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력 섣달이 되면 어느새 춘절 분위기다. 폭죽을 비롯한 대련 등 춘절용품 파는 곳이 무척 많아지고 길 앞까지 쌓아놓은 물건들로 시장 주변은 온통 붉은색 일색이 되어 중국 최대의 명절이 다가왔음을 직감하게 된다.
섣달 초파일에 라빠저우(臘八粥)를 먹는 것으로 본격적인 춘절행사가 시작된다. 라빠저우는 쌀, 좁쌀, 찹쌀, 수수, 팥, 대추, 호두, 땅콩 등 갖은 곡식을 넣어 끓인 죽을 말하는데 이를 먹는 것은 오곡이 풍성하기를 바라는 의미라고 한다.
▲ 폭죽의 흔적 설날엔 전날 온종일 터트린 폭죽의 잔해들이 골목길을 가득 메우곤 한다.
섣달 스무사흗날은 쇼녠(小年; 작은설)으로 사실상 춘절의 시작이다. 이날은 엿을 만들어 조왕신(부엌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홍등(紅燈)을 대문간에 걸고 폭죽을 터트린다. 23일을 작은설로 쇠는 것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어 옮겨 본다.
옛날에 가난한 노인이 탄광에서 일하는 늦둥이 아들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만난 길동무는 저승사자였다. 저승사자는 노인의 아들이 일하는 탄광의 광부들을 모두 데려가기 위해 가는 참이었다. 이를 알게 된 노인이 자신의 아들을 살려주면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애원하여 무사히 아들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3년 뒤 노인이 섣달 스무사흗날 밤에 부인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 이를 조앙신(부엌신)이 엿듣고는 옥황상제에게 고자질을 했다. 옥황상제가 대노하여 저승사자를 벌하고 노인의 아들도 데려갔다. 사람들은 매년 이날에 조앙신에게 엿을 고아서 제사를 지내며 속세의 시시비비를 천상으로 옮기지 않기를 빌었다.
23일 쇼녠을 시작으로 24일은 대청소와 묵은 빨래, 25일은 두부콩 갈기, 26일은 고기 삶기, 27일은 닭잡기, 28일은 밀가루 불리기, 29일은 춘련(春聯) 붙이기, 30일은 제석(祭夕)지내기 등 춘절 준비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다. 그 때문인지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날부터 휴가에 들어 중국공장을 하청으로 둔 기업들은 애를 먹기도 한다. 쇼녠엔 직원들에게 특별 음식을 제공하고 폭죽을 터트려 춘절을 기다리는 마음을 함께 표현한다.
섣달 그믐날은 춘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이날은 시간대별로 갖가지 행사가 이어진다. 오전엔 집안에 녠화(年畵)라고 하는 그림을 붙이고, 대문에는 두이롄(對聯)과 ‘복(福)’자를 거꾸로 붙인다. 춘롄(春聯)이라고도 하는 대련은 원래 복숭아나무로 만든 두 개의 판자에 귀신을 쫓는 부적을 그려 놓은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보통 대련의 대구는 희망을 표현하는 글을 붉은 종이에 붓으로 쓰며 문신상(門神像)은 악마를 쫓는 작용을 한다.
▲ 홍등과 대련으로 치장한 대문 농촌 가옥의 전형적인 춘절맞이 장식이다. 설날엔 대문을 열어 놓는데 배년을 위해 방문하는 이를 위함이라고 한다.
‘福’자를 거꾸로 붙이는 이유는 ‘거꾸로’라는 뜻의 중국어 ‘도(倒)’와 ‘오다, 도착하다’는 뜻의 중국어 ‘도(到)’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전해오는 풍습이라는데 요즘은 보통 대문 바깥쪽엔 똑바로 붙이고 안쪽에 거꾸로 붙인다고 한다. 그래야만 온전히 복이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예전엔 거꾸로 붙인 집이 많았는데 최근엔 거꾸로 붙인 곳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믐날 오후가 되면 남자들이 산소에 가서 조상을 모셔 오는데 이를 궈녠(過年)이라고 한다. 농촌은 대개 집성촌이라선지 이날 마을 어귀에 있는 공동묘지에서는 친족들이 함께 모여 궈녠을 지내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긴 대나무 장대에 폭죽을 걸어 터트리며 산소 봉우리에는 조상이 쓰실 돈(노란종이)을 놓는 것으로 조상을 모시는 절차가 진행된다.
