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11/08 22
영광의 탈출
원제 : Exodus
1960년 미국영화
감독 : 오토 프레밍거
원작 : 레온 유리스
음악 : 어네스트 골드
출연 : 폴 뉴만, 에바 마리 세인트, 랄프 리차드슨
피터 로포드, 질 하워드, 살 미네오
리 J 콥, 존 데릭, 휴 그리피스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골든 글러브 남우조연상 수상(살 미네오)
1960년에 제작된 3시간이 넘는 대작 '영광의 탈출'은 이스라엘의 건국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역사적 영화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영화의 내용보다 '영화음악'이 더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네스트
골드가 작곡한 웅장한 영화음악은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였으며 무엇보다 MBC 주말의 명화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으로 오랜 세월 사용되어 무척이나 귀에 익은 음악으로 친숙하게
들려왔습니다. 과거 주말의 명화 향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특히나 익숙한 음악일
것입니다.
'로라' '살인의 해부' '슬픔이여 안녕' 등 많은 영화를 감독한 오토 프레밍거 감독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웅장한 영화음악
폴 뉴만, 에바 마리 세인트, 랄프 리차드슨, 살 미네오, 리 J 콥, 존 데릭 등 명배우들의 출연
거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3시간이 넘는 70밀리 대작
이러한 '그럴듯한 외관'을 가진 이 영화는 5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여질까요?
'알라모'도 그렇지만 이 '영광의 탈출' 역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벤허' '스팔타카스'같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걸작이 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만 일단 '염불보다는 잿밥'이 강했던 성향의 영화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20세기의 중동의 '골치거리'중 하나였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끝없는 대립과 전쟁,
물론 이 원인제공은 '이스라엘'이 하였습니다. 2,000여년전에 패망하여 나라없이 뿔뿔이 흩어진
민족 유태인들은 19세기부터 '시오니즘'이라는 종교적 사상이 바탕이 된 정치운동을 벌이며
조국의 건국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후 '독립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침공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건국의 역사는 참으로 세계 역사에서 보기 드문 '단결력'과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유태인들은 소위 '하느님이 정해준 조상의 땅'을 2,000년만에
되찾기 위해서 속속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게 되고 수십만명의 민족이 모이게 되자 '원주인'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복원하려고 합니다.
키프러스 섬에 찾아온 미국여성 프리몬트 부인(에바 마리 세인트)
그녀의 남편은 팔레스타인 분쟁중 사망하였다.
어둠을 타고 키프러스 섬에 몰래 온 청년 아리(폴 뉴만)
그는 섬에 수용되어 있는 유태인 600명을
팔레스타인으로 탈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카렌(질 하워드)과 도브(살 미네오)
영국군 장교로 변장한 아리
이 논리는 사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황당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만주로 하나 둘씩 이주하여 깃발을 꽂고 '여기는 광개토대왕의 나라
고구려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곳 중국인들을 강제로 몰아내고 '고구려'를 건국한다면 말이
될까요?
세계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러한 황당한 이스라엘의 건국을 용인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야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들이 있을테고 제가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이렇다 저렇다 심도있게
평가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을 비롯한 유엔의 다수의 국가들이 이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압도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년 조금 넘은 세월이 흘러서
나온 '이스라엘 건국 찬양'같은 영화가 바로 이 '영광의 탈출'입니다.
이 영화를 굳이 역사적 왜곡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레온 유리스의 유명한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된
이 영화는 이스라엘 건국과정을 굉장히 자세하고 생생히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 거대한
이야기의 극히 일부분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고 '중립성'이 아닌 이스라엘의 편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2차대전 이후 영국 통치하의 팔레스타인, 영국은 팔레스타인으로 건너오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강제로 체포하여 키프러스 섬에 마련된 '수용소'에 집단으로 수용시킨뒤 다시 돌려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면에는 유태인 그리고 아랍인들 사이에서 줄타기식 약속을 남발한 영국의 미묘한 입장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어둠을 타고 몰래 섬에 잠입한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아리 벤캐넌'(폴 뉴만) 그는 수용소에 머무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 600여명을 팔레스타인으로
빼돌릴 거창한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이름하여 '엑소더스' 성경 출애급기에 나오는 말이며
이들을 탈출시키는 배의 이름이기도 하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유태인을 보면 한눈에 척 알아볼 수 있다고 호언 장담하는
영국장교. 하지만 정작 자기 눈앞에 있는 아리가
장교로 변장한 유태인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어려운 결단을 해야 하는 아리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여성 프리몬트 부인
폴 뉴만 특유의 표정
용감한 유태인 청춘 남녀의 대화를 듣는 아리
사실 이 '엑소더스호 탈출 사건'만 가지고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가 나올 수 있습니다.
