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산
밀양 만어산(870.4m)~구천산(640m)
낙동강 조망에 놀란 눈, 만어석에서도 떼지 못해
삼랑진읍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국으로 낙동강이 마을 앞으로 흐르고 만어산이 수호신처럼 솟아 마을을 감싸고 있다. 옛 가야 땅으로 숱한 전설과 설화를 안고 있는 만어산은 봄맞이 산행지로 제격이다.
만어산은 직역하면 1만 마리의 물고기가 머무는 산으로, 이는 산 중턱에 자리한 만어경석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삼국유사 탑상편 어산불영조에 '옛 기록에 이렇게 말했다. 만어산은 옛날의 자성산 또는 아야사산이니, 그 곁에 가라국이 있었다'고 했고, 또 아야사에 대해 '마땅히 마야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물고기를 말한 것이다' 라고 기록돼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자성산은 자비로운 성인이 사는 산으로, 이는 바로 석가모니를 지칭하며, 마야사는 물고기를 뜻하는 것이니 결국 만어와 연관된 것이다. 결국 부처와 물고기가 얽힌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는 우곡리 표석이 서있는 마을 입구 갈림길로 원점회귀되지만, 사실 만어산만으로는 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 다소 부족하다. 그래서 이웃한 구천산을 연계한다면 보다 알차고 재미있는 산행이 될 것 같다. 구천산은 만어산과 달리 평상시에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산이다.
우곡리~만어산~구천산~우곡리 원점회귀산행
우곡리 표석이 서있는 갈림길에서 만어사를 가리키는 쪽의 왼편 아스팔트 포장도로 접어든다. 정면에 이동통신 송신탑이 서있는 만어산과 오른편 마을 뒤쪽의 구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10분이 채 못 돼 장군당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고 오른편 샛길로 들어선다. 길은 다시 나뉘지만 전원주택 옆을 지나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른다. 장군당 입구를 지나쳐 곧장 직진하여 오르면 포장도로가 끝나고 공동납골묘지를 만난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묘지 뒤편으로 열리는 산길로 들어서면 소나무가 우거진 숲이다. 숲속으로 오르는 다소 희미한 길은 곧이어 산허리를 따라 좌우로 이어지는 산길과 마주친다. 여기서 왼편으로 5분 정도면 주능선에 이르면서 확연한 산길을 만나 오른편으로 틀어 오른다. 능선 왼편에는 잘 단장된 광산 김씨 묘지가 보인다.
약간 경사진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묘지 2~3기를 지나게 되고, 오솔길은 오른편으로 휘면서 잠시 내려선다. 솔가지 사이 정면으로 만어산 정상의 중계탑이 간간이 얼굴을 내민다. 전주 류씨 묘지군을 지나 신창 표씨 쌍무덤을 뒤로 하고 붉은 페인트칠이 된 바위군을 만난다. 다시 묘지 몇 기를 통과해 숲속을 빠져나오면 산판도로다. 주능선에서 이곳까지는 20분이면 닿는다.
산판도로에서 왼편으로 약간 이동해 오른편의 널따란 숲길로 발걸음을 옮기면 바위들이 계곡을 온통 메우고 있다. 이 너덜겅이 1996년 도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된 만어석이다. 어산불영, 만어경석, 만어종석 등으로 불리는 이 너덜에 얽힌 얘기는 전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가락국 수로왕과 나찰녀, 동해 용왕의 아들을 따라나선 물고기떼가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는 얘기 등등은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의 기록으로 전해지면서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전설이다.
