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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련 훼리선박 거지여행으로 새로 깨어난>
즐거움을 만들고 삶의 생명력을 창조하는···
‘야외여가생활-레저생활’을 말한다.
인생은 일과 야외여가생활과의 전쟁!!
책 한 권 들고 어슬렁어슬렁 대련을 다녀왔습니다.
인천항에서 대련으로 가는 훼리 선편은 오후5시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10시에 대련에 도착합니다. 돌아올 때도 대련에서 오후5시에 출발하여 다음날 오전10시에 인천항에 닫습니다.
그러나 비행기와는 달리 승객이 몇 백 명에 이르기 때문에 배에 올라타는 수속 절차만도 3 시간이나 걸리고, 하선할 때에도 2시간이 걸립니다. 일반승객들의 짐도 많지만 보따리 장사꾼들의 짐은 무척 많아 이렇게 긴 시간을 꼬박 줄을 서서 출입국절차를 받아야 합니다.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가끔은 고통의 자리를 마다 않고 일부러라도 찾아들어 나태해지려고 하는 나의 꼴을 혼내주려는 심산도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 여정자체도 이미 훌륭한 ‘야외활동’이니까요.
‘야성의 원형의 삶을 쫒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라고 호기를 부리며,
하층민들의 아등바등 하는 격전장에 몸을 허락해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절박함이 오히려 ‘사나운 세상’을 ‘포근한 세상’으로 느끼게 합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집밖에 나가 움직이는 모든 행동을 ‘여가생활’의 연장이라 여기고삽니다. 주인이 나를 풀어주어 마음껏 뛰놀게 해주는 동물의 원초적 즐거움을 만끽하는 나는 ‘늙은 강아지’입니다.
일중독은 병이지만 놀이와 결탁하면 열정이 됩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성공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 것이다>
‘재앙’은 노는 방법을 아무렇게나 방치한데서오는 당연한 고통입니다.
여행을 즐기면서도 고생길을 택하는 까닭은 약삭빠르게만 살려는 편한 생활을 버리고 ‘자신을 자신과의 경쟁자로 삼아’ 도전하며 즐기는 한수 위를 보는 비전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신을 처벌한 적이 있습니까?>
<후회는 지금을 얕본 죄 값입니다>
인간은 편하고 꿈이 없으면 결핍을 모르는 ‘권태 자’로 전락하여 삶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또한 병듦, 가난, 늙음, 죽음도 불가피한 아픔이지만, 일상적으로 당하는 괴로움은 바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업무와 얽힌 고뇌의 갈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짐승이나 초목과 달리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에 일하며 깨여있어야 하는 그것도 고도의 긴장 속에서 말입니다. 주말을 무엇으로 즐기고 노년의 기쁨을 무엇으로 준비 하는 것 따위는 안중에 없고 그저 일에 파묻혀 허우적댑니다.
<당신의 죽음의 준비는 무엇입니까?>
<죽는 순간에도 비관과 후회를 하며 이 세상을 원망할 것인가? >
<이는 당신의 문제이며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와 절친했던 ‘장군-장관’ 까지 지낸 친구는 죽기 몇 일전 병석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남가고 떠났습니다. ‘자네처럼 자연에 뒹굴며 모험을 하지 않고 살아온 게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 되네’!! 그 친구는 젊어서부터 나를 따라 산에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다 산은 한 번도 안가고 끝끝내 그 말을 무덤까지 끌고 갔습니다>
그러기에 쉼休은 그 자체만으로도 편한 것이 사실이지만 ‘휴식을 통한 진정한 治癒’는 단지 쉰다는 개념을 넘어 매여 사는 일상의 내면을 깨끗이 청소해내는 여가문화의 높은 단계의 기술적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생활화하는 것이 선행 해결책입니다.
<제로 스트레스로 가는 길은 자연에서 노는 레저 활동 뿐>
<당신은 시집 한권 들고 숲을 언제 걸었습니까?>
쓴소리 여러 마디,
당신은 여가를 즐기는 방편으로 지난 한 달간 무슨 활동과 얼마의 시간을 소비했으며, 여가기술을 배우고 보다 높은 단계의 기쁨을 낳게 하는 무슨 노력과 투자를 하였습니까? 또 야외 여가생활을 위해 자신 만이 내세울 수 있는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의 가족과 레저생활을 같이하고 있습니까?
