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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생애(生涯)를 넘어온 "나의 삶과 예술"-1937년에서 2017년 오늘에까지
木薰 장윤우
시 / 자화상(自畵像) 나여 한번 가득하도록 담어보고 싶은 항아리 나여 고독한 이여 못견디게 가슴위에 비비고 싶은 아아, 국화위에 지는 나래의, 그늘같은 자(者)여 끝내 둥그렇게 맺히우고 싶고나 -1956,5,24 자유신문.
위글은 고교시절에 써서 당시 광교부근에 위치한 일간지 <자유신문>문화면에 실렸던 나의 최초의 시라고할까 참 오래된 습작품이다, 서울고교 문예반에 관계하며 문인의 꿈을 키웠다 황동규,갈천문,마종기,박동규,최인호등이 후배이며 오현경, 미술에 박연도, 박한진,오경환,유관호교수가 있다,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간다,정점(頂点)은 벌써 넘어 서있다,우리 세대처럼 굴곡(屈曲)진 삶을 넘어온 국민들이 지구위에 얼마나 될것인가,일본치하에서 1937년 12월 1알에 서울에서 태어나 세계대전을 겪고 1945년 8월15일 해방의 감격을 받기가 무섭게 1950년 6월 1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3년에 걸친 전쟁과 파괴 피해를 입었다,아직도 휴전상태로 휴전선에서 대치상태이면서도 북남과 남남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다, 4.19혁명과 5.16군사쿠테타, 12.12박정희 대통령의 시해(弑害)와 광주사태 들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전쟁으로 피난지인 여수항에서 사춘기를 보내며 홀로 바다와 새를 그리며 문학과 미술의 꿈을 키워왔던게 마치 얼마전에 감상한 국산 <국제시장>영화와 일치된다,오늘, 나의 예술세계와 교직의 한평생을 그려 리포트로 펴내야할 것 같다.연재(連載)의 속성이랄까 일찍 조선일보<일사일언>, 동아일보<청론탁설>,서울신문<고임돌>과 부산 국제일보에도 청탁칼럼을 연재하였다, 더불어서 현대시학(現代詩學)지에 10년간, 계간 현대수필에 *다년간, 수필문학, 순수문학지(誌) 심상, 주간한국문학신문등에도 한동안 연재를 겸하여왔다.1993년 5월에 <장윤우예술시평집>에 모든걸 담았다고 보면된다, 당시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1년동안 체류하면서 주립대학교와 미주 작가, 대학지인들에게 제공목적으로 펴냈으며 20년이나 지금엔 그이후의 활동과 도정(道程)을 엮어서 내 인생 편력기가 될법하다. 주변에 가깝게 지내던 문우들과 동료들이 떠나가거나 가는데 나도 얼마나 더 살건지를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공수래 공수거의 무소유(無所有)개념으로 임하고 싶다. 단순하게 요약한다면-1,교육자로서1968년 경기공업전문대학 공예과 조교수(박정희대통령임명)를 거쳐 성신여자대학교에서 1970년부터 33년간에 걸쳐 후학을 양성하여왔다, 재임기간(1965~2013)중에 서울대학교 미술대및대학원, 건국대,경희대,고려대,성균대,숙명대,상명대,원광대,중앙대,한양대,청주대,강원대등에서 강사활동을 겸하였으며. 1992`93년(1년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CAL STATE L,A)에서 연구교수로 체류하여 현지 재외 문인들과 교류활동을 넓혔다. 재임중에 석사,박사 학위와 연구논문, 승진,교수채용심사는 줄잡아서 500여명은 조히 된다2,미술가로서 대한민국미술대전,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등. 공공전과 숱한 민전에서심사위원등을 역임, (사)한국미술협회 이사,부이사장,감사를 거쳐 현재 고문으로 있다.용산전쟁기념관 조형물설치(육.해.공.해병.전투경찰, 로툰다부조 5점), 천원 독립기념관에 임시정부대통령(박은식,양기탁)어록비를 석조형제작 설치하며 그 외 다수가 국내외에 있다-.1965년 국제기능올림픽한국위원회 창립1회부터 출제및 심사위원으로 국제대회 입상시키며,국위를 선양하다,1972년 (사)한국디자이너협의회(KDC)를 창립하여 이사장(현고문)으로 년례회원전,공모전등 주관하다. 국내외 개인초대전과 공공전 단장으로 전세계를 거의 누벼왔다3,문인활동으로서1963년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겨울동양화”로 서정주심사위원으로 당선된이래 20여권의 시집과 평론집, 대학교재 등이 있다, 서울시문화상,신춘문예,문화예술진흥원등 심사를 여러번 맡아왔다.문단으로는 (사)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부이사장 (2회연임당선), <월간문학>발행인 6년을 거쳐 현 자문위원, 국제Pen한국위원회 이사,감사를 거쳐 현 고문으로 활동중이다.4,사회활동으로 문광부산하 (재)한국공예문화진흥원 초대이사장을 역임(2000,2~2005), 1998,7,1-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기본부터 바로 서야하는 제2건국추진위원회위원(양천구위원장), 감사원 문화,환경자문위원, 교통부 관광정책자문위원, 서울시예술위원, 양천경찰서 집시(집회시위集會示威)자문위원장, 법무부 범죄예방전문위원, 1997년부터 양천문화원부원장 14년재임.한국로타리클럽양천지역회장. 3640지구총재보겸임 국내외지역사회봉사, 기부활동으로 국제로타리클럼총재 PHF표창받았음.5,저서, 조형 국내외 소장으로서 중학교 검정미술교과서 중1,중2,중3 (1996, 도서출판 둥지교육)발행 장윤우예술시평집(목훈발행), 공예재료기법(1995, 목훈문화사), 도학.제도(열화당), 시집<겨울동양화>, <그겨울 전차의 포신이 느린 그림자>, <오자인생>, <세번의종>, <시인과 기계>, <그림자들의 무도회>, <두개의 풍경과 리삼월>, <형해의 삶>, <이름없는것들을 생각한다>,<종이로 만든 여자>등 14권의 시집, 수필집 <화실주변>, <인간박물관>, <장윤우예술평론집>, <글과 그림의 팡세>, 미술대학교재등 집필, 문인시비를 의뢰받아서 여러점을 세워주다, 예컨대 1,주요한시비(서울 세종로공원) 2,공초 오상순시비(서울우이동 빨래골), 3,장수철노래비(과천 중앙공원), 4,권일송시비(순창, 공원), 5,원영동시비(강릉 공원), 내 졸시 “피아니시모의 폐항”이란 석조에 시비도 정관모조각가의 경기도 C-뮤지움에 세워 있다 나의 청동 두상까지 옆에 세워있다. 그 외 숱한 조형미술 심사위원(장)을 역임하고 자문도 한다.제작미술조형품소장/ 1,국립현대미술관 2,서울시립미술관, 3,성신여대박물관, 4,호암미술관, 5,독립기념관,임시정부대통령박은식, 6,양기탁어록비 2점, 7,서울용산 전쟁기념관, 8,충주호 조각공원, 9,서울양천구 칼산분수조형물,양천공원내 구민헌장비, 양천가족상, 10,강서구 우장산,김포공항입구 석조형 2기(基). 11,안산 영풍빌딩앞 <인간+자연>조형, 12,일본 북방 고촌동(東) 요시노미술관, 13,중국산동성 법화원내(장보고공적비), 외 다수가 세워져 있다.6, 수상, 훈장으로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2003,3. 김대중대통령), 서울시문화상(1998), 현대시인협회상, 8회 시예술상, 1회,시와시론상, 1996,국무총리표창,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상(1991-), 중기청장감사패(2000,7) 12회,글사랑문학상,영랑문학상,서포문학상 등 이것은 한마디로 생애(生涯)를 넘나든 "나의 삶과 예술"이며 요약리포트이다,요즘 유행하는 노래 “내나이가 어때서~”가 이명(耳鳴)으로 귀에 울려온다, 언제 떠날지모르는 나이에 어쩌면 만용(蠻勇)이나 순응(順應)이자 중용(中庸)이라고 여긴다.
나여 / 고독한 이여 못견디게 가슴위에 비비고 싶은.................................................1956년도 전쟁후의 시절은 머얼리 떠나가버렸다. 木薰 장윤우 2015,봄
{객관으로서의 나의 조명}
목훈 장윤우 시인
김송배
화롯불 놓고/ 천년이/ 조용히 흘러간다. 구하산九霞山 붓에서/ 옥玉같이 구슬려 나오는/ 사군자의 정情에/ 겨울밤이 화안히 핀다.
월전月田 선생께서/ 이르기를/ <책을 만권萬卷 읽으라>/ 평생 가슴속에 심고/ 화육법畵六法에 앞서/ 마음이 정淨해야지/ 심心과 신身이 갈앉고/ 눈시울을 서서히 들어/ 유연히 벽을 대하니/ 다 형통하다. ―하략―
목훈木薰 장윤우張潤宇 시인의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작품인 「겨울 동양화」 일부를 읽으면 그가 미술에도 일가견이 넘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 그가 서울대학교 미술대 출신임을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이때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1970년대 중반쯤, 명동 설파다방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인회의의 낭송모임에서이다. 그는 허 유, 정득복, 조동식, 이창년 시인들과 함께 당시 시운동에 모범을 보이고 있을 때 객석에서 그와 조우했다.
