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성당에 가면 천정화가 있는데 그 유명한 천지창조라는 천정화이다.
미켈란젤로가 4년 동안이나 그렸다는데 그 그림을 보면 먼저 드는 생각이 그림에 감탄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누워서 그림을 그렸
을까 하는 것이다. 4년 동안이나 얼굴에 떨어지는 물감을 무릅쓰고 그렸다고 생각을 하면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
천지창조의 천정화는 총 9개의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은 4번째 그림으로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
는 그림으로 손가락이 서로 맞닿을 듯하게 그려진 그림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그림들은 어떤 그림인지 알지 못한다.
네 번째의 천정화 그림...아담의 창조.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뭔가를 전해 주는 모습이다.
그 그림들 중에 여섯 번째의 그림이 아담과 해와가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그림이 있는데 인간
이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은 인간이 불행해지게 된 근원적인 사건인 셈이다. 비종교인들에게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를 하지만 구약성서를 믿는 사람들에게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은 사건은 과거에 실지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믿고 있으며, 구약
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교리들은 이 사건을 사실이라고 간주하고 만들어졌고 오늘날까지 인간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는 서양인들의 종교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여러 신들을 믿었었고, 그 신들은 그들의 생활에 직접 또는 간
접적으로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 왔던 것처럼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기독교의 신인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독
교의 교리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도덕 등등...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 영향은 사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지금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기독교의 문화권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1,7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이 원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믿어 왔고 그
렇게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이 다스려져 왔는데 구약성서의 선악과를 따먹는 과정과 그 후의 결과에 대해서 사실 잘 모르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창세기 2장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며 경고를 하였으나
창세기 3장 1절에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
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이 해와를 꼬이면서 너희들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짇다고 꼬이게 되고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
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의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결국 따 먹었더니 그 결과 눈이 밝아지게 되었는데 눈이 밝아지고 보니 그 전에는 밧고 다녀도 부끄러운 줄 몰랐었는데 벗고 다니
는 것이 부끄러워 졌다고 한다.
그 이후의 구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로 뱀은 땅을 기어 다니고 흙을 먹고 살게 하였으며....그러면 그 전에는 뱀이 사
람처럼 서서 다녔나?
아담은 수고로운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였고 해와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주었고, 그리고는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였다고
한다.
천정화 여섯번째 그림..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뱀인 존재가 해와를 꼬이는 내용과 벌거벗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나는 모습이다.
사실 구약성서의 내용은 로마신화의 내용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리스 신화의 내용처럼 올림포스산에서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이 살았을 리도 없고, 성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열
매가 열리는 나무가 있는 에덴동산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 유대교나 기독교 이슬람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 곧 선악
과를 따 먹고 죽었다는 것을 사실로 간주하여 교리와 신학이론을 발전시켜 왔는데....
그것을 믿는 사람들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때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믿었지만 지금은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없다. 다만 그 신화는 자연과 인간들의 희로애락의 삶을 투영
하여 만들어졌다는 생각할 뿐이다. 산화의 내용이 실지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든가 하늘에는 제우수가 살고 바다에는 포세이
돈이 살며 땅 밑에는 하데스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은 없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먹는 사건도 그리스 신화처럼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데스의 부인 포르세포네를 봄이 되어 소생하였다가 겨울에 땅 속으로 들어가는 식물들을 비유한 것처럼....
선악과를 따 먹은 결과로 제일 먼저 달라진 것은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벗고 있었는데 벗은 것이 부끄
러워졌다는 것은 지나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 하나님이 벌을 주는 것도 있지만 결과가 인간의 불행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데....
이 그림을 보면서 뭔가를 비교할 수 있는 판단력이 생긴 것을 의미하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납자들끼리 일을 때나 여자들끼리만 있을 때는 벗고 있어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이성으로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는 부끄럽
게 되는 것처럼 나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되며 비교판단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주변이 다 가난할 때는 도시락 반찬에 콩자반과 김치가 전혀 부끄럽지 않았지만 누군가 계란과 소시지 반찬을 싸 가지고 오게 되
면 자신의 반찬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가 행복지수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등장하는 나라가 부탄이라는 나라었다. 행복지수 세계 1 위 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부탄이라는 나라의 행복지수는 세계 96위로 소위 떡락을 해 버렸는데 그 이유가 자신들이 얼마나 구차하게 살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SNS가 들어가서 세상과 자신들을 비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판단을 하여 부족한 부분이 많으면 그만큼 불행하고 생각하며 최
소한 행복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탄 사람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을 몰랐을 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사는 것으로 생각하여 행복하다고 느
꼈으나, 세상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 해질만큼의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가는데 자신들은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보면서 행복지수는
최하위권으로 폭락을 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물질의 풍요 때문에 행복하지만은 않지만 물질의 풍요는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데 가장 큰 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
다.
전 세계인들의 삶이 한눈에 들어오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은 항상 위를 보고 비교를 하기때문에 비교를 하게 되면 현재의 감사함보다는 남보다 덜 가진 것에 대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
게 된다.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비교하면서 마음에 병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창세기 2장 17절의 의미는 다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불행하지 않을 것이니....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의 그림을 보면서 부탄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생각이 났던 것이 기억이 나서...
첫댓글 선악과를 결국에 따먹게 된 부탄 사람들,
상상력이 재미 있습니다.
상대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불행도 시작되지요 ㅎ
아! 어떤 사람은 더 행복하다 느껴 질 수도 있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구약의 창세기는 신화의 개념으로 보면 가장 합당하지요...
그런 내용을 교리로 만들어내는 종교가 위대하기도 하고..
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사실 현실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생존본능이지요.
그러므로 질투하는 것이나 경쟁하는 것들은 생존을 하기 위한 본능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선이니 악이니 하는 비현실적인 구분을 해 놓고
인간의 생존본능을 악이라고 규정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악인이 되게 되지요
그래서 모든 인간은 악을 품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고....
종교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