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福34山友會 는개 속에 光敎山 兄弟峰을 오르다
2016.04.03 (일) 경복34산우회는 4월 나들이산행으로 경기 龍仁-水原에 걸쳐 있는 光敎山
兄弟峰을 등산하였다.
산우회원 15명은 10:30 龍仁市 水枝區에 있는 전철 신분당선 星福驛에 집결하여 枝福會 5명과
합류하여 上峴洞-능선-매봉약수터-버들치고개-천년약수터-형제봉-양지재-계곡-新鳳洞 코스로
산행하는데 4시간이 걸렸다.
수원지역 날씨는 흐리고 최저기온 9.1℃, 낮 최고기온 14.0℃로 산행하기 좋은 날씨였으나
는개(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가 계속 내렸다.
코스는 조금 길었으나 형제봉 정상부를 제외하고는 경사가 완만하고 바닥도 부드러워 몸에
부담이 적었으며, 水枝지역 동문회원들의 모임인 枝福會에서 新鳳洞에 있는
<궁중 참숯가마구이>에서 飯酒를 곁들인 오리고기로 푸짐하게 제공하여 더욱 즐겁게 해주어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光敎山 -해발 583m-
광교산은 <山經表>에 韓半島 13正脈의 하나로 白頭大幹 俗離山 天王峰에서 서북으로 뻗어
충청북도 북부 내륙을 동서로 가르는 漢南錦北正脈이 끝나는 경기도 安城 七長山에서
錦北正脈과 갈라져 다시 서북쪽으로 金浦 文殊山에 이르는 漢南正脈의 산으로 북서쪽으로는
白雲山-修理山-桂陽山-文殊山으로 이어진다.
水原市 長安區와 龍仁市 水枝區에 걸쳐 있는 光敎山은 수원의 鎭山으로 본래는 光嶽山이었으나
928년 王建이 後百濟의 甄萱을 평정한 뒤 이 산의 行宮에 머물면서 군사들을 위로하고 있을 때
산 정상에서 광채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부처가 가르침을 내리는 산"이라 하여 '光敎'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龍仁郡地圖邑誌>(1899년 발간)에는 '瑞峯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해발고도는 높지 않으나 주위에 큰 산이 없고 평야지대에 있어 인근의 白雲山과 함께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며 능선이 비교적 완만하면서 사방으로 수목이 우거져 있으며, 겨울철의 雪景도
빼어나 이를 '光敎積雪'이라고 하며 水原八景과 龍仁八景의 하나로 꼽고 있다.
광교산은 戰跡地로 壬辰倭亂 때인 1592년 6월 李洸∙李詩之가 이끄는 三南 勤王兵 5만명이
倭軍과 전투(龍仁戰鬪)를 벌였으나 敗하였고, 丙子胡亂 때인 1637년 1월 초 金俊龍이
광교산에서 크게 승리하여 淸 太宗의 사위 楊古利를 射殺하고 적군을 격퇴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산의 남동쪽 상황골에 瑞峰寺 터와 龍仁 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보물 제9호)가 있으며,
예로부터 광교산에는 서봉사∙ 彰聖寺∙觀音寺를 비롯하여 89군데의 寺庵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예로부터 ‘生居鎭川 死去龍仁’이라고 해서 용인에는 士大夫들의 墓地가 많이 있는 곳이다.
사진을 2회로 나누어 올린다.
光敎山 兄弟峰, 는개 속에 오르다(2-1); 성복역-버들치고개-형제봉
光敎山 兄弟峰, 는개 속에 오르다(2-2); 형제봉 정상-양지재-新鳳洞
2016.04.05 孤 山 朴 春 慶
光敎山 兄弟峰, 는개 속에 오르다(2-1); 성복역-버들치고개-형제봉
(01) 신분당선 星福驛을 떠난다.
(02) 성복역 4번출구
(03) 龍仁市 水枝區 上峴洞에서 光敎山 兄弟峰으로 가는 길, 맨 끝 쪽에는 매봉초등학교가 있다.
(04) 상현동 深谷마을 힐스테이트 아파트를 왼쪽으로 보며….
