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와 여성운동의 방향 모색
조이여울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당신의 여성인권 체감지수는?
2004년 현재, 우리 사회의 가부장성은 어느 정도인가. 성차별의 정도는 어떠한가. 여성인권은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다고 봐야 하나.
정부와 언론의 여성인권지수 측정법
이러한 것들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소위 ‘유명여성인사’들이 언론에 조명을 받고, ‘임명’ 혹은 ‘배정’ 식의 할당을 ‘여성정치세력화’로 등치시켜 버리는 행태들이 계속되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여성인권지수에 대한 얘기들은 어딜 가나 흔히 들을 수 있다. 언론이나 정부에서 여성인권지수를 언급할 때는 주로 어떤 분야에 여성이 처음 발을 디뎠거나, 어떤 직급에 여성이 처음 올라선 것, 그리고 여성관련 법률이 제정되거나 개정되는 것을 토대로 다룰 때가 많다. 여성총경 1호와 여성장군 1호, 첫 여성 언론사사장과 첫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 첫 여성 장관수행비서, 첫 여성 대학응원단장의 탄생, 고용평등법, 성폭력, 가정폭력특별법, 모성관련법의 제정과 개정, 여성부의 출범, 여성국회의원의 비율과 여성CEO의 비율 혹은 증가율. 이러한 ‘수치’를 곧 여성인권지수로 매기곤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측정된 여성인권지수는 언론을 통해 그대로 반영되는데, 여성 1호의 탄생을 언론이 놓치는 법은 별로 없다. 여성이슈는 가뭄에 콩 나듯 담는 언론에서도 유명여성인사들의 얼굴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여성정치’ 또는 ‘여성정치세력화’라는 이름으로 각 언론들이 부각시키고 있는 정당의 비례대표 할당과 관련한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생색내기로 사용되는 여성이슈
이러한 방식으로 여성인권지수를 측정하는 것은 수치화하거나 통계를 내기도 쉽고 사람들의 눈에 ‘띈다’는 데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측정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가장 큰 위험성은 인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이 주로 ‘대외’용으로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엔개발계획의 여성권한척도 등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의 여성인권지수는 꼴찌 그룹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더더욱 대외 이미지 관리를 잘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엔 여성부가 생겼고 여성장군도 나왔소”라고 선전하는 것은 한 마디로 ‘뽀대’나는 일이다. 언론에선 논설을 통해 “여성고위관료 비율을 높여서 대외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제언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미국 국무부의 보고서가 한국을 인신매매 방지실태 등과 관련해 ‘3등급’이라는 최하 등급을 매겼을 때, 우리정부는 미국과 양국간 다자문제에 대한 협의를 벌이면서 등급 상향조정을 요구했고 몇 달 새 한국은 1등급으로 껑충 올라섰다. 명목상으론 우리 정부가 제도적인 대안을 모색하려고 이것 저것 방침을 세우는 등 노력을 했다는 것인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었다. 설마 하니 몇 달 새 인신매매되고 성매매 되는 여성들의 상황이 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대외적인 ‘평등지수’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외교적’으로 매겨지고, 또한 이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현재 각 정당들이(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앞다투어 여성에게 비례대표 1순위를 주겠네, 50%를 할당하겠네 하고 나서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정당의 구조개선과 개혁성향, 평등정책이나 여성인력양성과정, 심지어 할당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조차 점검하지 않은 채, 비율만 가지고 ‘여성정치세력화’를 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당의 선거 전략이자 이미지 관리 차원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언론까지 합세를 해서, 할당제가 실현되면 여성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다. 여성유권자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할당제가 어떻게 여성정치 시대를 여는 것이라 할 수 있나. 정치는 이미 ‘남성들의 드라마’로 자리잡았고, 여성과 정치의 관계는 극과 극인 듯 인식되고 있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소수 여성들이 정치권에 ‘배정’되고 ‘임명’되는 것일 뿐이다.