그러나 그와 직접적으로 개인적인 친밀을 유지하게 된 것은 내가 예총에 있을 때이다. 그는 이미 문인협회에서 시분과 회장을 거쳐서 부이사장을 역임하고 한편으로는 한국미술협회에서도 부이사장으로 동시에 중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와는 자연스럽게 예총에서 교감하면서 시와 문단을 얘기하고 화단畵壇과 화가들과도 교류하는 기회가 왔다. 또한 그는 내가 주간으로 있던 《예술세계》에 삽화를 그려 주어서 잡지의 특색을 살리는데 도와주었다.
그는 당시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단과 화단을 찬란하게 빛내고 있었다. 대학 저서와 중학교 미술교과서 3권에 그의 글이 등재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집으로 『겨울 동양화』, 『속․겨울 동양화』, 『오자 인생』, 『그 겨울 전차의 포신이 느린 그림자』, 『그림자들의 무도회』, 『이름 없던 것들을 생각한다』, 『두 개의 풍경과 리삼월』, 『형해形骸의 삶』과 최근의 『뚜벅이 반추』까지 12권을 상재하고 『장윤우 예술시평집』과 수필집 『화실 주변』을 발간하여 우리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드물게 화창한 날/ 집안에 나 혼자 뒹굴며/ 아까운 나이를 손가락으로 되짚으며/ 괜스리 술잔에 독백하는/ 중년객이라면 너절한 꼴일까ß 먼지 쌓인 서가에 걸맞는/ 낙서로 꽉찬 인생의 머리에/ 하얗게 내리는 무상 / 눈가에 주름과 한숨으로 찌르는/ 좋은 날 오후의 무심한 강/ 남는 거라곤 찡그리게 하는 배설물/ 오자誤字 투성이.
이처럼 그의 작품 「오자誤字 인생」의 일부를 읽고 있으면 어쩐지 그의 자화상을 연상케 하고 있다. 사람의 생활은 항상 허무를 동반한다. 나이와 더불어 자신에 대한 회의懷疑가 쌓일수록 무상을 느낀다. 불안과 우수는 자기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오자인생의 참모습이다라고 장윤익 교수는 평하고 있다.
그는 대학로에서 인사동에서 혹은 영등포 어디에서 자주 어울린다. 대학로 호프집에서는 생맥주를 마시다가 언젠가 인사동에서는 해물파전으로 막걸리를 자주 마신다. 그와는 문협 세미나와 심상해변시인학교 그리고 지방에 문학행사에 동행하면 항상 우리의 토종 막걸리를 찾는다.
그는 시중유화詩中有畵요 화중유시畵中有詩라는 말로 문학과 미술의 동일체 혹은 동일감을 항상 제시한다. 어찌 보면 시에서 말하는 이미지가 주제와 연결할 때 그림과 거의 동일한 주체로 형상화한다는 점은 시인이나 화가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는 전국에서 시화전을 40여 회 열고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해외에서도 시화전을 열어서 시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시와 공예의 만남을 통해 문학과 미술의 합일점을 찾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그의 미술에서의 활동은 각종 미술대전과 공예대전 심사위원(혹은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미술계에서도 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서 한국공예문화진흥원과 한국종이접기협회 회장으로 현재 재임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마닐라, 도쿄, 타쉬켄트, 이스탄불, 중국 청두 등 국외에서 금속 개인전을 개최하여 그의 명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절찬하는 국제적 공예미술의 대가로 자리잡고 있다.
오로지 주인을 섬기고자 왔다/ 미련하고 느린 뚜벅이로 묵묵히 살다가/
먹은 만큼 더 열심히 일하고/ 또다시 일터로 나간다/
천형天刑의 멍에를 지고/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누陋를 끼친 일은 없을까?/ 씹고 곰곰이 되씹으며/ 마지막이 살 한 조각, 뼈 한 줌까지/ 모두 바치고 떠나련다/ 나, 늙은 수소의 숙명宿命이다.
시집 <뚜벅이반추>중에서
지난 2007년 10월에 출간되어 한국문학상 후보작으로까지 거론되었던 『뚜벅이 반추反芻』의 표제 작품 「뚜벅이 반추」에서처럼 그도 이제 세월을 실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책머리에서 나이가 이쯤이면 자신의 이름에, 처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 언제 불려 갈는지도 모른다.거나 왠지 조급해진다. 70줄에 들어서면서 시가 보이고 내가, 자아自我가 무언가 조심스러워진다. 문단 역사에 어찌 남을는지. 현재보다는 후대後代의 평가에 신경이 곤두 선다라는 그의 언술에서 나. 늙은 수소의 숙명을 반추하고 있다.
장윤우 선생님. 언제 막걸리 한 잔 해야지요 근황을 물으면서 안부를 전했다.
지난 봄에 안성 김유신 시인의 청류재 꽃잔치에서 동동주를 마신 후 오랜만에 대한다. 그의 천성적인 낭만적 기질과 술잔 속에 넘치는 언어들은 항상 정겨운 큰 형님 같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는 지금 목훈거사木薰居士라는 스스로의 칭호로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한국문인산악회 회장 시절과 《월간문학》 발행인 시절에 동료와 후배들 사이에는 시화뿐만 아니라, 주도酒道에서도 그 경지를 초월한 주선酒仙이라는 칭송도 함께 회자되고 있다.
그가 두절양장九折羊腸으로 넘어오고 뒤돌아보는 인생 행로를 뚜벅이 걸음으로 되새김질하면서 거짓 없이 열심히 쓰고 기도하는 경건함으로 여생을 살아가련다라는 비장(?)한 마음 다짐으로 승화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작품 「삶의 무게」에서도 넝마처럼 헐고 해어진/ 삼문三文 인생으로/ 70년을 거쳐 오는 동안에/ 묻고 싶었다만/ 도대체 너는 누구냐, 무얼 하느냐?성찰이 가미된 삶의 회의가 아직도 깊은 철학적 화두로 남아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인용 <월간 문학공간> -09,8월호
장윤우 시 해설 오세영/원형갑/이상섭/조운제..(윤삼하,권일송,한영옥.... )
생활의 시와 一元性
시집 <그림자들의 무도회> 발문중에서,
/ 오세영
나는 언재인가 장윤우의 시를 평하면서 그의 남성적 목소리를 지적한바 있는데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역시 그 때의 생각이 옳았다는 느낌을 갖는다.확실히 그의 시에는 여성적인 섬세함이나 부드러움이 없다.곱고 완결되고 가냘프고 꾸며진 그리고 心情的인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그의 시는 질박하고 거칠다. 언뜻 보기에 구성도 산만한듯하며 표현 역시 투박하다. 하고싶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내 쏟는- 그리하여 호탕하게 보이기까지하는 일면을 지니고 있다.
독자들은 그의 시에서 고전적 美學이 이상으로 삼는“靜觀的아름다움(Beauty of Contemplation)을 찾는데 실패할 것이다. 그의 시는 세계나 사물에 대해 어떤 美的 거리를 갖고 응시하는데서 씌여지는 것이 아니라 r 스스로 세계와 함께하는, 그리함으로써 자신을 세계에 투사하는 행위로 씌여진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종래의 전통적 서정시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리리시즘- 哀想이나 슬픔, 恨, 그리움 등과같은 정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애냐하면 이러한 부정적 정서들은 自我와 세계가 단절되었거나 혹은 자아가 억제,폐쇠당할 때 생기는 감정들인데 장윤우의 시는 그와 반대로 자아가 세계에 연속되고 나아가서 그것을 世界에 투사시키는 데서 씌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비록 그의 시에서 울분이나 좌절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는 그것을 안으로 안고 응어리를 만들며 삭이기보다는 밖으로 내 뿜고 토로하거나 세계를 질타,혹은 매도함으로쎠 풀어버리기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시는 활달하다. 어떤 망설임이나 눈치보기 또는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이 세계와 外面하여 느끼는 것- 불만스러운 것이거나 혹은 만족스러운 것은 곧 바로 시로 형상화한다 -下略- (서울대교수/시인)
의미를 지워기는 여백(餘白)의 미학 / 원형갑
시집 <誤字인생>은 시인 장윤우의 30년간에 걸친시학적 반추(反芻)요,화가 장윤우의 30년간에 걸친 예술적 추구의 이슬방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60년대초부터 쓰기 시작하여 9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30년간에 걸친 장윤우교수의 시작세계이다.