(05) 들머리에서 스틱 등 등산장비를 가다듬는다.
(06) 능선에 올라 왼쪽 매봉약수터로 향한다.
(07) 안내하는 枝福會 회원(맨 왼쪽)
(08) 文貞公 趙光祖 墓 갈림길
[←조광조 선생묘 1.3 km/심곡서원 1.6 km, →형제봉 4.2 km/손골성지 8.5 km,
↓석성산 20km, ←산너울1길→]
*文貞公 趙光祖 墓 및 神道碑 -경기도 기념물 제169호-
조선 中宗 때 士林派의 巨頭로 勳舊 政治의 개혁을 급격하게 추진하다 勳舊派의 강한
반발을 사게 되어 ‘走肖爲王’ 모략사건 등 己卯士禍로 賜死되었으며, 宣祖 때 伸寃되어
文貞公으로 追贈된 靜庵 趙光祖의 묘로 貞敬夫人으로 追贈된 夫人 李氏와 合葬墓이며,
上峴洞 漢陽 趙氏 墓域에 있다. (* 寃: 원통할 원)
宣祖 18년(1585)에 건립된 높이 311cm의 神道碑 앞면에는
<文貞公 靜庵 趙先生 神道碑銘>이라고 陰刻하였다.
(09) 왼쪽에 軍 射擊場을 끼고 능선길을 걷는다.
(10) 심곡서원 갈림길
*龍仁 深谷書院 -사적 제530호-
용인시 水枝區 上峴洞 <文貞公 趙光祖 墓 및 神道碑> 인근에 있는 深谷書院은 中宗 때
士林派의 領袖였던 靜庵 趙光祖(1482~1519년)의 位牌를 모신 서원으로 조선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前學後廟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龍仁에서는 書院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財力이 넉넉하지 못하여 慕賢面의
圃隱 鄭夢周를 配享한 忠烈書院(경기유형문화재 제9호)에 入享하였다가 孝宗 1년(1650)
서원이 설립되면서 위패를 옮겨왔으며 ‘深谷’이라는 賜額을 받았다.
1871년 興宣大院君의 書院撤廢令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의 하나로 1972년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1월 사적 제530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11) 사격장 철책을 따라….
(12) 매봉약수 쉼터
[↑천년약수터 2.4 km, ↓심곡서원 2.4 km, →경남아너스빌 1차 0.4km]
(13) 매봉약수터
(14) 매봉약수 쉼터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15) 매봉약수 쉼터를 떠난다.
(16) <수원둘레길> 標識板
수원둘레길은 <水原八色길>의 ‘六色길’이다.
(17) 버들치고개로 내려선다.
(18) 버들치고개
새말, 안말 북쪽에 있는 고개로 수원시와 용인시의 경계이다. 옛날 이 고개 양쪽은 늪지대로
버들이 무성하여 키나 고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버들을 많이 채취하여
‘버들치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 <수원팔색길> 안내판
水原八色길은 水原이 지닌 ‘八達山’, 교통이 편리한 ‘四通八達’ 등 ‘八’의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 수원 곳곳을 연결하여 수원의 歷史∙文化∙自然을 느낄 수 있는 거리를 만들었다.
水原一色/모수길; 수원시민과 가까이에서 함께 하는 都心 속 생명의 길
水原二色/지게길; 광교저수지의 수려한 자연풍경을 연결하는 수원의 대표적인 풍경 길
水原三色/매실길; 자연하천과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生態自然 길
水原四色/여우길; 광교저수지와 원천저수지를 연결한 녹음이 푸르른 길
水原五色/도란길; 靈通 新市街地 메타세콰이어 길을 연결한 綠陰이 풍부한 가로수 길
水原六色/수원둘레길; 수원시와 타 지역과 경계가 되는 길로 녹음이 풍부한 길
水原七色/효행길; 正祖가 부친 莊祖(思悼世子)의 陵 顯隆園을 참배할 때 왕래하던 길
水原八色/화성성곽길; 자랑스러운 水原 華城을 거니는 歷史∙史蹟 길
(20) 버들치에서 천년약수터로 향한다.
