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재
광주터미날 앞에서 5시 45분에 첫 군내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니 손님은 나 혼자 뿐이고 행색이 이상했던지 기사님은 이것저것 산에 대해 물어 보신다.
이양에 도착해서 전에 예재 내려오며 이용했던 택시를 타고 예재로 다시 올라가면 어슴프레 동이 트기 시작하고, 뚫어진 속 장갑을 보던 기사님은 않돼 보였는지 목장갑 한 켤레를 억지로 손에 쥐어 준다.
아직은 컴컴한 숲으로 들어가니 잡목과 덤불들이 걸기적거려 귀찮지만 우려했던대로 눈은 별로 많지않아 일단 마음을 놓는다.
소나무들 사이로 봉우리를 넘으면 눈부신 일출이 시작되고 산들은 일제히 기지개를 켜지만, 가깝게 내려다 보이는 장천제는 꽁꽁 얼어 붙어있어 산객의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사거리 안부를 넘고 가파른 능선을 오르니 이틀 전 장거리 심설 산행을 해서인지 다리에 기운이 없는데다 쌓인 눈이 점점 많이 보여서 불안해진다.
(어둠속의 예재)
(정맥을 밝혀주는 햇살)
- 계당산
힘든 발걸음으로 523봉에 오르면 시야가 트이며 전번에 고생했던 봉화산이 삐죽 모습을 드러내고 허옇게 눈을 쓰고있는 봉우리들 끝에 계당산이 보인다.
얼고 녹기를 반복해서 단단히 굳어버린 눈에 푹푹 빠져가며 560봉에 오르니 길다란 지능선 하나가 장천리 쪽으로 갈라져 나가고 마을들이 평화스럽게 누어있다.
가시덤불과 억센 관목들을 헤치며 572봉을 오르면 억새들 사이로 햇볕이 따사하게 내려오고 아늑한 분위기에 잠깐 걸음이 멈춰진다.
눈길 따라 삼각점이 있는 계당산(580.2m)에 오르니 일망무제로 조망이 펼쳐져 두봉산과 태악산을 넘어 천운산으로 달려가는 정맥 위로 무등산이 우뚝 솟아있고, 월출산을 비롯한 남도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며, 개기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뚜렷하게 보인다.
고도를 낮춰가는 봉우리들을 넘으며 내려간 벌목 지대에는 임도가 가깝게 지나가고 지저분한 야산 길에는 덤불과 가시나무들이 꽉 차있다.
헬기장을 지나고 까마득한 절개지를 만나서 왼쪽으로 길게 돌아 잘 손질된 가족 묘를 지나면 818번 지방도로 상의 개기재로 떨어진다.
(계당산 정상)
(계당산에서 바라본 지나온 정맥과 그너머의 월출산)
(계당산에서 바라본 가야할 정맥과 우뚝 솟은 무등산)
(계당산에서 바라본 남도의 산봉들)
(개기재)
- 두봉산
한적한 도로를 건너고 임도 따라 능선에 붙으면 가파른 길이 이어지며 삼각점이 있는 468.6봉에 오르니 정맥의 산자락에 크게 조성된 호화 분묘들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으로 묘지들과 연결되는 넓은 임도를 지나면 봉우리들이 계속 나타나는데 눈 속에 발은 푹푹 빠지고 거센 관목 가지들이 가로막아 힘든 길이 이어진다.
짙푸른 진봉저수지를 내려다 보며 큰 구덩이가 패여있는 590봉에 오르니 오른쪽으로는 장재봉 능선이 갈라져 나가고 정맥은 왼쪽으로 꺾어지며 뾰족한 두봉산이 앞에 솟아있다.
커니스가 형성된 능선을 피해서 낙엽과 잔가지들을 밟으며 삼각점이 있는 두봉산(630.5m)에 오르면 시야가 트여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길게 태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잘 보인다.
따뜻한 바위틈에 앉아 점심과 소주 한잔를 하며 예상 외로 눈이 많은 이 능선들을 뚫고 서밧재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 또 내일도 계속 산행을 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가 서둘러 배낭을 메고 일어난다.
(두봉산 정상)
- 성재봉
평탄한 등로 따라 상큼한 느낌이 드는 키 산죽밭을 여유롭게 통과하며 눈을 잔뜩 얹고 있었던 삼계봉 근처의 공포스러운 산죽지대를 떠 올린다.
바위들이 널려있는 급경사 오르막을 넘고 다시 봉우리 하나를 더 오르니 첨탑처럼 뾰족하게 솟아보이던 촛대봉(522.4m)인데 심각점은 찾아볼 수 없고 나무들만 빽빽하다.
완만한 등로를 서둘러 내려가면 성재봉 허리를 깍아지르는 임도가 볼성 사납고, 용반리와 고시리를 연결하는 말머리재로 내려가니 사연 깊을듯한 돌무더기들은 흰눈을 뒤집어쓰고 있고 골바람만 차갑게 불어온다.
