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제주 특유의 구불구불한 돌담으로 경계 지어진 밭에는 거의 예외 없이 겨울무가 자라고 있었다. 밭에 따라 생육의 정도는 달랐지만 평야지대에 있는 밭에선 대체로 길이 10㎝가량 되는 무가 땅속에 박혀 있고 땅 위에는 초록색 잎이 무성했다.
강금란 성산일출봉농협 유통사업소장은 “추석 연휴를 전후해서 비피해가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재파종이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전체적인 작황도 아주 좋다”면서 “앞으로 날씨 변수가 없다면 이르면 11월20~25일에 초출하가 이뤄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22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백약이오름. 해발고도 350m 남짓되는 이곳에서도 무밭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지역농협들은 계약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고도 200m 이상 지역에는 냉해피해 등을 우려해 무를 심지 않도록 지도한다. 하지만 올해는 고지대는 물론 심지어 목초지에도 무가 꽤 심겼다는 말이 농민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돌고 있다. 지난해 가격이 좋아 상인들이 이른바 ‘묻지마 정식(아주심기)’을 한 사례도 상당부분 있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이런 소문을 반영하듯 오름 곳곳엔 무밭이 대거 눈에 띄었다. 평야지대에 위치한 밭에 비해 규모가 컸고 일찍 아주심기에 들어간 때문인지 이파리가 많이 자라 있었다.
제주지역은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전국을 상대로 겨울채소 공급을 전담하다시피한다. 그런 제주지역에서 최근 겨울무를 바라보는 시선에 걱정스러움이 가득하다. 재배면적이 당초 예상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는 데다, 날씨까지 좋아 작황 호조에 따른 과잉생산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달여 전(9월11일) 발표된 제주특별자치도의 재배의향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7~2018년산 겨울무 재배면적은 4529㏊로 집계됐다. 전년(4062㏊)보다 11.5% 늘어난 것이며 최근 5개년 평균면적(4346㏊)과 견줘서도 4.2% 증가한 것이다. 당근·양배추·브로콜리 등 주요 겨울채소들은 늘어도 대체적으로 전년보다 재배면적이 2~4%에 그치지만 겨울무의 증가세는 압도적이다.
그런데 지역 내 종자업계에선 종자 판매량으로 보면 600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어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김정호 농협경제지주 원예부 원예관측정보팀장은 “이달 1~2일 성산·표선지역의 집중호우에 따른 재파종 물량을 고려한 것이긴 하지만 종자 판매량이 늘었고, 더구나 생육이 빠른 조생종 위주로 증가했다는 게 도내 종자업계의 설명”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겨울무 풍년 기근’에 대한 우려가 점차 높아지면서 선제적인 수급조절에 나서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김진영 함덕농협 경제상무는 “수확도 하기 전에 (갈아)엎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김장용 가을무는 과잉생산에 따른 값 하락이 우려되고 있어 겨울무가 연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큰 만큼 가을무와 겨울무의 수급조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민 농협경제지주 제주부본부장은 “겨울채소의 수급안정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역농협 등이 협의해 선제적인 수급조절 대책을 늦어도 11월 초순에는 내놓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