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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관과 실증사관. 어느 것이 중요할까
실증사관 : 과거의 객관적이고 분명한 사실만을 역사로 인식하는 사관
민족사관 : 식민사학에 대항하여 자민족의 우수성과 주체적 발전을 강조하는 사관
위키백과에 있는 두 가지 사관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럼... 잘 알려진 두 명의 사학자와 비교해 보죠.
아마 지금도일 것 같은데, 교과서에서는 동이족의 범위를 이렇게 잡고 있습니다. 이른바 산동 동이인데, 이는 현재는 부정되고 있습니다. 당시 중국의 기준에 산동은 포함돼 있지 않았고, 이 지역을 그냥 동이라 불렀다는 것이죠. 이후 진-한이 되면서 이 지역이 중화에 속하고, 동이는 더 동쪽으로 밀려납니다. 고구려가 신라를 동이라 하고, 조선이 일본을 동이라 하는 상황에서 동이가 하나의 민족을 뜻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이건 한 사학자의 주장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이런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계속 했죠. 위만을 조선인으로 여긴 것도 그였습니다.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라면 위만조선은 중국의 식민지나 다름 없으니까요. 이런 당위에 의한 주장, 한국사에서 중국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는 입장, 민족사관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이 지도에서 동이의 영역은 과장되지 않은, 실제 환단고기에서 고구려의 영역과 같습니다. 사실상 이 사학자의 주장에서 환빠들의 주장이 시작된 겁니다. 뭐 교과서에도 남아 있으니 학계라고 뭐라 할 순 없겠군요. 아무튼, 이 주장을 한 사학자는...
뭐 -_-; 예전에도 몇 번 얘기했으니 바로 얘기하죠.
한국 실증사학의 시초, 이병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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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지식인에서 신채호 관련 글에서 본 댓글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실증사관 말고 민족사관 하면 안 되요?" 였던 것 같은데요. 현 대한민국에서 이 둘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실증사관은 민족 그따위 거 없이 그냥 객관 객관 객관적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한국의 사학자들 중에 "민족"이라는 말을 뺀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정말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 전에 "민족"이라는 말을 빼고 한국 얘기를 논할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나마 최근에 요동사 얘기 같은 게 좀 탈민족주의로 갈 뿐이죠.
실증사관을 시작했다는, 근데 그 실증사관을 일본 학자로부터 이었기에 식민사학자 소리 듣는 이병도부터, 그 제자 이기백부터 모든 학자들은 언제나 "민족"을 말 했습니다. 이유야 간단합니다.
민족사관은 그 시작부터 대 식민사학 척결용 결전병기였거든요. 신채호, 정인보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민족사관"의 목적은 언제나 "식민사관 척결"이었습니다. 헌데... 실증사관 계열이라 불리는 이들도 최우선 목표는 이거였거든요.
때문에 초기의 민족사관은 식민사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 했습니다. 그저 부정만 할 뿐이죠. 그리고, 오히려 식민사관을 그대로 이어받기도 했죠. 민족사관에서도 참 달콤한 얘기였거든요. "만선사관"이죠.
정체성론. 한국 역사는 발전하지 못 하고 쭉 정체되기만 했다. 이거야 뭐 여러 가지로 반박 가능합니다. 애초에 이게 오리엔탈리즘에서 주어만 바꾼 것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타율성론.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에서 영향을 받아야 겨우 뭘 할 수 있었다죠. 헌데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만선사관, 한반도와 만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만 한반도는 만주에 의해 진보할 수 있었고, 발해 이후 한국이 만주를 잃은 이상 정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온 것이 계속된 만주 타령이죠. 신라는 사대주의였다, 고려는 사대주의였다, 조선은 사대주의였다, 이래서 한국은 안 됐다. 고조선의 웅대한 기상, 고구려의 위대함, 발해는 우리 역사... 그냥 뒤집은 것일 뿐입니다. 한반도의 국가에 대해서는 타율성과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신 만주에 있던 국가들의 위대함만 강조했을 뿐입니다.
