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인입니다
우리 손자가 군입대를 했다.
손 붙들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커서 헌헌장부가 되어 군대를 가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 1학기 종강을 하고 온후
그날로 육군본부에 입대신청을 했다.
며칠 후 1차합격통보가 오고
구비서류를 제출 하라고 했다.
서둘러 재학증명서와 헌혈증명서를 보냈다.
그 뒤 8월21일에 논산훈련소
입소를 하라는 영장 통고를 받았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진행이 되었다.
한여름이나 지나고 가을쯤 입대하기를 바랐었는데
청천벽력처럼 급한 소식을 듣고 나는 정신이
얼떨떨하고 가슴이 뛰고 섭섭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저는 빨리 가게 되어 잘됐다고 좋아했지만
한창 더울 때 그 힘든 훈련을 받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고 애처로운 생각에 내 마음은
영 편치가 않았다.
제 엄마도 추운 겨울철보다는
여름철이 그래도 좋다고 했다.
8월21일이면 앞으로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군입대를 며칠 앞두고 손자는 머리를 깎았다.
먼저 군대에 갔던 친구가 마침 휴가를
나왔다고 집에 와서 머리를 깎아 주었다.
"야! 너 내 머리를 아주 망쳐 놓는 것 아니냐?”
“대한민국 이발병을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냐?”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머리를 깎더니 순식간에
스포츠형 군인 머리로 예쁜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아주 딴 사람이 되었다.
우리 손자는 지금까지 짧은 머리를 한번도
안 해보았기 때문에 영 딴사람처럼 낯이
설어서 보고 웃었다.
머리를 언제 깎아봐서 그렇게 재주가
좋으냐고 내가 칭찬을 해 주었다.
군대에 가서 배웠는데 몇 달 동안 수없이 많은
군인들 이발을 해서 잘 한다고 한다.
이 친구는 대학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는데
내년 1월이면 제대를 한다고 한다.
그동안 먼저 가서 군 복무 잘 하고
매를 먼저 맞고 오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 손자는 이제 입대하면 후년(2019)5월에
돌아온 다니 까마득하다.
저녁에 제 엄마가 퇴근해서 보고는
“우리 아들 어디 갔나?”라고 해 웃었다.
2017년 8월21일 이렇게
손자가 논산훈련소에 입소를 했다.
6주간의 힘든 훈련을 받고
9월27일 수료식을 하게 되었다.
수료식 때에는 가족들 참관이 허용되어
나도 함께 가 볼 수 있었다.
수료식은 연무대 실내 체육관에서 했는데
우리는 일찌감치 먼저 가서 중대 배치도를 받아
11시 정각에 수료식이 시작되어
훈련병들이 입장을 했다.
천여명의 장병들이 일사분란 하게, 절도 있게,
씩씩하게 행진해 들어오는 모습이 늠름하고
군인 다웠다.
불과 한달 동안에 이렇게 의젓하고 당당하게
달라진 모습들이 근검하고 믿음직스럽고 멋 있었다.
똑 같은 군복에 검게 탄 얼굴, 베레모,
모두 같아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 틈에서도 어미의
눈에는 제 자식만 보이는 법. 우리 손자의
모습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수료식이 30분 만에 끝나고 마지막 순서로
부모들이 나가서 자기 아들에게 이병 계급장과
태극기를 달아주었다.
그 뒤 2주간의 정보학교 교육을 받고
3군단 정보대대에 자대배치를 받았다.
10월19일 을지기지에 투입되었다고 대대 온라인
소통채널 밴드에 손자 사진이 올라왔다.
함께 간 동기생 4명이 선임들과 같이 모두 웃는
모습으로 찍은 사진이 재미있고 따뜻하게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이곳에서 손자는 20개월동안 지상감시장비운용
행정병으로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앞으로 복무 소식을 이 밴드를 통해서
가족들에게 알려준다고 한다.
나도 밴드에 회원가입을 하고 댓글도 썼다.
그 후 밴드에는 사진이 가끔 올라왔다.