아리스로텔레스의 詩學으로부터 크리스테바의 <시각언어의 혁명> (75)까지 만큼이나 길고 험준한 사상적 여정(旅程)이 빚어낸 땀방울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땀방울이 곧 “소슬함”의 미학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그렇게 까다롭고 모질게 물고 늘어지던 理念은 무엇이며 학문과 철학은 무엇인가. 孔子가그의 모든 정명에 앞서 시(자연,性)을 암시할 수 밖에 없듯이 장윤우시인도 결국 30년여의 시적 결산을 통헤서 “소슬함”의 감각적 기분표상의 순간에 이른다.그리고 우리는 장윤우의 놀라운 미학적 충격을 음미하게 되는 것이다. -下略-
(전 한성대총장,평론가)
日常의 일을 詩化 / 조운제
............ 장윤우시인의 8시집<세번의 鍾>에서 첫째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시가 생활에늘상 일어나는 일들을 시하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아주중요한 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늘 주의를 기울이고 산다는 이야기이다.그의 시를 보면 <간이역> <음주에 대하여> <해변시인학교>와 같이 생활에 젖은 크고 작은 일들을 골라 거기에 시상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다 -下略- (고려대교수,시인)
고독의 목소리
李商燮 해설 *시집 <그 겨울 전차의 砲身이 느린 그림자>에서
장윤우시인은 고독속에서 노래하는 나이팅게일의 숙명을 닮은 시인의 하나이다. 그가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노래는 더 깊고 맑겠기에 그의 말을 빌리자면 ‘마리안 앤더슨의 찬란한 母音’같았기에 우리들 독자는 그가 고독하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이 침묵한 요청에 기꺼히 응답하고 있다. 그는 <클라리넷>의 독특한 소리에서 자기의 시인적 숙명을 발견한다. -下略- (연세대교수,문학박사)
싱싱한 진실의 목소리
- 韓英玉(성신여대 국문과 교수.시인)
-장윤우 시집 「세번의 鐘」-해설
장윤우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세번의 鐘」은 꾸밈없는 목소리의 싱싱한 진실을 읽게 한다. 상징이나 비유의 테크닉 대신에 솔직한 의식의 알맹이들을 담아내보임으로써 직접 시적 재질을 만져보는 듯한 신선감을 읽게하는 때문이다. 삶의 주변에 구체적, 사실적으로 놓여져 있는 갖가지 오브제들이 적절히 배열됨으로써 참신한 빛깔 모양새를 획득하는 절차를 투명하게 바라다 볼 수 있는 기쁨, 이것이 다름 아닌 「세번의 鐘」을 읽게 만드는 힘임을 우리는 깨닫는다. 말 재주가 덧입혀져있지 않은, 자신의 심정을 진솔하게 토론함으로써 신뢰감을 주는, 요즈음은 몹시 귀해진 그런 사람과의 대화를 오랜만에 나누는 경험은 퍽 신선한 것이었다. 이는 오랫동안을 詩作에 바쳐온 연륜, 그리고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에 대한 성찰을 섬세하게 지탱해온 장윤우 시인 특유의 목소리임을 개닫는다. 차갑고 냉정한 금속에서 오히려 따뜻하고 애틋한 에스프리를 가다듬어내는 예리한 정신과 손끝, 숱한 여행과 산행을 통해 벼뤄 자연과 인간에 대한 탄력있는 이해력을 그의 시편들은 맑은 메아리로 울려주고 있었다. 따라서 「세 번의 鐘」을 읽으면서 !
우리는 훈훈하고 넉넉한 가슴에서 직접 쏟아진 듯한 알맹이 굵은 말들에 마음을 녹이게 될 것이다. 짧은 지면이니 만큼, 이제 이와같은 사실을 직접 시 한편을 읽어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이 말이 내게 무슨 의미를 줄지는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분명한 일은 앓기시작했다는 점이다
아픔의 이틀간
나는 새롭고 어린이답게
고분고분 진통을 받았다
보다 더 의미를 부열할 건
체인스모커인 담배를 끊었다는 것
얼마나 의미있고 힘든 얘기이냐
이 한가지 만으로도
83년 3.12일은 눈부셨다
보이는 사물, 만나는 자연의 밀어에서도
새롭게 태어나기를 거듭 감사한다
-「가슴앓이」전문
특별한 시적장치가 없는, 없음으로하여 신선감을 자아내는 시다. 육체적 고통을 통하여 오히려 정신의 창을 맑게 닦아내는 아름다운 절차를 그냥 일상적인 언어의 결로 다듬어낸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우리는 솔직하게 고통을 수용하면서 고통을 승화된 정신으로 전이시키는 시인의 달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시와 같은 방법, 文法이 장윤우 시인 특유의 詩 文法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달관의 넉넉한 목소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훈훈해질 수 있다면, 그로써 더 이상의 소중함이 없을 것임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 시인 김영태- 1960년대에 발표한 시
- 시인들의 우정
네 친구 張潤宇가 그린 나무들은
거리에 누드로 서 있다
베르나르 뷰폐를 닮은 그의 직선은
정상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바람은 음악이 되어
잠자는 집을 쓸기도 한다
어떤 나무는 사지(四肢)를 벌리고
네 가슴에 안길 듯
경사져 오는 것이 아닐까.
-<그록키>전문- 김영태
정제된 시감 뒤의 교감과 감응(感應)
-장윤우 시인의 시적 합리성과 서정의 회귀
엄창섭(김동명학회 회장, 본지 주간)
1.사물의 응시와 화해의 시학
다소 인상 비평적이나 이 땅의 충직한 독자들의 기대에 거부감이 없이 암울한 현재성에 비춰 시의 본말(本末)인 서정의 회귀에 일관성을 유지하며 본격적이되 ‘삶의 고뇌와 투명한 시혼의 빛남’은 더없이 유의미하다. 따라서 2017년 새해의 벽두에 <신(新)장마루 촌(村)의 이발사>, <사물(四物) 선문(禪門)에 기대어>, <청구서>를 포함한 7편의 시편을 중심으로 산수(傘壽)의 시간대를 당당히 자존감을 지켜내며 한국시단의 존경받는 원로인 장윤우 시인의 ‘시적 합리성과 서정의 회귀, 그리고 시적 의미망의 탐색’은「모던포엠 초대석」 인물로의 심층적 논의는 결코 거부감이 없는 정신작업이다. 일단 글의 모두(冒頭)에서 보편적으로 검증되어질 그만의 시적 특이성은, 원초적 감정이나 칙칙한 어둠이 말끔 씻겨나고 품격에서 묻어난 다소의 투박함이 경건한 시혼의 발현에 의해 오래된 성곽(城郭)처럼 견고한 틀로 유지되고 삶에 대한 진정성이 한층 응축된 역동성이다.
까닭에 대다수 독자들이 주지할 점은 그 자신이 시간대를 거슬려 존엄한 삶의 중량감을 수용한 다채로운 여적(餘滴)은 미술학 전공자로서 「서울신문」(1963) 신춘문예에 시 <겨울동양화>가 당선된 이후, 한국문인협회자문위원 및 부이사장과 한 때에는 『월간문학』발행인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산업미술연구소장, 대학원장, 박물관장 역임)로서 괄목할 시집으로는 『겨울동양화』, 『그 겨울 전차(戰車)의 포신이 느린 그림자』, 『시인과 기계』 등 다수가 있다. 수상에는「한국현대시인상」,「한국시예술상」,「동포문학대상」을 비롯하여 정부로부터 국민훈장(황조근정, 2003)을 수여받은 사실은 한번쯤 유념할 일이다. 각론하고 사물의 응시와 화해의 시학에 충실하며 신선한 감동을 독자에게 안겨주려고 견고한 고독 앞에서 현재도 나직한 통곡으로 피울음하고 있는 장윤우 시인의 시적 정직성은, 그만의 저력으로 긴장감과 응축미를 압축시켜주는 비법(craft)의 수용성을 지닌다. 하나 같이 분망한 삶의 시간대에 생생한 일탈의 정신을 예술적인 질감과 터치로 형상화한 ‘미끄러짐의 시학과 예술적 삶’으로 주의 집중한 담백한 품격의 시적 작위는 놀랍게도 자연의 순차(循次)를 거스르지 않은 존엄한 생명감에서 발아된 현재성으로 비교적 평상심의 수락이다. 여기서 그 자신의 특이한 시적 양상은 전위(前衛)나 실험시의 극단성을 지양하면서 회화의 장르를 넘나들며 따뜻한 감성에서 배어나온 연민의 정과 감미로운 눈물, 그리고 천상의 층계를 오르는 화자만의 위대한 창조적 영혼이 사물을 결합하는 매개적 정신능력(the intermediate faculty)의 시적 상상력에 맞물려 있음은 주지할 바다. 이 같은 측면에서 “메마른 우린 슬프다 못해 까맣게 타버린다 한들/기다리지 않는 늦가을의 비욜롱 소리가 구슬픈데/아무 의미도 없이/그냥 미워, 미워~./낙원동에 가면 일금 3500원의 이발사들/솜씨가 더 정겹다.(신(新)장마루 촌(村)의 이발사)”의 보기나 또는 그 자신이 시간대를 거슬려 30여 년 전인 1988년 구고(舊稿) 현대시학지에 관해 ‘70년대에서 10년을 하루같이 어쭙잖은 고료(稿料)라도 받을 념(念)은 커녕 마감시간에 쫓겨 서둘러 보냈던 매달 원고 45매씩, 1년에 또 열 곱을 보태서 원하는 그림도 그리고 도비라에 목차 컷, 삽화까지 곁들여 실리도록’ 배려한 지극선(至極善)의 품성은 끝내 “맺힘도 풀지 못한 체/자비출판의 낡은 소책자로 남기고/여지없이 당하고만/무능한 시인이로다./지난 10년분, 삽화료와 100회분 원고료를 청구합니다/내용증명으로라도 나의 억울함을 풀어볼까 생각하지만/글쎄 세월이 약(藥)이로다.(청구서)”라는 어설픈 푸념의 공허함이 감회(感懷)로 자리한 점이다. 특히 낯설게 하기(異化)라는 형식주의 이론과는 다소의 간극(間隙)이 가늠되는 대다수 장윤우 시인의 시편은 미적 주권의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다행스럽게도 그 나름의 순수서정성에 기인(起因)하고 있다. 까닭에 소소한 삶의 매순간 자잘한 정감마저 포착하여 놓치지 아니하고 불확실한 시간대와 공간에서 생존하는 존재의 탐색을 위해 지상에 가라앉은 낮은 음성과 겸허한 몸가짐, 감미로운 감성으로 시혼을 즐겨 읊어내는 그의 시적 합리성은 아득한 기억의 흔적을 불러내는 행복한 정신작업이다. 이 같은 특이성은 영과 육체의 분리인 암울하고 비통한 죽음마저 생명의 이법으로 순응하는 수행자의 더없이 눈물겨운 현상적 추이로,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바람의 영혼에 견주어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금화 같은 시어(poet-diction)의 교감(交感)과 통신이야말로 은총 같은 충만한 생명감의 형사(形似)이기에 ‘화해의 시학’에 합일하는 통로의 기능을 담당한다.
