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슴들이 뛰노는 곳 소록도를 다녀와서......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냥 잠이나 잘까? 내 한 몸 편하면 되지......
2005년 2월14일 아침 내 머릿속은 온통 복잡했다.
배낭을 주섬주섬 챙기면서도 내키지 않았던 발걸음.
그런 사이 어느덧 나는 대문을 나서 약속장소인 터미널을 향하고 있었다.
처음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낯섦과 설렘.
그리고 소록도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나의 이상과 젊음 을 가지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모임 약속시간인 오전 9시를 조금 넘어 약 20분이 더지나서야 버스는 천천히 도시를
벗어기 시작했고 내 마음도 두려움 반 기대 반을 가지고 버스와 함께 떠났다.
광주에서 열심히 2시간 30여분을 달려 전남 고흥에 녹동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리니 선착장에서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따뜻한 햇살과 함께 부는
바람이 우리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이름을 물었다.
알고 보니 우리의 총 책임자 이신 이기범 목사님이셨다.
또 배를 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또 다시 기분이 들뜨기 시작하려는 찰라 저 앞에
보이는 섬이 소록도라는 말을 듣고서야 약간은 실망감도 없지 않았다.
육안으로 봐도 거리가 약500m 정보밖에 되 보이지 않았다. 짜여진 일정 때문에 우리는 발걸음
을 재촉했다. 배가 도착하여 승선을 한 후 약 5분후 드디어 나에게 있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국립 소록도 병원이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일정 때문에 주위의 경치를 볼
겨를도 없이 우리들은 미리 기다리고 있던 2대의 미니버스에 올라타고 짐을 풀기위해
숙소인 자원봉사센터 라는 곳으로 이동을 하였다. 거기에 짐을 풀고 난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병원식당으로 이동했다. 같은 밥, 같은 식기들, 같은 반찬들인데도 소록도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내심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뒤로하고 일단 배를 채운 후 오후일
정을 시작하였다. 역사탐방 이라는 주제로 숙소주위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수호원장과 이 춘길
열사에 대한 이야기 구라 탑과 나무들에 얽힌 삶의 애환을 목사님께 전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저녁식사 전까지 남는 시간에 조 편성이 완료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
주민초청 대화의 자리에서 소록도에 사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예전의 소록도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야기를 마친 후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될 내일을 위해 우리 모두는 소록도 가족
에게 드릴 작은 선물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만큼은 모두들 정말 밝은 얼굴인 것 같았다. 이
렇게 소록도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둘째날
아침일 찍 일어나려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드디어 오늘부터 본
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고 하니 두려움이 와락 밀려왔다. 아침을 먹고 역할분담을 했다. 목욕봉
사 와 마을봉사로 나뉘었는데 나는 마을봉사를 했다. 소록도 중앙리의 마을봉사. 준비한 준비물
을 챙겨 나는 우리 조원들과 함께 할머니 방문 앞에 섰다. 선뜻 아무도 먼저 문을 열지 못했다.
처음엔 다 같은 마음 이었으리라. 용기를 내어 방문을 노크한 후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
리는 그렇게 첫 단추를 끼웠다. 목사님께 익히 들어 마을의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예
상외로 심각했다. 이 정도는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하니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중앙리 21 LINE . 내가 맡은 임무는 방역이었다. 방역이라해봤자 방 구석구석 바퀴벌래약 을 놓
는 일 이었다. 오전에 8개 방을 돌며 손 없는 할머니, 발이 없는 할머니, 눈이 없는 할머니, 얼굴
이 찌그러지신 할머니 등 여러 할머니들을 보았다.나중에 목사님께 들은 말인데 여기 21 LINE
에 사시는 모든분들이 암에 걸리신 분들이라는 말을 듣고 너무너무 충격이었다. 차리리 듣지 않
았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이 너무 씁쓸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엔 반대편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
시는 곳에 들어갔다. 근데 이게 웬일.. 할아버지께서 절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안면몰수하고 웃으며 계속 돌진했지만 할아버지 손에 들린 효자손으로 인해 난 들어가기를 포
기 해야 만했다. 다음으로 들어간 곳은 모녀가 사시는 방이었는데 60대 후반 어머니와 30대 후
반의 딸이 함께 지내는 방이었다. 어머니는 정말 우리어머니를 보는 것 같았다. 다만 딸이 몸이
불편해서 그 어머니는 딸을 위해 여기 소록도까지 들어와 계셨다. 아~ 내가 소록도에 대해 잘
못 생각했구나!!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의 무지(無知), 무관심(無
關心), 편견(偏見) 이런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짜증나게 미웠다. 그 후로 약간의 충격에 빠져
그날 오후 난 열심히 일하지 못했다. 하늘에선 아침부터 시작된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캠프3일째
어제부터 내린 비가 아침에도 계속 내렸다. 조금 화창하면 좋으련만…….