가파르게 429봉을 넘고 노송들이 곳곳에 자리잡은 420봉을 오르니 정맥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용암산의 멋진 암봉들이 보이고 바로 옆에까지 산자락을 허물고 있는 채석장이 흉물스러우며 소음도 크게 들려온다.
사거리 안부를 넘고 급사면을 힘들게 오르면 왼쪽으로 용암산 능선이 갈라져 나가고 너덜바위들이 흐트러져있는 눈길을 계속 올라가면 시멘트 기둥이 넘어져있는 성재봉(519m)인데 조망은 막혀있다.
(말머리재)
(멀리 보이는 용암산과 채석장)
(성재봉 정상)
- 태악산
빽빽한 관목지대를 따라 큼지막한 바위지대를 넘고 뾰족한 노인봉(529.9m)에 오르니 삼각점과 측량 도구들이 있고 태악산이 멀지않은 것 같아 힘을 얻는다.
눈 덮힌 바위지대를 날등으로 넘어서고, 나뭇가지를 잡아가며 조심스럽게 미끄러져 내려가기도 하며 험준한 바위봉은 크게 돌아 우회한다.
전망대처럼 널찍한 바위에 오르면 한천면 일대의 마을과 전답들이 사원스럽게 내려다 보이고 앞에 솟은 태악산 너머로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지방도로가 보인다.
너덜지대를 따라 양지 바른 바위지대의 무덤을 지나고 억새들 사이로 역시 무덤 한 기가 지키고 있는 태악산(530m)에 오르니 삼각점은 없고 크고 작은 돌무더기들만이 뒹굴고 있다.
뚝 떨어지는 능선을 한동안 내려가면 봉우리들이 연신 나오고 마지막 봉우리인 463봉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크게 휘돌며 내려간다.
바위지대를 통과하고 한천휴양림의 시설물들을 바라다보며 완만한 능선을 내려가면 822번 지방도로상의 돗재가 나오는데 휴양림이 바로 옆이고 기념석이 서있다.
(노인봉 정상)
(두봉산에서 노인봉까지 이어지는 마루금)
(무덤이 있는 태악산 정상)
(휴양림이 있는 돗재)
- 천운산
차량 통행이 없는 쓸쓸한 도로를 건너고 가파른 비탈길을 터벅터벅 올라가니 정자와 벤치들이 놓여있으며 청량한 공기에 가슴 속이 시원해진다.
바위들을 밟으며 올라가면 시루를 얹어 놓은 것 같은 결진 바위들이 잇달아 나오고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는지 작은 돌탑들이 곳곳에 보인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안부를 넘고 무덤들을 지나니 저 멀리 두봉산에서부터 이어지는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태양은 기운을 잃으며 마지막 붉은 빛을 토해낸다.
산불 감시 설과 정상석이 있는 천운산(601.6m)에 오르면 날은 서서히 어두어져 가고 때 맞춰 찬 바람도 불어오지만 야간 산행을 각오한터라 마음은 편안하다.
발자국이 나있는 눈길을 따라 억새봉을 내려가니 후다닥거리며 산 짐승 몇마리가 도망치는데 잠시후 푸푸하는 콧바람소리가 들리는것이 아마 멧돼지 가족이었던 모양이다.
천천히 능선을 따라가면 이제 완전한 어둠이 몰려오고 천운산 제2봉이라는 568봉을 넘어 돌탑 있는 봉우리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바위지대에서 바라본 천운산)
(천운산 오르며 바라본, 지나온 산줄기)
(일몰)
(천운산 정상)
- 서밧재
가파른 눈길을 내려가면 발자국도 나있고 광주교육원에서 설치한 금속 이정판이 곳곳에 서있으며 잠시후 샘터 갈림길을 지난다.
넓은 황톳길을 한동안 내려가다 숲으로 들어가 봉우리를 넘으면 광주교육원이 있는 도로가 나오고 비포장길을 따라가다 주의해서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랜턴 불을 밝히며 희미한 길을 찾고 무덤 터를 지나서 15번 국도가 지나가는 서밧재로 내려가니 한창 도로 공사 중이며 건너편에 파레스모텔의 네온 불빛이 반짝거린다.
원래는 이곳에서 자고 하루 더 산행을 할 계획이었지만 신발도 다 젖고 기운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내일 새벽부터 유둔재까지 30km 가까운 정맥 산행을 치룰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
집에 올라가기로 결정하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니 고갯마루에는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정맥의 실루엣이 시커멓게 모습을 드러낸다.
湖南의 산줄기는 어찌 이리 멀고도 힘든 지...축축히 젖은 스펫츠를 벗고 파일 점퍼를 걸친다.
첫댓글 눈이 없는 길도 가기가 힘들었는데,참 힘들게 길을 가셨습니다.체력도 대단하시지만,이리 열정적으로 가신지는 새삼 걸어보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요새 호남 진행하고 계시지요. 이젠 눈이 없을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