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경을 들을 수 없는 근기(根機) 4이와 같은 죄인들은 영원히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며
뭇 성인(聖人) 중의 왕인 부처님이 법을 설해 교화할지라도
이와 같은 죄인들은 항상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곳에서 태어나서
미치거나 귀먹거나 하여 마음이 어지러워 영원히 법을 듣지 못하느니라.
그랬습니다.
어제 이야기가 만약에 자신이 병이 날 적에 구해줄 사람이 없고 등등.
이 대승법을 비방하거나 이러한 과보를 받고 그래서
이제 이 법화경과는 인연이 멀다. 그런 뜻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항하강의 모래처럼 수 없는 겁 동안에 날 적마다
귀가 먹고 말 못하는 불구가 되리라.
또 항상 지옥에 있기를 공원에서 놀듯하고
악도에 드나들기를 자기 집 안방처럼 하리라.
진리를 등진 사람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죠.
낙타. 나귀. 돼지. 개가 바로 그 사람이 다닐 곳이리라.
이 경전을 비방한 탓으로 죄를 받는 것이 이와 같으니라.
진리를 등지고 어제 이야기 했죠.
'단념수초 여무소지(但念水草 餘無所知)'
사람으로 살면서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사람 의식주 아니면 사람문제 그저 그것에만 골몰하고
그 외 것은 전혀 생각 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거죠.
만약 사람으로 태어나면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에 가난뱅이 등
이런 못난 것으로 자신을 장엄하리라.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에 가난뱅이 등 이런 못난 것으로
자신을 장엄하리라. 그랬습니다.
이것을 장엄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것도 그 사람 그 나름대로의 장엄이겠죠.
이왕 우리가 장엄을 한다면 아름답게 보이고 멋이게 보이고 근사해 보이고
품위 있고 이런 것으로 장엄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수종다리와 조갈증 버짐 먹고 옴 오르고 연주창과 등창 등.
이와 같은 온갖 병으로 옷을 삼아 입으리라.
이러한 것으로 옷을 삼아 입는다면 그 신세가 어떻겠습니까.
몸에서는 항하 냄새가 나며 때가 많고 부정하며
자기 소견에 집착하여 성내는 일만 더욱 많으리라.
간혹 자기 소견 또 나라고 하는 소견이 이런 표현들을 했는데
너무 자기 고집에 떨어져 있고 자기 아집에 떨어져 있으면 참 정말 제도 불능이죠.
어떻게 할 바가 없습니다.
도대체 남을 배려 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말, 또는 삶을
조금도 참고 할 줄 모르고 오로지 자기 소견에만 집착해서 사는 사람들,
참 아주 어찌하지 못하는 그건 뭐 무성천재다 아니면 제도불능이다,
뭐 이런 표현들을 이렇게 씁니다만, 참 정말 문제죠.
그 아집에 너무 떨어져 있는 자기 소견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피해가 아주 많아요.
자기혼자만 어떻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옆에 사람까지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래서 간혹 표현을 섞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견에 집착하여 성내는 일만 더욱 많고,
자기 생각하고 다르면 무조건 성내버리는 그런 사람...
스스로 무진 애를 쓰고 독한 마음을 먹었을 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만
어느 정도의 변화가 가능합니다.
같이 산다고 해서 내 가족이 라고 해서 내 자식이 라고 해서 내 부모라고 해서
나하고 가장 인연이 깊은 사람이 라고 해서 너는 이렇게 변해야 돼,
이렇게 희망 하고 바라고 권유해 가지고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그냥 그대로 봐주는 거죠.
봐주는 그대로 이해 해주고 봐주는 훈련을 스스로 할 뿐입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이 없어요.
배나무와 감나무의 차이점 일뿐입니다.
배나무엔 배가 달리고 감나무엔 감이 열리고 사과나무엔 사과가 달리는 것,
그것은 각각 다르니까 다른 과일이 열리는 구나
이렇게 봐도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그러니까 자기소견에 집착하여 성내는 일만 더욱 많으리라.
그러니까 자기 생각하고 다르다고 화를 내는 것은
상대가 자기와 같아지지 않는다는 데서 일어나는 일들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르니까 내가 저 사람과 다르고 저 사람은 나와 다르고
그러니까 다른데서 거기서 어떤 조화를 찾아야지
다른 것을 같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어리석은 거죠.
그저 이해 해주려고 남을 배려 해주고 이해 해주고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 해주고 사는 이것이 열쇠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그것입니다.
음탕한 마음만 치성하여 새나 짐승도 가리지 않으리니
이 경전을 비방한 탓으로 죄의 과보를 받는 것이 이와 같으리라.
이렇게 좋은 가르침이 존재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부처님의 생각을 우리가 참고 할 수 있는 거죠.
부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어떤 삶을 우리가 참고 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경전이 없다면 우리가 그 깨달은 분들의 생각과
깨달은 분들의 인생을 어떻게 우리가 참고 하겠습니까.
그걸 우리가 원용하려고 해도 도저히 원용할 길이 없죠.
그런데 다행히 이런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것을 원용해서 참고로 삼고
이들은 이렇게 인생을 생각 했구나, 그래서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구나, 이렇게 우리가 내 삶에 비추어서
참고 해볼 수 있으니 참 큰 다행인거죠.
여기서 "이 경전을 비방한 탓으로..."
전혀 깨달은 사람들의 또는 다른 사람들 의견을 참고 해보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죠.
죄의 과보를 받는 것이 이와 같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