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응현목탑(应县木塔, Yingxian Muta)의 공식 명칭은 불궁사 석가탑(佛宫寺释迦塔)으로, 중국 산시성(山西省) 숴저우시(朔州市) 응현(应县) 진청진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거대한 전목(全木) 구조의 고층 탑식 건축물로,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 프랑스의 에펠탑과 함께 ‘세계 3대 기이한 탑(世界三大奇塔)’으로 꼽힌다.
순수 목조 구조: 탑의 높이는 67.31미터, 기단 지름은 30.27미터에 달한다. 탑 전체에 수천 세제곱미터의 붉은 소나무(홍송) 재료가 사용되었으며, 총무게는 약 7,400톤이다. 탑 전체에 단 하나의 쇠못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맞물림 구조인 짜임(卯榫, 결구) 방식으로만 결합하여 지탱하고 있다.
목탑에는 총 54가지의 서로 다른 형태의 공포(기둥 위에 지붕을 받치기 위해 짜 맞춘 나무 부재)가 사용되었는데, 이처럼 종류가 다양한 것은 중국 국내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공포는 목조 구조에서 '자동차의 쇼바(완충기)' 같은 역할을 하여,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느슨하게 변형되면서 에너지를 흡수한다. 이것이 바로 목탑이 천년 동안 무너지지 않은 핵심 비밀이다.
지난 천 년 동안 응현목탑은 여러 차례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며, 건축사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목탑은 수십 차례의 강한 지진(파괴력이 엄청났던 싱타이 지진, 탕산 지진 등의 여파 포함)을 겪었다. 주변의 가옥들은 대거 무너졌지만, 목탑은 삐걱거리는 소리만 났을 뿐 시종일관 굳건히 서 있었다.
근대 군벌 혼전기와 항일 전쟁 시기, 목탑은 여러 차례 포격을 당해 탑신에 200여 개의 총탄 자국이 남았으나 여전히 부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목탑 주변에는 피뢰 시설이 없지만, 높이 솟은 탑찰(탑 꼭대기의 금속 부분)과 주변의 독특한 지형이 일종의 천연 '피뢰망'을 형성하여 여러 차례 낙뢰로 인한 화재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외관상으로 보면 응현목탑은 5층에 처마가 6개(五层六檐)인 구조이지만, 실제 내부 구조는 '명오암사(明五暗四)'이다. 겉으로 보이는 5개의 주 층(명층) 사이에, 창문이 없고 오직 구조적 지탱 역할만 하는 암층(암흑층) 4개가 숨겨져 있다. 이 암층들이 마치 손오공의 금고아처럼 목탑을 단단히 조여 매어, 강성이 매우 뛰어난 '이중 튜브(套筒)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 설계 덕분에 목탑의 내진 및 내풍 능력이 극대화되었다.
건축물 자체 외에도 목탑 내부에는 매우 높은 종교적, 역사적 가치가 담겨 있다. 2006년, 목탑 내부의 요나라 시기 불상 안에서 두 과의 불치 사리(부처님 치아 사리)**가 발견되었다. 고증 결과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로 밝혀져 불교계의 지고한 성물로 추앙받고 있다.
탑 내부에서 수많은 요나라 시대의 각본(목판본), 사경, 견화(비단 그림) 등 소중한 문화재가 출토되어 요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를 연구하는 데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탑에는 역대 명인과 정요들이 쓴 현판들이 즐비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명나라 성조 영락제가 친필로 쓴 ‘준극신공(峻极神工, 높고 지극하여 귀신이 만든 솜씨 같다)’과 명나라 무종 정덕제가 쓴 ‘천하기관(天下奇观, 천하의 기이한 장관)’이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데다 과거 잘못된 보수 공사로 인해, 현재 응현목탑은 일부 구간이 기울어지는 현상(경사)이 발생했다. 이 국보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 응현목탑은 1층 내부만 개방하여 불상을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탑 위로 올라가는 등탑(登塔)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 아래에서 그 웅장한 자태와 정교한 공포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천년 전 중국 고건축 기술의 압도적인 아우라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첫댓글 응현목탑(应县木塔, Yingxian Muta)의 공식 명칭은 불궁사 석가탑(佛宫寺释迦塔)으로, 중국 산시성(山西省) 숴저우시(朔州市) 응현(应县) 진청진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거대한 전목(全木) 구조의 고층 탑식 건축물로,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 프랑스의 에펠탑과 함께 ‘세계 3대 기이한 탑(世界三大奇塔)’으로 꼽힌다.