조선 세종 때는 만어산 경석을 채굴해 악기로 삼으려 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너덜의 정확한 생성 원인에 대해서는 미스터리일 뿐이다. 두드리면 종소리를 낸다고는 하지만 모든 바위가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평범한 돌이 더 많다. 지질학적으로 이 바위들은 2억년 이전의 고생대 말 중생대 초의 녹암층이라는 퇴적암인 청석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해저에서 퇴적된 지층이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해침과 해퇴가 반복되면서 풍화를 받고, 그것이 빙하기를 몇 차례 거치는 동안 기계적 풍화작용이 가속화되면서 지금의 거무튀튀하고 집채만한 크기의 암괴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라 추론하지만, 철분아 많아 쇳소리가 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너덜을 가로질러 만어사 절집의 마당으로 올라선다. 산문도 없고 일주문도 없는 이 절은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다. 전설에 의하면 46년(수로왕 5)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왕이 불공을 드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1180년(고려 명종 10)에 중창되었고, 1879년에 중건되었다. 경내에는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다. 또 대웅전, 미륵전, 삼성각, 요사채, 객사로 짜여진 도량은 그렇게 넓지 않다. 그렇지만 앞이 확 트인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시원한 전망과 주변 풍광은 압권이다.
만어사에는 볼거리도 많다. 미륵전 안의 자연석은 만어석으로 변한 물고기와 함께 왔다는 동해 용왕의 아들이 미륵으로 변한 바위라는 전설을 안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륵전 옆에는 신비한 석간수가 있다. 이 샘은 동해의 해수면이 밀물과 썰물에 의해 변할 때 샘물의 높낮이도 달라진다는 회간수다. 또 마당가에는 '靈(령)' 자를 새긴 신기한 바위가 있다. 절마당의 느티나무 고목 아래에는 기묘한 모양의 돌이 있는데, 소원을 빌고 돌을 들었을 때 돌이 움직이지 않으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또 이곳에서 영화 '청풍명월'이 일부 촬영되기도 했다.
대웅전 옆 만어약수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일일이 열거하게 어려울 정도로 믿거나 말거나 한 얘깃거리가 많은 절집을 뒤로하고 만어산 정상으로 향한다. 미륵전을 지나면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 보인다. 폐건물로 방치된 이 건물을 돌면 뒤편 능선으로 뚜렷한 산길이 나온다. 제법 경사가 가파른 산릉을 따라 지그재그로 난 산길로 15분이면 임도에 선다. 임도 옆에는 터가 널찍한 헬기장이 있다. 임도를 따라 이동통신중계탑을 우측에 끼고 돌면 쌍바위와 무덤을 만나고 곧장 정상에 이른다.
삼각점(밀양 21, 1992년 재설)과 정상표석, 돌탑 등이 상봉임을 말해주고, 사방은 툭 트였다. 남쪽에는 우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과 그 너머로 무척산, 금동산, 신어산 등 김해의 산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가까운 북쪽에는 정각산, 승학산, 장자산, 낙화산, 보두산 등 산과 산이 이어지고 겹쳐진다.
정상에서 동쪽 능선길로 내려선다. 곧이어 헬기장을 지나고 정면으로 610m봉과 그 뒤로 가야할 구천산도 얼굴을 내민다. 멀리 왼편으로 영남알프스 산군을 형성하는 산봉우리들이 산등성으로 이어지며 솟아 있다. 정상에서 외길의 내리막길로 20여분, 표석 없는 무덤 사이로 내려서면 임도가 지나는 점골고개. 왼편으로 몇 걸음 옮기다가 임도 오른편의 산길로 다시 접어든다.
초입의 밀성 박씨 묘를 지난다. 수령이 제법 된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이 한동안 능선을 벗어나기도 하지만 결국 등산로는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게 된다. 짧은 거리지만 급경사의 된비알로 25분 정도 오르면 갈림길. 오른편에 610m봉이 솟아 있지만 그냥 지나쳐 왼편의 내리막길로 곧장 내려서면 감물고개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삼거리 갈림길인 이곳은 드문드문 지나가는 승용차도 있다. 오른편은 우곡리, 왼편은 단장면 감물리, 진행 방향 뒤편으로는 점골고개로 이어진다.
정면의 산으로 오르면 곧바로 소나무숲이다. 이제 구천산으로 접어든 것이다. 솔잎이 푹신푹신한 송림 사이로 이어지는 뚜렷한 산길은 인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하고 고즈넉하다. 10분쯤이면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는다. 곳곳에 소나무 재선충 감염목을 벌목해 덮어 훈증하고 있다. 숲속에 즐비한 나무 묘지인 셈이다.
