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변함 없이 적곡 마로가 회원 여러분께 인사올립니다.
제가 무휼의 성장 과정이라고 임의로 제목을 붙였는데 이것은 그 당시 법적(!) 연령으로 성년이 됨과 동시에 제왕이 되는 15세까지의 무휼을 살펴보려는 염두에서 쓴 글입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다시 진행해보도록 하지요.
유리왕 28년이자 무휼이 6살이었던 해가 지나가고 서기 10년이자 유리왕 29년인 해가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무휼이 7살이 된 이 해에 특이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29년 여름 6월, 모천에서 검은 개구리와 붉은 개구리가 떼지어 싸우다가, 검은 개구리가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二十九年, 夏六月, <矛川>上有黑蛙與赤蛙群鬪, 黑蛙不勝, 死).
(이러한 현상을 보고) 해설하는 사람이 말했다.(議者曰:)
"검은 것은 북방의 색깔이니, 북부여가 파멸될 징조이다." "黑, 北方之色, <北扶餘>破滅之徵也.").
가을 7월, 두곡에 이궁을 지었다(秋七月, 作離宮於<豆谷>).『삼국사기』「유리명왕 본기」
이 기록은 사람들에 따라 논란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후대에 고구려 역사가가 삽입한 글이라고 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부여에 대한 유리명왕의 흑색선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이궁에 관한 기사입니다. 이궁은 제왕이 쉬거나 혹은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필요할 때 옮겨갈 수 있는 궁궐을 말합니다.
고구려의 나라 형편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도 임시 궁궐을 만들 정도의 여력은 있다는 말이 되지요.
무휼이 큰 소리 빵빵 쳤을 때 대소 왕이 당장 쳐들어오지는 않을 것을 고구려 측이 알았다는 한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때 무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지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훗날의 일로 미루어 생각하건대 부여와의 전쟁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준비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뿐입니다.
실제로 무휼이 사건을 일으킨 지 4년 후에 부여가 남하해옵니다. 햇수로도 만 4년이 되는 겨울 음력 11월에 말이지요.
4년이 지났다고 해보아야 무휼은 고작 10세입니다. 드라마라면 벌써 3회가 되는 세월이지만 원작 속의 어린이 무휼이 일찍부터 '고뇌'하는 캐릭이라면 드라마의 무휼은 비교적 속 편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셈이지요.
전쟁 준비 기간으로 4년은 그다지 긴 세월은 아닙니다. 물론 실질적인 밑 준비는 유리명왕이 했겠지만 무휼이라고 손 놓고 기다렸을 리는 만무하지요.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무휼이 10세의 나이로 군사 지휘가 가능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구려라는 나라의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구려가 어떤 문명에 속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역사문화연구소의 김용만 소장님 표현을 빌리자면 고구려는 '정착형 기마문명'이라고 하지요. 즉 농경 문명과 유목 문화를 겸비한 나라라는 말이 됩니다.
이 중 유목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유목 문화의 특징은 어린이의 숙성도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광개토태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 시절 모용씨 선비족이 세운 전연이라는 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할 때 선봉에 섰던 장수 이름이 모용 패인데 선봉장이 된 나이가 불과 12세였습니다.
(여담으로 사실 모용 패는 '막장사신기'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어야 할 인물이었지만 김종학 프로덕션은 그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역사의식이 없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부분이지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선비족은 유목 종족이었습니다. 이런 어린이가 천하를 놀라게 했던 것이지요.
그러면 고구려는 유목 문화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가?
정답은 Yes입니다. 세종대 주채혁 교수님이라는 분에 의하면 (고)조선·고구려는 순록유목 생태생업문화권 소산이니까요.
말이 어려운데 간단하게 말해 고구려는 유목 국가의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냥 등을 통해 생업을 해결하는 동시에 군사력을 기르는 체제가 있다는 말이지요.
2007 12/18일자 경향닷컴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은 주채혁 교수님의 학설이 있습니다.
"단군조선의 단(檀)이 수달과 산달, 곧 예와 맥이 통합된 예맥국일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우리가 알던 '단'이 그저 박달나무의 뜻만이 아니라 수달과 산달이라는 짐승을 표기하는 몽골어의 줄임말이라는 주장이지요. 참고로 산달, 즉 너구리는 맥이라고 하는데 드라마 연개소문 시대의 유목 제국인 돌궐이 고구려를 뵈클리, 즉 맥구려라 부른 것을 보면 고구려가 너구리 혹은 너구리 사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일지 모르지만 흘려듣기에는 의미가 심장한 표현입니다.
(구체적으로 찾고 싶은 분들을 위해 경향 닷컴 사이트 주소를 남깁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16281&pt=nv)
여하간 고구려가 유목 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불과 10세의 무휼이라 해도 군사 지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겠지요. 거기에 타고난 영특함까지 더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떻든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부여군이 움직이는가… 했더니 의외의 세력이 먼저 고구려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이로 인해 무휼은 원작『바람의 나라』에서이기는 하지만 크나큰 결심 하나를 하게 됩니다.
대체 그 세력은 무엇이며 무휼은 무슨 까닭으로 크나큰 결심을 원작에서까지 나타냈던 것일까요?
다음 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무단도용본부 카페에서 적곡 마로가 썼습니다.
첫댓글 수고하십니다. 설명이 잘 되어있는글이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다음편도 기대되요~^^
시유님과 jekyll-h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면서도 자꾸 곁길로 새나가는 습성이 있는데 두 분처럼 읽어주시고 또 지켜봐주시는 회원분들이 있어서 든든하고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방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