요(辽)나라 청녕 2년(공원 1056년)에 짓기 시작하여, 금(金)나라 명창 6년(1195년)에 증축을 마쳤다. 현재까지 약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순수 목조 구조: 탑의 높이는 67.31미터, 기단 지름은 30.27미터에 달한다. 탑 전체에 수천 세제곱미터의 붉은 소나무(홍송) 재료가 사용되었으며, 총무게는 약 7,400톤이다. 탑 전체에 단 하나의 쇠못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맞물림 구조인 짜임(卯榫, 결구) 방식으로만 결합하여 지탱하고 있다.
목탑에는 총 54가지의 서로 다른 형태의 공포(기둥 위에 지붕을 받치기 위해 짜 맞춘 나무 부재)가 사용되었는데, 이처럼 종류가 다양한 것은 중국 국내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공포는 목조 구조에서 '자동차의 쇼바(완충기)' 같은 역할을 하여,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느슨하게 변형되면서 에너지를 흡수한다. 이것이 바로 목탑이 천년 동안 무너지지 않은 핵심 비밀이다.
지난 천 년 동안 응현목탑은 여러 차례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며, 건축사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목탑은 수십 차례의 강한 지진(파괴력이 엄청났던 싱타이 지진, 탕산 지진 등의 여파 포함)을 겪었다. 주변의 가옥들은 대거 무너졌지만, 목탑은 삐걱거리는 소리만 났을 뿐 시종일관 굳건히 서 있었다.
근대 군벌 혼전기와 항일 전쟁 시기, 목탑은 여러 차례 포격을 당해 탑신에 200여 개의 총탄 자국이 남았으나 여전히 부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목탑 주변에는 피뢰 시설이 없지만, 높이 솟은 탑찰(탑 꼭대기의 금속 부분)과 주변의 독특한 지형이 일종의 천연 '피뢰망'을 형성하여 여러 차례 낙뢰로 인한 화재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외관상으로 보면 응현목탑은 5층에 처마가 6개(五层六檐)인 구조이지만, 실제 내부 구조는 '명오암사(明五暗四)'이다.
겉으로 보이는 5개의 주 층(명층) 사이에, 창문이 없고 오직 구조적 지탱 역할만 하는 암층(암흑층) 4개가 숨겨져 있다.
이 암층들이 마치 손오공의 금고아처럼 목탑을 단단히 조여 매어, 강성이 매우 뛰어난 '이중 튜브(套筒)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 설계 덕분에 목탑의 내진 및 내풍 능력이 극대화되었다.
건축물 자체 외에도 목탑 내부에는 매우 높은 종교적, 역사적 가치가 담겨 있다.
2006년, 목탑 내부의 요나라 시기 불상 안에서 두 과의 불치 사리(부처님 치아 사리)**가 발견되었다. 고증 결과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로 밝혀져 불교계의 지고한 성물로 추앙받고 있다.
탑 내부에서 수많은 요나라 시대의 각본(목판본), 사경, 견화(비단 그림) 등 소중한 문화재가 출토되어 요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를 연구하는 데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탑에는 역대 명인과 정요들이 쓴 현판들이 즐비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명나라 성조 영락제가 친필로 쓴 ‘준극신공(峻极神工, 높고 지극하여 귀신이 만든 솜씨 같다)’과 명나라 무종 정덕제가 쓴 ‘천하기관(天下奇观, 천하의 기이한 장관)’이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데다 과거 잘못된 보수 공사로 인해, 현재 응현목탑은 일부 구간이 기울어지는 현상(경사)이 발생했다. 이 국보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 응현목탑은 1층 내부만 개방하여 불상을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탑 위로 올라가는 등탑(登塔)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 아래에서 그 웅장한 자태와 정교한 공포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천년 전 중국 고건축 기술의 압도적인 아우라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응현목탑
응형목탑의 편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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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형목탑의 공포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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