오늘은 장판교체 작업을 하는 날이다. 다들 장판교체는 새로운 경험인 듯했다. 쏟아지는 비를
가르며 우리는 신생리 마을로 향했다. 마치 우리가 해결사가 된 듯한 표정이 얼굴에 은근히 묻
어나고 있었다. 다시 조를 나눠 신생리 마을 102호 장판교체를 시작했다. 캠프 내내 목사님의 “
잘 보고합니다. 잘 듣고 합니다.”라는 두 마디는 마치 로마에 온 것처럼 여기 소록도의 법인 것
같았다. 그래서 물건하나하나에도 신경이 무척이나 쓰였다. 할머니께서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장판을 교체하고 나니 새집처럼 너무 깨끗했다. 목사님께서 할머니께 ‘신방차려도 되겠어요’ 라
고 말씀드리는데 할머니 부끄러워 어찌 못하는 표정이 눈에 선하다. 저렇게 순수한 표정. 여느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표정과 행동. 감히 누가 무슨 권리로 소록도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바
로 우리 자신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목사님의 말씀대로 진짜 환자가 누구인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봐야할 문제인 것 같다. 할머니께서 수고했다고 박카스를 모두에게 나눠 주셨다. 비록 박
카스1병이지만 지금까지 먹었을 어느 박카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어느덧 오
전도 다 지나고 점심을 먹은 후 우리 소사모식구들은 수요예배를 위해 교회로 향했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한곡 준비했다. 예배 때 모두들 앞으로 나가 부를 작정이었다.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겐 얼마나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캠프4일째
연일 이어진 비 때문인지 오늘 아침 햇살은 너무나 따스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소사모 정신 ...
드디어 연탄을 나르겠군!!! 계속 비 때문에 늦춰져서 오늘은 꼭 연탄을.....
우리는 헌옷으로 갈아입었다. 준비완료!! 하지만 나는 다른 곳으로 빠졌다. 중앙공원 주위 청소
를 맡았다. 오전 일정을 마치기전 목사님께서 연탄 나르는 사람들 조심하라는 귀띔을 살짝 해주
셨다.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모두들 얼굴
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아니 온몸이 연탄처럼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정말 가관이었다. 오후
에도 연탄을 나른다기에 난 빠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핑계거리를 찾으려 했지만 핑계가 없었
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한명의 열외자도 없이 모두 연탄을 나르게 되었다.
이해되지 않았던 오전의 상황이 오후에 내 눈 앞에 펼쳐져 생동감300%로 다가왔다. 아마 3일
째 까지는 조별 활동이 많아서 다른 조에 관심이 적었는데 4일째의 단체 활동으로 인해 우리 모
두는 정말 더 많이 가까워진 듯했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살아가면서 평생 기억에 남을 경험
인 듯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뿌듯한 하루도 서서히 저물어 갔다. 이제 종착지가 얼마 남
지 않은듯했다. 봉사의 끝은 어딘가? 봉사에 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나 할까?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이 봉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녁 식사 후 우리 모두의 무
릎 앞에는 각자 촛불하나씩이 놓여져 있었다. 모두에게 불씨가 옮겨지고 분위기는 엄숙해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경건한 분위기였다. 뽀대누나부터 시작된 4일 동안의 소록도 생활에 대
한 반성과 각오의 자리를 갖었다. 누구에게나 항상 어디서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했지만 후회
는 있기 마련이다. 이 자리의 모든 소사모 가족들도 다들 그랬나보다. 이날 밤 여기 강당은 세상
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이 지나갔다.. 자신을 희생하며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음 깜깜한 강당에 하나의 촛불은 보잘 것 없다. 하지만 그 촛불이 옆으로
옮겨지고 옮겨지며 점점 밝아진다. 아름다워진다. 소사모 가족들을 감히 이 촛불에 비유하고 싶
다. 한사람의 힘은 보잘 것 없지만 서로의 힘을 합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우리 소사모가족
들이 그랬다.