안부를 지나 다소 경사가 심한 비탈길의 연속이다. 오르내림이 두어 차례 반복되면서 묘지 1기를 지나 헬기장에 닿는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감물고개에서 헬기장에 이를 때까지 몇 차례 갈림길을 지나게 되는데 무조건 능선길로 따라야 한다는 것.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벗어나는 길은 금오산으로 연결되는 영축지맥을 잇는 길이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는 10여분이 소요되지만 된비알이 제법 거칠다는 느낌이다.
아홉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다 하여 이름 붙은 구천산은 상봉에 두 개의 바위봉이 있다. 두 봉우리 모두 높이는 비슷하지만 정상표석 같은 것은 없다. 또 그렇게 넓지도 않다. 불과 두세 사람이 겨우 설 수 있는 공간이다. 남봉에는 조그만 돌탑과 영축지맥 구천산 640m라 쓴 아크릴 표지판이 붙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바위봉에서 조망되는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지나온 만어산은 물론 정면에 금오산이 또렷하고 그 오른편으로 양수발전소가 있는 천태산, 그 너머 토곡산뿐만 아니라 밀양, 양산, 김해의 산봉우리들을 모두 바라볼 수 있다.
하산은 남봉에서 남쪽 능선을 따르게 되는데, 처음에는 암릉이 연속되며 거칠다. 암릉을 지나면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로 바뀌면서 발아래로 안태호가 보인다. 뒤이어 안부에 이르러 산길은 오른편으로 꺾어 떨어지면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5분이면 영천암 입구 표석을 만난다. 도로를 건너 묘지 사이로 빠져나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르면 염동마을회관 앞에 닿는다. 마을길로 20분이면 산행을 시작했던 우곡리 표석이 서있는 삼거리다.
*산행길잡이
○우곡 삼거리-공동납골묘지-만어사-만어산 정상-610m봉 갈림길-감물고개-구천산 정상-염동-우곡 삼거리<5시간 소요>
○우곡 삼거리-공동납골묘지-만어사-만어산 정상-610m봉 갈림길-감물고개-구천산 정상-헬기장-행촌<5시간 소요>
○우곡 삼거리-공동납골묘지-만어사-만어산 정상-점골고개-추전-우곡 삼거리<3시간30분 소요>
*교통
삼랑진까지 대중교통은 각 지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삼링진역 앞 마을버스(삼랑진교통 055-352-9707)정류장에서 우곡리행(07:48, 09:50, 10:20) 버스는 일요일은 운행하지 않는다. 역에서 우곡 삼거리까지는 4km로 걷기에 다소 부담스럽다면 택시(삼랑진택시 055-353-9733, 8255)를 이용(6,000원)하는 방법도 있다. 또 밀양시외버스터미널(밀성여객 055-354-2320)에서 김해행 시외버스(06:40~15:40까지 1일 7회 운행)가 삼랑진을 경유한다.
*숙식(지역번호 055)
삼랑진은 조그마한 읍으로 숙식할 곳이 다양하지는 못하다. 읍내에 낙동장(351-0904), 부강장(353-9152), 금성장(353-8274) 등의 여관이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윤사월펜션354-3700)에서는 천태호를 볼 수 있다. 삼랑진역 주변에는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식당이 몇 곳 있지만 소문난 맛집은 없다.
역에서 제법 떨어진 유선그린산장(355-9300)은 오리와 닭요리 전문 식당이고, 안태호와 천태호 사이에 자리한 금오가든(355-3728)은 민물장어구이와 오리불고기가 입맛을 돋우며, 통나무집 숙소 2동에는 민박도 가능하다. 삼랑진농협 앞 장터에서 열리는 5일장(4,9일)에 들르면 훈훈한 시골장의 정취를 만날 수 있다. 낙동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파는 곳이 많다.
글쓴이:황계복 88년 눔부르봉(6,954m) 등반, 98년 낙남정맥, 2001년 낙동정맥, 2002년 백두대간, 2004년 낙남정맥 완주. 91년 부산시산악연맹 우수 산악인상 수상. 99~2003년 석봉산악회 회장 역임. 현 부산시산악연맹 부회장. 저서 <영남알프스>.
참조:만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