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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만뢰지맥1] 엽돈재 - 만뢰산 - 보탑사- 배성고개 - 장교현
금북만뢰지맥이란? 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덕성산 서운산 지나 내려간 34번국도 엽돈재에서 살짝 오른 천안시 입장면, 북면, 진천군 백곡면의 삼면 경계점인 등고선상 390m 지점에서 금북정맥은 서남진으로 가고 한줄기를 충북과 충남의 경계를 따라 동남진으로 분기하여 △411.9봉(1.7)-싸리재고개(370)-싸리재(330)-△479.1봉(3/4.7)에서 남쪽으로 鵲城산(497, 단맥)을 떨구고 동진한다 돌목고개(330)-458봉-萬筋산(△612.2)어깨(510, 3/7.7)에서 동쪽으로 만뢰단맥을 떨구고 남진하여 495봉-△482.7봉(3/10.7)-△504.7봉-배성고개- 질고개(390, 3/13.7)에서 서남방향으로 夢覺산(403, 단맥), 徐林산(△316.8, 단맥)을 떨구고 동남진한다 장고개(290)-21번국도 장교현 도로(210, 2.1/15.8)-잔득재(390)- 德裕산(413)-지장골고개(290)-歡喜산(△402.6, 3.2/19)에서 남쪽으로 0.5km 정도 내려간 지점에서 도경계는 서남방향 國師봉(360, 여맥)으로 가고 지맥은 동남진으로 순수한 진천군 문백면을 가른다 덕고개 도로(170, 1.6/20.6)-△173.3봉(4.4/25)-한현도로(130, 2/27)- 234봉-510번지방도로 산수동도로(110)-鶩嶺산(△228.7)어깨(2.2/29.2)- 삽티고개(90, 3.2/32.4)-202봉-234봉(3/35.4)-상봉산(195)- 국사리임도(90, 3.1/38.5)-國師봉(171)- 몽단이고개 경부고속도로(90, 1.3/39.8)-142봉-오산리도로(70, 1.2/41)- 鷹峰산(△175.4, 1.1/42.1)-군졸마을도로- 508번지방도로 들판마을(50, 2.4/44.5)을 지나면서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엽돈재가 발원지인 병천천이 미호천을 만나 미호천물이 되는 곳(50, 2/46.5)에서 끝이나는 약46km의 산줄기를 그 산줄기상 최고봉이며 진천과 천안의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만뢰산의 이름을 빌어 금북정맥에서 갈래쳤으니 금북만뢰지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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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9일
가진, 칼용담, 요물
○산행코스 : 엽돈재 - △411.5 - 싸리재고개 - 싸리재 - △478.6 - 돌목이고개 - 만뢰삼거리 -만뢰산 - 만뢰삼거리
- 490봉 안부 - 보탑사왕복 - △483.3 - △501.8 - 배성고개 - 배성고개 - 몽각산갈림길 - 질고개 - 장고
개 - 장교현
○거리 : 접근거리 0.241km + 지맥거리 15.517km + 만뢰왕복 0.701km + 보탑사왕복 3.744km = 합 20.204km
○산행시간 : 8시 25분 - 17시 30분 [9시간 5분]
[산행지도]
일찍 서둘러야 했다. 같이 산행하게 되는 친구들이 있어 덕고개까지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장교현까지도 멀게 느껴졌다.
구로에서 첫전철 급행 6시 22분발 로 환승하여 천안 두정역에 내렸다. 입장까지 버스로 가서 입장에서 엽돈재까지 택시를 타고
가려했는데 친구와 아들 승훈이가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어릴적 6-7살도 채 되기 전에 보고 이제 보니 20년 세월이 훌쩍 넘어
많이도 컷다. 간간히 전화 목소리만 듣다 보니 반가웠고 엄마 산에 간다는 거 때문에 일찍 일어나 태워다 주니 고마웠다.
성거를 지날때는
학교 다닐 때 친구가 석교에 살던 곳에 놀러 왔던 기억도 스쳐가고 있었다. 그 친구는 지금 동두천에 사는데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
소녀때 풋풋했던 기억처럼 마냥 설레기만 한 고향 가까이 오니 아련한 추억에 젖는 행복도 느껴지누만.
그 추억을 뒤로 하기도 전 청룡저수지를 지나 찻길은 구불구불 고도를 높여 오르고 보니 엽돈재였다. 고도 해발 320m, 시간
8시 25분 산행시작으로는 승훈이 덕에 빠른 시간이었다.
엄지손가락이 아프도록 시럽다. 날씨가 춥지 않은 것 같은데 이른 시간이라서 인지 장갑을 베낭에서 꺼내어 낀다. 눈이 가끔
산릉에 있긴 한데 땅이 얼어 걷기가 수월했다.
충청남북도를 가르는 경계선의 산줄기였다. 낙엽진 산릉을 올랐다.
얼마 안가서 금북정맥의 분기점에 도착했다. 안성의 대방님이 표지기를 만들어 만뢰지맥의 출발점을 금방 알아볼수 있었다.