캠프 마지막 날
또다시 내리는 비
마치 우리들이 오늘 떠나는 것을 그 동안 정들었던 우리 소록도 가족들께서 정들었던 마음과 아
쉬움의 표현인 듯한 슬픔의 빗물 같았다. 오늘은 그동안 정들었던 분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
는 날이다. 아니 마지막이 아니다.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하는 날이다.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각
자의 할머니 할아버지께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난 가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왜 가지 않았는
지 모르겠다. 그냥 내리는 비만 쳐다보고 있었다. 머릿속이 온통 혼란과 복잡 그 자체였다. 빨리
이시간이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 뿐 이었다. 지금도 내 자신에게 묻는다.
그때 왜 가지 않았냐고? 모르겠다. 단순한 감정은 아닌듯하다. 이렇게 우리의 캠프는 막을 내렸
다. 첫날 소록도에 들어올 때 이곳의 경치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는데 돌아가는 길이 보니 무척
이나 아름다운 곳 이었다. 왜 이제야 내 눈에 보이는 것일까? 많은 것을 배운 캠프기간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활력이라고나 할까? 나도 우리 소사모 가족들처럼 처음엔 봉사를 하고 마음을 주
고 사랑을 주러 온 소록도에서 가슴 넘치도록 뜨거운 사랑을 받아만 갔다..
소록도 가족들
그리고
이기범 목사님
외 50명의 소사모 가족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cyworld.com/09gee
카페 게시글
소록도 방문후기
[ 캠프후기 ]
아쉬운 캠프가 끝나고......소사모 가족들 수고하셨습니다.
북마크
번역하기
공유하기
기능 더보기
다음검색
첫댓글 오빠도수고하셨어요!!!
네~ 수고 하셨어요^^~ 정말 잘 쓰셨는데요..^^; . . . .오빠 전 분명히 읽었어요......ㅋㅋ
^ ^잘 읽었습니다.
다들고맙습니다. 눈물이 날려고하네~~
형 싸이 월드 주소 안들어가져요. 아무래도 주소가 잘못된듯..
재동이형~ 글을 읽고 있자니 그때생각이 많이 나네요~^^ 그때 수고 많으셨어요~
글 너무 잘 읽었어요..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것 같아요..
누구나 처음 소록도에서 느껴오는 마음은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어...난 처음 갔을 때는 정말이지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인사만 하고 도망왔었지...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때 왜 그랬고 지금은 맘이 왜 바뀐 건지 모를 정도로 소록도에 대한 마음이나 할어버지 할머니에 대한 마음을 그냥 막연히 당연한 거라고 느껴
영국이 너도 마지막날 맘에 새겨두고 싶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가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자꾸 아쉬운 맘이 드는 분이 계실 것 같아...난 그래!! 소록도 한 번 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생각하고 가끔 가는 것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우리 생활에서도 잊지 않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되새기며..
작은 몽당손 펴서 우리 손 잡아준 것처럼 더 큰 손을 가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지고 셰상의 다른 이들의 손을 사랑으로 잡아주면 그 분들이 원하시는 게 아닐까 싶어..누군가 그러셨어.조금 가지려고 주먹 움켜쥐면 욕심만 생길 뿐이고 손을 쫙 펴면 세상을 다 얻고 욕심없이 편한거라고..우리 그렇게 살도록 하자!!
네~ 맞는말씀 입니다.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