가족모두를 위한 ‘여가경영관리’ 계획서를 만들어 가족과 공유하고 있습니까? 있다면 그 야외활동의 실적과 기대효과를 설명해주십시오.
자연 속에서 레저 활동을 하기위한 워크숍을 몇 번이나 개최했으며?
외부워크숍에 참석한 적은 있는지? 그 파생효과를 평가해 주십시오.
야외활동을 위한 장비와 도구 등은 무엇을 갖고 있는지 품목 표를 보여주십시오. 등산장비 점검표와 오토캠핑용품 목록을 보여주십시오.
등산 장비나 텐트 및 캠핑 장비를 레저 활동을 한 후에 태양열에 충분히 말리지 않고 차량이나 집에 보관하면 곰팡이가 기생하여 집안이나 차량에 퍼지고 그것이 질병의 심각한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텐트는 세탁을 하면 기능이 손상되어 세탁을 하면 안 되지만 각종 장비를 넣는 포장주머니는 1년에 두 번 이상 꼭 세탁을 하여야하는데 그렇게 하고 있나요?
야외활동에 필수적인 안전대책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준비된 장비의 품목은 무엇입니까?
차량에 소화기를 비치하였습니까?
구급약 Box에 채워놓은 약품과 기구는 무엇이며 일 년에 몇 번을 점검합니까? 벌, 지내, 독충, 뱀에게 물렸을 때를 대비한 ‘마이너스 주사기’를 항상 휴대하고 있나요?
안전사고를 대비하여 가족이 화재예방과 구급훈련 대비를 한 적이 있나요? 심폐기능 회복 응급처치 법을 체험을 통해 배웠나요?
골절 등 부상을 당하면 어떤 응급처치를 하여야하나요?
사고시의 자기위치의 기호를 아는 방법과 알리는 방법은?
산중이여서 휴대전화는 안통하고?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신원과 혈액형을 적어 몸에 지니고 있나요?
산이나 야지에서 천둥이치고 낙뢰위험이 있을 때는 어떤 긴급대피를 하여야 하나요? 우산은 써야하나요? 버려야하나요?
산계곡물을 약수라고 먹어도 되나요?
그리고 산에 가고 캠핑하고 여행을 하며 주말영농에서 씨 뿌리고 수확한 품목은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야생화를 봄, 여름, 가을에 걸쳐 몇 번 관상탐방하고 있나요? 그리고 야생화나 나무씨앗을 뿌린 적이 있습니까? 묘목도 심은 적이 있나요? 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은 후에 그 싹이 트는 것을 보러간 적이 있습니까?
‘히야신스 꽃’ 화분 하나면 방 가득히 꽃 향이 넘칩니다. 화분 하나 값이 2~3천원에 불과하고 다년초라서 두고두고 친구로 지낼 수 있습니다. 당신네 가족 중에 어린아이에게 보살피게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잘 자라게 관리를 하고 있습니까? 주말농장이 없는 가족은 시골을 여행할 때 씨를 갖고 가서 자원봉사로 농가농지에 씨를 뿌리고 사후 관리를 위해 재차 방문하고 있나요? 농가에 가서 식사대접을 받지 않고 방문한 가족이 음식을 직접 만들어 같이 한 적이 있나요?
<봄이 다가왔습니다. 산에다 지난늦가을에 내가뿌린 엘레지 싹이 곧 얼굴을 내밀 것입니다. 엘레지 꽃은 여느 야생화보다 제일먼저 3월 중순이면 피어올라옵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마구 달려가고 싶습니다>
<아~참!! 생강나무는 벌써 꽃 봉우리를 틔우고 있습니다. 그 은은한 향내를 눈을 감고 오래오래 나뭇가지를 잡고 나도 나무가되겠습니다>
레저 활동을 하며 찍어둔 당신가족의 사진첩이 보고 싶습니다.