땅에서 하늘의 별 쳐다보기
나는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지수를 가늠해보는 데 있어, 지금 이러한 함정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에 꼽히는 ‘잘 나가는 여성’들이 여성 전체를 대변하듯 보이는 것, 십여 년 만에 여성관련 법들이 줄줄이 제정된 것, 정당이 여성우대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하면 몇 개월 만에 여성정치세력화가 가까워왔다고 전망하는 것. 사람들은, 여성들조차 이제 우리 사회가 평등해 진 건가 하고 헷갈린다. 그리고 갈수록 남성들의 ‘역차별’ 공세는 거세지고 있다.
평등에 대해 논할 때,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예를 들면 최근 군대 내 성폭력 사건들이 이슈화되기 전까지 국방부와 우리 군은 “군대에선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었다. “군대처럼 남녀 평등한 조직은 세상에 없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는데, “여자 기자라서 군 사회를 잘 모른다”나? 그러나 성폭력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통제가 심해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었을 뿐이다. 막말로 사관학교를 여성에게 개방하고 여성장군 1호가 나왔다 해서, 접대관련 업무에 하사관급 여군들을 내보내고 있는 현실이 미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여성들만이 부각되는 상황에선, 땅을 거닐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어떤 지형에 서 있는가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 발바닥을 ‘비추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차별을 겪는 사람들조차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새내기들에게 여성주의 세미나를 할 때면 언제나처럼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 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성문제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능력이 있으면 이제 남녀가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요?” 그렇게 얘기를 시작했던 학생들은 세미나를 하면서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왜냐면 남아선호, 오빠와 남동생으로부터의 폭력, 순결교육, 성희롱, 성별역할분리, 외모지상주의 등의 차별에서 자유로웠던 여성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여성들의 모습에서, 차별을 ‘차별’이라고 명명하고,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차별을 ‘감추고’ 있는 것, 쉽게 ‘평등’이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소위 상층으로 유입되는 여성들을 부각시켜 여성인권지수를 측정하고 평등을 논하는 것은, 그 ‘일각’을 제외한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은폐시키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아래로부터의 접근법
얼마 전 대학언론사 학생들이 강의를 부탁하면서 ‘한국의 여성인권’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바로 며칠 전에도 한 대학 학보사 기자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인권이 어느 정도 보장 받고 있다고 봐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대학언론인들은 ‘21세기엔 여성들의 현실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 사회에 여성주의가 확산된 것이 아닌가’라는 가정을 깔고 있었다.
나는 아까운 시간에 두루뭉실하게 ‘대한민국의 여성인권’에 대해 논하느니,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얘기해보자고 했었다. 그 때 강의를 한 내용은 한국의 ‘성매매’ 실상에 대한 것이었다. 성매매 관련 취재를 해오면서, 우리 사회에서 매매되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만큼 기 막히게 왜곡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디서나 여성의 몸은 술과 더불어 팔리고 있는데, 포주와 중개인 사이에서 노예처럼 매매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몇 년 전 군산에서 죽은 다섯 명의 어린 여성들의 주검을 접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남성들은 자기 좋을 대로 ‘성매매 불가피론’을 펴며 되려 ‘여자들 탓’을 해왔고, 정부는 유명무실한 법을 하나 가지고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해왔으며, 여성계에서조차 이 문제를 외면했었다.
군산 화재사건 이후로 성매매가 이슈화되긴 했지만, 대학생들에게 성매매는 ‘금지주의’니 ‘규제주의’니 ‘합법화’니 하는 관념적인 것으로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들의 인식도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강의 도중 들려준 현장의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주는 충격이나 문제의식은 상당히 컸다. 그 때 나는 결국 ‘성매매’ 된 여성들의 현실이 지금 한국여성인권실태이며, 여성의 성이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체 여성들의 인권지수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상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앞서 얘기한 것은 여성인권지수를 어떻게 가늠할 것인지 방안을 찾기 위해 제시한 한 가지 예일 뿐이다. 여성주의 관련 서적을 통해 접한 그림이 하나 있는데, 여성인권지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소개하고자 한다.