이날 저녁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이를 옌예판(年夜飯)이라 한다. 이때는 정성껏 준비한 진기한 음식들을 먹는데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폭죽을 터트린다. 한해를 무사히 지낸 것에 대한 감사와 새해에도 건강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교자(만두)를 빚는다. 요즘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느라 교자 빚는 일을 게을리 하는 남자들 때문에 여자들 불평이 많아졌다고 한다.
섣달그믐날에 모인 가족들이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는 것은 우리와 비슷하나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 우리와 달리 이곳에선 자정에 산소에서 모셔온 조상께 절을 하고 온가족이 빚은 교자를 먹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이를 제석(祭夕)이라 한다. 교자(만두) 속에 동전이나 설탕을 넣은 것을 섞어두고, 이를 먹게 되면 돈을 많이 벌며 한해를 달콤하게 살게 된다고 믿는다.
이때 또 일제히 폭죽을 터트리는데 이는 산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녠(年)을 물리치고 천수(天壽)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날은 온종일 폭죽 터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아 꼭 전쟁터에 있는 느낌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 대련을 붙이고 폭죽을 터트리며 불을 환하게 밝히는 풍습에 대한 전설도 옮겨 본다,
춘절의 다른 이름으로 "과년(過年)"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 "과년"에 대해서는 흥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중국에 "년(年: 니앤)"이라는 괴상한 짐승이 살고 있었는데, 길쭉한 머리에 뾰족한 뿔을 한 이 짐승은 성질이 매우 흉악하였다. 이 짐승은 평소에는 깊은 바닷속에 살다가 섣달 그믐날만 되면 육지로 올라와 가축을 잡아먹고 사람을 헤치곤 하였다.
따라서 섣달 그믐날만 되면 "년"이라는 놈을 피해서 온 마을 사람들은 깊은 산속으로 도망가야만 했다. 어느해 그믐날 사람들이 다시 짐을 꾸려서 산으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동쪽에서 한 백발노인이 찾아와 한 노파에게 자기를 하룻밤만 묵게 해주면 그 "년"이라는 놈을 쫓아 버리겠다고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 노인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노파도 그 노인에게 빨리 산으로 숨기를 권했다. 그러나 노인은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마을에 그대로 남아있겠다고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하는 수없이 노인을 그대로 남겨둔 채 급히 산속으로 숨었다.
드디어 "년"이라는 놈이 나타나서 사납게 마을을 덮치려고 할 때, 백발노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년"을 향해 폭죽을 터뜨렸다. 갑자기 터진 폭죽소리에 깜짝 놀란 "년"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더 이상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알고보니 "년"이라는 놈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바로 붉은색과 불빛, 폭죽소리였던 것이다. 이때 대문이 활짝 열리더니 붉은 도포를 입은 노인이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것을 본 "년"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쳤다.
그 다음날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은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조용했으며, 그 노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마을사람들은 그 백발노인이 자기들을 위해 "년"을 쫓아주러 온 신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때 사람들은 그 백발노인이 "년"이라는 놈을 쫓을 때 사용했던 세 가지 보물을 발견하였다. 이로부터 매년 섣달 그믐날이면 집집마다 붉은 대련(對聯: 댓구로 된 글귀)을 붙이고, 폭죽을 터뜨리며, 밤새 등불을 환히 밝혀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설날엔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남자들은 이웃으로 바이녠(排年)을 다닌다. 우리의 세배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여자들은 대문 밖을 나갈 수 없어 남자들만 다니는 것, 덕담을 주고받는 것, 세뱃돈을 주는 풍습까지 우리와 아주 비슷하다. 바이녠(排年)은 전날 녠(年)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것을 서로 축하하며 인사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다시 조상을 산소에 모셔다드리는데 이를 쑹녠(送年)이라 한다. 이 때 산소 봉우리에 놓았던 돈(노란종이)을 태운다. 그렇지만 조상께 하는 차례는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진다. 궈녠에 차린 차례 상의 향을 꺼트리지 않으며 의관을 정히 하고 매일 새로 찐 만토(찐빵)를 올린 뒤 절을 한다. 설날 아침에만 차례를 지내는 우리완 사뭇 다른 모습이다.