기념될 만한 야외활동 ‘아트포토’를 보여주시고 앞으로의 활동 포부를 발표해주시지요. 그리고 산행, 여행, 캠핑 등 씨를 뿌리고 가꾸면서 기록으로 남긴 글 모음을 ‘메일’에 올려 그 기쁨을 남과 공유하고 있나요? 또한 레저를 위한 참고서적과 야외활동과 밀접한 인문학적인 책을 얼마나 갖고 있으며 그 목록도 알고 싶네요.
<성공 학 책이 인기라고 했던가?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너무 아픈 데를 찌르며 압박한 것은 아닌가 할 것이지만 이 정도는 국민 누구나가 하고 있어야 하고 해내야하는 ‘규제 없는 헌법’입니다.
이 세상에 ‘이 헌법’ 이상의 가치 있는 ‘매뉴얼’이 또 있겠습니까?>
<또 한 가지 추가합니다. 외식은 식사로 끼니 때우는 것이지 야외활동이나 레저 활동이 아닙니다>
'레저'는 즐기면서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이 되어가는 놀이
사람은 철저하게 일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없는 빈틈없이 짜여 진 사회구조 속에 갇혀 삽니다. 그러니만큼 일과 일상의 생활구속에서 해방되어 삶의 보람을 얻는 장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일보다 더 높은 삶의 가치일 것입니다. 이게 바로 여가문화라는 인간만이 갖는 삶의 목표이자 특권입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 ‘즐거움’ ‘자기발전’을 통한 ‘희열과 만족’이 따르는 기쁨과 즐거움의 요람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상상과 세상을 보는 ‘지혜의 知性훈련’이 필요하고 이게 바로 여가의 핵심 명제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가문화를 단지 일에서 해방되어 노는 것으로 만 여기고 아무 노력 없이 일과성 놀이소비로 치닫습니다.
여가생활방법에 대한 방식이나 결과에 대한 고뇌나 투자와 기술개발은 하지 않고, 구태의연하게 속물 놀이만 하는 것은 생에 대한 모독이며 생태계파괴를 일삼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단순생명만을 유지하며 쾌락을 탐닉하는 반문명적인 천박한 하류문화의 고질입니다.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이 꼭 갖추어야할 놀이문화의 덕목을 생각해봅니다. 여가문화의 새로운 흐름과 모델을 우리 개개인이 일상의 업무에 ‘멎지 않는’ 그 이상의 여가생활의 ‘상부구조문화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여가 메커니즘’을 학습하여 생활화 하여야 할 것입니다.
포스트아트와 함께 보는 현대사회와 21세기인의 정경을 그려봅니다.
현대의 엘리트전문가와 기득권계급은 시간이 없어서 쩔쩔매는 무한계급(열려 있는)이고, 하류층은 돈이 궁핍하여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는 죽을 지경인 유한계급(닫혀 있는)입니다. 중간계급에 속하는 계층은 자신의 마음대로 상·하층계급에 드나들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삶을 소진합니다. 사람의 고통의 근원은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입니다.
경제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레저의 민주주의를 생각해봅니다.
팝아트나 프롤레타리아트 그리고 부르주아예술 등으로 구분되는 것과 같이 여가나 레저도 다양한 문화계층으로 나누어집니다.
상류계급층은 그들의 부와 권력 등의 기득권신분을 과시하기위해 ‘여가-레저’를 소비하고, 중류층은 상류층을 탐 내여 상류층들이 쓰는 물건들을 소비하며 그 형태까지도 흉내 냅니다.
이때 소비하는 것은 실제 물건을 포함해 호화롭게 과시하는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거품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가-레저’에 입혀진 이미지나 유행패러다임에는 상업적 소비패턴의 유혹이 사회풍토를 공연히 들뜨게 하고 있음을 주목하여야합니다.
‘여가-레저’는 건강과 정서적 삶을 위한 진취적 인간정신을 길러내는 사관학교입니다.
그러니 자기의식의 고향을 잃고 통틀어 ‘여가문화’를 손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까?
