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배다. 누가 아니랬냐 ??? 각설하고 지금까지 마음만은 할배가 아닌 척 살아 온 것도 사실이다. 춤추는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나이보다 젊어보인다. 그래서 "나이보다 젊어보이시네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이 과연 반가운 소리냐.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젊어보이던 말던 그건 보는 사람눈의 착각일 수도 있고 겉치레일 수도 있고 좌우간 나이가 많다는 소리 자체가 듣기 싫은거다. 그래서 마치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양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 할배선언을 하게된거다. 아니 할배선언이 아니라 있는 나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거다. 남이 나이를 물으면 있는 그대로 대답해 준다. 춤판에서도 아닌 척하지 않는다. 이러고 나니 세상 편한거다.
아침 세수 안하고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고 몸뻬바지 그대로 입어도 어색함이 없고 이게 바로 천국이 아닌가. 젊은 날 새벽에 시간맞춰 일어나 숙취로 속쓰린 배를 쥐어잡고 지하철에 시달리며 출근하고 저녁에는 진이 빠져 술한잔으로 달래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바로 지옥인거다.
지옥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한 일은 아니었다. 사람이라는게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아오지탄광에서도 살아 남고 수백미터 지하 갱도에서도 살아남는게 사람이다. 그러다 저녁에 식구들이랑 시래기국 끓여 먹어도 행복하고. 그리 생각하면 젊은 날의 고생은 고생도 아니겠으나 그렇다해도 세상이라는게 편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가 남는게 시간이요 누구 얼굴 볼 일도 없으니 말 그대로 원시인처럼 살아도 아무 불편함이 없다. 그러다 춤추러 갈 때만 때빼고 땀흘리고 돌아 오면 그래도 뭔가 한 듯하다. 뭔가 활기차고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 아지매 얼굴 보는 것도 중독이다. 아지매 얼굴을 봐야 빈자리가 채워진다.
이게 옳고 그르고를 떠나 나이들어 퍼져누워서 세월아 네월아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할배가 아닌 척한다고 젊어지는 것도 또 깔끔해 지는 것도 아니다. 할배도 할배 나름대로 할 일이 있는거다.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그저 마냥 탱자탱자 할 일만은 아니다.
할배라해서 모든게 종치는 건 아니다. 할배를 너무 인생의 종착역으로 비유하지 말자. 그냥 할배는 할배일 뿐이다. 할배로서 할 일을 하면 될 일이다. 무슨 일을 어찌 할건가는 각자의 선택이고 살아있는 한 할배면 어떻고 할매면 어떠랴. 살아 있으면 산 사람처럼 행동하면 될 일이다. 할배선언은 자기자신에 만족하는거다. 아니 그게 행복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