키프러스섬에 수용된 수백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켜 엑소더스 호에 빼돌리고 수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통하여 결국 영국의 승인하에 팔레스타인에 입국한 '아리 밴캐넌'의
용맹스런 지도력, '영광의 탈출'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 '엑소더스'라는 이 제목의 의미대로
한다면 이 영화는 '축소판 십계'와 같은 이 키프러스섬 탈출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주축으로 2시간 이하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오히려 흥미진진한 탈출기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미국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려고 했는지 레온 유리스의
장황한 소설을 3시간이 넘는 긴 영화로 할애하고 있습니다. 아리의 통솔과 결단에 따라 아이들의
목숨까지 담보로 한 채 목숨을 건 단식투쟁끝에 팔레스타인 입국에 성공하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불과 영화의 절반도 채 지나기 전에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화'와 '테러' 그리고 남녀 주인공인 폴 뉴만과 에바 마리
세인트와의 로맨스입니다. 흥미로운 1시간이 지나고 다소 진부한 2시간이 기다리는 작품이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소설의 일부만 발췌하여 흥미로운 부분을 부각시켜 영화화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 같고 오히려 이스라엘 건국의 절박함을 수백명의 단식투쟁과 극적인 승리를
통해서 얻는 흥미로운 영화가 될 수 있었을텐데.
네, 결국 이 영화는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 홍보물'이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야만스런 아랍인들에
대항하여 '민족정신'에 의거하여 남녀노소, 아이 할 것 없이 용맹스럽게 단결한 이스라엘 민족은
팔레스타인 정복에 성공하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2,000여년만에 건국하여 '모세와 하느님'의
뜻을 잇는 감격스런 결과를 얻고 있습니다.
영화가 주는 사회적인 효과는 굉장히 큽니다. 거대한 시장을 가진 헐리웃 자본이 대거 투입되고
폴 뉴만 이라는 유명한 배우가 열연한 이 영화는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최고의 홍보물이 되었습니다. 서두에 나열했듯이 영광의 탈출이라는 영화는 외관이 꽤 번지르르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보다는 '이스라엘 건국 홍보'라는 잿밥이 더 강한 작품으로
그 목적에 대한 성과는 꽤 높았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 '고전영화의 가치'로서는 '세기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홍보물에 그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건 단식투쟁끝에 결국 영국군에 의하여
팔레스타인 입국을 승인받은 엑소더스호 승객들
키프러스 섬에서 극적으로 팔레스타인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유태인들, 이른바 '엑소더스'
팔레스타인에서 재회한 카렌과 프리몬트 부인
아리를 점점 이해하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지는
프리몬트 부인
물론 그럼에도 영광의 탈출이라는 이 영화는 장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일단 남녀 주인공인 폴 뉴만과
에바 마리 세인트는 무난한 호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폴 뉴만은 유태인들에게는 급호감의 배우가
되었겠지만(이보다 더한 홍보사절이 있을까요?) 아랍국에는 '입국불가인물'이 되었을 정도로 이 영화의
영향은 컸습니다. 랄프 리차드슨을 비롯한 휴 그리피스, 리 J 콥 등 베테랑 조연배우들도 무난합니다.
십계에서 여호수아로 출연한 존 데릭은 여기서는 폴 뉴만의 어릴적 친구이자 '우호적인 아랍인 '타하'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인 인물은 국제 콘테스트를 통해서 엄선된 14세 소녀 질 하워드와 유태인
테러범으로 출연한 살 미네오입니다. 질 하워드가 연기한 '카렌'은 이 영화의 굉장한 '상징적 인물'입니다.
고아인 유태인 소녀인 카렌은 에바 마리 세인트가 연기한 프리몬트 부인의 눈에 들어서 입양하여 미국에
데려가기로 하지만 그런 행운을 단호히 거부하고 팔레스타인에 들어가서 저항군에 가담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서의 행복이 보장된 삶 대신 죽음을 무릅쓰고 조상의 땅에 들어가 14세의 나이에도
이스라엘 수호를 위해서 한 몸 바치는 카렌, 이 '카렌'의 역할만으로도 이 영화가 주는 의미와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살 미네오가 연기한 도브는 수용소에서 잔혹한 삶을
체험한 상처를 가진 청년으로 이스라엘 저항군중 강경파인 이르군에 합류하여 테러에 앞장서는
인물입니다. 카렌과는 사랑하는 관계로 설정됩니다. 살 미네오는 골든 글러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영광의 탈출은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환호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대신에 카렌과 타하의 죽음을
통하여 마치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모습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한가롭게 박수치는 내용이 아니라
'우린 조국 수호를 위해서 목숨바쳐 끝까지 싸운다'는 결의있는 결말입니다. 씁쓸합니다.
