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변호사는 늘 푸른 셔츠를 입는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재심을 주로 맡는다. 재심은 한국 사법 체계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갈대처럼 흔들리며 살던 시절 측은지심과 믿음으로 자신을 붙잡아준 어머니의 마음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박 변호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건 현장과 기록을 뒤지고 법정에 선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남을 채우는 나눔의 정의를 실현하고 싶다는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사진 이현준
Prologue
전·현직 법조인들의 비리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과연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던 즈음 박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불가능하다는 재심 사건 전문 변호사다. 재심이 어려운 이유는 경찰과 판검사, 변호사까지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이의 책임을 다시 묻는 일이어서다.
사법 체계 전체에 대한 도전이기에 이 싸움에 도전하는 이는 많지 않다. 박 변호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그 일이 자신의 몫이라고 믿는다.
박 변호사의 ‘물매돌’은 법과 정의. 박 변호사의 법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법 1.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
그가 처음 법을 선택한 이유는 ‘잘 먹고 잘 살며 떵떵거리기 위해서’였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그에게 사법고시는 삶의 질을 바꾸는 동아줄이 었던 셈. 하지만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읽은 책 속의 법은 ‘일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더란다.
“노량진에서 고시 공부를 하며 여러 삶을 만났죠. 법으로 보호받아야 하지만 법을 몰라서 법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도 많이 봤고요. 법으로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막 살았던’ 그가 사법고시를 준비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고시 준비를 하기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남들보다 공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죠. 하지만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에 어떤 방법으로든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도 고시를 준비하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법 2. 컵라면 하나를 아껴 먹는 아이를 보는 마음
박 변호사의 고향은 완도. 중2 때 어머니를 잃고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를 졸라 광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고1 때 자퇴를 하고 서울로 인천으로 떠돌며 공장과 식당 등을 전전하며 ‘막’ 살았다. 그렇게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새어머니.
“새어머니는 사랑이 많은 분이세요. 일찍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는 저를 측은히 여기고 말없이 끝까지 믿어주셨어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집안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 뒷바라지를 가장 먼저 해주셨고요.”
그가 억울한 이들의 재심 사건에 시간과 능력, 물질과 마음을 다하는 것도 어머니에게서 배운 측은지심과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낄 때 사랑의 힘은 어마어마해집니다. 컵라면 하나를 아껴 먹는 아이를 보는 마음으로 법의 힘과 능력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변호사 1. 강자가 되려면 변호사의 꿈을 접어라
그는 ‘누군가를 누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마음’이 불행한 삶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서 ‘강하다’는 의미는 돈과 권력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의 강함을 원한다면 변호사의 꿈을 접으라고 그는 단호히 말한다.
“법은 세상의 모든 영역을 규율하지요. 활동의 폭이 무척 넓어요. 다각도로 사회 활동을 하며 역동적인 삶을 살기 원하고 강자에게 유린당하는 약자를 돕고 싶다면 변호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업입니다.”
문득 그가 세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자기 곳간을 헐어 남을 도우려면 가족에게 해주어야 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큰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이사를 했어요. 아이가 친구 옆으로 이사 가자고 조르더라고요. 평소 ‘아이의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아이의 소원도 들어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형편이 안 됐어요. 그때 갈등이 참 컸어요.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금전 문제를 얘기할 수도 없었고요.”
마음이 아팠지만 그것조차 아이가 경험하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변호사 2. 나는 ‘금수저’ 변호사
‘삶은 사람과 세상에 부대끼고 눈물 흘리고 참고 인내하는 것’을 모든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며 갑자기 그가 금수저, 흙수저의 기준을 물었다.
‘은행 잔고, 집의 크기, 사는 동네, 자동차 종류…’
리포터의 생각을 읽은 듯 그가 말한다. “그런 기준이라면 저는 태생부터 흙수저입니다. 하지만 누가 흙수저와 금수저의 기준을 정했나요? 가진 것으로 사람을 나누는 기준에 저는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금수저의 기준은 정직과 성실이다. 그에게는 열심히 사는 모든 사람이 다 금수저다.
“간혹 세상이 말하는 금수저가 아니라고 미안해하는 부모님들도 있더군요. 간접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깊고 완전하게 남는 것이 없지요. 어려운 환경은 불행이 아닙니다.천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지요.”
법 3. 안전망
그는 “살아가며 어려움을 겪더라도 사회적 체계 때문에 개인의 삶이 희생당하지 않는 공정한 법적 체계가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법은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오류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실수를 바로 잡는 것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물론 공권력의 개입, 증거나 기록의 의도적 무마 등 다른 요소가 개입하는 예도 많아요. 그래서 재심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재심의 과정은 길고 지루하다. 16년 전인 2000년 8월에 발생한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은 박 변호사가 재심 청구를 한 때가 2013년, 2015년 12월 대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범인으로 몰렸던 15살 소년은 이미 10년의 형량을 마쳤고 그가 겪은 정신적 고통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무죄 판결을 받으면 형사 배상이나 국가배상을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겠죠. 그 소년이 잃은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소년의 잃어버린 10년과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아직 우리 사회에 정의가 남아 있음을 밝히고 싶어 길고 긴 재심 과정을 버팁니다.”
미즈내일
Epilogue
그의 사무실은 온갖 사건과 관련한 서류 더미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벽 위의 보드판에 적힌 일정에는 쉴 틈이 지보 이않는다.
사무실 벽에는 많은 편지가 붙어 있다. 수감 중인 재소자들, 재소자의 가족들이 보낸 편지다.
“이 편지들은 억울한 재소자나 재소자의 가족들이 저를 향해 두드리는 북소리입니다. 저는 그 북소리를 향해 언제라도 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