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의 대화 1편
이현주(42)씨는 한약사입니다. 한약사는 한약과 한약재를 다루는 전문 의료인으로 한약의 연구·개발, 조제, 투약, 판매 등을 주로 합니다. 그가 운영하는 인천의 기린한약국에는 보약이나 한방감기약 등을 원하는 이들이 찾습니다.
한약사이지만 이씨는 올바른 식습관 전도사로 이름이 더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2006년 봄부터 한약국에서 달마다 4주 과정으로 먹을거리에 대한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영양학, 식단 짜기, 장보는 법, 식이요법 등이 강의 주제입니다.
인천녹색연합 운영위원이기도 한 그는 2006년 봄부터 그 단체의 채식 소모임 ‘행복한 밥상’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강연 요청도 많아 평균 일주일에 두 번은 강의에 나섭니다. 한약국 운영에 어려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씨는 “한약국 문을 닫는 때가 많아 걱정”이라면서도 “약 대신 올바른 식사법을 알려주고 이를 권하는 것을 보고 믿음이 생겨서 약을 지으러 오시는 분들도 있다”며 웃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매달 마지막날 저녁 한약국에서 음악회도 열고 있다. 좋은 음악과 즐거운 모임은 마음의 건강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고객’ 설득해 ‘빈손’으로 돌려보내기도
이씨는 한약국을 찾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약을 권하지 않습니다. 식습관만 조금 바꾸면 몸이 좋아질 수 있는 이들이 굳이 비싼 돈을 들여 한약을 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객’을 설득해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한약사지만 그에게 약은 보조적인 도구일 뿐입니다. 그는 건강 회복과 유지를 위해서는 보약보다 식이요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상담 시간 가운데 상당 부분을 올바른 식습관을 알려주는 데 할애하는 이유입니다.
이씨가 권하는 식사법은 간단합니다. 제철에 나는 깨끗한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는 것입니다. 깨끗한 음식은 유기농산물, 그 가운데서도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난 농산물입니다. 텃밭에서 자신의 손으로 기른 작물이 최고라고 합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은 백 리 바깥에서 난 음식은 먹지 않았다고 하면서요. 구체적인 식단으로는 현미 잡곡밥과 채소, 해조류 등이 고루 든 균형식을 권합니다. 이씨는 흰쌀이나 흰 밀가루 같은 정제 탄수화물은 금합니다.
“병에 걸렸을 때 가장 부족한 영양소는 단백질과 비타민류입니다.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 고칼로리 음식 대신 통곡류와 신선한 야채, 과일류를 먹고, 감잎차로 비타민C를, 죽염으로 염분과 미네랄 등을 보충하면 좋습니다.”
이씨는 건강식으로 채식을 권합니다. 그는 일본의 니시의학 등 자연의학을 공부하면서 채식이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식사법임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채식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채식을 시작한 뒤 집 바깥은 물론 집 안에도 제가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어요. 밥에다 집에 있는 몇 가지 야채로 대충 끼니를 때우다 보니 몸무게가 4㎏이 줄고 힘도 없어 주위에서 어디 아프냐는 얘기를 들었어요.”
채식과 관련해 영양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습니다. 영양학적으로 균형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지요. 올바른 채식을 한 뒤 다시 몸무게가 제자리로 돌아왔고 피곤한 증세도 사라졌습니다.
이씨는 한약에도 녹용이나 웅담 같은 동물성 약재를 쓰지 않습니다. “상한방이나 동의보감, 방약합편 등의 처방을 보면 동물성 약재를 써서 처방한 것보다 순 식물성 약재만으로 구성한 보약류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했습니다.
채식 주전부리’ 길거리 행사 열기로
그는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성격이나 마음 씀씀이가 질병에 큰 영향을 미침을 알게 됐습니다. 그가 채식을 권하는 것도 채식이 성격을 원만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전통의학 아유르베다에서는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합니다. 병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의 근본은 비폭력을 뜻하는 아힘사입니다.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에서 아힘사가 길러집니다.”
그는 대학 때부터 비폭력 운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87학번으로 386세대인 그는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공부를 했습니다.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적 모순에 눈을 떴지만 학생운동의 투쟁 방법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일, 다른 생명에 폭력을 휘두르는 일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학습’은 하면서 ‘투쟁’에는 참여하지 않는 그에게 동료는 회색분자나 변절자라고 비판했고, 심지어 한 동급생으로부터 뺨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는 비폭력 운동에 마음이 끌려 간디, 크리슈나무르티, 라마나 마하리시, 함석헌 등의 사상을 공부했습니다. 그들의 영향으로 2년 동안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명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건강, 사회 변혁, 채식, 수행 등 그동안 자신의 삶을 둘러쌌던 화두는 하나로 연결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를 최근 펴낸 책 <휴휴선>에 담았습니다. 이씨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면서 홀로 설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다른 이를 치유하는데 관심이 있었음을 기억해 음악치료학과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음악치료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조금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한약사였습니다.
이씨는 최근 재미있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19일 서울대 환경대학원 앞 잔디밭에서 여는 ‘채식 길거리 음식 페스티벌’입니다. 핫바, 닭꼬치, 사모사 등 길거리에서 흔히들 먹는 주전부리를 채식재료로 만들어 시식해보는 행사입니다. 몸에 좋은 간식이 길거리에서 팔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기획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연이며 우리 몸은 자연의 통로입니다.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면 건강은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