한낮 문명의 도구로 생을 끝내는 것인지? 문화 빈곤을 자성하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도 둘도 ‘인간의 자유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실천적 生입니다. 그것도 반듯이 야외에 나가 자연에 뒹굴며 모든 것이 ‘즐거움과 함축된 취향문화’의 실질적인생활화를 말합니다.
‘여가활동’과 ‘Leisure'에 대하여.
Leisure가 우리말의 여가와 유사한 의미로 알려져 있으나 여가보다는 Leisure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첫째, 즐거움 과 기쁨. 둘째, 선택의 자유. 셋째, 해방감과 이탈감 등,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문화정신을 포괄적으로 함축시킨 뜻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Leisure의 의미와 범주는 (1)자연과의 일체감 (2)일상 생활로부터의 해방감 (3)신체적 자극과 해방감 (4)즐거움의 만끽/만족감/흥미와 재미 (5)한계의 극복/가능성의 추구/도전과 정복 감 (6)자아 각성과 자기실현 (7)신체훈련과 자기초월 의식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여가생활’이란 어휘는 우리말로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역사의 시차로 볼 때 어떤 면에서는 마치 ‘놀기만 하는 것’ 같은 그리고 ‘덤으로’ 얻는 것 같은 좀 맥 빠진 느낌이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다시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여가생활’은 여백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험’ ‘진취성’ ‘도전’ ‘창조’ ‘즐거움’ ‘에너지 재충전’을 포함한 “건강과 감성” 추구가 최종의 목표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쓴 소리가 길다보니 훼리 여행 이야기를 놓쳤네요.
훼리 선박여행은,
밤사이~ 새벽녘에 책읽기가 안성맞춤입니다.
이번 여행은 마침 정월대보름날이끼여서 간간이 간판에 올라가 넋을
잃고 오래오래 달을 바라보는 無我 無爲의 바다길이였습니다.
‘달이 와서 예술을 입힌’ 선상의 장면이 어찌나 적막하고 가난한지 바다한가운데서 혼자 아이같이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벌석 간판에 주저앉아 어린아이들처럼 넓은 바다와 하늘이 너무도 알고 싶어졌습니다. 달이 하도 밝아 별은 맥없이 수평선에서 파도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졸며 아롱이고 있었습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바다한가운데서 일몰과 일출, 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하고 생각하니 그 열망은 신기루처럼 몽롱합니다. 하기야 몇 백 만원 하는 크루즈 여행이 아니고서는 쉽게 경험할 수없는 無錢의 휘황한 유절쾌절愉節快節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 어떤 명작영화의 주인공장면 보다도 밤하늘을 단지 바라보기만 하는 혼자의 쓸쓸한 단역이 내 생애 가장 멋진 연출이다 하였습니다.
배 운임은 1등 칸과 일반 칸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받습니다. 노인은 경로우대로 40% 활인 받아 93,300원(片道)이니 항공료보다 1/2이상 저렴합니다. 1 등 실은 나무침대 4개에 한 사람씩 자는 2층 칸으로 되어있고, 일반실은 수십 명이 같이 기거하는 칸막이 없는 ‘다다미’ 매트 방입니다. 나는 50명이 합숙하는 일반실 모퉁이에 내팽겨졌습니다. 개인별 매트사이의 간격은 10cm에 불과하여 그야말로 두 매트가 한 이불속에 눕는 여인숙 더블침대 꼴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주위에 여자들만 북적거리며 ‘히히 닥’ ‘해해 닥’ 하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며 나를 핼긋핼긋 쳐다보니 맛 장구 쳐주는 것도 싫지는 않았으나 ‘오빠 할아버님 소주 한잔 하시지요’ 하며 오징어다리 쪼가리를 불숙 내미니 깐돌이 기겁을 했을 까요? 이게 무슨 떡이
냐 했을까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런 꼴로 밤을 지새우며 책장을 들척거리고, 달 보러 간판에 들쭉날쭉하며 화장실에 들락거리다보니 해는 수평선에 막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찬바람을 맞으며 ‘찰각’ ‘찰각’ 바다와 시간의 표정을 담았습니다. 여기에 이르러 노인은 자유가 되였습니다.