당파성론. 한국의 역사는 서로 편을 나눠 싸우는 역사였을 뿐이었다. 내분은 이래서 안 됐다. 이건 오히려 민족주의자들에게도 좋게 쓰입니다. 한국은 뭉쳐야 된다. 이래서 우리가 일본에 먹힌 거다. 덕분에 이런 민족주의는 해방 후에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독재자들에게요. 프린스 리의 말대로 뭉쳐야 사니까요. 다른 주장이 있다는 건 곧 당파가 되는 거니까요. 조국을 위해, 민족을 위해, 독재자에게 충성해야 되는 것이었죠.
이게 진정 식민사관을 이겨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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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옳은 길이었든 아니든, 일단 식민사관을 부정하고 본다는 점에서 민족사학자든 실증사학자든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따져 봅시다.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에 집중하는 사관입니다. 그런데 신채호부터 시작된 민족사관은 일단 신라를 까고 보고, 고려를 까고 보고, 조선을 까고 봅니다. 정말 이 정의대로라면,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고구려 같은 만주의 국가들은 위대했고, 신라, 고려, 조선도 훌륭한 문화를 꽃 피웠다. 그들이 만주의 영토를 되찾지 못한 것이 한계라 하더라도 그 위대함을 부정할 수 없다."
과연,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 하나요? 물론 이순신이나 한글 같은 한반도 역사의 독창적이거나 위대한 모습에 대해서는 찬양합니다. 하지만, 꼭 이게 붙죠.
"한글은 사대부들이 천시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말고는 다 바보였다."
일본이 아주 잘 퍼뜨린, "조선에 잘난 놈은 있는데 조선인들은 그걸 몰랐다." -> "인재를 몰라보는 조선은 망해야 싸다" 이걸 그대로 이은 것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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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물어봐야 될 것은, 이 "민족주의"라는 것이 무조건 옳은 진리이냐는 것입니다. 네. 그래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해방 후의 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가 된 민족주의자와는 확실한 차별성을 두어야 했습니다. 헌데... 그 속 내용은 아예 다를 게 없었죠.
최남선, 이광수 등은 변절했지만, 스스로를 여전히 민족주의자로 칭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더더욱 민족주의를 내세웠죠. 백두산이 하나의 고대 문명이라는 불함문화론, 이순신을 비롯한 영웅주의, 후대의 민족주의자들은 이걸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식민사관을 거꾸로 썼을 뿐인 민족주의 역시 마찬가지였죠.
민족주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저 외국의 요소를 철저히 없애면 될 뿐이예요. 박정희는 이런 걸 아주 잘 이용했습니다. 그는 반만년 역사에 내세울 수 있는 건 "이순신"과 "한글" 뿐이라 했고, 단군 이후 한국의 역사는 모두 가난하고 당하기만 하는 역사라고 했죠. 한 번도 남을 침략하지 않은 평화의 민족? 광개토대왕은 우리 민족 아닐까요? 이 역시 "한국 역사는 당하기만 한 역사다"는 것을 좋게 좋게 바꾼 것일 뿐입니다.
헌데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이들 역시 이것과 생각이 그리 다르지 않았죠. 때문에 그들은 왜곡을 시도합니다. 꽤나 성공했죠.
"일제는 단군을 부정했다. 고조선을 부정했다. 친일파도 따라서 부정했다."
이 절묘한 한 수로 "친일파"라는 딱지가 붙은 이들은 모두 단군 부정, 고조선 부정, 식민사관 계승이라는 코드로 엮입니다. 실제 그들의 주장이 서로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은 뭐,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그걸 찾아 보겠어요? 거기다 친일파예요. 거기다 기득권이예요. 이게 너무 쉽게 통해 버렸죠.
민족주의는 착한 사람들이, 진정 민족을 위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예요. 독재자도, 친일파도 빨갱이도 자기 이득을 위해 너무나도 쉽게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것일 뿐이죠.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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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뭔가 감정에 북받쳐서인지 잔뜩 주저리주저리 했는데, 너무 나간 거 같네요. 어쨌든 볼만한 얘기이니 아래쪽에 놔두겠습니다. -_-; 본론으로 돌아가죠.