생활관 모습도 보여주고, 신병 전입, 병사 진급,
병장 전역, 훈련소식, 생일축하, 불고기파티,
치킨 피자 파티 등 각종 행사가 있을 때마다
소식을 사진과 함께 올려서 보여주었다.
훈련소에 있을 때에도 매주 사진이 올라와서
손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훈련소 연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훈련병에게 편지도 쓸 수 있었다.
나도 손자가 보고 기뻐하라고
매일 전자메일 편지를 써서 보냈다.
아침 저녁 두번씩 담당 교관병사가
편지를 복사해 전해주었다고 한다.
지금 근무처인 을지기지에서는 마음대로
집에 전화도 할 수가 있다. 손자는 주말이면
전화를 한다.
손자의 전화는 특이하다.
벨이 울리면 스마트폰에 이런 글자가 뜬다.
“대한민국 군인입니다.”
전화기를 누르면 손자의 반가운 음성이
감동으로 메아리 쳐온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반가운 전화가 어디에 또 있을 까.
사람의 관심이란 참 무섭다. 손자를 군대에 보내 놓고
나니 길거리에 다닐 때나 지하철 안에서나
군인만 눈에 보인다.
단정한 군복과 멋진 베레모의 용사들이 어찌
그리도 잘들 생겼는지 깎아 놓은 밤톨처럼
똘똘하고 야무지고 씩씩하고 예쁘다.
모두 우리 손자들 같다.
“얼마나 고생들이 많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보고 또 보곤 한다.
손자는 휴가도 2개월에 한번씩 자주 나온다.
어떤 때는 한달에 한번 나올 때도 있다.
휴가 기간은 대개 1주일, 또는10일이다.
이렇게 휴가를 몇 번 나오다 보니 까마득하게
멀기 만했던 세월이 어느새 훌쩍 지나가
손자는 앞으로 3개월여 뒤로 전역을 앞두고 있다.
옛날 우리 남편세대 때에는 군대 란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피할 수만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고 한다.
배도 많이 고팠다 고 한다.
매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훈련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철과 무더운 여름철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혹독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의 권력만 있어도 자기 아들들은
군대에 안 보내려고 병역기피를 많이들 했었다.
우리 아들때만 해도 그랬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후 어디로 가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전혀 소식을 모른 채
6개월만에 면회통보를 받고 첫 면회를 갔었다.
지금의 군대생활과 비교를 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외아들로 고생 모르고 자라서 편한 세상만 살아왔다.
군대에 가서 단체생활을 하며 가정에서 못 느꼈던
전우애에서 형제애를 체험하며, 어려운 훈련과
힘든 생활을 함께한 동료들과 젊은 날의 귀한
추억도 공유하면서 인격형성의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고된 삶을 겪으며
그동안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부모에 대한 사랑과
감사도 배우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뒤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서 몸과 마음과 인격이 많이
성장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훌륭한
인성교육을 받게 되는 좋은
체험의 현장이 될 것도 같다.
그래서 군대 란 안 갈수만 있으면 안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나라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가야 하는 훌륭한 교육기관, 애국 애족하는
충성과 의무의 육성기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군대는 ‘
진짜 사나이가 되는 요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 손자도 외동아들로 자라서 저 밖에 모르는
괴짜가 될 가봐 염려를 했었는데 군대에 가서
몇 년 집 떠나 있는 동안 많이 의젓해 지고 당당하고
씩씩해져서 훤칠한 뒷 모습만 보아도
대견하고 믿음직스럽다. 부디 사려 깊고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바란다.
오늘은 토요일 오후.
나는 스마트폰을 옆에 놓고 앉아
우리 손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주말이면 가끔 내게 걸려오는 전화…
어느 애인의 전화가 이렇게 간절히 기다려 질 까.
이렇게 간절하게 반가 울 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아마 손자바보 (?) 인 것 같다.
드디어 날아갈 듯 울려오는
경쾌한 전화 벨 소리가 정겹다.
환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글자들이
춤을 추듯 황홀하다.
“대한민국 군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