인간의 진화과정을 표현한 그림인데, 다른 동물들처럼 엎드려 기어 다니던 인간이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고, 현대인이 되기까지 네 장의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마 생물시간에 다윈의 진화론을 배울 때 비슷한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는 여성의 진화과정이 나와있다. 첫 번째 유인원 그림과 네 번째 현대인의 모습은 옷차림만 다를 뿐 똑같다. (네 발로) 엎드려 바닥을 닦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여성들의 현실을 빗댄 그림이다. 또한 인류, 인간, 휴머니즘의 정체가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을 비꼬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파악하기에 이 그림이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세상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은 강요되고 부계혈통주의도 견고한데, 며느리와 어머니로서의 전근대적인 역할은 여전히 기대된다. 고용차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해지는데 증거를 잡거나 싸워나가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성의 성에 대한 비하와 폭력, 도구화는 조금도 주춤하지 않았고, 이제 외모중심사회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니 받아들이라 한다. 대부분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노조를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이들의 인권은 ‘대형노조’들의 운동방향에서 계속 밀려나간다.
여성인권지수를 측정해보고자 한다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을 함께 보아야 한다. 만약 저변이 변하지 않았는데 “여성들 잘 나간다”, “여성들이 살기 좋아졌다”는 바람이 불고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위험한 신호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여성들 간의 괴리가 심해진다는 것이고, 차별을 ‘드러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표시다. 이것이 2004년 들어와 내가 가늠해 본 여성인권지수다.
<여성운동 새판짜기> 관련자료
조이여울/2002년 8월, 여성신문 게재
여성운동 ‘판’이 변한다
여성운동이 변하고 있다. 한 축으로는 기존 노동·지역·종교·평화·환경운동 내 여성주의가 확산되고 있으며 새로운 영역으로 문화운동과 사이버운동이 불붙고 있다. 다른 한 축으로는 비주류 여성운동단체의 급진적인 목소리가 떠오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 중·후반 들어와 자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수십 개의 여성모임들은 다양한 이슈에 대해 사안별로 연대하고 소그룹 문화운동을 펴거나 게릴라 운동을 모색하기도 한다.
한편 1980년대 이후 여성운동을 ‘대표’해 오던 기존 여성단체들에 대해 내·외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주의자들로 구성된 새로운 여성조직들은 기존 여성단체들의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운영을 비판하며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운동방식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런 움직임을 21세기 한국여성운동이 새로운 판을 짜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까. 정강자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대한YWCA는 8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일제강점기)에는 YWCA가 가장 진보적인 단체였을 것이다. 1980년대 들어와 여성운동은 ‘민주화와 여성인권’이라는 두 가지 맥을 함께 가져갔으며 그 토대 위에 성폭력·가정폭력·육아 등 여성고유의 이슈를 드러내는 단체들도 생겨났고 급격히 성장했다. 1990년대는 1980년대와는 또 다른 사회적 배경 하에서 여성의식이 성장했을 것이고 어느 시대든 새로운 ‘진보’를 담아내는 틀은 바뀌게 마련이다.”
그러나 새로운 이슈와 운동방식을 추구하는 여성단위들의 활동에 대해 “조직력을 갖추지 않고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들 단위들은 경제적인 기반이 전무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운동을 벌여나기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하고 여기에 회의를 느끼는 활동가들도 있다.
21세기 한국여성운동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짚어보며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해볼 시점이 됐다.
여성운동 저변확대
- 노동·지역·종교·평화·환경운동 내 여성주의 확산
“여성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졌지만 여성노동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고 10인 이하 사업장에 근무하고 있다. 큰 사업장 중심의 노총 구조로는 여성노동자의 조직화에 성공할 수 없다. IMF 이후 여성노동자의 조직률은 5%로 떨어졌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여성노동운동가들이 독자적인 여성노조를 출범시키게 됐다.” 1999년 양대 노총으로부터 분리돼 독자적인 영역으로 출범한 전국여성노조의 배경이다.