식민사관을 깨뜨리기 위한 민족사관. 그런데 이 민족을 위한다는 것은 진정 무엇일까요? 애인으로 비유하면 좀 그러니 가족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자기 자식에 대해 무조건 좋다 잘 한다 하면서 챙겨주는 것, 자기 자식을 호되게 야단치고 때리면서 엄격하게 가르치는 것,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방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 속내를 사람 마음 속까지 파고들어 알 수 있지 않은 이상, 어찌됐든 방법은 사랑이예요.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아내를 "오라질 년"이라고 한다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민족주의로 옮기면 끝이 없습니다. 신라를 사대주의로 격하하는 것에서 아예 우리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것, 대신 고구려 등 만주의 역사만 우리 역사로 인정하는 것, 그들이 외치는 것 역시 "우리 민족의 우수성"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 역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 했다, 이렇게 말 하는 것도 역시 내세우는 건 민족주의입니다. 하다못해 현 서강대 이종욱 교수가 중심이 된 신라 계승론이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는 우리 역사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 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원류인 신라에 더 집중해야 된다. 그것이 진정 우리의 역사고 우리 민족의 시작이다."
맞든 아니든 내세우는 건 민족입니다.
식민사관을 깨뜨려야 되는 과제를 안고 시작한 이상, 그리고 모두가 "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라는 걸 내세우는 이상, 현 사학계에 민족사관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이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 누가 발해가 우리 역사가 아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까요? 학계 내에서야 가능해도 바깥으로 나오면? 불가능하죠. 그나마 최근에는 이게 가능해지고 있구요. 하지만, 그걸 내세우는 명분 중에서도 "진정한 우리 민족의 역사"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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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해서 다시 위에 신채호의 말을 봅시다. 신채호의 주장들은 현재 학계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사료의 오독, 사료의 부족 (당장 신채호는 돈이 없어서 사료들을 제대로 보지 못 했습니다. 조선상고사 등의 책에도 늘상 나오는 말이 "저자를 잊었다" "연도를 잊었다" "출처를 잊었다"죠. 그만큼 어려운 사정 속에서 역사를 판 것입니다만), 지나친 민족주의 의식 등이죠. 그럼에도 그가 내세운 건 "객관"이었습니다. "당위"가 아닌 "사실"을 중시하는 역사였죠.
실증사관의 시작은 역시 랑케겠죠. 하지만 이 실증사관은 후에 무수한 도전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건 실증사관 본연의 "객관성"에 대한 도전이 아닙니다. 당장 이러지 않나요?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은 킹왕짱이라능"
이병도가 이어 받은 일제의 실증사관, 하지만 그 내면을 보면 전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예, 완벽한 객관은 존재하지 않죠. 랑케가 객관성에 대해 아무리 찬양하든, 역사 연구에는 무언가 목적이 들어갑니다. 설령 본인들이 그걸 자각하지 않아도, 그 안에는 무언가의 편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반대하는 것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아니, 애초에 이 "실증사관"을 공격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객관적으로 그게 틀렸다"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사실"을 중시하지 않은 사관은 사관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물질에 의해 역사가 돌아가는 것이 "객관적으로 사실"이기에 유물사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역사가 반복되는 규칙이 있기에 순환론적인 사관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떤 필연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역사가 진행된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나왔기에 우연사관이 나올 수 있었죠. 어쨌든 왕, 영웅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아예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에 영웅사관이 나왔고, 영웅보다는 다수를 차지하는 민중 생활의 변화, 민중의 의식 등에 집중해야 되는 것이 객관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기에 민중사관이 나왔습니다. 모두 "실증사관"의 객관성 자체보다는 실증사관을 내세우며 나타나는 왜곡에 대해 들고 일어난 겁니다.