조국을 위해서 희생된 어린 소녀, 우호적인 아랍인으로서 어릴적 친구를 배신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청년, 이 두 인물을 나란히 묻으며 폴 뉴만을 비롯한 유태인들, 그리고 그들의 결의에 찬 조국애에
일찌감치 감복하여 이들과 함께 행동하는 미국여성 에바 마리 세인트를 통해서 '이스라엘 건국 만세'를
외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제 3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 에바 마리 세인트가 주인공급 비중을 가지고 있는 것도
꽤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유태인 사이에서 어정쩡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영국을
조롱하고 당당히 이스라엘 편에 선 미국의 정당함을 에바 마리 세인트가 연기한 프리몬트 부인의
역할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태인 저항군의 과격분자인 이르군에 가입한 도브
유엔의 이스라엘 건국 승인소식에 환호하는 국민들
아버지와 아들로 출연한 리 J 콥과 폴 뉴만
도브와 카렌의 사랑
카렌과 타하의 죽음앞에 결의를 다지는 이스라엘 민족들
영광의 탈출은 유명감독, 유명배우들이 열연했고, 멋드러진 음악과 거대한 제작비가 투입되어
지중해 현지로케를 통한 생생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결국 편향된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를
보여준 목적성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국책 반공영화가 많이 만들어진 시기도 있었지만
실제로 우린 눈앞에서 100만이 사망하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고, 분단의 아픔을 안았습니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편들기와 홍보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광의 탈출은 유명한 영화이며 작심하고 만든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966년 뒤늦게 개봉되었고
이 영화 외에 이스라엘 독립전쟁을 좀 더 적나라하게 다룬 '거대한 전장(Cast a Giant Shadow)'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그 영화에서는 역시 유명스타인 커크 더글러스가 이스라엘 독립전쟁의 영웅인
마커스 대령으로 출연하고 있었고, 존 웨인, 프랭크 시나트라, 율 브리너 등 쟁쟁한 스타들이 함께
출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건국과 관련된 영화는 결국 이 두 편, 영광의 탈출과 거대한 전장이 유명한 작품입니다.
두 편 모두 유명스타가 많이 출연한 화려한 외관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영화에는 영웅같은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 두 편의 영화와는 다르지만 2차대전 당시 유태인을 도운 독일인의 이야기인 '쉰들러 리스트'가
영화적 완성도에서는 훨씬 뛰어났습니다. 영광의 탈출은 화려한 외관만큼의 내실은 높은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3시간이 넘는 긴 드라마를 비교적 매끄럽게 이어간 연출력과 시나리오는
높이 살 만 합니다. 아무리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어도 이건 분명 대 자본이 투입된 헐리웃
대작이었으니까요.
평점 : ★★★ (4개 만점)
ps1 : 카렌 역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질 하워드는 아쉽게도 배우로서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녀와 동반열연을 한 살 미네오도 마찬가지였듯이.
ps2 : 여자도 14살이 넘으면 군사교육을 받는 이스라엘의 투철한 민족성을 보면서 '군대면제정권'이
된 현재의 우리나라의 모습이 너무 대조가 되는 느낌입니다. 간첩잡는 국정원장까지 군대면제자가
차지하는 상황이니.
ps3 : 어네스트 골드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벅찹니다.
ps4 : 저는 왠지 알라모, 클레오파트라, 영광의 탈출이 '한묶음 세트'처럼 느껴집니다. 그럭저럭 볼만한
초대작이지만 뭔가 2% 부족한 듯한 영화들.
ps5 : 이 영화 한편으로 유태인들의 수천년의 '국가없이 떠돌았던 삶'에 대한 한이 상당부분 풀렸을 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유태인들은 정말 대단한 민족인 것 같습니다. 그들앞에서 함부로
'애국심'이나 '단결'을 언급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출처] 영광의 탈출(Exodus 60년) 이스라엘 건국을 다룬 대작|작성자 이규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