이번여행은 사업을 하는 분의 동행권유로 아무 할 일 없이 쓰다 남은희망을 밑천으로 놀이삼아 유쾌하게 다녀왔습니다. 그 사업가와 10 여 년 전에 중국으로 여행할 때에 배로가자고 내가 권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배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며, 창피하고 불편할 것 같으니 비행기로 가자는 것을 내가 비행기로 간다면 안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그 이후부터 훼리 선편의 거지여행이 단골이 되었습니다. 그 고집이 공짜여행의 단초가 되였으니 고집이 돈이 된다는 것은 심리경제학인가 경제심리학인가 고집불통경제학인가? 헛갈리네요.
그러다보니 중국에 갈 때마다 보따리장사꾼들에게 끼어 초라한 민초가 되는 재미로 이렇게 징발 된지가 10여 차례를 넘습니다. 늙어가는 허리를 곧추세워 삶을 팽팽하게 하는 사연도 여러 갈래입니다. 세상이 쫓아올 수 없는 망망대해에 버려져 삶을 전환하는 꼼수를 음모하며, 태어난 인연마저도 엉뚱한 꿈으로 엮어보는 재미로 혼자서 괜스레 우쭐댑니다. 생각에는 본래 주인이 없는 법이라 내가하는 생각이 주인이여서 난도질 마음대로 하며 남이 알까 두리번거리며 모두 나에게 속고 있는 이 밤은 천하 통일 내세상입니다.
호기를 꾹꾹 눌러,
하얀 파도의 춤을 구경하며 바다 소리에 가슴을 맡겼습니다.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이렇게 나름대로 허름한 심심푸리로 부유합니다. 그래 미답의 호기심이 나를 노려보는 성화에 못 이겨 내 생애 가장 허술한 구석을 찾는 여정이 애처로이 좋습니다. 이런 사소한 재미로 새로운 이설異說을 만드는 건 나를 가난한 풍경으로 가득 메우게 하여 더 많은 것을 기대 하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는 이유이기도합니다.
험한 세상에 휩싸이지 않고, 뒤진 곳에 숨어서 삶의 자연성을 쫓아 생의 고비를 오늘도 넘습니다. 등산, 여행, 캠핑, 주말영농, 레저생활이 그러하듯 땅바닥에 나뒹구는 여정을 말입니다. 이번여행도 배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제로 스트레스 One point 캠핑’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자신의 매를 호되게 내가 맞아가며 나의 말을 내 몸이 잘 들어주는 머슴으로 끌고 갑니다.
내 몸이 나를 잘 따르지 못할 때는 엄동설한의 눈밭에 나가 ‘북극곰캠핑’으로 호되게 내 몸을 혼내주어야 하는 것은 매 맞는 소라야 주인을 따르듯··· 나를 한눈팔지 못 하게하는 서바이벌레저의 극한 놀이가 나의 버릇을 고치는 따끔한 도구이기도합니다.
하류인생 선상에서 벌어지는 핏줄도 인연도 공유하지 않은 인공 가족 들의 이야기를 쓸려고 하니 밑천도 딸리고, 글을 줄줄이 늘리자니 오래전에 얻은 뇌졸중병으로 어지럼이 닥쳐오고 눈도 침침해져 오늘 밤은 이것으로 막을 닫겠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늙은이가 글을 쓰는 까닭
늙는 줄도 죽는 줄도 모르고
산야를 헤매며
만신창이가 되어
사색의 풍경을
우리 마음에 뿌린다.
선착장을 고향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갈매기에 기대 잠시 쉬였습니다.
한밤중에 간판에 올라가 사납게 노호하는 파도소리 조아려 나를 불러봅니다. 바람소리 바다소리 내 가슴소리 모두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망망대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유구한 바다와 근심 가득 뒤채여온 나와의 접점에서 늙은 나의 방황은 역시 그간의 ‘자연 살이’만이 답인 것 같아 이 밤이 더욱 정한靜閑 합니다.
서해바다와 情恨을 나누다 와 잠시 쉬는, 깐돌이 박 상설 드림.
첫댓글 선생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저같은 범인이 가까이할 수 없는 사고와 행동이 부럽습니다. 글도 한꺼번에 이리 길게 쓰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