민족사관, 유물사관, 심지어 식민사관까지 그 근본에 두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니 애초에 이 "사실"이라는 것을 무시한 상황에서 역사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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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학계의 공식 명칭은 "실증사학"이 아니라 "문헌고증사학"입니다. "실증"은 하나의 사관이 아니라, 근대 역사학에서 가장 기본으로 둬야 할 것이죠. 지금 상황에서 "사실"을 무시하는 사관은 "사관"이 아닙니다. 그걸 얘기하는 건 "역사"가 아니죠.
애초에 한 나라의 역사를 얘기함에 있어 이런 "문헌고증"에만, 객관에만 집중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외국의 얘기를 할 때에야 어느 정도 가능하죠. 자국의 역사를 얘기할 때는 "민족"이든 "국가"든 외칠 수밖에 없고, "당위"로 연결되니까요. 이래서 강대국들에게 실증사관이 많이 퍼졌죠. 하지만 그것도 오리엔탈리즘, 식민지 지배를 위한 정당화에 연결됩니다. 결국 이 "실증", "문헌고증"은 역사를 얘기하는 데 있어 전체가 아니라, 하나의 방법론일 뿐입니다. "사실"에 가장 접근하지만, 이를 밖으로 얘기할 때는 정말 미친 듯이 "이게 사실이다"고 얘기하지 않는 이상 무언가의 목적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당장 제가 했던 많은 얘기들, "이게 사실이다"고 하는 얘기들에는 "이게 우리의 역사이다" "이게 식민사관과 과장된 민족사관을 깨뜨리는 무언가"이다라고 했죠. 저 역시 글을 쓰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아니 애초에 교훈이 없는 역사는 그냥 재미거리일 뿐입니다. 아무리 제가 재미만 추구한다 해도 다른 목적을 아예 빼뜨릴 수 없어요. 저를 민족주의자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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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관과 실증사관, 이건 공통 분모 없이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둘 모두 방법론일 뿐이고, 아예 겹칠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려 해 봤자 다른 어떤 사관과 겹치게 되겠죠.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사실을 중시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역사가 아니니까요. 또한, 외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외치는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가 필요하죠. 여기서 문헌고증이라는 방법론이 크게 들어가는 거구요. 하지만 그에 대해서 무언가의 결론을 내리는 이상 어떤 목적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고고학의 주요 이슈 중 하나입니다.
"동아시아에는 주먹도끼가 없다."
사실입니다.
"동아시아는 서양에 비해 구석기 발달이 늦었다."
여기까진 사실이라 치죠.
"동아시아는 서양보다 후진적이다."
~( '-')~ 자. 이제 여기서 이어지는 걸 얘기해 보죠.
"전곡리에서 주먹 도끼가 발견됐다."
사실입니다.
"기존 서양 학작들의 주장은 틀렸다."
사실이죠.
"동아시아는 서양과 비교해도 딱히 늦지 않았다."
가치가 들어가죠.
"이런 주먹 도끼는 동아시아에서 전곡리에만 발견됐다."
뭐 여기까지 사실이죠.
"한국은 중일에 비해 진보했다."
민족주의가 들어갑니다. 이에 대한 반감으로 일본에서는 어이 없는 사건이 벌어지죠. 구석기 유물을 묻어뒀다가 자기가 발견한 것처럼, 일본의 구석기시대 연기를 끌어올리는 사건이요.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해선, 혹은 기존의 결론을 고치기 위해선 목적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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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이 민족주의자라 해야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역사학에 있어 민족주의는 이렇게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것에 필요한 가치 판단이거든요.
신라를 무시하고, 고구려만 킹왕짱이다고 하는 쪽에서는 저는 식민사관 매국노일 겁니다. 민족주의와는 상관 없겠죠. 하지만 아예 스케일을 키워서 "한중일 이런 문제를 떠나서 동아시아 자체의 역사를 보자"고 하는 쪽에서는 저는 우리 역사만 강조하는 민족주의로 보일 겁니다. 당장 제 글 중에 한국사 말고 다른 얘기가 있었나요?
