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 (히11:32-40)
우리가 성경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으로 부릅니다. 믿음의 원리로부터 시작하여 최고의 믿음을 소유한 신구약 사람들의 행적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그들의 특징적인 믿음만 소개하고 있지만 우리는 비록 짧은 기사지만 영웅같은 그들의 믿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살았던 각자의 시기나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의 믿음은 하나였습니다. 그들의 공통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오직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의 소유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시대는 다르지만 세상속이라는 똑감은 환경속에 세상사람들과 더불어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에서 불신자들과 더불어서 부대끼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의 믿음을 굳게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믿음의 선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험한 시대와 환경속에서도 믿음의 지조를 저버리지 않는 그들의 믿음 때문에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을 건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엄청난 환난을 가했습니다. 때로는 믿음을 지켜내기 힘든 핍박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세상은 수없이 많은 환난과 고통과 수모를 주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의 믿음이 파선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환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들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고, 든든히 세워졌습니다. 오히려 그런것들은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들을 건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자기들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란 뜻이지요.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33절에서 38절까지를 보면, 구체적으로 믿음을 지킨 종들이 겪어야했던 박해의 방법들과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런 수모와 환난과 고통을 겪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이러한 시련과 환난을 거부하지 않고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을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예수 믿는 성도들을 향한 세상의 외침이었습니다. 정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정말 우리가 속한 교회가 세상이 감당치 못한 교회일까요? 그런 성도일까요? 아직도 세상이 성도들을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할까요?
믿음의 선진들이 들었던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었던 이유는?
(1)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보다 더 큰 영광을 믿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롬8:18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어떤 고난도 장차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을 상급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상급은 더 커집니다. 산상수훈의 한부분인 마5:10-12에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당한다면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환난을 당한다면 오히려 기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당하는 환난의 무게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의 무게요, 상급의 무게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이러한 성경의 원리를 철저히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세상이 주는 어떤 환난이나 고통이나 시련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최고의 행위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자기에게 행한대로 보응하신다는 원리를 믿는 것입니다(6절). 때문에 우리는 고난보다도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 뒤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믿어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앞에 주어진 어떠한 환난이나 고통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우리를 감당치 못할 사람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2)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보다 더 좋은 부활을 믿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때문입니다. 죽음 저너머의 세계를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최고로 무섭고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죽음은 믿음으로 극복됩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선진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하여 죽음이라는 무서운 형벌도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35절). 믿음에는 부활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무서운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죽을지라도 죽음 이후에는 더 좋은 부활이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합니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죽음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3)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보다 더 좋은 영원한 천국을 믿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는 더 좋은 천국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더 좋은 천국이 예비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천국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믿는 자는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분명히 우리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그들의 의식구조와 우리들의 의식구조가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삶의 방식도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우리에게 외칠 것입니다. “저 친구들은 정말 우리가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가 세상과 똑같다면 세상은 성도를 만만하게 봅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된 자들은 세상이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절대 세상을 두려워하지말고,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는 평을 듣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