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복이 되는 헌신
본문 출애굽기 32:25-29
노조미교회를 30년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년 전 노조미교회 헌당 예배에서 설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수양회를 통해서 다시 뵐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그간 교회를 섬겨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은 <복이 되는 헌신>에 대해서입니다. 우리가 기왕 헌신할 바에 복이 되는 헌신을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헌신하면 복이 되는 헌신이 될 수 있을까요? 레위 지파의 헌신에서 복이 되는 헌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복이 되는 헌신은 자발적인 헌신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머문 사이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사건을 배경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분노했고 악을 행한 자들을 처벌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26절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지파 자손들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모세는 특정 지파를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다른 지파는 침묵하는데, 레위 지파만 자발적으로 모세의 부름에 응답하여 나왔습니다. 여호와의 편이 되기로 했습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 복 받을 헌신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하는 헌신도 귀합니다. 때론 어쩔 수 없이 하는 헌신도 유익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더 좋은 헌신은 자발적인 헌신입니다. 레위 지파는 모세의 외침을 듣고 자원하여 여호와의 편이 되었고, 헌신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헌신은 언제나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 주신 고난의 잔을 자원함으로 마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자발적으로 담당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교회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헌신할 때 즐거움과 자원하므로 해야 합니다.
제가 은퇴하고 출석하는 교회 담임목사님이 사임하고 8개월 정도 목사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누가 지시하는 사람도 없지만, 4개의 찬양팀을 만들어 헌신했고, 주보 만드는 팀, 주방 봉사하는 팀, 전기와 시설을 담당하는 팀, 데코레이션 팀, 안내팀, 예배를 돕는 팀을 자발적으로 꾸려 헌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임시 설교자였는데, 자원하여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도 그 모습을 보시며 웃으시며, 복 주실 마음을 품으셨을 것입니다. 노조미교회 성도님들도 자원하는 헌신으로 복 받을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복이 되는 헌신은 인정에 매이지 않는 헌신입니다
레위 지파는 인정에 매이지 않고 불의를 행한 자들을 벌하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본문 27~29절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심지어 악을 행한 벌하되 자기의 아들과 형제까지 죽입니다. 오늘의 세계에서는 허용되는 일이 아니지만, 신정국가였던 이스라엘에서는 공동체의 거룩을 보존하기 위해 악한 자들을 죽이는 일이 허용되었습니다. 이렇게 함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실천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가까운 이웃, 친구, 형제, 아들을 벌하거나 죽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인정에 끌리어 묵인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도 한때 인정에 매달렸던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자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고 막아섰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인정에 끌리지 않고 ‘사단아 물러가라’며 베드로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아브라함도 인정에 매였다면 이삭을 드리지 못했을 것이고, 하늘 아버지께서도 인정에 매이셨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40대 아들이 늙은 어머니에게 교회 가기가 싫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적어 썰렁하고, 안내위원들은 화난 사람처럼 인상이 나쁘고, 장로님 기도는 길어서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썰렁한데 너까지 빠지면 얼마나 더 썰렁하겠느냐? 교회란 사람보고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만 보고 가는 거란다.” 그렇습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 보고 교회에 오거나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에 끌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매여 헌신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 복이 되는 헌신은 하나님께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본래 레위 지파는 저주받을 자들입니다. 창 34장에서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으면 통혼하겠다고 약속하고 할례를 받게 한 후 삼 일째 되는 날, 세겜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가축과 재물을 빼앗고 그들의 자녀와 아내를 사로잡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아버지 야곱은 레위에게 저주가 담긴 예언을 합니다. 창49:5-7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야곱의 유언대로라면 레위는 저주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주 대신에 복을 받게 되었을까요? 레위 지파는 모세의 명령을 따라 악을 행한 형제와 아들까지 죽였던 일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악을 척결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헌신으로 여겨주셨습니다. 29절을 다시 읽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하나님께서 그의 헌신을 받아주셨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복 받을 헌신으로 여겨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레위 지파는 성전 봉사자가 되고, 제사장의 직을 잇는 명문 가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저주 아래에 있던 레위 지파가 복을 받게 된 원인이 또 있습니다. 장차 이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담당해 주실 혜택을 미리 받음 때문입니다. 성경은 가인과 에서의 후예들,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 올 거라고 예언했습니다. 과연 메시아가 오시니 저주 아래 있던 자들에게 구원과 생명의 복을 누릴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더 나아가 아들과 형제를 죽이는 레위 지파의 헌신 속에는 장차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실 하나님의 헌신을 어렴풋이 보여줍니다. 레위 지파의 헌신을 세상 구원의 예표적인 일로 삼으셨습니다. 저주 아래 있던 레위 지파의 복은 순전히 하나님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 역시 저주받을 자였지만, 예수께서 저주를 감당해 주시므로 우리에게 복이 임하였습니다. 우리의 헌신도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헌신이 아무리 작아도 예수의 이름으로 보시고 받아주시니 의미가 있고,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의 섬김과 수고가 작지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복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향기로운 제물로 여겨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연관한 일이면 물 한 그릇 떠주는 일까지 복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신자들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짐을 감사하며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레위 지파의 헌신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헌신 때문에 저주가 떠나고 대신 복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헌신하고, 인정에 매이지 않는 헌신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받은 복을 더욱 복되게 하는 헌신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