제가 계속 사실을 강조하는 것, 그건 너무도 당연한 거기도 하겠지만 이런 "가치"에 대해서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가치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그럼에도 "사실"이라는 객관성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됩니다.
현재 임나일본부설, 이른바 남선경영설은 공식적으로 폐기됐습니다. 그 일본에서요. 이게 "민족주의적" 성과일까요? 당장 "발해 우리 역사 아니다" 혹은 "요서 경략설 부정" 이걸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일본에 있어 남선경영설 폐기가 이보다 충격이 덜 했을까요? 하지만 한국의 역사학계에선 성공했습니다. 그 정도로 남선경영설은 "객관적으로"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건 민족주의였죠. 북한에서 내세운 "분국설" 이건 남선경영을 내세우던 일본 학계에 크나큰 충격을 줬거든요.
이런 점에서 다른 문제도 같이 봐야 된다고 봐요. "객관성"을 내세우면서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들, 여기서 중요한 건 "객관성"이 아니라 "이상한 주장"에 초점을 맞춰야 되요. 맘에 들든 들지 않든, 그 주장을 깨뜨릴 수 있는 건 그 주장의 "객관성"을 깨뜨리는 것일 뿐이죠. 발해에 대해 중국에 아주 유리하거나 한국사로 절대 볼 수 없는 근거가 나온다고 봅시다. 상대는 그걸 "객관적"으로 주장하겠죠. 그걸 깨뜨리는 건 "객관적"으로 그걸 부정하는 것 뿐입니다. 그럴 수 없다면? 민족주의고 뭐고 포기해야죠. 객관성이 있어야 민족주의도 성립합니다. 양 쪽 다 객관적으로 압도적일 수 없다면? 그 때는 두 개의 주장이 양립하는 것일 뿐이죠. 어차피 이렇게 되면 누가 우세한가는 그 학자의 인지도, 그 집단의 힘, 그 나라의 힘에 좌우될 뿐입니다.
제가 발해를 우리 역사로 생각하는 것도 민족주의가 들어 있겠지만, 아래 글처럼 객관적으로 우리 역사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깨뜨리려면 역시 제가 주장한 객관적인 사료들에 대한 반론을 해야겠죠. 결론을 내리는 가치가 객관성을 잡아먹을 정도라면, 굳이 자신이 가진 가치가 아닌 자기가 가진 객관성으로 얼마든지 반론할 수 있습니다. 남선경영설을 폐기시킨 것처럼요. 필요한 반론은 "사실이 아니다"이며, 그 근거는 객관적이어야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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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실증" "객관" "사실" 과 "민족" "당위" 에 대한 저의 결론입니다. 간단히 -_-; 줄여보죠.
역사 연구에 있어 완벽한 객관은 불가능합니다. 할 수 있는 건 남은 사료들 뿐이고, 부족한 부분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자신의 믿음에 따라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 반이나 남았다에도 이미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가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흐르면 안 됩니다. 사실을 왜곡하는 "가치"는 역사가 아니라 정치이며, 사실이 왜곡된 주장은 그 왜곡된 사실을 밝힘으로써 깨뜨릴 수 있습니다. 왜곡에서 중요한 건 "객관성을 얘기하면서" 부분이 아니라, "객관적인 척 하면서 목적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는" 부분이구요.
이런 점에서 민족사관 등 여러 가치가 담긴 사관은 연구를 시작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이고, 실증은 연구를 하는 데 있어 (정말 재미로 연구하지 않는 이상) 필요한 방법론인 겁니다.
뭐 이외에...... 정말 많은 얘기들이 있겠지만 이걸로 줄이겠습니다. 역시 어렵네요. 다만, 예전부터 써 왔던 사실, 객관에 대한 제 입장은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습니다. 사실과 목적은 절대 대립할 수 없는 거라는 걸로요.
아무래도 현 사학계든 일반적으로든 분류하는 민족사학자 / 실증사학자의 계보는 어디까지나 -_-; 편의상 분류한 것 같아요. 해방 후 학계의 가장 큰 과제가 "식민사관 척결"인 이상 실증이고 뭐고 민족사관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거든요. 뭐 이 쪽이 보기는 편하죠.