[↑천년약수터 1.8 km, ←경기대학교, →경남아너스빌 2차 0.4 km, ↓심곡서원 2.9km]
(21) 수원둘레길에 활짝 핀 진달래꽃
(22) 수원둘레길, 경사도 완만하고 바닥도 부드러워 걷기 좋은 길이다.
(23) 高壓送電塔
(24) 고압송전탑 뒤로 보이는 용인-서울고속도로 길마재터널
(25) 걷기 좋은 숲길에는 야자섬유매트까지 깔려 있다.
(26) 여기도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27) 수원시-용인시 경계인 수원둘레길을 따라….
(28) <수원시-용인시 경계>표목
(29) 행정구역 변천 내역(二儀洞, 下洞)
水原市 靈通區 二儀洞은 法定洞으로, 관할 行政洞은 광교1동이다.
문화재로는 沈溫 先生墓(경기기념물 53)가 있는데 심온은 世宗의
丈人(府院君)으로, 1418년 誣告로 수원에서 賜死된 뒤 이곳 山儀室마을에
안장되었다.
日帝强占期에 일본인들이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임금이 두 번 다녀갔다는
史籍에 따라 마을 이름을 二儀里로 했다는 설도 있다.
(30) 천년약수터 위에서 지복회 B팀을 만난다.
(31) 천년약수터 위에서 지복회 B팀을 만나 잠시 환담
[↑버들치고개 1.2 km /심곡서원 4.4 km, ↓형제봉 2.1 km, ←손골성지 5.5km]
(32) 천년약수터
수백 년 전부터 샘물이 地表로 湧出하여 주민들이 애용하였으며 광교산 약수터 중에서
水質이 가장 우수하다고 한다.
*천년약수터의 柱聯
千年藥水林間鳥(천년약수임간조) / 산중의 좋은 친구는 숲 속의 새요
世外淸音石上泉(세외청음석상천) /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리는 돌 위에 흐르는 물소리다.
(33) 용인시의 설치한 기구, 시간과 기온은 물론 體重까지 잴 수 있다.
(34) 천년약수터에서 間食
(35) 천년약수터에서 간식
(36) 천년약수터를 뒤로 보며 형제보봉으로 떠난다.
(37) 는개 속에 형제봉으로….
(38) 광교산의 소나무는 거의 리기다소나무이다.
*리기다소나무(Pitch Pine); 북아메리카 原産의 常綠 바늘잎 큰키나무로 耐乾性이 강하고
병충해가 적어 우리나라처럼 척박한 산지에 적합한 조림수종이다. 그러나 목재의 才質이
나쁘고 송진이 많이 나오며 옹이가 많아 펄프로서도 적당하지 않아 쓰임새가 적으나 松蟲의
피해에 강하고 어디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과거 造林에 사용하였지만 현재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39) 여기에도 移動賣店이 있네.
(40) 二儀洞 갈림길
(41) <이의동 갈림길> 標木
(42) 내리막 계단
(43) 枝福會 가이드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고 주변 상황까지 설명해주었다.
(44) 는개가 내려 자켓 후드를 뒤집어 썼다.
(45) 6∙25전쟁 無名勇士 遺骸와 遺物 발견지 표석 -2015.06.01 제막-
광교산 유해발굴지는 6∙25전쟁 때인 1951년 1월 30일부터 2월10일까지 國軍 제1사단과
美 제25사단, 터키 여단 1개 대대가 칠보산~광교산~관악산을 연결해 전투를 했던 역사적인
장소로, 2009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국군 戰死者 遺骸 5具, 사진 및 수첩 등 遺品 111점을 발굴한 곳이다.
(46) 야자섬유매트가 깔린 수원둘레길
(47) 광교산 철쭉군락지 안내판
(48) 親 環境工法으로 산림生態를 복원한 지역
(49) 백년수 정상
(50) 형제봉을 향하여
-光敎山 兄弟峰, 는개 속에 오르다(2-2); 형제봉 정상-양지재-신봉동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