - 월등한 형태로서의 범부
ㄴ. 어리석은 범부들 - 열등한 형태로서의 범부(三淨因)
이런 기초적 구분은 보다 세분화된 체계로 발전시킨 것이 아비달마계통의 교리전개이다.
Ⅰ. 성자(聖者, aryajanas)
(1) 아라한과 (阿羅漢果)- 최고의 경지(무학과, 無學果uttara -marga)
Ⅱ. 범부 (凡夫, prthagjana)
7) 칠방편(七方便): 성자후보자
(9) 사선근(四善根), 내범위(內凡位)
(10) 삼현(三賢), 외범위(外凡位)
レ) 삼정인(三淨因,Bala -prthagjana): 어리석은 범부들
위의 구분에 의하면 (1) 아라한과는 최고의 단계이며 다른 단계에있는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기도 한다. (1)에서 (8)까지의 단계에 속하는 수행자들을 성자(Aryajana)들이라고 하며, (9)와 (10)을 칠방편 즉 성자가 될 수 있는 후보자들이며, 그들은 실제로 육도 윤회의 반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이 불교의 수행 가운데 참여되고 있지만 그들은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범부라고 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이전 자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을 일컬어 삼정인(Bala - prthagiana, 어리석은 범부들)이라고 한다. 그렇듯이 성자후보자들로서의 칠방편은 범부중에서도월등하게 우월한 형태이며 삼정인은 열등한 범부라고 할 수 있다. 이 도식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면 삼정인인 어리석은 범부들은 우선 먼저 성자후보자인 칠방편에 속해야만 성자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수 있게 된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범부에 대한 이해의 배경이 되어질 수 있는 대승불교의 수행체계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 대승불교의 체계에 있어서 수행자로서의 이상적인 형태를 이름하여 보살이라고 하며, 이는 그들 자신의 진정한 해방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고 다른 이들의 해방에도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고 규명한다. 성문승(聲聞乘, Sravakas)과 연각승(祿 覺僧, prathekabaddhas)는 이와 달리 열등한 형태의 수행형태로써 소승(小乘, Hinayana)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대승에서는 모든 중생들이 거처할 곳을 십법계(十法界)로 인식해왔다. (1) 불타의 세계(2) 보살의 세계 (3) 연각승의 세계(4) 성문승의 세계 (5) 신적인 존재들의 세계 (6) 인간의 세계 (7) 싸우는 마귀의 세계 (8) 동물의 세계 (9)배고픈 귀신의 세계 그리고 (10) 지옥의 세계로 구분된 것이 그것이다.
대승의 수행체계는 십계(十界)에 기초하고 있으며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소승의 체계는 다양한 보살의 수행체계의 기초가 되었다.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大正,24. No. 1485, p. 1011bc)에 관계된 보살의 오십이(五十二)단계는 보살의 수행채계를 가장 완성시켜 놓은 것 중의 하나이다.
그것을 도표로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다.
52단계 가운데 두 단계의 가장 높은 경지는 51과 52단계로서 불타의 세계이며, 이는 50단계들에 속하는 모든 이하의 수행자들의 목표가 된다. 41단계에서 52단계에 속하는 보살들은 제몫을 다하는 어엿한 보살들이다. 십지도 이에 속한다. 초지로부터 40단계에 이르는 모든 중생들은 칠방편으로서 보살 후보생들이 되는 것으로 분석할 수있다.
소승성자(小乘聖者) 후보자들과 같은 사례로 이들 보살 후보자들은 육도윤회의 반복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다. 비록 그들이 불교의 수행 범주내에 속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를 우리는 범부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직 52단계의 수행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을 삼정인 또는 어리석은 범부(bara- prthagjana)라고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보살 후보자들은 우월한 형태의 범부라고 말할 수 있으며 삼정인은 열등한 형태의 범부(prthagjana)라고 할 수 있다. 소승 체계의 수행단계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이 체계의 합리적인 기초는 어리석은 범부로부터 성자의 단계를 성취해 나가는데까지 설명한다. 이런 구분의 형태로부터 주목해보듯이 아비달마와 대승불교에서 어떠한 한 개체도 아라한과 불타의 경지를 획득할 수 있는 점진적인 가능성으로부터 제외된 것이 없음을 주목하게 된다. 가능하면 모든 중생이 다 불타께서 가르치고 제시한 참된 해방의 경지에 도달되도록 구조화되고 고무되어지는 것이 불교적 구원의 보편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발전과정에서 또하나의 다른 열등한 존재로서 규정되어진 형태의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천(闡提, icchantika)"이다. "천데"는 깨달음(bodhi)을 성취하기 위한 근기가 부족한 것을 의미한다. 이는 보리(菩提)를 성불할 성품이 없다는 이들을 가르치며 다른 말로는 단선근(斷善根) 또는 신불구족(信不具足)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개념은 어리석은 범부보다도 더 낮은 근기를 가진 자들을 일컫는 것으로서 아예 윤회의 반복으로부터 결코 자신들을 해방시킬 능력이 없는 이들을 의미한다. 어쨋든 인도불교의 맥락속에서 볼 때 범부는 항상 그 수행을 통하여 낮고 열등한 단계의 사람을 총칭하였으나 그들이 늘 아라한과 불성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하였던 것 같다.
