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덕 시인의 시집 <주암댐, 수몰지구를 지나며>가
2006년 [도서출판고요아침]에서 나왔습니다.
박현덕 시인은 1967년 전남 완도에서 출생하여
1987년 [시조문학] 천료, 1988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조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한국시조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현재 [시조시학] 편집위원, 역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현덕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 지상의 아름답고 소중한 가족이여...
...이 청명한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호 문학평론가는 '물과 나무가 있는 풍경'이라는 해설에서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은 근본적으로 물질적이라고 보고
결국 인간은 편애하는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원초적인 감정(sentimentprimitif),
근원적으로 몽상적인 하나의 기질에 지배 당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믿음, 정열, 이상, 사고의 심층적인 상상세계를 파악하려면
그것을 지배하는 물질의 한 속성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현덕의 시집 [주암댐, 수몰지구를 지나며]에서 우리는 그의 시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분성(水分性) 이미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을 지배하고 있는 상상력은 '물의 상상력'이다. 그것들은
물이 기본적 형태를 갖고 있지 않듯이, 어떤 고착적인 형태로 형상화되기 보다는
물의 다양한 변이태들로서 현전한다. 그것은 비나 빗물, 눈, 피와 핏물, 또는
땀, 눈물, 안개, 술, 강물, 바다 등의 이미지로 변주된다.
박현덕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이미지들은 결국 '물의 이미지'들로서
물의 속성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물의 이미지는
'물-시간'과 '물-공간'으로 이중화되어 나타날 수 있고, 박현덕의 시도
물의 두 가지 의미양태로 대별해 읽을 수 있다....
...'물-시간'의 축에서 박현덕의 시는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로 회귀하는
선분들 위에 위치한다.... 이 시집에서 그런 현재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는 '송정리'다. 송정리 시편들에서 나타나는 송정리는
미군 부대 옆 기지촌으로서, 이 시편들에서는 사창가의 풍경이 제시된다....
... '물-공간'으로서의 장소, 송정리에 나타나는 물의 이미지는....
...순수한 물이 아닌 다른 것들과 섞인 물이거나 다른 사물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박현덕의 시에 '물 이미지'가 빈번할 뿐더러 그것의 변주가 다양하고 폭넓은 반면, 나무는 ...... 숨겨져 있다. 그만큼 우리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기지는 않는다.
....숨겨져 있다는 것은 오히려 감추어진 의도 혹은 숨겨진 메시지일 수도 있다.
.....수분성 이미지들과 함께 나타나며 강물이 흘러가며 변주되는 물 이미지들의
주변에 함께 나타난 나무 이미지들. 그것은 바로 시인의 자아 이미지(self-image)다. 물의 흐름과 바다-어머니-자궁-죽음으로의 회귀가 시인의 무의식적 소망이라면 나무는 시인의 무의식중에 시 속에 투사한 자신의 이미지인 것이다.....
..... 나무는 여러 원형적 상징으로 사용되지만 여성의 상징인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있는 모습 때문에 종종 남근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해 왔다. 물 또한 여성 상징이라는 점과 앞서 살펴본 자궁회귀의 본능을 고려할 때, 물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
나무는 남근의 상징, 혹은 원형적 차원에서의 남녀의 합일의 소망으로 읽는 독법도 가능하다."고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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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댐, 수몰지구를 지나며2
-어느 겨울
-박 현 덕
저것 봐라
수장된
옛길이 드러난다
경운기 타고 가는
조무래기
시름 모르고
따스한
서정시를 읽는다
흰 나비들
날아다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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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댐, 수몰지구를 지나며 3
-박 현 덕
햇살 잘게 부서진 날 친구들과 천렵 간다 도로변 나무들이 푸른 땀방울 훔치며 바람에 몸을 일으켜 재잘재잘 손 흔든다
주암호 상류에서 투망 던져 올리면 빠가사리 모래무지가 뛰쳐나가려 발버둥친다 저들도 보름달 같은 추억을 꿈꾸겠지
저녁노을에 불타는 숙부네 집에 갔다 살림때가 잔뜩 묻어 있는 그릇이며 장독대 이제는 흙무덤 되어 풀을 키워 가고 있다
마음처럼 무너져 내린 지붕 위 올라서서 수장된 마을 풍경을 하나하나 들춘다 지붕은 공중정원이다 온갖 풀꽃 무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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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박 현 덕
파프리카 유리온실에서 노동을 마친 아낙
풀빛 물든 방죽길 나귀처럼 휘청휘청
후두둑 국숫발 같은 빗줄기에 노래 부른다
술빵으로 부풀어 오른 마을의 불빛들이
마파람 불 때마다 음계 밟아 출렁인다
더 깊은 음악에 취해 활활 타는 소리로
붉게 녹슨 대문 옆 졸고 있는 늙은 개
몸빼 걸친 아낙이 히죽히죽 웃고 간다
이 봄날 목련꽃은 지지만 하늘아 훨훨 웃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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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리 詩篇 1
-박 현 덕
송정리역 앞 1003번지
맨몸으로 버티는
방직공장
그만 둔
스물넷
언니가 산다
밤마다
환장하게 피어
쪽방 밝힐
자궁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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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리 詩篇 10
-박 현 덕
식칼 같은
비가 오네
가슴 한 쪽 오려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크렁크렁 속으로 울며
저 쪽방
구석에 앉아
엘레지의 여왕 부르네
*엘레지의 여왕 ; 가수 이미자가 부른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