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 봉사를 가는 날이면 아내의 마음과 손길은 더 바쁘다. 불편한 몸이라 입만 살아 있는 남편이 일을 도와 주지도 못하니 혼자 해야 하기에 더 바쁘다. 매일 하고 있는 무료급식도 반찬을 만들어 놓고 가야한다. 배식은 다른 분에게 부탁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부터 반찬까지는 미리 만들어 주고 가야한다. 이래서 책임자가 힘든가 보다. 장애우들 60여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랑의 집에 봉사 가는 날. 전날 밤부터 어김없이 아내는 음식을 만들고 있다. 덕분에 우리 집엔 구수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온다. 따지고 보면 감사의 조건이기도 하다.
함께 봉사를 가기로 했던 사람 몇 명이 개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리저리 전화를 하며 다른 봉사자를 섭외 해 보지만 쉽지가 않다. 결국 아내와 나, 제이비님만 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봉사를 떠난다. 가는 길에 루치아님께 전화를 해 보니 안 그래도 봉사갈 준비를 하고 있단다.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표현들을 쓴다. 아마 이럴 때 그 표현이 맞으리라. 아무래도 주방에서 혼자 식사 준비를 해야 할 아내가 걱정되었던가 보다. 사랑의 집에 도착하여 그들과 함께 방바닥에서 뒹구는 게 나의 임무(?)다. 자기들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들이라 스킨쉽을 좋아한다. 어느새 내 주위에는 장애우들이 모여 있다. 누웠다. 네 다리를 활짝 펴고 누웠다. 이윽고 누워서만 지내는 녀석이 가까이 와서 내 몸에 자기를 비비고 있다. 녀석이 많이 외로웠었는가 보다. 현진이는 변함 없이 다가와 고성을 지르며 나를 두들기고 있다. 가장 기쁠 때 녀석이 표현하는 방법이다. 한참을 어울려 놀다가 "우리 함께 예배를 드릴까?"하니 모두 고성을 지른다. 좋다는 표현이다.
몸이 불편하고 말도 어눌하고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그들에게 덕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기억력도 없고 말도 어눌한 덕구의 이야기다. 어느 교회학교에서 성탄을 맞아 성극을 하기로 했는데 마침 출연자가 부족하여 말도 어눌하고, 기억력도 부족한 덕구를 출연시켰는데, 아무리 연습을 시켜도 발음과 기억력이 안되어 사관 주인역할을 시키게 된다. 사관주인의 대사는 단 하나 "빈방이 없습니다"였다. 아기 예수를 출산하기 위해 여관을 찾아오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빈방이 없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연습을 해도 잘 안 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연극은 막이 오르고 덕구가 대사를 할 차례가 되었다. "빈방이 있나요?"라고 물은 요셉에게 덕구는 평소 연습한대로 "빈방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기운 없이 돌아가고 있는 만삭이 된 마리아를 본 덕구는 엉뚱한 대사를 또 해 버린다. "저 여보세요. 빈방이 있어요..."
연극은 망쳐지고 말이 어눌한 덕구는 혼자 독백 식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내가 연극 망쳐 놨어요. 그치만 어떻게 고짓말을 해요... 우 우리 집엔 빈 바이 있걸랑요. 아주 좋은 방은 아니지만 요. 그건 하나님도 아시잖아요. 근데 어떻게 예수님을 마구간에서 나라구 그래요. 난 정말 에수님이 우리 집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환희에 가득 차서)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에수님이 내 방에서 태어나신다니! 얼마나 신나요! 그럼요, 난 내 방도 쓸구요, 걸레 빨아갖구 방두 닦구요, 내 방 비워 놨을 거예요. 난 에수님이 좋아요. 에수님... 사랑해요. 에수님이 최고에요. 에수님은 내 죄 땜에 죽으셨잖아요. (운다. 긴 사이) 내가 연극 만쳐놔서 선생님하구 애들하구 속상해 할거에요. 속상해 하지 말았으문 좋겠는데... 내년에 또 하문 안 틀리고 잘할 수 있는데... 그치만 이젠 다시 안 시켜 줄 거에요 (사이, 힐긋 웃으며)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한 번 해본 게! "아, 빈 바이 없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말도 잘 못하고 정신연령도 부족한 장애우들이 감동을 받았는가 보다. 조용하다. 평상시 같으면 찬양을 하자고 난리일텐데 조용하다. 그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우리들의 덕구를 발견한다. 고요한밤 거룩한밤을 함께 부르며 기뻐하는 그들에게서 잃어가던 순수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랑의 집 장애우들에게 물어 봤다.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디로 올까요?"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우리 사랑의 집으로 오세요!" 그들에게 맞는 소리라고 대답을 해 준 후 하모니카를 부르며 함께 찬양을 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주방에서는 아내와 루치아, 제이비님이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구수한 시금치 된장국 냄새가 나고, 매콤한 닭도리탕 냄새, 여수에서 올라왔다는 멸치가 볶아지는 냄새, 향긋한 도토리묵 냄새, 며칠 전에 김장을 했다며 익산에서 보내준 포기김치까지... 음식 준비가 다 됐단다. 단순한 일은 할 수 있는 장애우들에게 상을 펴고 수저와 젓가락을 놓게 한다. 평소 하던 대로 자기의 일은 잘하고 있다. 푸짐하게 차려진 점심상, 군침이 꿀꺽 넘어 간다. 모두에게 함께 식사 기도를 하자고 했다.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아멘~"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먹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박자는 맞다. 그들만의 기도이다. 목욕을 시키고 있던 김경희 집사님 일행도 들어오셔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더 반갑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한다. 신정 때 소록도 방문할 준비에 바쁘다는 말에 꼭 한번 따라 가보고 싶단다. 민구와 동민이가 말다툼을 한다. 형제들이 자라면서 다투는 것과 똑 같다. 따지고 보면 그것조차도 사랑이다. 식사를 마치고 변함 없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 루치아님, 오늘은 독산동 한빛교회 집사님이 목욕 봉사를 마치고 오셔서 설거지를 돕고 있다. 우리는 그사이 방 청소도 하고, 뒷정리도 하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설거지가 끝나자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사랑의 집을 나선다. 마치 옆집에 마실가는 것처럼 편하게 사랑의 집을 나선다. 며칠 후 성탄절이라 그런가 보다. 함께 해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1.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