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역량기반 교육과정 사례: 부산 남고등학교>
부산남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매우 낙후된 지역인 영도 섬 남쪽에 위치해 있다. 학교는 6.25 전쟁 직후인 1955년에 개교하여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현재 교장 선생님인 박경옥 선생님이 부임할 당시인 2006년에는 학교가 거의 “폐교”직전이었다고 한다. 소외된 지역, 열악한 시설에다가 학생들이 학업에의 의지를 잃어버리면서, 그나마 있던 학생들도 부산의 타 지역이나 외지로 빠져 나가면서 학교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해 교장으로 부임한 박경옥 선생님은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를 수능 위주의 수업에 따른 전인교육의 부재에서 찾았다. 즉, 우리나라의 일반계 고등학교가 그렇듯이 수능 위주의 단순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부산남고는 이러한 교육으로는 경쟁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만족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장선생님은 그해 학교 교육과정의 방향을 “미래 역량의 개발”로 전환하기로 하고, 국가 교육과정의 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개방형 자율학교로 지원하게 된다. 이후 교장과 교사들은 전국의 소위 “이름난” 학교들을 찾아다니면서 벤치마킹을 시도하였지만, 이들 모두 남고등학교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도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수능 위주의 수업에서 탈피하되,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과정 및 수업방법을 활용하여 학생들의 미래역량, 특히 학습역량의 개발에 중점을 두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후 부산남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혁신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학급당 인원을 25명으로 줄이는 한편, 학생 자치권을 확대하여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 되게 함으로써 체벌과 폭력을 학교에서 사라지게 하였다. 또한 모든 수업에 탐구중심, 발표 중심, 프로젝트 중심의 활동을 도입함으로써, 학생들의 기초학습 능력을 끌어올리고자 하였다. 이처럼 기존의 교육과정을 바꾸는 한편 학습 역량 개발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기도 하였다. 예컨대 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2학년 1학기가 되면 과제연구라는 2단위짜리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 수업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연구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하는 팀프로젝트이다. 처음에는 교사들도 학생들이 과연 이러한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수업을 주도하는 담당교사에 의하면, 학생들이 창의적인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를 진행해 나가는 모습에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역량을 기르기 위한 활동 중심의 수업이 학생들의 숨은 능력과 잠재력을 드러나게 한 것이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성과는 눈부신 것이었다.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눈에 띄게 올랐으며, 폐교 직전의 학교에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신입생 경쟁률이 2.5 : 1에 이르는 선호 학교로 변모하였다(부산남고등학교, 2010). 학교 담당자들에 의하면, 이처럼 예기치 못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입학사정관 제도의 도입이 큰 계기가 되었다. 사실 부산남고등학교가 학생들의 대학 입학을 염두에 두고 역량기반 교육과정을 도입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2007년만 해도 입학사정관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2008년과 2009년을 거쳐 입학사정관 제도가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부산남고의 학생들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대학들에 진학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2009년에는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 4명(2006년 0명), 부산대학교에 17명(2006년에는 4명)이 진학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사회과 담당 부장교사에 의하면, 이처럼 부산남고 학생들이 입학사정관 제도에 강점을 보이는 이유는 우선 교사들이 학생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전통적인 전달 위주의 수업에서는 교사가 학생을 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반면 탐구중심, 발표중심의 수업을 하다보면 교사-학생의 상호작용이 꾸준히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학생 하나하나에 대해 써줄 말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학교의 학생들은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기 위해 사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교장 선생님에 의하면, 학생들이 3년간의 수업을 통해 발표력과 탐구력, 문제해결력 등이 월등하게 발달하기 때문에, 입학사정관 제도의 취지에 맞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큰 동력으로 꼽았다.
이제 부산남고는 낙후된 학교에서 벗어나 226개 학교(대학 관계자 포함)로부터 방문객을 맞고 있으며, 부산 지역에 자율형 공립학교가 늘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2009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교육과정 자율화 우수학교로 선정되었으며, 학력향상 우수학교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폐교 직전의 학교에서 4년 만에 부산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공립 고등학교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 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서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