아래는 쓰다가 안 어울린다 싶어서 버린 부분입니다. 다만 학계에서 식민사관을 넘어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 특히 이기백 교수가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에 대해서 짧게나마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이런 흐름을 깨뜨린 것이 이기백입니다. "한국사 신론"은 정말 지금 봐도 대단한 내용이죠. 대륙으로의 진출에만 집착하면 한반도의 국가들이 이룩한 눈부신 문화를 무시하게 된다. 한반도와 만주로 나눠 정체성론을 퍼뜨린 식민사관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한반도에 갇혔다"고 하는, 지리적 결정론을 넘어서야 한다.
"한반도와 만주는 뗄레야 뗄 수 없다. 만주를 잃은 한민족은 정체됐다."
이게 식민사관입니다.
"한반도의 국가들은 다 사대주의에 젖어 정체됐다. 하지만 만주의 국가들은 위대했다.
이것과
"한반도니 만주니 하는 지리적 결정론을 넘어야 한다. 모두 우리 민족의 역사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이것.
어느 쪽이 식민사관을 뛰어넘은 것일까요?
다른 것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한사군은 한반도가 중국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는 증거이다."
이것이 식민사관입니다.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사료는 모두 짱깨의 왜곡이고 고고학적 증거는 다 조작이다."
이것과
"한사군의 문화는 우리 것이 아니다. 역사 역시 우리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한사군에 맞서 싸우고 몰아낸 것은 우리 역사이다."
이것 중 어느 것이 식민사관을 이겨낸 것일까요?
"단군신화는 일본에서 비롯됐다. 만선+일본의 역사는 하나다."
이것이 식민사관입니다.
"식민사관은 단군과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했다. 지금의 주류, 강단 사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감히 위대한 단군 신화를 무시하는가? 바로 밑에 이기백 말 봐라. 단군신화 무시하잖아."
이것과
"단군신화는 신화다. 신화가 아닌 고조선의 역사를 연구해야 된다."
이것. 어느 쪽이 이겨낸 걸까요?
+) 참고로 전 고조선이 제정일치사회라는 거랑 단군은 후에 당골네 등과도 이어지는 말일 것이다는 것에 대해 "단군을 겨우 무당으로 비하했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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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방법론에 있어 "민족사학자"들은 현재의 "실증 강단사학자"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병도에게 이어진 실증사관의 계보니까요. 바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부정이죠.
http://www.coo2.net/bbs/zboard.php?id=qna&no=9981
현재도 이덕일, 이희진 등 "학계는 식민사관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말 합니다. 그럴 거면 지들이 직접 찾아서 밝혀 보든가요. 위에서부터 다룬 거 다마찬가지예요. 그들이 하는 건 어디까지나 딴지일 뿐입니다. 대륙에 대해서 말 하면서 고고학적 발굴을 무시하는 건 둘째 치고, 그런 자료들을 통해 새로운 이론을 취합하지 못 합니다.
정작 저기서 욕 한 국사 교과서에서 삼국시대 초기 왕들이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재위 기간"을 삭제한 것일 뿐이죠. 정작 일제 사학자들이 규정한 것에 비해 100년 넘게 건국 연대가 끌어올려졌구요. 그렇다면 그들은 이런 건국 연대와 재위기간에 대해 확실한 답을 구한 걸까요? 그냥 욕 할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강단이든 재야든, 민족주의든 실증주의든 식민사관을 깨뜨린다는 점에 있어 걸은 길은 꽤나 비슷합니다. 특히 초대 이병도에서는 그냥 똑같구요. -_-; 뭐 이병도가 실증사관을 기본으로 삼은 연구 성과는 더 있습니다만... 이런 복잡한 얘기까지는 넘기구요.
이렇기에 일본과 친일파를 내세우고, 그들의 주장과 사실까지 왜곡하면서 민족주의와 실증주의를 옳다 그르다로 분류해 버리게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