최상림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은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화하려면 여성들이 갖는 삶의 조건들 즉, 모성보호와 가정과 직장 양립문제, 관계지향적 인간관계 등 여성의 특성에 맞는 노동조합의 모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여성노조는 비정규직 문제, 모성보호, 직장내 성차별과 폭력 등 이슈에 대응하는 한편 대안적 노조운영방식에 대한 고민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1999년 발족한 여성환경연대 역시 꾸준히 환경운동을 해왔던 여성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단체다. 여성환경운동가들은 환경운동단체 내 여성들의 비율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주요 결정권은 남성들에게 있고 여성들은 주로 동원 대상으로 인식된다는 점, 육아와 가사를 담당해야 하는 여성활동가들을 조직이 배려하지 않는 점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
여성환경운동가들은 더 나아가 ‘여성과 환경’ 이슈에 대한 진지한 접목을 시도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성환경연대 측은 “지구의 위기, 생명의 위기는 인간중심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물신숭배 문화가 빚은 결과”라며 “여성적 가치인 공존과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에코페미니즘을 주창하고 있다. 여성환경연대는 친환경적인 문화를 확산시키고 여성환경운동 정책을 개발하는 한편 여성환경운동가 양성과 교류에도 활동의 큰 비중을 두고 있다.
2001년에는 오랜 기간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해 활동해왔던 여성활동가들이 이주여성인권연대를 창립했다. 창립멤버인 안양 전진상 복지관 이금연 관장은 “이주노동자 문제라고 하면 연수제 폐지, 전체적인 노동권 등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여성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는 성폭행과 성차별, 성매매, 결혼과 양육 등 여러 가지 인권문제가 보인다”며 “이주여성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주여성인권연대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의 성매매와 인신매매 문제, 국제결혼가족 문제 등의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평화운동의 영역에서 건져낸 여성주의는 세계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망을 형성하는 값진 결실을 맺고 있다. 90년 11월 발족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활동은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운동으로 출발했으나 ‘전쟁과 여성인권’이라는 이슈로 발전·확장됐다.
정대협의 윤미향 사무처장은 “92년 유엔인권위원회 활동을 통해 보스니아 여성강간캠프 등 국가권력을 이용한 여성인권침해에 대응하는 각국 여성평화단위들과 연대하게 됐고 위안부 문제를 ‘성노예’ 문제로 조명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1991년 1월16일 미야자와 일본 수상의 방한을 계기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한 수요시위는 2002년 8월 14일로 521차를 맞이했으며 이같은 할머니들의 싸움은 ‘묻혀진 여성의 역사를 드러내는 용기 있는 투쟁사’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1992년 고 윤금이씨 살해사건을 계기로 미군범죄피해자 인권보호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위해 1993년 결성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최근 들어 기존 반미·평화단체와는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정유진 전 사무국장은 “활동을 하면서 여성주의를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민족문제에 여자가 나서서는 안 된다는 말을 7년간이나 들었다. 이 운동에 이렇게 헌신하는 여성들이 있는데 왜 민족문제에는 남자만 나서야 하는가. 민족과 이데올로기 중심의 반미운동권이 갖는 모순이 다 그 말에 담겨있다고 본다.” 정씨는 “여성과 아이들, 사회적 약자를 배제시키는 남성중심 담론에서 벗어나 정말 나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 평화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1999년부터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고양시민의 러브호텔 난립저지운동은 여성이 중심이 된 풀뿌리운동으로 지역여성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일산신도시 내 러브호텔의 수는 9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었으며 러브호텔 내 룸살롱, 안마시술소, 유리방 등 성매매 업소가 성행하고 있다.