앞서 2004년에 장윤익 평론가가 장윤우 시인의 시세계를 「시인의식과 장인(匠人)의식의 미학-시인의 의식과 장인의식, 동양적 정서와 조형기법」으로 조명한 바 있기에, 그 점에 연유하여 다소 인상비평적인 현상에 잇닿을 평자의 시적 변명은, 특정한 인물을 느끼고 함유하고 탐색하는 행위로서 인문학의 의미망 확장을 위한 포섭과 융합의 본말(本末)이다. 까닭에「정제된 시흥 뒤의 교감과 감응(感應)」의 전제 하에 장윤우 시인의 시적 고뇌를 거부감 없이 입증하려는 탐색은, 상생에 근거한 공동체인식의 소중함을 통한 ‘낯설게 하기로부터 껴안기, 단절로부터의 경계 허물기’라는 화합과 통섭(通涉)의 성찰을 매듭짓는 것이다. 아울러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감동을 회복시켜주기에 족한 결과물로 절제된 감정에서 비롯된 여유로움(여백), 즉 차별화된 그의 시적 특이성의 표징이 신비스런 동반자(companion)로서의 시 쓰기에 해당함을 논의에 앞서 밝혀두기로 한다.
2. 빛나는 감성과 시의 틀 짜기
여기서 「빛나는 감성과 시의 틀 짜기」에 있어 간혹 장윤우 시인이 지극히 행복한 존재임을 스스럼없이 수락하는 것은, 그 자신이 단절된 사각의 도시 공간, 이 좌절과 회색의 시간대에 몸담으면서도 밝은 미래를 위해 줄기차게 ‘행복’을 구가하는 시적 작위와 해맑은 음조가 처연(悽然)하고 눈물겹지만 어디까지나 따뜻한 감성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상실된 일상의 자아를 발견하려는 견고하고 고독한 작업을 통해 언어공해가 심각한 비정한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오로지 기억 흔적과 감각에 의존하여 맑은 영혼의 울림을 통한 생명부호를 소통의 기호로 반복하여 통신하다 남국의 정조가 물씬 묻어나는 “그렇게 바람이 억센/언덕 위에 하얗게 쓸리는 억새풀/갈대가 한 숲을 이루고/사방을 둘러보아도/떠도는 흰 구름 외엔/도시, 무슨 연고인고/산굼부리의 분화구(噴火口)는(산굼부리)” 지나친 언어유희(pun)나 시적 기교가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이 담백한 시격으로 발현(發顯)시킨 시적 고뇌와 물음 앞에 그 자신을 놓아보는 겸허함과 생명외경의 심사(心事)가 각별한 시적 매혹으로 치부되는 감동의 회복은 각별히 유념할 일이다. 모름지기 평자가 기술하려는 의중은 자연을 연결고리로 할 때, 우리 시단의 불행은 정직성과 사상의 결여성에서 비롯되는 점이다. 애써 장윤우 시인의 시적 특이성이나 유의미성을 논의하지 아니하더라도 사물의 본질을 구명하고 서정성과 주지성을 통합해 나가는 이상주의적 찬미와 비판인식으로 그의 시 정신을 일방적으로 변명함은 아니나 보편적으로 ‘좋은 시란 외연(外延)과 내포(內包)의 양극에서 모든 의미를 통일한 것으로, 정서와 상상을 통한 인생의 표현이며 생명의 재해석이어야 함’은 너무도 자명하다. 특히 초인의 출현을 일관되게 주창한 철학자 니체가「비극의 탄생」에서 "오직 예술만이 두려움이나 현존재의 불합리에 대한 구역질나는 생각을, 사는 보람을 주는 표상으로 바꿀 수 있다."라는 단적인 언급도 배경지식(schema)으로 기억할 바지만 어디까지나 예술의 기능은 ‘삶의 의지를 자극하여 그 의지를 극대화시키나 신념의 예술이 진정한 예술임’은 다시금 숙고(熟考)하여야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한번쯤은 “덩실 춤을 추면서 숨을 몰아쉬면서/머무른 구름과 산새도 쉬어 넘는/산골에 왔다/세월의 애환(哀歡)을 싣고/강물은 느릿느릿 흘러/흘러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먼저 간 분들에게/나도 보았노라고/돌아가면 말하련다(이제 살만큼 살았고 불만큼 보았다)”의 시편은 간과치 말아야 한다. 한편 장윤우 시인의 예술에 관한 추론의 다양성은 ‘89년 7월 28일에 시작된 시작(詩作)노트, 즉 1991년 3월에 일단 매듭 된 그의 시집 『오자인생(誤字人生)』에 수록된 <91년의 에필로그>를 통하여 내재적 삶의 고통을 수용하다 못내 고통을 승화시킨 시인의 달관을 투명하게 입증시킨 미학적 충격(衝擊)과 그 고뇌의 ‘소슬함’은 유념할 바다.
-봉사위원장인 아내는/온종일 교회에만 열심인데/늘 주정(酒酊)만 일삼는/가장(家長)으로 살아가며/두 딸 보기가 심히 민망하다/오늘도 착하고 무딘 아내여//
-<91년의 에필로그>에서
이제 독자적이되 소박한 심성의 생성물로 자신의 체취가 묻어 있는 거대한 성곽(城郭)과도 같아 중량감이 실려 있는 아득한 동양의 숲을 깊은 사유로 형상화시킨 <사물(四物) 선문(禪門)에 기대어>를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관조적 시선으로 응시하기로 한다.
범종(梵鐘)을 울려 지옥 중생을 구하고/법고(法鼓)를 두들겨 뭇 축생을 제도하며/목어(木魚)를 깨워 수중 중생을 다스리고/운판(雲版)을 쳐 허공 중생을 일깨우다/네 가지 자비(慈悲)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하루 급히 미망(彌望)을 벗고/자신의 진면목을 보라/평생에 걸쳐 가슴에 묻으리.// -<사물(四物) 선문(禪門)에 기대어> 전문
그렇다. 비교적 그의 시편에서 호흡이 짧은 “운판(雲版)을 쳐 허공 중생을 일깨우다/네 가지 자비(慈悲)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하루 급히 미망(彌望)을 벗고/자신의 진면목을 보라”는 인식의 뒤편에서 한순간 ‘禪門에 기대어 ‘衆生’을 키워드로 하여 정신풍경의 발현에 의한 지난한 추이는, 생명의 씨앗을 파종하는 농부의 보폭처럼 다소 슬로라이프(slow life)적이나 절제된 정감은 전율(戰慄)과 예감에 잇닿아 있다. 그 자신이 묵언의 수행 끝에 시적 상상력의 확장과 정신기후가 알맞은 정신토양의 조성을 위한 끊임없는 변전에 주의집중하고 ‘가슴에 묻는’ 깊은 성찰의 연계층위로 합일시킴은 자못 이채롭다. 이 같은 시적 정황에 미루어 “시적 형상화, 쌓기와 허물기”의 반복 작업은 신표현주의를 표방한 화가 안셀롬 파커의 “현실적인 모든 것은 단지 이미지일 뿐이다.”라는 이론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교적 해법과 결과적으로 무관치 아니하다. 시각을 달리하여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사물의 미동을 주의 깊게 응시하면, 그 나름의 특이한 정신작업에는 낯설음과 허망함이 간혹 어두움과 교접되어 생의 본능에서 기인한 불안과 초조, 그리고 절박함이 그나마 조화의 순리로 변형되는 조짐이 쉽게 파악된다. 아울러 나직한 통곡 뒤에 따뜻한 정신기후의 조성을 위한 그만의 시격은 생존을 위한 치열성에서 비롯된 절망이 아니라, 곧 바로 코앞의 모든 현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응시하고 조명하는 자존감 강한 감성의 시인임을 입증시켜주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다. 한편 무한경쟁의 사회에 몸담을지라도 최소한 의식이 맑게 깨어 있는 장윤우 시인의 경우, ‘자기만의 육성으로 시혼을 읊어내려는 빛나는 존재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기에 그의 시적 분위기는 “나를 태어 낳고 어린 시절에서/지금껏 고이 품어준/오솔길과 계곡물 따라/걷고 또 오른다/청둥오리가 노닐고(뚜벅이 서사모)”에서 잠시 명상호흡을 통해 시적 감응을 접하면 놀랍게도 환상적 색채가 강하여 황홀감이 ‘지금껏 고이 품어준’ 감사함으로 연계되는 시의식과 그 자신의 시적 간극(間隙), 그리고 전체적 양상의 맥락은, 스스럼없는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그만의 일깨움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그 같은 현상은 점차 시의미가 확대되어 하늘의 언어로 65룩스의 명도인 ‘감사’로 전이되고 영혼이 자유로운 바람의 통로에 의한 존재감의 빛남은 하나의 놀라움에 견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어느 시인보다 자기관리에 엄격하며 시의 틀 짜기에 열중인 장윤우 시인은 다소 반어적인 기법이나 수사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시적 작위에 몰두하는 편이다. 그 같은 현상은 다음의 시편을 통해 확증되어진다.
