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45 39회 토막 동영상인 이 동영상 첫 장면에 운혁(이강국)이 1947년 5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에 참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그때 운혁은 운혁(이강국)이 북한 외무상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1946년 봄의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9월 월북한 이래 그는 범죄자 신분이었다.
그는 북한 외무상이었기에 남한 대표가 될 수 없었으며,
더구나 미군정 검거령이 내려진 범죄자 신분이기에 미소공동위원회 참여가 불가능하였다.
그럼에도 운혁(이강국)이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에 참석하는 컷을 내보낸 후 바로 이어
다큐멘터티를 보내니 시청자들은 전부가 역사적인 사실인 것으로 혼동하게 된다.
그런데, 드라마 서울 1945 39회를 전부 다시보기하면
동우의 행방불명된 1년의 사랑과 더불어 1년의 역사적 공백이 드러난다.
드라마가 30회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김구 선생 이야기며, 북한의 우파 조만식 선생 이야기도 보여달라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1946년과 1947년이 드라마에서 너무 빠르게 지나가 뭔가 허전한 느낌을 시청자들은 받았을 것이다.
그 이유를 동우와 해경과 운혁의 행방불명된 1년의 사랑 이야기에서 찾아보라.
동우의 사랑 고백이며, 해경네와 운혁네의 상견례가 모두 1946년 5월 1차미소공동위원회 당시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1년이 바로 어제였다는 듯이 동우가 해경에게 미안함을 표현하고, 운혁에게 사과하던 때가
1947년 5월 2차미소공동위원회 당시 있었던 일로 방영된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는 귀중한 영상 사료에 KBS 드라마 작가의 왜곡된 해설이 오염되어 있음을 본다.
두어가지 예를 들어보자:
1. 미군정이 조선공산당을 탄압한 것이 아니라, 여운형을 지지하여 주었다. 박헌영은 정판사 사건 당시
위조지폐를 찍었으므로 원칙적으로 정치 활동을 해서는 안되는 인물이었음에도 국제회의에 정당 대표로 참석하여 발언권을 가지게 하였다는 것은 미군정이 최대한으로 양보하였음을 의미한다.
2. "미소냉전이 격화됨에 따라" 등의 표현은 드라마 작가가 역사를 모르는 표현이다. 1947년에 미소냉전이 없었다. 본래 "미소냉전"이란 표현은 없고, "냉전"(The Cold War)라는 표현이 있는데, 1950년 10월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참전함으로 그때부터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의 군사적 긴장이 전세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의미에서 "냉전"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며, 1947년에 미소냉전은 없었다.
# KBS 드라마 제작진의 이런 나레이션 오류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한미연합사 해체는 유엔사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요, 유엔사 해체는 휴전 문서의 효력 상실로 한국전쟁 진행형을 초래하게 된다. 그런데, 한미연합사 해체는 북한이 다시 남침해도 미군이 한반도에 전투병을 보내지 않을 것을 의미하므로 민족의 생존권이 크게 위협 받게 된다. 사실 전시작전통제권이 한미 양국이 공동 소유하였던 것이요, 북한이 남침할 때만 발효되는 것이지 평소에는 그 어느 나라도 소유하는 것이 아님에도 노무현이 사기쳤을 때 공영방송 드라마 서울 1945 나레이션이 "아직도 작전권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라고 사기침으로 결국 노무현이 일을 저지르고 말게 되었으니 나레이션 오류의 책임이 큰 것이다.
95. 프랜세스카 영부인 비망록 / 난민들 영양실조로 쓰러질때 국회에선 의원들 세비인상 만장일치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