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은 혁명, 4·19는 학생운동"이라는 기술한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이 발간한 새 교과서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대항해서 나온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 이어 전경련 측에서 미국 책을 번역해 내놓은 중학교 경제교과서 인정도서를 출간과 연속선상에 놓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교과서포럼은 우리 중.고교 교과서의 좌편향을 바로잡겠다며 지난해 초 출범한 뒤 자체적으로 대안 교과서를 준비해 왔습니다.
그 내용들중 제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의 시안이 일제 식민지 지배를 일본 우익 학계의 '식민지 근대화 사관'과 유사한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교과서포럼은 일제시대를 근대로의 주체적 이행과정으로 서술하고 시장경제 기반 구축, 사회간접자본 확충, 도시화·산업화 등 근대적 경제 성장으로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과 유사합니다. 사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이 부분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와 패권주의를 인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근대화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직까지 그 논리가 얘기된다는 자체가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살펴보다가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에 공동대표로 이름이 걸려있는 이영훈 교수를 발견했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영훈 교수가 누군지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2004년 9월 2일 MBC 백분토론에 참여해서 "정신대는 자발 적으로 참여한 것이다"라고 말하신 그분입니다.(관련기사 : 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409/03/pressian/v7306299.html)
이 교수의 주장은 정신대의 가해-피해관계 모두에 한국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개입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신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라는 일본 극우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어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서울대 경제학부 양동휴 교수가 "이 교수는 (TV에서)군계일학으로 최고 수준의 학자임을 보였다"면서 "(이 교수 욕하는 네티즌은)역사교육을 다시 받든지 칼을 들고 와서 이영훈 선생과 나를 찌르라"고 밝혀 논란을 더욱 가열시키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심해지고 사회 각층에서 이영훈 교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이영훈 교수는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사과 방문하겠다고 밝혔습니다.(관련기사 : 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409/05/chosun/v7312874.html)
분노한 정신대 할머니들은 그 사과 방문을 거절했고, 그렇게 사건을 잊혀져 갔습니다.
하지만, 이영훈 교수는 그해 11월에 "일제 토지·식량 수탈론은 상상된 신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섭니다. 이 교수의 주장은 "토지조사사업의 경우, 그것은 종래 전근대적 토지제도를 근대 적 제도로 원시(原始) 창출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총독부나 일부 특권층의 토지수탈이 자행될 여지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산미증산 계획 또한 이를 통해 증대된 쌀은 일본으로 '수출'된 것이지, '수탈'일 수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영훈 교수의 논란이 되는 주장은 계속 이어집니다. 지난해 4월 23일 이영훈 교수는 뉴라이트 홈페이지에 "국사 교과서 일제피해 과장됐다"는 요지의 글을 썼습니다. 국사 교과서에서 기술하고 있는 '위안부 수십만', '강제연행 6백만'은 거짓'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관련기사 : http://news.media.daum.net/culture/art/200504/26/pressian/v8935808.html)
이 내용 또한 당연히 엄청난 논란을 가져왔습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감정적 찬반을 떠나 국사, 나아가 역사를 어떻게 기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까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의 연구에 따른 내용 공개는 '절대악'으로 공인되다시피 한 일제와 개발독재,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온 일반상식, 권위의 상징인 교과서 등 3대 철옹성에 한꺼번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습니다.
지적 탐구는 자유롭게 이뤄져야 하며 반론도 공론의 장에서 논의될 수 있는 사회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 교수의 주장이 무조건 비판만 받아야 할 수는 없겠지만, 그 파격성이 내포하는 위험성까지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는 논리적 분석없이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영훈 교수의 논란 발언은 계속됐습니다.
"맹목적 반일주의가 조선왕조 망국 불렀다"
(관련기사 : http://news.media.daum.net/snews/society/affair/200512/30/chosun/v11259320.html)
"노대통령, 맹목적 반일주의 이용"
(http://news.media.daum.net/politics/administration/200603/29/donga/v12201447.html)
그리고 그 결정판을 새로운 교과서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영훈 교수님의 주장은 우리 사회 공론의 장에서 다뤄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해석이나 평가를 앞세워 사실에 대한 의문제기조차 원천봉쇄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팽배하면, 학문이 발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근거와 해석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격성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