반면 그들의 구원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래의 서술을 통하여 보고자하는 중국 정토불교의 교의 발전에서 모든 인간의 구원을 폭넓게 가르치며 위에서 구분되었던 그런 판례들 조차도 변칙적으로 받아지고 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범부는 그들의 진정한 해방을 성취하기 위해서 성자(aryajana)가 되어야만 하는 조건을 더이상 제안하지 않고 그가 수행의 노정에 있거나, 비록 그 밖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가능한 것으로 구원의 문을열고 있다는 사실이다.
범부들은 그 존재 자체로서만으로도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오히려 범부는 중국정토불교의 체계속에서 구원을 향한 가장 적절한 존재의 양태로 사려되게 되었다. 이런 사상적인 형성과정에 대해서 논의하기 이전에 프르타크자나(prthagjana)와 발라 프르타크자나(bala - prthagjana)의 개념이 한문으로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프르타크자나(prthagjana)
(1) 범(凡), 범부, "보통 사람들"- 이는 "범용사부(凡庸士夫)"의 줄임말이다. (2) 범우 (凡愚), 우치범부 (愚癡凡夫), 우부(愚夫) (3) 이생 (異生, 다른 종류의 탄생) 주4)
발라 프르타크자나(Bala-Prthagjana)
(1) 범부(凡夫), (2) 범우(凡愚), 우치범부(愚癡凡夫), 우부(愚夫),무지지인(無智之人,지혜가 없는 사람) , (3) 영아범부(瓔兒凡夫, 간난아이 같은 범부) 소아범부(小兒凡夫, 어린아이 같은 범부) 주5)
모도범부(毛道凡夫, 머릿털같은범부), 경모범부(輕毛凡夫, 가벼운 털이 바람에 날리듯 동요하는 어리석은 범부), 신외경모(信外輕毛, 십신(十信) 의 범주 바깥에 있는 어리석은 범부) 주6)
위의 (1)과 (2)그룹에서, 사실상) 산스크릿원어는 같은 의미로서 통용될 수 없는 프르타크자나와 발라프르타크자나를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종종 같은 한문용어로 사용했다. 물론 이 두 단어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각 원전을 대비하여 살필 필요가 있겠으나 자료의 한계상 그것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두개의 용어가 범부로 통용되었지만 프르타크자나는 "보통사람들"을 , 발라 프르타크자나는 보다 "열등한 단계의 범부"를 일컫는다는 사실이다. 주7
한가지 위의 열거에서 주목하여 고찰해나가야 할 것은 중국정토가에서 프르타크자나 중 보살이 될 수 있는 후보자로 보았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며, 이는 중국 정토가에서 어떻게 열등한 근기의 중생들의 구원에 대하여 주목하고 있느냐 하는 견해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서론적인 고찰의 하나로 인도가 중국에서 사용해온 범부라는 개념의 의미를 눈여겨 보았는데, 앞으로 본인은 중국정토사상에서 어떻게 그것을 사상적으로 도입하고 해석하느냐 하는 점을 연구해 나가고자 한다.
바로 이 주제는 불교가 모든 인류의 중생의 구원을 가르치고 있는 점을 정토사상이 특히 어떻게 전개.수용하고 있느냐하는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며, 동시에 보통
사람인 범부나 진리를 이해할 능력이나 수행할 능력조차 없는 인간에게 어떻게 구원과 해방의 길이 불교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느냐하는 점을 정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어쨋든 민중신앙의 핵이 된 정토신앙은 철저한 승가생활의 윤리적 실천을 종용하거나 명상을 통한 고도의 자기성찰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쉬운 수행의 길을 열어 보이므로 모든 인간에게 허용되어지고 이미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선물되어진 구원을 완성하거나 그 체험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약한자들에게 넓게 열려진 구원의 문이라고 보겠다.
주
1) 대정(大正), 29, No. 1558. pp. 1-13
2) prthu가 때로는 prthak으로 사용
되기도 한다. Franklin Edgerton, Buddhist Hybrid Sanskrit Grammer and Dictionary(Delhi : Motilal Banarsidass, 1970) Vol. II. p. 353
3) Monier Willians, A Dictionay, English and Sanskrit (Delhi: Motilal Banarsidass. 1971), p. 112
4) 이 번역은 玄裝(600-64)에 의해서 주도되었는데 異生이란 특히 육도가운데 다양한 형태로 태어난다는 것을 특징지워 기술한 것이다.
中村元, 불교어대사전(동경, 1975) p. 36cd
5) '영아범부'와 '소아범부'는 bala-prthagjana'의 잘된 번역이다. 왜냐하면 bala'라는 말은 '어리석은'이란 의미와 버금가게 '간난아이 같은' 또는 '어린아이 같은'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6 '모도범부, '경모범부', 그리고 '신외경모' 등은 "bala-prthagiana'라는 말은, 508년에 북인도에서 중국에 온 번역승 보디류치에 의해서 잘못 번역된 데서 비롯된 표
현들이다.
그는 "bala'를 'vala(머릿털)'로 오해하였던 것이다. 망월신형, 망월불교대사전, 10권 (동경, 1954-63) p. 4706
7) 산스크릿어의 중국어 번역과정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bala:凡夫,凡愚,愚夫,愚癡凡夫 愚童
balacarin:愚癡,凡人
balajana:愚夫,無智人
balasattva:愚癡有情
balabhddhi:無智,凡愚
balajathiya:小兒,愚夫,愚癡, 愚癡凡夫
1992년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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