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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至尊 닝보방, 중국의 유대인 원저우상인 |
손님을 부모처럼 모시는 상술 낯 두꺼운 배짱이 최대 무기 |
리스크가 비교적 큰 사업을 그들과 같이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그들의 온건한 상술과 듬직한 태도가 리스크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품질경쟁력 저하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산둥상인과 달리 신기술 개발에 재빠른 닝보상인과는 될 수 있으면 장기계약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손님, 원저우 사람이죠? “손님, 손님은 틀림없이 원저우(溫州)사람일 것 같군요.” 상하이의 재래시장에서 필자가 좀 부티 나는 옷차림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가격을 악착같이 깎으려들라치면 으레 듣던 소리다. 그럴 때마다 “허허허” 너털웃음으로 응수하곤 했지만 속으로는 ‘한국토종인 날보고 원저우 사람이라니…대관절 원저우가 어디기에?’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필자는 실제 원저우에 가보았다. 한번은 봄, 또 한번은 가을이었다. 봄에는 새하얀 귤꽃이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가을에는 알맞게 익은 황금빛 감귤이 운치를 더하며 나그네를 맞아주었다. 현지를 가보고서야 필자는 ‘이곳 저장성의 원저우는 바로 우리나라 제주도 감귤의 주품종인 온주밀감의 원산지’임을 생각해냈다. 매년 11월 원저우 북쪽의 황옌(黃岩)에서는 ‘국제감귤축제’가 열린다. 기후가 온화하고 토양이 비옥한 저장성은 복숭아와 감귤의 명산지다. 복숭아는 닝보에서, 감귤은 원저우에서 난다. 그런데 상술이 뛰어나기로 중국에서 쌍벽을 이루는 이 두 곳 상인의 기질과 상술이 어찌 그리 각각 탐스런 복숭아와 싱그런 감귤을 닮았는지…. 원저우상인은 감귤처럼 달콤새콤한 화술을 구사하며 감귤나무처럼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그들은 어떤 환경에도 재빨리 순응한다. 닝보상인에 비해 덜렁거리는 편이며 신경이 예민하지 않고 너글너글한 낙천가가 많다. 매사 샛노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감귤처럼 둥글둥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지라 별로 걱정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며 현실적 감각이 뛰어나고 앞에 나서길 좋아한다. 한마디로 정열적으로 일하는, 감귤빛처럼 선명한 기질을 지녔다. 유연하고 즙이 많은 감귤의 과육같이 적극적이며 능란한 사교술로 여기저기를 누빈다. 그러나 웃음 띤 그들의 얼굴은 감귤 겉껍질만큼 두껍고, 배짱은 감귤 속껍질처럼 두둑하다. 이런 기질을 지닌 사람은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는 게 가장 적당할까? 물론 장사가 제일이지만 장사 중에서도 세일즈맨이 안성맞춤이라 하겠다. 실제로 원저우상인은 천하 제일의 세일즈맨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은 밝은 성격과 매끄러운 화술로 사람을 끌어당겨서 자신의 페이스로 이끄는 데 능숙하다. 협상에 실패해도 ‘내일이 있다’며 곧 재기하는 배짱도 있다. 원저우상인은 꿋꿋하게 물류매매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며 강인한 상인정신의 숨결을 퍼뜨린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매개하고 천하의 공간적 장벽을 무너뜨리며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중간상을 자처한다. 그들은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돈을 주울 수 없다” “노력한 만큼 번다”는 중국 전통의 상술기본에 충실하다. 또 무자본으로 고수익을 얻는 무점포 사업의 전형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용기와 배짱, 은근과 끈기로 사업을 수행하는 그들에게 상인정신은 그렇게 살아 숨쉰다. 140만 세일즈맨 군단 보따리장사로는 원저우상인을 당할 재간이 없다. 원저우상인은 개미군단이다. 1980년대 중국을 풍미했던 원저우식 장사는 한마디로 인해전술이었다. 원저우 세일즈맨 군단은 지금도 중국에 약 100만명, 해외에 40여만명이 활약중이다. 영리하고 재치가 넘치는 저장상인 중에서도 무엇을 하든 활력과 웃음이 넘치고 일을 잘 벌이고 잘 수습하며 말이나 행동이 소탈하면서도 강인하고 좀처럼 실망하지 않는 원저우상인. 그들은 개혁개방 이후 무리를 지어 전국 방방곡곡을 휩쓸고 다녔다. 그러나 그들은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가 아니었다. 부자가 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철 같은 신념을 품은 상업 게릴라였다. 원저우상인은 대개 소량 다품종을 취급하며 한번 박으면 절대 빼지 않는 임전불퇴와 적은 이윤으로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을 구사한다. 특기할 것은 영업사원은 아무리 말단 신참이라도 부사장급 이상이라는 점. 원저우의 한 유통회사는 사장 1명에 부사장 2000여명, 평사원은 0명이다. 그 회사 모 부사장 말은 이렇다. “엄밀히 말해 사장 한 명 외에는 전부 사원 아닙니까. 물건 파는 데 무슨 계장, 과장, 부장 따위의 중간계층이 필요합니까. 외지에 나가 부사장 명함 내밀어보세요. 알아주니 기분이 좋아지죠.” 원저우의 세일즈맨은 한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2개 이상 회사에서 일한다. 즉 그들은 독립적·전문적으로 판매만 하는 사회집단이다. 수입은 기업이 주는 월급이나 보너스가 아니다. 상품을 판 총액에서 일정 비율을 떼낸 공제금, 즉 상품판매에 따른 커미션이 전부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중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 각자가 수많은 원저우의 상품을 전시하고 소개하는 움직이는 상점인 것이다. 무자본, 무설비, 무자산의 그 ‘뻔뻔스러운 중간상’의 무기는 입 하나와 발 두 개가 전부다. 원저우상인은 일천 봉우리의 산을 넘고 일만 갈래의 물줄기를 건넌다. 물건을 팔기 위해 천만 마디의 말도 마다하지 않는다. 저지대의 온화한 기후에서 나고 자랐지만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티베트의 라싸(해발 4000여m)에도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게 원저우상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