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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전도서는 열두 장으로 분량이 적다. 하지만 그 안에는 허무와 모순, 부조리가 넘쳐나는 세상과 인간의 삶에 관한 가볍지 않은 시선과 관점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복잡한 세상살이와 인간 관계 안에서 당신의 백성이 좀 더 기쁘게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그분의 뜻을 찾아가는 책이 전도서다. 그래서 전도서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더 큰 일을 하라고 우리를 채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 마시며 노동하고 즐거워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긍정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다. _“지은이 노트”
●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자 코헬렛은 해 아래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한다. 그는 삶의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며 해결을 위한 열쇠들을 건넨다. 하지만 그는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여러 갈래의 해답들을 깊이 생각해보도록 밀어붙이곤 한다. 지혜자는 삶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의 틈바구니에서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성찰을 촉구한다. 한마디로 지혜문학으로서 전도서는 삶의 “기예”, 곧 삶의 기술을 터득하고 예술적인 심성을 갖추어 철학적으로 반성하도록 촉구하는 가르침이다. _“전도서를 읽기 전에”
● 코헬렛이 바라본 세상은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면 그만이어서 덧없기 그지없다. 인간의 삶이란 허공에 흩어져 버리고 마는 한숨이며 쉬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이 세상은 정의와 공평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깔끔하고 단정한 세상이 아니라 부조리로 얼룩진 세상이다. 그 표면은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어쩌면 이 모든 현상을 포괄하는 금언으로서 “헛되고 헛되다”, 또는 “덧없고 덧없다”라는 말이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현실 세계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판단을 가차 없이 표현한 한마디 외침이 아닌가? _1장 “하나님의 선물, 삶을 즐거워하라”
● 코헬렛은 삶의 다양한 사건들에 시간표가 존재한다고 말하면서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한 때를 아는 것은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영역이라고 못 박는다. 하나님만 통제하실 수 있고 사람에게는 비밀에 부쳐진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지배자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일에 개입하시지만 사람은 “그 때”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이런 코헬렛의 선언은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간격을 깨달으라는 요청으로 들린다. 한마디로 초월성과 한계성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라는 말이다. _2장 “시간의 신비와 하나님의 선물”
● 죽음을 옹호하는 코헬렛의 발언은 진실하고 유효하다. 고대 지혜 선생의 가르침이 오랜 세월을 지나 진리로서 지금 우리 마음에까지 와 닿는다. 사람은 애도와 슬픔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큰 배움을 얻는다. 사람은 죽음을 애도하며 인간의 한계를 되새길 뿐만 아니라 겸손을 배운다. 겸손은 혼자 힘으로 도무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발현되는 태도다. 죽음을 가볍게 다룰 수 없기에 누구도 죽음 앞에서 교만하거나 무례할 수 없다. _3장 “내일을 모르는 인생, 더 좋은 삶은 무엇인가?”
● 일상의 삶을 축제의 삶으로 바꾸라는 명령의 근거는 해 아래서 수고하고 노동하는 삶에서 얻은 “몫”(전 9:9c)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전 2:10; 3:22; 5:18). 여기서 코헬렛은 “노동 신학”(a theology of work)의 핵심을 말하는 셈이다.6 그는 살아 있음과 함께 노동을 축복으로 본다. 노동과 삶의 즐거움은 분리되지 않는다. 구약성경에서 사람은 본래 창조의 시점부터 일하도록 부름을 받았다(창 1:27-28; 2:20). _4장 “이해할 수 없는 삶에서 부르는 기쁨의 노래”
● 코헬렛은 인간의 무능력과 무지에 심취한 채 삶의 의미를 의심하는 회의주의자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의도는 단순하다. 말 그대로 사람은 아침과 저녁으로 씨를 뿌리지만, 어떤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전 11:6). “안다”는 것은 경험에 근거하여 미리 내다보고 예측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하지만 사람의 수고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고에 따른 결과는 인간의 손을 떠나 있다. _5장 “지혜와 어리석음의 긴장 사이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신비”
● 코헬렛은 인류와 우주의 죽음을 말하기에 앞서 삶의 핵심 가치와 실천을 위한 강령을 두 마디 말로 압축하여 표현한다: “즐거워하라. 그러나 기억하라.” 두 개의 동사 사이에는 오묘한 긴장감이 있다. 코헬렛이 일관되게 강조한 삶의 기쁨은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을 가슴 벅차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담론을 마무리하며 삶의 기쁨과 함께 “기억”을 촉구한다.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일까? 모든 일에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처럼 생명은 죽음을 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_6장 “삶을 즐겨라, 그러나 하나님을 기억하라”
● 전도서는 세상과 삶의 보편성과 예외성을 포괄하는 담론들을 제공하는 현실 해부의 현장성을 갖추었다. 우리는 전도서를 통해 숨겨진 실체의 이면을 발견하며 사물을 새롭게 보게 된다. 이로써 지혜 선생 코헬렛은 시간의 간극을 초월하여 지금 우리 시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코헬렛은 마치 철학자처럼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는 익숙함을 잠시 제쳐 두고 당연함에 물음표를 던지며 일상의 세계, 곧 타인을 만나고 교신하는 “지금 여기”에서 마음의 밑자리를 성찰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_“전도서 읽기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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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보통 전도서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이해는 단순하다. “세상의 모든 일이 헛되니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간략한 문장이 전도서를 요약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주변에서 전도서를 진지하게 다시 들여다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또한 교회 강단에서 전도서가 무게감을 가지고 설교 본문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한국교회가 다른 지혜서들과 마찬가지로 전도서를 매우 가볍게 취급하는 것이다.