“청둥오리가 노닐고/박새, 산 꿩, 참새들이/시샘하듯 노래 부르는 곳에/갑론을박(甲論乙駁)이나/누가 뭐라던가 아랑곳하지 않고/나를 찾는 천금(千金) 같은 보약(補藥)인데/건강 산행을 즐긴다(뚜벅이 서사모)”라는 발상은 시적 질료로서의 ‘천금 같은 보약인 건강 산행’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단순한 현상이지만 대다수 시인들에 의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상징화 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도 기본적 관점에 의해 조류(鳥類)에 속하는 ‘청둥오리, 박새, 산 꿩, 참새’ 등을 본질과 형태로 분류되고 또 통념상 새의 이미지는 날아오름의 원형상징으로 인식되어지는 존재론으로 다시금 유추되고 파악되어지나 이 같은 시적 논의에서 그의 시작과정(詩作過程)은 전반적으로 필립 라아킨(Philip Larkin)의 “시란 맑은 정신의 문제,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것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타당성이 따른다.
3. 시적 발상과 상황인식의 변주(變奏)
폴란드 작가 센키비치의 단편 「등대지기」는, 러시아 지배하에 폴란드 망명객으로 등대와 절벽과 고독, 그리고 갈매기에 익숙한 스카빈스키가 암담한 현실 앞에서 침통하게 고뇌하다 일터에서 해직을 당하는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민족의 혼이며 역사인 모국어에 대한 각별한 관심사’를 막연히 세계화를 지향하는 우리사회 또 하나의 경고이다. “서대문 로오타리에서 불시에 만난/불온(不穩)비라와/뛰어 나다니는 음험한 젊은이들이?/갑자기 싸늘해 오는 혁명군의 출몰//우리에게 청량산은/과연 실재(實在)하는가(청량산 꿈길)” 이 같은 물음에 앞서 모름지기 인간은 날개가 없기에 새처럼 날 수는 없을지라도 ‘꿈’이라는 욕망이 있다. 비록 상대적으로 절실히 요구되는 결핍이 우리로 하여금 욕망하게 하고 꿈꾸게 하기에 <청량산 꿈길>에서 ‘꿈(dream)’의 어의적 의미는 ‘이상, 몽상’으로도 해석된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뇌기능은 인지하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현실세계에 전이(轉移)하는 역할을 담당하기에 그 자신의 의식세계를 파악하고 있음은 희망적ls 까닭에, 하나의 사례로 영국 아핑검 스쿨의 교훈처럼 비록 ‘역사를 만들어가는 보통사람들’ 중에서도 “불온(不穩)비라와/뛰어 나다니는 음험한 젊은이들이?”라 할지라도 밝고 행복한 인류사회의 조성을 위해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은 물론 건전한 제도적 장치의 보완과 지혜로운 삶의 절실함에 대한 인식, 그리고 ‘갑작이 싸늘해 오는 혁명군의 출몰’ 뒤의 그 불안과 참담함을 시적 상상력으로 작동시켜 절망과 격정을 초월한 변화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희망의 조짐이어야 한다. 그 같은 까닭에 장윤우 시인의 시적 맥락은 지극히 안정되어 평온함 안겨주는 생명적인 시적 치유임은 무론하고 시감(詩感)과 시흥은 더없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다. 비록 테르모필레의 전투에서 유명을 달리한 스파르타 용사의 “길손들이여, 스파르타에 가서 전해주오. 조국의 명을 받들어 여기 우리가 이렇게 누워있노라.(스티븐 프레스필드,『불의 門』)”는 비문(碑文)처럼 비장감은 의도적으로 형사(形似)되지 않더라도, 이 땅의 독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현재적 삶을 그 나름의 ‘진정한 예술만이 버팀 몫이 되고 인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깊은 사유에서 비롯한 지극선(至極善)에 의한 시 인식의 실천궁행은 못내 합목적적이다. 모처럼 “세계문학의 구름다리”를 지표로 한 「모던포엠 포커스」의 인물로 필자가 논의한 ‘자아고백적 자화상(自我告白的 自畵像)-콜라쥬의 미학(美學)’으로 한국문단에서 검증된 장윤우 시인은,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깊은 사유와 삶의 처소’에서 우리가 지닌 소중한 관심사라면 하찮은 일상에서도 이웃에 대한 배려와 분별력으로 인간소외의 경계를 허물고 관계성의 회복을 위해 전 방위적으로 자존감을 지켜내며 예술 혼을 불태워온 위대한 창조적 영혼이라는 사실이다. 모름지기 소외된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해 시적 상상력을 확장시켜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그 나름의 ‘비공인 된 입법자’로서 시대적 소임의 엄숙한 수행은 높이 평가하여도 지나치지 아니하다. 같은 맥락에서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건강하고 생산적인 시정신의 붓끝을 날(刃) 푸르게 갈고닦아 태풍이 지나간 후에도 출항을 위하여 그물코를 기워가며 닻줄을 움켜잡는 ‘진정한 예언자이며 바람의 초상(肖像)’이기에 평자 또한 묵언 뒤의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할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가슴이 따뜻하고 정직한 그 자신의 시적 행보는, 현실의 안주를 거부하는 전의식(前意識)에 의한 내면의 성숙함을 확증하는 심적 탐색으로 해명되기에, 격랑의 와중(渦中)에서 그토록 우리가 추구하는 심적 평온은 폐쇄된 정신적 자유, 사고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본질적인 고뇌 끝에 이 같은 장윤우 시인의 생명적인 작업은 따뜻한 감성적 잠언(箴言)의 수용은 물론하고, ‘충직하고 개방적인 중개자, 그리고 엄숙한 시인으로의 시대소임’을 그 자신의 현재성에 비춰 존재감을 거듭 확인하는 행위다. 모쪼록 경계허물기로 자신의 천직에 충실하되 시적 상상력을 가일층 확장시켜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이(轉移)시키되 독자의 한 사람으로 거는 소박한 기대는, 소망의 새해가 온 누리에 밝아왔지만 아직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상에서 깊은 영혼의 상처로 고통 받는 이들의 갈등과 증오심을 절제된 시어로 정화시키는 강인한 집념과 예지(叡智)의 준엄한 교시의 절박함이다.
- 월간 모던포엠 2017년 1월호 인용 /장윤우
역사적 질곡(桎梏)에서의 시적 고뇌
-장윤우 시인 시집『종이로 만든 여자 』
조 병 무 (문학평론가, 시인, 전 동덕여대교수)
시인 장윤우는 화가이면서 금속 공예가이도 하다. 시집『종이로 만든 여자』는 시인의 제13시집이 된다. 현재 다양한 예술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윤우 시인은 오늘날 시대적으로 폭 넓은 예술의 영역을 공유하는 각도에서 그의 작품은 평가되고 있다.
시인의 작품 역시 시와 미술이라는 함수(函數)를 함께 하는 과정에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문학평론가 장윤익은 <장윤우의 시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그는 동양적 정서와 조형, 전쟁과 일상, 허무와 가족, 산과 풀잎, 술과 여행 등을 시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대중과 접근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 시인이다.(제12시집『뚜벅이 반추』해설에서)>라는 글에서 동양적 정서와 조형이라는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대체로 시인이 살아오는 일상의 삶 속에서 많은 소재들이 나타나고 있다.
장윤우 시인은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품인「겨울동양화」이후 13권의 시집을 창작하면서 시의 세계는 문학이라는 테두리와 미술이라는 테두리를 접목하면서 폭 넓은 시세계를 구축하였다. 그것은 시인이 간행한 시집의 몇 가지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 『형태의 삶』『시인과 기계』『두개의 풍경과 리삼월』등은 시와 미술, 그리고 공예와 조형의 틀을 동양적 정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인의 많은 작품은 하나의 형상학적인 구도 속에서 자신의 일상을 돌이켜 가면서 무엇인가의 핵심적인 조감도를 또 하나의 색다른 공예작품으로 조성하려는 것일까.
제13시집『종이로 만든 여자』에서는 위와 같은 맥락과 함께 또 다른 일면을 살펴 볼 수 있다. 시인은 오랜 세월의 회상으로 자신을 끌어 들인다. 시집 차례에서 암시하듯 그의 시 제목은 일상적인 정감을 현실과 과거, 그리고 회상의 그리움으로 돌이키고 있다.「자화상」「이제 살만큼 살았고 볼만큼 보았다」「부자가 되는 비결」「억장이 무너진다 바다, 시름의 바다여」「경마장 가는 길」「가슴이 아프네요」등의 많은 작품에서 시인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와 삶의 애환과 시대의 흐름과 물정에 대하여 되돌아본다.
