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니다 지축(地軸)의 유래
3화학이석희 추천 0 조회 52 2010.08.27 10:30 댓글 7
이석희 선생님이 경남공고 재경 총동문회 다음 카페에 올리신 글 입니다.
지축(地軸)의 유래
경남공고 출신들은 스스로 지축인(地軸人)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교의 정문에 들어서면 그 정면에 “地軸人의 矜持”라고 새겨진 큼직한 돌비석이 서있다. 높이 3미터가 넘는 이 자연석 비석은 1997년 4월에 부산광역시 시의회 의장으로 있던 도종이(都鍾伊 8회) 동창회장이 건립한 것이다. 학교 운동장 앞에 지구를 받치고 있는 높은 지축탑(地軸塔)이 우뚝 솟아있다. 이 탑은 1977년에 동창회에서 건립한 것이다. 비석이 있는 화단의 뒷면에 지축관(地軸館)건물이
서있다. 지축관은 강당과 체육관을 겸용하고 있는 건물인데 이 건물은 1995년 8월에 준공했다. 기계과 실습공장 3층 옥상위에 넓이가 2500㎡(800평), 건물보강 기둥 30개가 둘러있고 공사비 24억원을 들여서 만든 강당으로 2000명을 동시에 수용 할 수 있다.
“지축(地軸)”이란 말의 출처가 어디에서 유래했나 하면 모교에서 매년 발행하는 교지(校誌)의 표제어(表題語)이다. 이 표제어가 언제부터인지 경남공고의 상징어가 된 것이다. 지축 창간호가 나온 것은 1956년 2월이다. 그러니까 올해 2010년에는 지축의 지령(誌齡)이 55호가 되었다. 그러한데 교지 창간호를 만든 것은 당시 문예부장으로 있던 유활열(柳活烈 5회 요업과)씨였다. 창간호가 나온 것은 1956년 2월 전포동 학교에서 였지만 교지 발행을 위해서 원고를 쓰고 발행 작업을 한 것은 1955년 서구 암남동 100번지 송도 가교사에서 였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면 육이오 전쟁으로 인하여 당시초량동에 있던 교사(校舍)가 군에 징발되고 학교가 충무동의실습공장에서 또 송도 가교사로 옮겨 있던 중에 휴전이 되고난 후에 1955년 8월1일 지금의 전포동 학교 부지를 군으로부터 인수 받았던 것이다. 육이오때 전포동 교지에는 영국군 보병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포동 부지에 가교사 2동 20개 교실을 준공한 후에 송도 가교사에서 전포동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1956년 2월 22일에 그곳에서 제 5회 졸업식을 거행했다. 그래서 교지(校誌)는 1955년 송도에서 만들고 발행은 1956년 전포동 학교에서 나눠주었다.
창간호를 만든 문예부장 류활열씨는 부산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에 울산에서 사업을 하다가 이제는 은퇴하여 7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섰다. 그는 당시를 회고 하면서 말한다. “타교에도 없던 교지의 창간호를 만든다는 벅찬 흥분 때문에 시간에 쫓겨 수업도 등한히 하며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고 교정도 보고하여 겨우 책을 만들었는데 교지의 제목을 결정하지 못하여 편집위원들과 숙의를 했지만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지 못하여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때 30대 중반의 미남 선생이신 최길성(崔吉成)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종이 한 장을 내 밀면서 이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교지명(校誌名)을 지축(地軸)으로 하고, 표지 도안 까지 해 오셨는데 지구의 모양을 그리고 지축 모양을 톱니바퀴로 그려 공고를 상징하는 뜻을 담았다고 하였다.
지축의 뜻은 이러하다. 지축은 지구 자전의 회전축으로 경남공고가 지구의 중심을 이루어 인류사 이바지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지축탑
조의홍(11회 시인)
아침 출근길 모교를 지나며
탑을 봅니다.
하늘을 향하여 벌린 팔과
지축에 닿아있는 그의 다리는
옛 교정의 늙은 백일홍처럼 든든합니다
아침 출근길에 모교 정문에 서있는
(김)군을 봅니다
든든한 어깨는 아침햇살이 얹혀있고
힘있는 두 다리는
우리들의 미래에 닿아 있어 든든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정든 모교에는
(김)군 (박)군 (권)군의
작은 탑들이 모여 있습니다
영원한 미래에 뿌리가 닿아
나는 참으로 든든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 정책을 수립하여 외자유치와 수출산업을 육성하면서 기능인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공고생에 2급 기능사 자격 제도를 실시했다. 그때 '技술人은 祖國近代化의 旗手'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揮毫)를 1976년 자연석탑에 새겨서 교문 입구에 세웠다. 1977년에는 동창회가 운동장 정면에 높은 철탑 '지축탑'을 건립하였다. 그 20년 뒤 도종이 회장이 '地軸人의矜 持'탑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오랜 탑이 있다. 그것은 1960년 6월 19일에 세운 의용탑(義勇塔)이다. 이 탑은 4.19 의거때 부산지역에서 유일하게 희생당한 고 강수영(姜壽永 10회 3학년 염직과)군을 추모하는 석탑이 교정에 새워져 있다.
모교의 발전을 위해 쓴 시조
지축인 이원천 (시인 21회 염직과)
한반도 남쪽 하늘 밝은빛 비추는 곳
눈빛 형형한 님들 거친 벌판을 일구었다.
이 땅을 바로 잡아라! 여기가 중심이다.
스스로 다스리며 매사에 성실하라.
창의적인 마음으로 앞선 기술을 배워라
늘 푸른 태산목처럼 고결한 목련처럼
이젠 고개 높이 들어 푸른하늘을 바라보자!
올곧은 생각으로 겨례위해 봉사하자!
미래는 우리들의 것 다시 한 번 웅비하자!
참고: 교목-오엽송 교화-목련 교정의 큰 나무-태산목
교훈 : 성실 자율 창의
아래 사진은 인터넷 에서 찾아 추가로 올려 봅니다.
강수영 열사 추모비
첫댓글 고맙습니다. 의미있는 글 잘 봤고, 늘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교훈은 바뀌었네
우리가 다닐때 교훈은
근검,자립,봉공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