▲ 연화와 차례상 벽에 조상의 가계도가 적힌 연화 붙이고 차례 상을 준비해 조상을 기린다.
정월 초사흗날은 여자들이 나들이를 시작하는 날이다. 이날은 결혼한 여인들이 남편과 함께 친정을 방문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설 사흘째 되는 날엔 길거리에 선물을 챙겨들고 처가를 찾는 가족단위의 사람 물결이 넘쳐난다. 이들을 겨냥해 철시한 상점이 문을 열기도 하며 대로변에선 노점상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장사를 일찍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라고 한다.
요즘이야 공식 휴일도 사흘뿐이고 형편에 따라 일을 일찍 시작하는 곳도 많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 정월 초파일에 개업을 했다. 이는 숫자 8(파八)이 돈을 번다는 뜻의 파차이(發財)와 발음이 비슷해서 8자를 무척 좋아해 생긴 풍습이 아닐까 싶다. 이날 역시 폭죽을 터트리는 것으로 개업을 알리거나 '많이 터트릴 수록 돈을 잘 번다는' 것 때문에 상해인들에겐 최고의 폭죽잔치 날이다.
나는 음력 1월1일, 2일도 아닌고 춘절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하루 종일 터지는 폭죽소리에 왜 그럴까?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었을 정도^^
정월대보름인 ‘원소절(元宵節)’은 지금까지 지내온 춘절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원소절엔 찹쌀 경단인 웬쇼(元宵)를 먹으며 역시 폭죽을 터트린다. 춘절 내내 폭죽을 터트렸으면서도 이날의 폭죽은 그 어느 날보다 더 요란하다. 폭죽을 많이 터트림으로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지, 부의 과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부자들은 경쟁적으로 마지막까지 폭죽을 쏘아댄다. 이번 춘절기간에 얼마치의 폭죽을 터트렸는가가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불꽃의 아름다움보다 연기와 소리에 더 주목하는 이곳의 폭죽문화는 무지막지한 소리에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다. 하지만 요즘은 밤하늘에 퍼지는 불꽃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나날이 그 아름다움도 더해가고 있다. 폭죽에 의한 사고가 많아 도시에선 한때 금지되기도 하였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어쩌면 폭죽은 중국인에게서 떼려야 뗄 수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소절이라 부르는 양력 2월 9일(정월대보름)의 엄청난 불꽃놀이를 기대해 보며 기나긴 글 읽어주신 인내심에 xie xie ^^
|
첫댓글 넘 재밌어요. 복자가 집안에서 거꾸로 된 것도 문화의 자그만 진화이군요. 페이창 깐시에~~
이렇게 긴 일기를.. 혜진님은 어디에?
중국은 아직 전통이 남아있는듯 ?
작 읽었습니다. 긴 글 쓰시느라 수고하셨구요....
사진이 정말 멋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너무 잘 읽었어요^*^拜年이라고 해야될것 같은데...오타가 난것 같네요...ㅎㅎ
자세한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님께서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덕분에 중국문화에 대하여 한벌짝 다가간것 같군요 감사함다... 자알 읽었습니다...
일땜시 하얼빈에서 맞이했던 몇년전 춘절이 기억나네여 ...
매년 겪는 일이지만 폭죽 터칠때만큼 시끄러울때가 없네요...어릴땐 많이 터쳤는데...
사진멋져용^^^
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들렀는데 재미있는 이야기와 새로운사실을 알게되어 정말유익했습니다. 신정에즉1월1일에 중국에있었는데.그때도 폭죽소리에 잠을 설친 일이 기억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유익한 글 잘 읽었어요.^^ 안그래도 어제 하루내내 공습경보속에 지냈습니다. 경귀일어날 정도더군요. 지금까지도 못 다 터뜨린 폭죽소리가 간간히 들려요. 아~ 시로~~ -_-
유익한글 감사하고요...우리네 설 문화에 대해서도 다신한번 흩어봐야 할 꺼 같네요...글내용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자세한내용 감사 수고했어요!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궁금했었는데..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过年,拜年,送年에 대한 상식 真的感谢!!!
잘 읽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넘 잼나는 애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