이곳에서 금북정맥의 갈림길이 되고 언제 올지 모를 그곳에 눈도장을 찍고 만뢰산으로 가야 했다. 길은 낙엽진 길로 산님들이
다녀간 흔적이 많아 별 어려움없이 산릉을 걷을 수 있겠다.
[△411.5 봉 삼각점]
싸리재고개와 싸리재를 언제 걸었는지 모르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멀리서 보니 반겨주는 듯한 [만뢰산에 햇살이 비친다] 만뢰산 아래가 백곡면 대문리이다.
[△478.6봉의 삼각점]
이곳에서 삼성고개- 개죽산- 봉암산 - 작성산 - 은석산 - 병천천에 닿게 되는 산줄기 갈림길이었다. 은석산은 초등학교때 소풍
갔었던 곳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저네들은 알랑가 몰러? 언제 이곳에 또 오자며 약속을 한다. 아마 봄이지 싶다.
부산에 사시는 준희님의 표지기가 달려있다.
[봉항3리 마을회관 1.8km, 갈림길]
[봉항3리 마을회관 2.5km, 갈림길] 돌목이고개
흑성산과 성거산이 조망되는 산릉에서 어릴적 친구들과 걸으니 옛 기억처럼 마냥 설레기만 한 산줄기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어
라.
정겨운 하모니카 연주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듯 재잘대는 어릴적 추억들이 펼쳐진다.
그 때 이 셋중 누구라도 50년을 넘어 이런 생각을 했으랴.
[생거진천(生居鎭川 만뢰산 삼거리]에 가방을 두고 만뢰산으로 오른다.
이곳에서 120m내려 가면 신선샘이 있고 만뢰산은 행정적으로는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면과 충남 천안시 병천면 경계를 이룬
다.
만뢰산 옛 지명은 만노산(萬弩山), 보련산(寶蓮山), 금물노산(金勿奴山), 또는 이흘산(伊訖山)으로도 불리었다. 지금의 산이름인 ‘만뢰’라는 뜻은 나라에 난리가 나면 병정이건 백성이건 만민(萬民) 다 같이 피신할 수 있는 장소를 만뢰산이 베풀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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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뢰산에 올라서니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고 헬기장과 정상석, 삼각점이 있다. 360도의 원안에 여행자가 마치 호수속에 갇힌
섬처럼 느껴진다. 그저 그런 산으로 왔는데 사방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어 좋다. 내리뻗은 산릉들이 겹겹이 줄을 긋고 굽이
굽이 멋을 부린다.
[만뢰산 △611.7 의 삼각점]
만뢰산은 진천에서 제일 높은 만뢰산 (611.7m)이다. 서해바다가 보인다는 만뢰산이다. 산그리메가 따봉, 따따봉!!
맨 뒤에 저 산은 칠장산에서 속리산의 산줄기 한남금북정맥일꺼야! 사진을 보니 '저거들 둘이는 엄청 친한가 봐-봐'
왼쪽 뾰족한 봉우리가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태령산이고 그 아래 연곡지이며 김유신장군 탄생지이며 장군이 소년시절 말 달리며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치마대(馳馬臺) 등 장군과 관련된 명소들이 있어 보고 또 쳐다본다.
[만뢰산성]을 되돌아보며 만뢰산을 내려왔다.
도솔암가는 갈림길이다.
도솔암은 보련골에 있다. 옛날 신라시대 절이 있었는데 극락세계를 연화세계라 하기에 연곡리라 하였다. 연화대와 관련을 지어
서 보련골이라고 마을명을 정하였다 한다. 보련골에는 지금은 폐광이 되었지만 1900년경에는 금광이 있어 한때 번창한 시절도
있었다 한다.
가방을 두었던 삼거리에서 지맥길로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계속 진행하게 된다.
[보탑사 가는 길 1.0km의 이정목에서 ] 보탑사로 발길을 돌려 내려갔다. 와 본지10년쯤 되었을까. 봄이면 경내에 야생화가
만발하여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조계종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낙엽송 가지끝에 햇살이 걸리어 환히 비추어 준다. 낙엽송 숲을 걸어 내려갔다. 비선골이었다. 비선골을 비립동이라
한다. 비립동은 보물 404호인 석비가 있기에 비립동이라 한 것이다.
황룡사 9층목탑을 모델로 만든 3층목탑의 높이는 42.71m로, 상륜부(9.99m)까지 더하면 총 높이가 무려 52.7m에 이르는데 이는 14층 아파트와 맞먹는 높이이다. 목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모두 29개이다. 강원도산 소나무를 자재로 하여 단 한 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지어졌다 한다.