우리의 현대 시단은 1960년대 전후에 등단한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 와 있다. 그들의 세대는 바로 장윤우 시인이 살아온 세대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서 광복의 환희를 보았고, 6.25라는 민족의 참혹한 동족끼리의 전쟁을 겪었다.
그 뿐인가. 4.19라는 역사의 전환기의 중심에서 5.16과 함께 젊음을 살아온 세대다. 그 뿐인가, 민주화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역사의 질곡을 체험한 세대이다. 어느 세대인들 그 삶을 살아온 시대적인 고뇌는 있다.
장시인의 시「자화상」은 이러한 면에서 세월의 흐름과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으로 함축하고 있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이에겐
늙어가는 정축(丁丑)생 소띠가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반추(反芻)하는 취미라고 미루련다.
호롱불을 높이 밝혀
선시(禪詩)라도 읽으며
순백한 들판으로 빨려 들어간다해도
그건, 내 탓만이 아니다.
영욕의 세월을 문신으로 져며오면서도
숨을 죽인채 겨울 빗속을 걸어
아무도 모르게 나홀로
이르른 계절의 단층(斷層)아래 묻히련다.
장윤우 시인의 제13시집『종이로 만든 여자』와 제12시집『뚜벅이 반추』에서 세월의 흐름에 대한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 많다. 위의 인용한 시에서 어쩌면 자신의 입지를 실토하고 있는 듯 숙연해 진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 반추하는 취미라고> 말하는 오늘의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역사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대신 나타내고 있다.
지나온 시대를 <영욕의 세월을 문신으로 져며 오면서도 / 숨을 죽인채 겨울 빗속을 걸어> 가는 자신을 역사라는 <단층(斷層)아래>로 보내려 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구도의 초연한 일면을 볼 수 있다. 한 시대의 아픔이면서 흘러간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날 현대시의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시대의 일면을 숨김없이 노출시키는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시어의 함축미는 보다 솔직해지고 일상적인 생활 속의 단면에서 가감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그래서 시는 생활 자체임을 제시하기도 한다.
장윤우 시인은 시작품에서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상적인 화두가 많다. 그의 화두는 솔직하다. 표현의 은유보다 진솔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 준다.
<찌그러진 초막이라도 / 내 집으로 가야지 / “가세, 고만 마시고 가세” -「집으로 가야지」에서> <그냥 가자 없으면 없는 대로 / 못들은 체 하고 허허 웃으며 / 바보처럼 지내가자 / 함께 가기로 약속하자 -「가슴이 아프네요」에서> <나이 칠십이 되면 귀신이 되간다. / 눈치 코치, 모두 알면서 짐짓 모르 체 / 귀닫고 눈도 아예 감는다. / 이 나이에 무얼 더 바라겠나만 / 왜 이리도 가슴이 답답한가. - 「이제 살만큼 살았고 볼만큼 보았다」에서>
너무 큰 자신의 진솔한 목소리에 당황하게 된다. 세월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늘이라는 현실에서 시인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솔직한 작품이다.
중국의 문장가 유협(劉勰)은 <문(文)이 하는 역할은 실로 위대한 것이다. 그것이 천지와 생성을 같이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늘의 흑색(黑色)과 땅의 황색(黃色)이 혼합되어, 땅은 방형(方形)으로 하늘은 원형(圓形)으로 형체를 나누고 있다. ・・・인간은 만물을 형성하는 제 원소의 정화(精華)이며 천지의 마음(心)인 것이다. 천지의 마음이 생겨나면 언어(言語)가 나타나고 언어가 나타나면 문장(文章)이 모습을 밝게 드러낸다. 이것을 자연의 도리라 한 것이다.-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라는 말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천지와 생성을 같이 한 것에서 언어가 나타난다고 했듯이 장윤우 시인의 작품 역시 유협의 생각과 같아지고 있다.
장윤우 시인의 제13시집까지의 긴 행로는 시와 공예라는 예술적 조화 속에서 만들어 낸 인생의 조감도가 펼쳐진다. 이들 시인들에게서 삶의 애환과 역사의 단면에서 오는 삶의 질곡을 말하고 싶어 하는 까닭은 그렇게 많은 역사의 여러 항목을 살아왔다는 자신의 생활이었기 때문일까.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시인들, 특히 60년대를 거슬러가야 시의 현상을 익혀가는 현대시의 고뇌이기도 하다. 계간 <시와 산문>---시집 평 / 2010년 봄호.
자신을 성찰하는 시적 화자와 폭넓게 바라보는 세계
-장윤우 제12시집 《뚜벅이 반추(反芻)》
해설 신 광 호(申廣浩)
우리 현대시 100년 만에 자신을 '소'라는 시적 퍼소나(Persona)로 하여, 소(뚜벅이)의 반추(되새김질) 표제어를 단 시집이 나왔다. 시인은 소를 뚜벅… 자신있고 뜸직하게 걷는 걸음의 뚜렷한 발자국 소리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소'를 바라보면, 그의 피와 땀과 눈물에서 외경의 마음을 간직하게 된다. 죄인에 대한 신의 사랑, 하등은 무대가로 이루어지는 은혜를 말할 수 있다. 성질이 온순하고 참을성이 강하여 가축으로는 가장 오래된 소는 신(神)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시적 화자는 시인의 내면을 대변한다고 할 때, 자신을 자성하는 화법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세계를 폭넓게 바라보며 함께 하는 활달한 시편들이다.(*시적 퍼소나: 시인의 원래 심정과 객관화되는 말 사이에 조절기의 역할).
장윤우(張潤宇) 시인을 관악산에서 만났다. 한국문인산악회 회장을 역임하고 고문으로 꾸준히 산행에서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차기회장이었던 나에게 ' 봉사하는 자리'라며 신중한 자세로 격려해 주던 일이 내 기억 속의 푸른 사랑의 하나로 간직 되고 있다.
"2002년도 시선집 《형해(形骸)의 삶》이래 5년만의 출간이 됩니다. '소띠'라서 그런가 일만하고 살아왔습니다. 과연 '늙은 소의 되새김질'이 얼마나 더 갈까, 한국문인협회 임원으로 9년여 동안에 하고 싶고 쓰고 싶은 작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후반기 시 작업은 황폐한 도시일과의 전선에 부딪히며, 헤쳐 나가는 과정의 파편이라 해도 좋습니다."
표제시를 낭독해본다.
오로지 주인을 섬기고자 왔다.
미련하고 느린 뚜벅이로 묵묵히 살다가
먹은 만큼 더 열심히 일하고
또다시 일터로 나간다.
천형天刑의 멍에를 지고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누陋를 끼친 일은 없을까?
씹고 곰곰이 되씹으며
마지막이 살 한 조각, 뼈 한 줌까지
모두 바치고 떠나련다.
나, 늙은 숫소의 숙명(宿命)이다.
<뚜벅이 반추>(전문)
"1960년, 피난지 여수 오동도 바닷가 사춘기소년의 '꿈'이었던 순수와 신 서정을 추구해왔지만 저도 모르게 형해의 삶이 돼버렸고, 청운의 꿈은 빛바랜지 오래됩니다. 70줄에 들면서 시가 보이고 내가, 자아(自我)가 무언가 조심스러워 집니다. 문단역사에 어찌 남을는지, 현재보다는 후대의 평가에 신경이 곤두섭니다."
라고 출간 소감을 말하였다.
3부로 나뉘어진 이 시집은 1. ‘삶이 너무도 애련(哀憐)하여' <오솔길>, <모두 끝나 가는가>, <초록의 장원(莊園)>, <하늘공원>, <화려한 고독>, <독도(獨島)에 간다>, <망중한(忙中閑)>, 등과 <불멸의 탑으로 영원하리>-양주시청 헌충탑 건립비문-으로 저자가 설계. 작시한 작품도 실려 있다.
Ⅱ.'반추(反芻)' <되새김질>, <<어느 날 회장실의 독백>, <보낸 세월>, <춘색(春色)>-1.2, <사태(沙汰)>1-6, <뚜벅이 산행(山行)>, <한 그루 나무로 살아온 청정한 시인이어라>,
Ⅲ.'시리고 시린 날' <그리운 이가 더 그리워지기 전에>, <남항(南港)>, <조선의 부채-합죽선(合竹扇)>, <M에서 M으로>, <소생(蘇生)의 계절>, <비 내리는 장충단(奬忠壇)을 바라며>, <영상(靈山)>, <동강(東江)은> 등 모두 70편의 시로 짜여 있다.
저어 곳에 무언가 보인다.
허깨비 같기도 하고 글쎄,
너에겐 안 보인다고?
"더윌 먹었나."
나만 끝나가고야 마는가.
옥죄여오는 무더위
이글거리고, 찐득하고, 짜증만이 늘어나는
한 낮에, 호올로
반라半裸의 노객老客은 누웠다 앉았다
등골을 타고 내리는 비지땀
"제기랄"
바이러스 먹었는가
더위에 지쳤는가
PC앞에 붙어 앉아서
모니터만 멀거니 들여다본다.