사실 전도서는 양극단의 평가가 난무할 만큼 구약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책 중 하나다. 지금까지 전도서의 저작 시기와 저자의 문제, 전도서의 구성이 통일되었는가의 문제, 전도서가 다른 성경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그중에는 전도서의 가치에 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성서신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전도서에 관한 이해가 깊어졌다. 오히려 이제는 전도서가 여느 성경 못지않게 중요한 “정경”이며 그 탄탄한 구성이 제시하는 주제는 자본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적실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일상의 신학, 전도서』는 앞선 연구자들의 성실하고 탁월한 연구의 토대 위에서 전도서의 매력과 가치를 우리에게 한껏 드러내 준다. 저자는 전도서의 저작 시기 및 저자, 구성의 문제를 개괄한 후 전도서의 구조에 따라 각 단락의 내용을 자세히 해설한다. 그에 따르면 전도서 안에는 허무와 모순, 부조리가 넘쳐나는 세상과 인간의 삶에 관한 가볍지 않은 시선과 관점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에 관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직시하는 전도자(코헬렛)는 독자들이 삶의 “기예”, 곧 삶의 기술을 터득하고 예술적인 심성을 갖추어 철학적으로 반성하도록 촉구한다.
이 책의 제1장은 전도서 1-2장을 해설한다. 전도서 1-2장에는 전도서의 핵심 주제어인 “헤벨”, “노동”, “죽음” 등이 모두 등장한다. 솔로몬으로 가장한 전도자는 사람의 온갖 노동의 유익을 물으며 오히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기쁨을 누리라고 조언한다. 이 관점은 전도서 3:1-5:20을 다루는 제2장을 통해 강화한다. 여기서 전도자는 우리 인생에 양극의 시간이 존재함을 논함으로써 정의와 억압, 경쟁과 권력의 문제를 성찰하도록 촉구한다. 이어지는 제3장은 전도서 6:1-8:15을 다룬다. 지혜자는 내일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짚으며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실태를 고발한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하는 그의 질문은 우리에게 겸손함을 요구한다. 이어지는 제4장에서 다루는 전도서 8:16-9:10은 죽음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즐거워하라”고 명령한다. 이 즐거움은 하나님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는 사람에게 허락된다. 이 주제는 전도서 9:11-11:6의 논증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전도서 9:11-11:6을 해설하는 제5장은 전도자가 제시하는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이 가진 지혜의 불확실성을 드러내며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신비에 고정하게 한다. 그리고 전도서의 구성에서 몸말의 마지막 부분인 전도서 11:7-12:8에는 삶을 즐기라는 조언과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조언이 나란히 등장한다. 이는 언뜻 보기에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지금까지 저자의 해설을 성실하게 따라온 독자에게는 의미심장한 울림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7장은 전도서의 맺음말(전 12:9-14)을 다룬다. 여기서 우리는 지혜자인 전도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난해한 전도서의 주제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구약 지혜문학의 커다란 물줄기와 다시 만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전도서가 추천하는 삶의 양식은 미묘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오늘날 독자들은 전도서가 추천하는 “행복 명령”을 실천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시장 논리에 따라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무한 경쟁 사회는 타인을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여기게 한다. 더 많은 생산과 높은 효율을 촉구하고 그 반대급부로서 무절제한 소비와 휴식을 권장하는 각박한 사회 시스템은 적절한 노동과 휴식으로 얻을 수 있는 삶의 기쁨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살이와 인간관계 안에서 당신의 백성이 좀 더 기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그분의 뜻을 고심하며 찾아가는 책이 전도서다. 우리는 전도서를 통해, 원대한 비전을 품고 더 큰 일을 하라고 우리를 채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 마시며 노동하고 즐거워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긍정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전도서의 핵심을 탄탄한 신학적 해설과 유려한 논리로 소개하는 『일상의 신학, 전도서』를 읽으며, 삶을 되돌아보고 하나님이 선사하시는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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