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시벨리우스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은 무척이나 큰 것이어서 그 만큼 입맛도 까다로운 편인데 이 음반은 그간 셀에 대한 이미지와 더불어서 적잖은 기대를 하게 만든 음반이었다.
베토벤 5번, 시벨리우스 2번, 조지 셀,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66, 64, 필립스
일단 표지부터... 요즈음 나오고 있는 필립스 50의 표지는 무척이나 갈끔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그간 필립스의 표지가 사실 엉망인 것이 많았음을 상기한다면 이 기획이 야심만만하다 해도 좋을 듯 하다.
수 많은 과거의 레전드들 중에서 우리들의 귀를 붙잡는 녹음은 많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재출반이라는 라인으로 다시금 감상자의 곁으로 다가왔을 때 그것은 큰 기쁨이다. 비록 지난 것이라 해도 연주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이 음반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를 품어 본다. 일단 당시 60년대의 음질이 첫 문제가 된다. 데카가 60년대 탁월한 음장감으로 거대한 소리의 진폭을 들려 주었었고 그라모폰은 디테일에서 섬세한 소리를 찾을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필립스의 60년대 녹음은 현 유니버셜의 세 메이저 음반사 중에서 다소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이 녹음 역시 해상도가 낮은 다소 답답한 소리를 들려 준다. 갈끔한 표지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탁한 소리에 다소 어리둥절 하다.
물론 이러한 녹음상의 난점은 기기에 따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음반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불만은 남는다.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닌 셀의 지휘에 있다.
조지 셀은 정확한 지휘로, 일체의 군더더기나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이러한 즉물성은 비단 이 음반만이 아니라 셀의 일반적인 특징일듯 한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그의 음반에서는 건조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다소 있다. 그의 브람스, 베토벤, 그리고 이 음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단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의 경우, 60년대 오이겐 요훔이 동악단을 이끌고 전곡 녹음을 남기고 있건만(필립스), 타오르는 열정의 지휘자인 요훔과는 달리 냉철한 지휘자인 셀은 그 나름의 5번을 구상해 가고 있다. 물론 긴민하게 대응하는 암스테르담 콘서트의 연주력은 전혀 불만이 없다. 그렇건만 셀의 지휘에서 다소 불만인 것은 냉철함 속에 갇힌 베토벤의 열정이라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이러한 점은 시벨리우스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고 있는데, 비팅이 정확한 1악장의 서주부터 그 무엇도 아닌 '셀'의 시벨리우스를 깨닫게 된다.
이 곡의 분수령인 2악장의 유려한 서정미와 3, 4악장의 민족적이고 서경적인 진폭은 지나치게 또렷한 소리를 요구하는 셀의 '정확함'에 어느 정도 잠식 당하고 있음을 부정 할 수 없다. 그런 까닭으로 이 음반이 추천반이 되기는 힘들 듯한 생각이다. 하나 위안이 되는 생각이라면, 일반적으로 60년대 시벨리우스가 대중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고, 당시 시벨리우스는 드보르작, 차이코프스키 등 작곡가들의 연장선에서 다루어졌음을 환기한다면 시대를 어느 정도 앞서간 연주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녹음이 시작되고 나서 지금까지 수 많은 연주가들이 있었고 그들 중 레전드가 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셀 역시 70년도 타계한 이후 지난 시대의 명지휘자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레전드로 인하여 지금의 연주자들의 족적이 빛을 잃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C. 클라이버, 아바도, 바렌보임의 베토벤과 벤스케, 사카리, 사라스테, 베르글룬드의 시벨리우스가 더욱 마음에 들기 때문에...
창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