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하나의 교회, 우리의 여러 교회들,,, 유태화그는 서산고등학교 졸업.... 백석대 신대에서 근무
충청남도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연관이 깊은 도시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할 기회가 있었다.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지역이 1866년부터 1882년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자 1000여명을 충청도 전역에서 붙잡아다가 큼직한 돌판 위에 엎어 묶어놓고 때려죽이거나 혹은 해미 천에 생매장했던 이른바 무진박해가 일어난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순교자를 기념하는 곳으로 이전을 해서 그 원 돌이 보존되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중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이순신 장군이 6개월여 근무했던 곳으로도 알려진 해미읍성 안에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들을 묶어 뉘어놓고 자개질 했던 큰 돌을 실제로 보았던 경험이 있기도 ...하다. 물론, 당시 허름한 모습을 한 로마 가톨릭 교회를 안팎으로 드나들었던 경험도 갖고 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해오던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단이라는 설교와 가르침을 접하게 되었다. 모태로부터 교회에 다니긴 하였으나, 의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단이라고 들어온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개인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이단과 관련한 사실여부를 따질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에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이런 생각은 대학을 거쳐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정확한 답을 주는 분을 만나지 못했기에 무의식 가운데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신학대학원 재학시절 수업시간에 누군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단인가요?"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교회사를 가르치던 분도 조직신학을 가르치던 분도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 유학을 떠나서 공부를 하는 가운데 남아공화국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신학자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를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네덜란드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국교로 표방하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가진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정확히는 벨기에와 네덜란드로 갈라진 것이 구교를 택할 것인지 신교를 택할 것인지를 축으로 한 종교적인 이유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를 이단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또한 개인적으로 신학을 심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원래 교회는 하나였다. 1054년에 하나의 교회가 둘로 분열되었으니,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 정통 교회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가 그것이다. 동방 정통 교회는 그 후 더 이상의 분열을 하지 않았고, 비록 희랍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라는 두 구별된 이름으로 일컬어지기는 하지만 분열되지 않고 지금까지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는 1517년 다시 한 번 분열을 경험하는데, 그 이유는 루터가 제기한 95개조에 걸친 로마 가톨릭 교회 갱신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당한 개혁에의 요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루터를 파문하였고, 자연스럽게 루터를 중심으로 한 추종자들의 모임인 프로테스탄트들이 모여서 또 하나의 교회를 이루게 된다. 이른바 프로테스탄트교회가 형성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크게 보아 교회가 셋으로 분리된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종교개혁교회와의 분열 이후 지금까지 하나의 교회를 유지한 반면에, 프로테스탄트들은 다시 거의 즉시 셋으로 나뉘었다. 우로는 루터교회가 좌로는 재세례파교회가 그리고 그 중간에 츠빙글리와 칼빈을 축으로 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개혁교회가 들어서게 된다. 이후 루터교회는 하나의 교회를 유지하였고, 재세례교회는 현재의 침례교회의 형식으로 순화되었으며, 개혁교회는 영국으로 흘러들어가 존 낙스를 중심으로 장로교회로 분화되었다.
영국 내에서는 종교개혁교회의 신학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전을 혼합하여 39개조를 중심으로 하는 성공회교회가 형성되었고, 성공회교회에 속한 신부였으나 후에 무력한 성공회교회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신앙부흥운동을 일으킨 존 웨슬리를 통하여 감리교회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감리교회는 나사렛교회라든지 성결교회라든 하는 지체들의 형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홀연히 하늘로부터 내려온(?) 순복음교회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크게 보아서 하나의 교회가 동방정통교회와 서방교회로 분열되고, 서방교회가 다시 분열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와 제반의 프로테스탄트교회들로 분열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볼 때, 동방 정통 교회나 로마 가톨릭 교회나 프로테스탄트교회들이나 모두가 교회다. 물론 그 안에 다양한 강조점의 차이들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사실을 부인하면 그것은 지나친 태도이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되면, 이들 세 큰 교회들이 예외 없이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이다. 이 세 큰 교회들이 섬기는 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 하나님이다. 다른 어떤 존재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지 않는다. 동방 정통 교회나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사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외의 어떤 신적 존재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점은 프로테스탄트교회가 좀 약한 편이다.
또한 세 큰 교회들은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중보적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동방 정통 교회도 로마 가톨릭 교회도 프로테스탄트교회들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동방 정통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사에서 기념되는 빵과 떡은 그리스도 예수의 살과 피 그 이외의 어떤 것이 아니다. 주의력을 가지고 관찰해보면 마리아를 비롯한 다른 어떤 존재가 공식적인 예배나 미사의 자리를 파고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 교회들 사이에는 다른 것도 없지 않다. 몇 가지를 거론할 수 있다. 인간론과 관련하여 세 큰 교회는 결코 펠라기우스주의를 수용하지 않는다. 만일 펠라기우스주의를 취하게 되면 그것은 이단이다. 그러니까 아담과 함께 인간이 타락한 존재라는 사실은 모두가 승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어느 정도로 타락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장로교회나 개혁교회는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보는 반면에, 동방 정통 교회나 로마 가톨릭 교회나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따르는 프로테스탄트교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구원론에서의 차이를 가져온다. 죄인인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가에 대하여 전적인 부패를 인정하는 교회는 전적인 은혜를 요청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인간의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전적인 은혜를 끌어안지만 그것을 어떤 배열 속에 두느냐에 따라서 그 안에서 또 다시 달라진다. 이런 인간 이해와 구원 여부에 따라 아우구스티누스를 추종하거나 혹은 반펠라기안주의를 따르는 다양한 교회들이 나타났다.
또한 이러한 이해는 구원 받은 인간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를 낳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은총의 수단을 몇 개로 할 것인지, 은총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와 관련해서 다양한 양식의 교회들이 실제 모습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교회 정치제도는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와 관련해서 어떤 교회는 전통적인 감독제를, 어떤 교회는 교황정치제도를, 어떤 교회는 장로정치제도를, 어떤 교회는 회중정치제도를 취하는 다양한 양상을 드러낸 것이다.
반펠라기안주의를 문제 삼아 이단 시비를 걸게 되면, 로마 가톨릭 교회나 루터교회나 아르미니안계열의 교회들은 죄다 이단이 되어야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으나, 더 이상 그 기준이 현실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도 지나치다. 교회 정치와 관련해서도 장로교회 정치를 성경에서 직접 따왔다고 주장한다면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나 지나친 주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공회에서 결정된 삼위일체론과 에베소와 칼세돈공회에서 결정된 기독론을 승인하면서, 또한 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한 카르타고공의회의 결정 사항을 다소간 존중하면서 존립하는 교회들은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어떤 단일교회적 일치운동을 반드시 지향해야 한다고 고집할 이유가 될 필요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시도는 또 다른 예기치 않은 종합을 이루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화할 수도 있다. 오히려 각각의 교회들이 자신의 독특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중보자로 삼고, 삼위 하나님과 화해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기를 힘쓰는 한에서 우리의 여러 교회는 지속적인 갱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면서 자신의 모습을 다듬어 가는 열심을 다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다채로운 사역의 총체적인 양상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이미 교회는 한 머리를 중보로 하는 하나님의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