러브호텔 반대운동의 불씨를 살려나간 것은 다름 아닌 지역여성들이었다. 가정주부들이 러브호텔 실태조사를 벌였고 거의 매일 고양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끈질기게 운동을 전개했다. 고양시는 러브호텔 난립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주민들은 이에 더 나아가 신축 중인 러브호텔 허가취소와 영업중인 곳을 매입해 폐쇄시키라고 요구하는 한편 ‘호텔 한뼘사기’ 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열기는 올해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고 고양시 여성들의 활동은 전국적인 러브호텔 반대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보수적인 한국종교계에서도 ‘성평등’을 요구하는 여성종교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0년 11개 천주교 여성단체들은 가톨릭여성단체연대를 결성해 ‘여성 사목위원 20∼30% 할당’ 등을 요구했으며 2001년 3월에는 주교회의 산하에 최초로 여성신도들의 단독기구를 꾸렸다. 개신교 여성들은 2001년 4월 ‘교회내 성폭력 추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교회내 성폭력금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여성목사 안수문제와 성역할 고정관념적인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불교계에서도 2000년부터 불교여성학 논의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불교여성개발원이 설립됐다. 올해 5월 완공된 ‘전국비구니회관’은 1980년부터 ‘비구니들의 1평 사기’ 운동을 펼친 지 22년만에 거둔 성과. 비구 중심의 종단운영을 비판하며 “비구니 스님의 위상 강화를 위해”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2001년 11월 원불교 여성교무들은 원불교학과 입학시 일괄적으로 받는 정녀지원서가 “순결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정녀선서를 집단적으로 거부했다.
올해 6월 각 종교계에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종교여성연대’를 발족시키고 호주제가 종교의 근본교리와는 무관한 것임을 주장하며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여성종교인들은 신앙의 차이를 극복하고 성평등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연대하고 있다.
여성 학생운동에서 학생 여성운동으로
- 대학내 여성자치조직 활성화
199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 여학생운동 진영에 여성주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민중운동, 계급운동을 하는 여학생조직에서 여성운동조직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대학에 여성운동을 전담하는 여성위원회, 소모임 등의 자치조직이 생겨났고 총여학생회 선거에는 ‘여성주의 선거운동본부’가 등장했다. 이들 대학 여성주의자들은 기존 운동권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급진적 담론을 수용하며 성장했다.
이들은 주로 문화제를 통해 성담론과 여성주의 이슈를 표출했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 1995년 연세대 총학생회가 주최한 ‘날 강간하라! Rape Me!’ 성정치 문화제와 1996년부터 시작된 이화여대 페미니즘 문화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를 들 수 있다. 퍼포먼스와 문화적 접근을 통한 대학여성운동은 올해 부산대 총여학생회가 개최한 ‘콘돔서약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대학 여성주의자들은 특히 대학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며 연대망을 확산시켰다. 1996년 이화여자대학교 여성위원회는 고대생 난동을 ‘집단성폭력’으로 규정하며 성폭력 담론을 ‘공간’으로 확장시켰다. 이후 대학내 성폭력 근절과 여성권 확보를 위한 여성연대회의는 여러 해 대학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을 벌여왔으며 반성폭력 학칙제정운동은 2000년대에 들어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그런가 하면 여성노동운동을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도 지속됐다. 기존 노동자·민중 담론에 여성이 부재함을 비판하면서 여성주의적 노동운동을 고민했고 98년 ‘여대생 먹고살기 대책위원회’ 2000년 ‘메이데이 여/聲’을 결성했다. 한편 대학여성주의자들의 만남과 연대를 꾀하고 여성운동방법론을 모색하는 ‘여성연대 한판’은 1998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여성운동
- 급진적 이슈 내걸고 주변부에서 손잡다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치세력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기존 여성단체들은 낙선운동을 하거나 정책을 제안하는 식의 소극적인 형태에만 머물렀다. 그런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후보, 여성주의적 후보를 만들어 내야한다.”