폭염을 피하는 사이버와의 실랑이
애당초, 이렇게 끝나가는 인생인가.
그러자니 아아!
무언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 허상虛像들이
나를 손짓하는 실체實體로 건들거리며 온다.
요란스런 매암, 쓰르라미 소리에 묻혀
나의 철조각 분신들이
일제히 기웃거린다.
검으틱틱한 쇠붙이더미가
마당에 기우뚱 서서 내게 손짓을 하고 있다.
주인노릇도 못하는 주제에 비웃는다.
스스로를 '낭패한 술꾼'으로 자조하며
허탈한 웃음만 흘린다.
"서글픈 피에로."
"비굴한 낙오자."
"거세去勢된 고물딱지."
그래도 어느 시절에는 고독한 성주城主로
시대의 구도자求道者로 자처하지 않았던가.
나무는 열대야熱帶夜에도
호올로 눈뜨고 지킨다.
지나던 바람들에게 잎을 흔들며
먼 길에 평안平安하라는 인사를 던진다.
입추立秋는 어디쯤에 오고 있느냐고
주인을 버린 금속나무들은
더위에 지친 새들에게
잠자리를 주고
때로는 멀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과객들의 지표指標가 되어준다.
외롭고 찌그러지고 아파도
말할 곳조차 없는 나무들은
작고 작은 풀잎 한 겹에도
피곤하나 잔잔한 미소를 던진다.
-<모두 끝나 가는가!>(전문)
이 시를 읽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벌써 10여년전 일이다.
「장윤우 금속전」-잘린 나무와 환경-이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렸다.(1997.11.14-19 ) *'성신여대 학술연구조성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팜플렛에 적혀 있다. 제자들이 회갑(回甲)기념전시로 기획한 일이다, 넓은 전시장 안에는 작품으로 큼지막한 나무들이 100여 수가 넘게 늘어서서 바람이라도 불면 가지들이 흔들릴듯 검푸른 새깔로 그러나, 윗부분이 잘린 채로 거룩하게(?) 줄지어 늘어서서 위압감마저 주고 있어 아니! 어떻게 이걸 다… 하며, 소리 지를 뻔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무엇보다 규모가 큰데 놀라웠다. <금속과 시의 공존가능성을 실증(實證)>이란 제하에 김남수/미술평론가는 "잘린 나무와 환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테마 연작전을 갖는 금속공예가 장윤우는 올해로 회갑을 맞는 미술계의 중진이다. 또 다른 천재라는 말이 실감이 날 만큼 그는 전공인 금속공예 외에도 한국문단에 큰 족적을 남긴 시인이다."는 서두로 날로 파괴되어가는 자연환경에 대한 보호와 현실고발이라는 명제를 설정해놓고 예술작품을 통하여 참여한다는 극명한 의미가 담긴 이번 작품전은 우리의 자각을 촉구하는 무브먼트의 성격을 곁들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 말하고, 종래 "잃어버린 고향"을 주제로 설정하여 가진 작품전이 이번에 갖는 훼손된 나무의 생명력을 복원하려는 모티브에서 같은 맥락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한편 안내책자에는 컬러화보와 장윤우 금속전에 대해 '금속조형에 담긴 詩情'(챨스 보만 , California State University 교수)과 '금속조형으로 살려낸 환경'(최만린/국립현대미술관장), '자연파괴의 현실고발' '장윤우의 세계'(이재운/한국미술연감 발행인), '끝간데 없는 감성의 지표'(柳石雨/미술시대 주간.시인), '사람과 예술의 미적 뉘앙스'( 원영동/ 한맥 주간)등의 글들과 작가의 프로필이 나와 있었다.
<모두 끝나 가는가!>의 시적 화자는 그동안 전시했던 많은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염려와 당부마저 하고 있는게 아닐까.
장윤익(문학평론가․경주대 전총장)에 따르면 장윤우 시인의 시를 "시인의식과 장인의식의 미학"(장윤익의 해설, 참고)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예술적 기질이 ‘어느 분야를 기반으로 해서 예술의 미학을 전개할 것인가 하는 시와 그림의 갈림길에서 조형의 세계를 선택했다. 어떻게 보면 화가의 길을 택한 것은 시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장윤우는 미술을 전공함으로써 시 예술의 폭을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어떤 예술이든지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은 동일하다. 장윤우 시인은 시를 통한 동양적 정서와 조형, 생활과 허무의 만남이 예술적 아름다움을 최대로 고양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라며, 장윤우의 시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그는 동양적 정서와 조형, 전쟁과 일상, 허무와 가족, 산과 풀잎, 술과 여행 등을 시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대중과 접근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하는 시인이다. 고 평하고 있다.
장윤우(張潤宇 Yoon-Woo Chang) 시인은 1937. 12. 1. 서울생.
1956년 서울 중 고등학교 졸,
196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 대학원 졸.
1986년 미국 Califonia 주립대 (CAL State LA)연수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인 <겨울동양호> 이래
제1시집<겨울 동양화>, <續. 겨울동양화>, <오자인생>, <시인과 기계., <그 겨울 전차(戰車)의 포신(砲身)이 느린 그림자>, <그림자들의 무도회>, <이름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두개의 풍경과 리삼월>, <형해(形骸)의 삶>, <뚜벅이의 반추> <종이로 만든 여자>,등 13권의 시집을 내었다.
<장윤우 예술시평집>, <화실주변(수필집)>, 대학저서와 중학교 검정미술교과서(중1, 중2, 중3) 3권이 있다.
현재 성신여대미술대 명예교수로서 대학원장, 산업미술연구소장, 박물관장을 역임하였으며, 서울시문화상, 현대시학공로상, 현대시인상, 동포문학본상, 순수문학대상, 서포문학대상, 한맥문학대상, 한국예총문화예술대상,(문학), 시와 시론상, 2006년도 시문예상(미네르바), 국제문화(미술)대상 등을 수상하고, 국민훈장 황조근정훈장(2003.3 서훈)을 수여받았다.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시분과회장, 수석부이사장겸 월간문학발행인 6년역임. 재단법인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자문위원장(이사장(2000-2005)역임. 양천문화원 부원장, 국제로타리클럽 3640지구 총재보와 양천로타리클럽회장 역임하였으며, (사)한국종이접기협회 회장/ 종이문화원 원장을 겸임(2000-현재)한다.
장윤우 시인은 시집 머리말에서 "…수록된 70여 편은 반드시 내 뜻이라기 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청탁에 의해서 혹은 쫓기는 심경으로 남겨진 산물(産物)이다. 12권이라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그 외 산문집과 연구집, 교과서까지 합치면 수적으로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또 다른 분야(미술, 조형)에서의 업적은 제외하였다.
나이가 이쯤이면 자신의 이름에, 처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 언제 불려 갈는지도 모른다.
청탁에 의해 쫓기듯이 써서 보낸 경우와 비문(碑文)에 새겨 넣은 시편들이어서 마음에 그다지 내키지 않는 시편도 있음을 밝혀둔다. 기억도 쇠잔(衰殘)해가고 주위 문단동료들도 멀리 떨어져 간다.
우여곡절,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넘어오고 뒤돌아보는 인생행로를 뚜벅이 걸음으로 되새김질하면서 거짓 없이 열심히 쓰고 기도하는 경건(敬虔)함으로 여생(餘生)을 살아가련다. (하략)
근30여년의 산행을 가지는 한국문인산악회에서는 신간이 나오면 산행에 참가한 회원들이 낭송을 한다. 필자도 이날 한편 낭송하며 축하드렸다.
<시> 그리운 이가 더 그리워지기 전에
장윤우
넘치는 강줄기처럼
그리운 이가 그리워지기 전에
나는 흐르네
흘러야 하네
흐르는 것이 어디 눈물뿐인가
까칠한 낙엽으로 메말라가는 심성心性으로
이 해가 저물면 어디로 떠나야 하는가?
병든 잎새처럼
이 마음도 시들어가고
그리운 이여
두고 온 고향도 없지만
괜스레 그려보다 마는 뒷산과
긴 들판과 맞닿은 공활空豁한 그곳
흩어지고 마는 바람으로 가리.
올해 한국 현대문학 10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 문인들은 참된 자세로 독자들 앞에 작품으로 의연히 서야겠다. (시인, 한국문협 대외협력위 간사, 문예비젼주간)
싱싱한 진실의 목소리 - 韓英玉(성신여대 교수)
-장윤우 시집 「세번의 鐘」-
장윤우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세번의 鐘」은 꾸밈없는 목소리의 싱싱한 진실을 읽게 한다. 상징이나 비유의 테크닉 대신에 솔직한 의식의 알맹이들을 담아내보임으로써 직접 시적 재질을 만져보는 듯한 신선감을 읽게하는 때문이다. 삶의 주변에 구체적, 사실적으로 놓여져 있는 갖가지 오브제들이 적절히 배열됨으로써 참신한 빛깔 모양새를 획득하는 절차를 투명하게 바라다 볼 수 있는 기쁨, 이것이 다름 아닌 「세번의 鐘」을 읽게 만드는 힘임을 우리는 깨닫는다. 말 재주가 덧입혀져있지 않은, 자신의 심정을 진솔하게 토론함으로써 신뢰감을 주는, 요즈음은 몹시 귀해진 그런 사람과의 대화를 오랜만에 나누는 경험은 퍽 신선한 것이었다. 이는 오랫동안을 詩作에 바쳐온 연륜, 그리고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에 대한 성찰을 섬세하게 지탱해온 장윤우 시인 특유의 목소리임을 개닫는다. 차갑고 냉정한 금속에서 오히려 따뜻하고 애틋한 에스프리를 가다듬어내는 예리한 정신과 손끝, 숱한 여행과 산행을 통해 벼뤄 자연과 인간에 대한 탄력있는 이해력을 그의 시편들은 맑은 메아리로 울려주고 있었다. 따라서 「세 번의 鐘」을 읽으면서 !