1층은 대웅전(199㎡), 2층은 법보전(166㎡), 3층은 미륵전(136㎡)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에는 사방불(동방 약사우리광불, 서방 아미타여래불, 남방 석가모니불, 북방 비로자나불)이 배치되어 있으며, 법보전에는 윤장대(輪藏臺;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장)를 두고 팔만대장경 번역본을 안치했고, 한글법화경을 총 9t의 돌판에 새겨 놓았다. 미륵전에는 화려한 금동 보개 아래에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2층과 3층 외부에는 탑돌이를 할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
[보물 제404호의 석비]
우리 나라에서 셋 밖에 없는 석비(일명 백비), 여기 석비에 대한 시 한수가 있기에 적어 본다.
역옹 이 영길 공 시
알 수 없구나 어느 연대에 누가 이 비를 세웠는고
기이한 형국은 신의 가로 깃들인 듯 하건마는
글자 한 자 없으니 그 내력 전혀 알 수 없구
전의 이씨 이 영길 공은 성균 진사 벼슬을 한 분으로 임진왜란 때 이 곳에 피난와 살기 시작하여 그 후손들이 지금 비립동에 살고있다.
그밖에 장수왕릉(장수총)을 재현해 만든 지장전, 너와지붕을 얹은 귀틀집 형식의 산신각, 부처가 500명의 비구들에게 설법하던 모
습을 재현해 만든 영산전, 와불 열반적정상을 모신 적조전, 법종각·법고전·불유각·삼소실 등의 건축물이 조성되어 있다. 경내에서
조망해 보는 만뢰지맥길을 진행하게 된다.
커피 한 잔씩 먹고 친구가 보탑사의 보물을 찾은 듯 '어데서 찍었께?"
나도 퀴즈다.
저쪽으로 올라가면 쉬운걸, 가방을 산릉에 두고 왔으니 뒤돌아 산릉으로 진행한다.
[이곳에서 보탑사로 내려 갔으면 가까운걸!! 그랬다]
[김유신장군 탄생지와 투구바위 갈림길]
걸어도 걸어도 흙으로 흙길을 걸어도 가랑잎이 솔잎보고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483.3 봉 삼각점]
[저 멀리 만뢰산이 조망]
만뢰산이 앞에 있다가 정상 발아래 있다가 뒤에 있구나
[△501.8봉 삼각점]
철탑을 지나고
임도인 [배성고개]
몽각산갈림길은 몽각산 - 행암고개-광덕산-방고개 - 두능고개- 약사산으로 가는 산줄기인데. 두능고개와 용두리에는 우리
종친산이 있는 곳이라 하네요. 그 아래 송정리는 제 외갓집인데 어릴적 외할아버지, 삿갓쓰고 키가 큰 할아버지는 한문을
가르키는 선생님였데네요.
외할아버지 생각도 나네요. 그 때는 너무 어려서 엄마의 아버지인줄 몰랐던 때 우리집에 오셨던 모습이 기억의 전부네요.
언제 저 산줄기도 함 가보야 할텐테요.
[장고개]
가랑잎을 밟으면서 산릉을 걸었다. 쉽게쉽게 가시덤불도 없는 그 길위에는 친구의 짙은 눈썹 사이로 해가 진다. 벌써 저녁인가
보다. 배성마을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8번 철탑을 지나
장교현인줄 알고 내려왔는데 덕성리 주유소가 차도앞에 있다. 잠깐 방심했더만 ..
공장이 있다. 주유소 뒤 산줄기따라 다음에 진행하게 될 눈도장을 찍고 천안방향으로 길로 더 간다. 걸어왔던 산줄기가
보이는 덕성1리 정류장에서 발길은 멈춘다. 덕성소류지를 지나 배성마을가는 입구이다. 걸었던 산줄기가 날 보라한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411번 시내버스가 멈춘다. 병천까지는 10km, 버스는 동면을 지나면서 친구 정영이네 외갓집은 어데,
석숙이네 선산은 어데쯤일까, 궁금증도 풀지 않았는데 벌써 병천면사무소에서 하차. 유명한 충남집에서 순대국과 쌀막걸
리 한병으로 돌려 짠하고 천안- 전철로 집으로 온다.
만뢰산 정상석에서 찍은 사진 한 장
또 한 장을 담아 본다.
하루종일 재잘거리며 나눗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배성마을에서 보았던 하얀연기처럼 피어 올랐다.
첫댓글 빨리도 썼내 ㅎ ㅎ
섬섬옥수 같은 산능 넘어서 못다한 어릴적 얘기들이 새롭다
만뢰산 정상에서 보는 산그리메가 너무 좋아서 일주일이 즐거울 것 같고
우리 외할아버지 연세가 114세야 상상이 안된다
그날 나도 우리 외할아버지 생각을 했다. 즐거운 명절 새해 복 많이 받길 바라고
외할아버지 연세가 114세,
그람 몇년생이셔,
이번명절은 외할아버지도 생각하는 명절이 되네
1900년생이라서 잊혀지지않아
내가 고등학교때 돌아가셨어 그후 외가에 가면 허전하고 헛기침하시고 아무개야 하고 부르시던 모습이 떠오르곤 했어
그날의 삿행 넘 즐거웠고 고마디기 친구와의 산행 아주 행복했어 그런날이 또 오길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