올해 8월 4일 발기인대회를 개최한 여성해방연대는 여성운동이 ‘정치성’을 띠어야 하며 적극적으로 선거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해방연대에는 기존 여성단체 실무자들이 다수 회원으로 소속돼 있다. 시니옥분 여성해방연대 준비위원장은 “위계적인 조직체계와 ‘큰 사안’ 중심 활동에 회의를 느낀 실무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싶은 운동을 벌이고자 모인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성해방연대는 장애인이동권, 성폭력, 성적소수자 차별 등에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성적소수자 단체이자 여성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는 한국여성성적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는 작년 추계여성학술대회의 ‘레즈비언페미니즘’ 논란을 통해 “한국 여성학회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 여성·상담단체에 ‘동성애 바로알기’ 강의를 통해 “단체 실무자들부터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깰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편 끼리끼리가 작년부터 레즈비언 단체와 공동으로 전개하고 있는 ‘동성간 성폭력 근절 캠페인’은 기존 성폭력 담론에서 한 발 나아가 다양한 권력과 계급이슈를 포함한 새로운 인권개념을 대두시키고 있다.
여성 독자노조로 출범한 서울여성노동조합은 작년 한 해 여러 가지 급진적인 이슈를 공론화했다. “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권리 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2심까지 승소판결을 받아냈고 “파출부·보모에게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라”며 가사노동의 유급화 문제에 접근하기도 했다. 또 작년 뜨거운 감자였던 모성보호관련법 개정논란에서 ‘생리휴가’를 타협안으로 내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최하위층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대변하고자 하는 단체의 성격을 드러냈다.
“더 이상 장애인 단체에서 구색맞추기 식으로 존재하지 않겠다”며 1998년 여성자치조직으로 만들어진 ‘장애여성공감’의 회원들은 ‘여성장애인’이 아닌 ‘장애여성’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장애인이라는 범주 안에 여성/남성으로 분리하는 것을 반대하며 여성의 범주 속에서 장애에 대한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장애여성공감이 올 한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슈는 ‘장애여성의 성’이다. 배복주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장애여성의 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를 대상화하는 것 뿐”이라며 “스스로의 성적억압과 욕망, 사회의 시선에 대한 느낌 등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회원들 사이에선 이문열의 소설 <아가>와 최근 개봉한 영화 <오아시스>를 둘러싸고 열띤 논쟁이 진행중이다.
2001년 9월 미국의 대 아프간 전쟁을 앞두고 평화를 원하는 여성단체, 여성웹진, 여성언론, 여성개인들이 모여 발족한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 ‘WAW’(Women Against War)는 “평화담론에 더 이상 모성은 없다”며 어머니의 관점이 아닌 전쟁의 최대피해자 여성과 소수자의 관점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WAW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WAW는 북한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소위 우익진영이나 반대로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좌익진영을 함께 비판한다. WAW는 앞으로 북한사람들의 입을 통해 다양한 삶과 현실에 접근해보는 ‘소수자의 시선으로 북한 만나기’를 진행해 “어떤 정치적 이념에도 휘둘리지 않고 평화와 인권에 대한 관점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비주류 여성단체들은 조직의 운영과 운동방식에 있어서도 기존 여성단체들과의 차이를 확연히 나타내고 있다. 대표가 없거나 있더라도 다른 모든 실무자들과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갖는 ‘원탁식’ 조직운영을 하며 다른 단위와 활동을 함께 함에 있어서도 ‘연합’체가 아닌 ‘수평적 연대’의 원칙을 고수한다. 또한 끼리끼리와 WAW 등의 단체는 정부로부터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 프로젝트 기금을 받기보다는 국제여성·평화재단으로부터 후원 받는 것으로 활동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2001년 명동에서 3·8여성대회를 개최한 ‘차이가 힘이 되는 여성연대’는 “중심을 향해있는 여성운동의 방향을 주변으로 돌리겠다”고 공언해 주목받았다. 여성연대에 합류한 단위들은 장애여성공감, 끼리끼리, 서울여성노조, 군사주의와 매매춘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 연대 CAMP와 대학여성모임 등으로 3·8대회에선 각 단위의 이슈들을 한데 묶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화시키는 쪽을 택했다.