우리는 훈훈하고 넉넉한 가슴에서 직접 쏟아진듯한 알맹이 굵은 말들에 마음을 녹이게 될 것이다. 짧은 지면이니 만큼, 이와같은 사실을 직접 시 한편을 읽어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이 말이 내게 무슨 의미를 줄지는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분명한 일은 앓기시작했다는 점이다
아픔의 이틀간
나는 새롭고 어린이답게
고분고분 진통을 받았다
보다 더 의미를 부열할 건
체인스모커인 담배를 끊었다는 것
얼마나 의미있고 힘든 얘기이냐
이 한가지 만으로도
83년 3.12일은 눈부셨다
보이는 사물, 만나는 자연의 밀어에서도
새롭게 태어나기를 거듭 감사한다
-「가슴앓이」전문
특별한 시적장치가 없는, 없음으로하여 신선감을 자아내는 시다. 육체적 고통을 통하여 오히려 정신의 창을 맑게 닦아내는 아름다운 절차를 그냥 일상적인 언어의 결로 다듬어낸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우리는 솔직하게 고통을 수용하면서 고통을 승화된 정신으로 전이시키는 시인의 달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시와 같은 방법, 文法이 장윤우 시인 특유의 詩 文法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달관의 넉넉한 목소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훈훈해질 수 있다면, 그로써 더 이상의 소중함이 없을 것임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시인 성신여대 국문학과 교수) - 신광호평/순수문학 장 시해설(2015.?
장윤우 시문학 평설 2012.2.21
삶 추구와 서울의 삼박자, 시세계
-등단 반세기 맞은 장윤우의 시와 인간
이 명 재(문학평론가,중앙대학교 명예교수,문학박사)
널리 알려진 장윤우 시인과 필자는 서로 삼십년에 걸쳐 문단에서 자주 만나온 문우이다. 그런 만큼 필자는 장 시인의 인품을 익히 알고 시편 또한 자주 대해 읽어서 서너 번은 월평 등에서 논의도 한바 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시문학을 총체적으로 다룬 바는 없었다. 실로 반세기에 걸친 그의 문단 연륜과 함께 현재까지 열 세권에 이르는 시집들을 통독해서 정리할 기회는 갖지 못한 탓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모처럼 장윤우 시인의 시문학과 인간미를 연결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박물학자 뷰퐁도 설파한바 “글(문체)은 곧 그 사람”이라는 명제도 이에 합당할 것 같다. 그러므로 편의상 최근 시전문지의 기념탑을 세운 본《모던 포엠》100호에 특집된 작품4편을 테스트로 삼는다. 이런 경우는 흔히 작품만을 주로 하여 신비평식으로 분석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작품과 더불어 그의 문학을 둘러싼 성장 환경과 개성 등도 참고하여 접근하기로 한다. 예의 렌섬이나 웰렉의 주장처럼 시문학을 오직 작품만 으로 살피는 현대적 분석보다는 생드뵈브와 떼느처럼 문학외적인 요소인 전통의 전기 및 환경도 참고하여 파악함이 더 타당해서이다.
서울맨으로 삼박자를 갖춘 시인
누구보다 장윤우(張潤宇)는 여러모로 서울의 삼박자 시인에 해당한다고 파악된다. 우선 1937년에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 소재의 성신여대에서 강의하고 현재에도 특별시민으로 살고 있는 서울사람인 것이다. 또한 그는 학력상으로 서울 중⦁고등학교를 거쳐서 서울대 미술대학과 같은 대학원을 마쳤다. 그리고 1963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당선되어 등단한 사실들이 한 결 같이 서울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공간적 성향의 경력이 결코 어떤 특권은 아니더라도 시인의 조건으로서는 특수한 경우이다. 그럼에도 그는 평소 서울 본토 배기 티를 내지 않고 소탈하며 오히려 시골에 더 친화감을 지녀서 매력을 더한다.
그런가 하면, 장윤우 시인은 실제의 삶과 예술상의 여러 면에서 행운의 숫자로 불리는 3과 연결된 양상을 이루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이런 시간적 성향의 일치점은 적어도 시인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참고가 되고 남을 요소이다. 필자와 사귄 30년 세월은 접어 두더라도 1930년대의 후반에 출생인 점, 1963년에 등단한 점 등에 그치지 않는다. 일찍이 소년 때 한국전란을 만나서 3년 동안 여수에서 살았던 체험뿐 아니라 그가 첫 시집『겨울 동양화』이후 근년에 펴낸 시집『종이로 만든 여자』또한 13번째로서 3과 상관된 숫자를 보인다. 특히 성신여대에서 33년을 교수로 근속하다가 정년퇴임한 그의 재직 연도 숫자 역시 쌍을 이루고 있다.
더욱이 장윤우 시인의 창작활동은 예술의 삼위일체를 형성하면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서 주목된다. 이런 현상은 흔히 지칭하듯 트로이카나 트리플 구조라고 부르기에는 적절할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우연을 넘을 정도이다. 미술대학에 이어 동대학원에서 미술과 공예를 전공한 그는 금속공예 교수로서 강의하며 서양화 작품을 겸하면서 시작 활동을 계속해온 것이다. 공예 전공 교수로서 성신여대 산업미술연구소장, 한국공예문화진흥원이사장과 현역시인으로서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제펜한국대표로서 파리대회에 참가한 약력은 이를 뒷받침한다. 동시에 그가 서양화가로서 국내외에서 수차례 미술개인전을 여는 한편 여러 문예지의 표지화와 컷에 봉사해온 사실은 특기할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표적인 서울맨으로서 교수이면서 예술가인 목훈(아호-木薰) 장윤우 시인의 시문학을 중심으로 하여 그의 인간적인 면과 창작을 상관지어 풀어가기로 한다.
서민적 삶과 예술, 그리고 현실인식과 휴머니즘
장윤우 시의 표현 기법적 특성은 여느 시인들과 상이하다. 오세영의 견해처럼 그의 시는 질박하고 거칠어서 언뜻 보아 산만한 구성처럼 거침없이 내쏟는 투박함을 지니고 있다. 객관적인 대상의 사물을 맵시 있게 묘파하기보다 시인자신이 사물 안에 들어가서 느껴지는 주관적 울분이나 좌절을 스스로 진솔하게 내뿜는다. 그러기에 안의 응어리를 사물에 대한 질타와 매도로써 밖으로 풀어버리는 그의 시는 난해하지 않고 활달한 편이다.
이런 장윤우의 시에서는 곧잘 다음 네 가지 유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모던포엠》100호 특집에 수록된 보기로써 대치하기에 알맞다고 생각된다. 그의 시 성향을 기계적으로 묶기보다는 대체로 이런 틀로 나누어서 정리해 봄이 타당할 것 같다.
첫째는,「신(新)장마루촌(村)의 이발사」유형의 서민적 삶을 다룬 것이다. 준비도 하지 않은 처지에 질척하게 마냥 내리는 늦가을 비를 흠뻑 맞으며 시적 화자가 스스로 리듬마저 비맞는 사물에 동화된 채 읊조린다.
살아있는 자는 필히 헤여지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며 만난 자는 필히 헤여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하는데- 가는 이를 어찌 나약한 사람의 힘으로 막으랴 나 역시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형극의 삶”인데.... 단 한편의 작품이라도 역사에 남는, 목훈장윤우를 온라인이건,오프라인이건간에 과거 오만의 향수에 연연하지 않고 죽는 그날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신인다운 자세로 되돌아가자 묵묵하고 경건히 쓰며 남모르게 홀로 걷고만 싶다. 한국문인산악회는 어느새 1450회이상의 매주산행을 기록하며 엊그제 해방70주년 8월 15일 산행도 북한산에 올라 뜻을 기렸다.
10대는 전쟁의 소용돌이. 20대는 청춘의 방황과 좌절. 30~40대는 가족의 삶과 참여문학,교직. 50대 이후는 정착과 책무-.
이제 삶의 가치와 소명으로서 오로지 작품으로만 청사(靑史)에 남기고 싶다.
첫댓글 일제 말기 서울에서 태여나서 8.15해방과 1950년 동족상잔의 6.25동란을 겪고 5.16혁명과 민정회복 그리고 오늘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대통령탄핵"헌법재판에 이르기까지 수란과 희로애락의 역사를 한 지성인으로서 문학과 미술인으로서 겪어오면서 이를 기록한 것들이다. 어데로 갈건가 수란의 한민족이여~ 이제 팔순을 넘어서 ㅣ승을 하직할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