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경제학의 비일관성을 폭로하다
이제 스미스와 리카도의 경제학이 왜 그토록 마르크스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자. 이에 앞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다름 아닌 마르크스는 항상 자신을 스미스와 리카도의 충실한 계승자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에서도 마르크스 경제학은 항상 스미스 및 리카도와 함께 고전경제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러한 평가와 더불어 마르크스의 사상은 근대사상으로 묻혀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가 온당한 것일까? 과연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스미스 및 리카도와 동일한 근대사상의 궤적에 놓여 있는 것일까?
스미스 및 리카도 같은 부르주아지 경제학자와 마르크스 사이에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단절이 존재한다. 그러한 단절은 역설적이게도 스미스와 리카도의 사상을 충실하게 따를 때 나타난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을 일관되게 설명하다 보면 근본적인 모순이 도출되는데 그러한 모순을 은폐하느냐 혹은 드러내느냐가 그들과 마르크스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령 스미스의 경우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1776)에서 국가의 경제적 부를 이루는 원천으로 노동을 든다. 시장경제에서 모든 재화 혹은 용역은 상품으로 존재하는데 상품의 가치는 곧 노동인 셈이다.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서 가격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 주지하다시피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이 항상 작동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다수의 공급자들이 존재하는 경쟁체제에 의해서 유지된다. 그리하여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경제적 위기(공황)가 발생할 경우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은 파산하게 되며 소수의 기업만이 살아남게 된다. 이 경우 독과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스미스는 이미 자신의 저서에서 이 사실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로 발달할 경우, 경제는 소수 기업의 독점에 의해서 운영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스미스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논리적으로 매우 일관된 것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스미스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서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발전이 극소수의 독점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스미스의 언급만큼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솔직한 묘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는 이런 결과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록 독점으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독점 기업가는 인구의 극히 적은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하루 다섯 끼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소비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스미스에게 독점은 심각한 현상이 아니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스미스의 비일관성이 잘 드러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스미스는 자본주의 경제의 현상만을 충실하게 묘사하였을 뿐 그 현상 밑에 있는 본질을 간파하지 못했다.
이러한 비일관성은 리카도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 리카도 역시 부의 원천을 노동으로 보는 ‘노동가치설’을 충실하게 따른다. 상품의 가치를 형성하는 궁극적인 근원이 노동이라는 것은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리카도의 경제학에서도 출발점을 이룬다. 물론 두 사람의 노동가치설에도 차이가 있다. 이른바 ‘지배노동설’이라고 불리는 스미스의 이론은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과 얼마나 교환될 수 있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본다. 이에 반해서 ‘투하노동설’이라고 불리는 리카도의 이론은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에 얼마만큼의 노동시간이 투여되었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이론을 따른다.
마르크스는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리카도의 사상에도 치명적인 모순이 있음을 밝힌다. 리카도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1817)의 전반부에서 노동가치설을 매우 치밀하게 설명한다. 물론 핵심적인 내용은 모든 경제적 가치의 근원이 노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는 달라진다. 그는 자본의 수익을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하여 이윤, 이자, 지대로 나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리카도가 제시한 전반부의 노동가치설에 따르자면 이윤, 이자, 지대의 원천은 모두 노동이라는 단일한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리카도는 이윤, 이자, 지대의 원천을 각기 다르다고 보았다. 이윤은 자본의 이익에서, 이자는 화폐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에서, 지대는 토지가 지닌 비옥함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가의 수입이나 이자, 혹은 토지 소유자의 지대는 땅에서 혹은 화폐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며 착취된 노동의 다양한 형태에 불과하다. 따라서 리카도의 이론은 이윤, 이자, 지대가 모두 노동의 착취일 수밖에 없다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부정하고 이를 교묘하게 은폐하는 데 기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전경제학의 비일관성을 폭로하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