당시 3·8여성대회에 참가했던 장애여성 한 명은 “기존 여성단체와의 행사에서 우리의 존재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말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관련] 한국 여성운동 위기인가
활동가들의 비판적 성찰 필요한 시기
글: 정경자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여성운동 단체에서 일했다. 호주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에서 급변하는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서 여성운동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호주와 한국의 두 여성운동 조직을 통해 비교연구했다.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사회정책 조사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여성운동이 변하고 있다. 아니 변해버렸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운동이 놓여 있는 여건의 변화에 따라, 또한 여성활동가들의 면면이 바뀜에 따라 여성운동 또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우리의 경우 김영삼 정부 집권이후, 더 나아가 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여성운동이 좋은 시절을 만났다. 여성운동 단체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늘어났고 보다 지속적이고 안정된 활동을 펼쳐갈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됐다. 각종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 줄 법들이 마련되고 성폭력 가정폭력 등을 호소할 기관들이 대폭 증설됐다.
뿐인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여성부가 설립됐고 적지 않은 수의 전직 여성활동가들이 주요한 공직에 진출해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관료가 됐다. 물론 오늘의 이러한 결과들이 그 동안 여성운동과 활동가들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실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과연 여성운동은 르네상스인가.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여성운동단체를 방문하고 행사에 참여했다. 또 과거 동료들을 만나 여성운동 판의 속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과연 우리는 운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활동가들은 괴로워하고 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쥐꼬리만한 활동비에도 불구하고 여성운동의 이념 때문에 여성운동에 헌신하고자 그곳에서 활동한다. 살아남기 위해, 아니 다른 운동단체를 누르고 확장 팽창하고 더 많은 프로젝트들을 따내야하므로 운동성 있는 사업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프로젝트를 따기 위한 일회적 전시적 행사를 치러내느라 밤이면 밤마다 야근이다.
운동권으로서 가져야 할 비판의 기능은 제도권과의 긴밀한 관계로 인해 약화돼 버렸다.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찾아 바쁘게 뛰어야 할 활동가들이 재정보고서 작성이 주 업무가 돼버리기도 한다. 또한 평등, 민주, 보살핌, 자매애 등의 여성주의 조직원리들은 조직이 양적으로 팽창함에 따라 효율성의 원리에 밀려나 버리고 있다. 활동가들은 힘들다, 지쳤다, 피곤하다고 호소한다.
이것이 과연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기를 살려주는 운동판의 모습인가. 여성운동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여성운동이라고 믿으며 활동하는가.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모든 사회제도와 실천들은 비판적인 성찰을 통해 변화 발전해 왔다. 여성운동도 예외일 순 없다. 우리 사회는 여성주의 시각에서의 성찰이, 비판이, 평가가 여전히 필요하다.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먼저 여성주의 원칙들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왜 여성운동을 하는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리고 어떤 전략으로 그 목표들을 달성해 나가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운동가들이 모여서 토론해야 한다. 여성운동을 이끌고 구성해 나갈 중심은 바로 활동가들이다. 따라서 활동가들의 여성의식 고양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또한 정부의 재정지원의 한계를 미리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부 재정 지원이 여성운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미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즉, 운동성이나 급진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또한 조직의 측면에서는 위계화·관료화되는 경향이 높으며 주로 상담이나 쉼터와 같은 서비스에 재정지원이 집중된다.
일례로 내가 연구했던 호주 한 여성운동 단체의 경우 99%의 재정을 정부에 의존해 왔다. 활동의 증가로 예산증가가 불가피해 거리시위, 탄원서, 로비활동을 통해 재정증액을 요구했으나 관련 정부단체에서는 두 명의 감사관을 파견해 그 동안의 활동을 면밀히 검토했고 증액요구는 거절됐다. 결국 24시간 상담업무를 유지하기 위해 유일한 한 명의 운동부 간사가 해고됐고 70∼80년대 호주의 가장 급진적인 여성단체였던 이곳은 이제 그저 여성주의 상담기관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20년 뒤의 우리 운동의 모습일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끝으로 이 변화된 시대에 여성운동의 급진성을 담보하기 위해 예리한 칼날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지금 여성들이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관심을 늘 기울여야 한다. 그 여성들 옆에 서서 문제의 해결을 도와주고 힘을 줄 때 여성들은 여성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한다. 이런 여성대중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운동성의 뿌리임을 기억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