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2-1) 내 영에 비밀히 내주하시는 성령에 이르는 길(1)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1테살5,23)”
1. 내주하시는 영에 이르는 열쇠
거룩하게 함은 하나님의 활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그것은 인간 인격 전체 곧 인간의 영, 혼, 몸 전체를 통합한 실존에 관계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의 삶을 지키셔서 그 목표에 능히 이르실 수 있으시다.(1코린1,8참조)
먼저 신약성경 영문번역본과 헬라어 행간역을 보면, 어떤 번역은 영을 대문자(Spirit)로 표기하고 있지만, 또 다른 번역성경들은 소문자(spirit)로 쓰고 있다. 그러나 헬라어 행간역은 이 구절의 영이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쓰지 않고 있다. 특히 로마8,2; 8,4-5절에 와서 헬라어 행간역은 흠정역은 대문자로 표기하는데 비하여, 헬라어 행간역은 대문자로 쓰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번역본마다 이러한 불일치가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번역자마다 이런 구절에서 영이 성령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영을 말하는 것인지 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영이 성령과 함께 연합되었기 때문에 1코린6,17절을 보면 이 두 영이 한 영으로 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이 영이 사람의 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이 영을 성령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구절에서는 문맥상 영이 성령인지 아니면 사람의 영인지 분명히 나타날 때도 있다. 몇 구절을 다시 설명해 보자.
롬8,10절은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 10절의 영은 문맥상 분명히 성령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몸과 비교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을 우리의 몸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우리의 몸과 비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의 영이다.
롬8,11절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11절은 우리의 연약하고 죽을 몸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아나고 소생되어 강해질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므로, 죄로 인하여 죽은 우리 몸까지도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날 수 있다. 내주하시는 성령은 우리의 영을 소생시키실 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의 몸까지도 소생시킬 수 있다.
여기서 강조점은 성령과 사람의 영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영적 여정이란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거나 혹은 안 계신다는 터무니없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령의 내주하심을 모르는 것과 사람의 영이 성령의 거처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믿는 이들이 이 두 영이 한영으로 연합되었다는 것을 모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의 표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표적을 놓치고 있다. 열쇄를 사용해서 문을 열 때에만 비로소 집 안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그 열쇄는 바로 사람의 영이 성령의 거처가 된다는 것이며, 우리 사람의 영이 놀라운 성령과 하나라는 것이다.
2. 사람의 영이 열쇠이다.
히4,12-13절은 “하나님의 말씀음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말한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광야에서 좋은 땅으로, 방황하는 단계에서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는 단계로 계속 나아갈 것을 격려하는 책이다. 그 당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던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떠나 유대교로 흘러 떠내려갈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들은 유대교에서 구출되어 안식할 좋은 땅에 들어가야 했지만, 도중에 유대교와 그리스도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히브리서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만유를 포함한 생명과 안식으로 취함으로써 방황하는 단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쓰였다. 히브리서도 역시 지성소를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지성소가 어떤 면에서 바로 우리의 영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람의 영이 지성소이다. 성전의 세 부분은 사람의 세 부분인 몸과 혼과 영에 일치한다. 성전의 가장 속 부분인 지성소는 바로 우리 존재의 가장 갚은 곳인 사람의 영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예표인 법궤가 지성소 안에 있었듯이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은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는 지성소이다. 따라서 우리의 영을 분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지성소를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오늘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성육신과 인간 생활과 이 땅에서의 고난 등 모든 것을 이미 이루셨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우편 보좌에 앉으셨다. 놀라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셨고 이제 이 모든 실재는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 안에 있다. 이 성령께서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셨으며, 이제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거처라는 것이 요점이다.
만일 우리가 이 놀라운 영을 접촉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영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당신이 나를 접촉하고자 한다면 내가 어디에 사는지 알아야 한다. 히브리서 4장12절은 우리의 지성소인 우리의 영 안으로 계속 나아가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쓰였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은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는 지성소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영을 분별할 수 없다면, 오늘날 주님께서 계신 장소인 지성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분배하는 곳이 바로 우리의 영이다. 우리가 우리의 영을 분별하고 주님을 접촉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사용할 때, 우리는 주님으로 침투되고 적셔져서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