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동창회 총무 10년을 돌아보며
(1992년 8월~2002년 11월)
제19회 최 훈
1. 총무 초창기(많은 동문들 참가하다)
1992년 8월 14일, 모교 강당에서 개최 된 총동창회 총회에 참석했던 나는 선배님들과 동기, 후배들이 치는 박수소리에 떠밀려 얼떨결에 총무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1대 김영철 회장(1회 졸업), 2대 모영식 회장(2회 졸업)을 거쳐 3대 문덕조회장님(3회 졸업)이 총동창회장으로 선출된 그날 이었다.
총무를 맡기 전, 수년간 나는 6회 이만화 선배님과 신현호 선배님이 총동창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보아왔다.
재경 동문회와의 친목강화를 위하여 서울을 수시로 왕래하시고, 삼가댐 아래 공터에 백숙을 준비해 두었지만 참가자가 많지 않아 애를 끓이시던 그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 아마 총동창회 기금이 빈약해 개인적으로 주머니를 꽤 많이 비우셨으리라.
1992년 8월 총동창회가 열리기 직전 이만화, 신현호 선배님은 총동창회 활성화의 단서를 찾기 위하여 제4회 권기호 선배님 자택을 찾아가 총동창회장 수락을 간청했지만, 3회 선배를 건너뛰고 4회가 미리 회장을 해서는 안된다는 권기호 선배님의 명분론에 밀려 제3회 문덕조 선배님이 총동창회장에 선출 되었다.
사실 난 나의 모교 금계중학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편이다. 50여년 넘게 살아온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바로 금계중학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국어 송지향 선생님과 이종옥 선생님, 영어 박주병 선생님, 상업 송대영 선생님의 열정적인 강의와 사도정신은 30여년 간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나에게 영원한 師表로 남아있다.
그리고 미술 조영주 선생님의 “몰아치기 도래미 타법”은 아마 그 문하에 있었던 동문이라면 지금도 그 신출귀몰한 손놀림에 경탄을 금치 못 할 것이다.
이제 그 성질 급하시던 선생님께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의 세계에서 편하게 永眠하고 계시리라.
타의건 자의건 총무를 맡게 된 나는 이 기회에 모교에 대한 나의 애정과 은사님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총동창회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통해 보은해 드리자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때 총동창회 활성화를 위해 구상한 것이
첫째, 기수별 동기회 조직화하기.
둘째, 총동창회 체육대회 개최하기.
셋째, 총동창회 기금 확충하기의 세 가지였다.
기수별 동기회를 조직화 하면 체육대회 참석 인원이 늘어날 것이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기금도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재순 재경 동문회장님의 아낌없는 후원도 참으로 큰 힘이 되었다.
모교에 재직 중이시던 신현호 선배님으로 부터 금계중학교 1회에서 30회까지의 졸업생 명단을 제공받아 각 기수별 회장단을 파악하고, 아직 조직되지 않은 기수에 대해서는 조속히 회장단 구성을 하여 명단을 통보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4회(회장 권기호), 6회(회장 이만화), 10회(회장 김진현), 16회(회장 구필회)
17회(회장 김용구), 19회(회장 최인섭), 21회(회장 길왈현), 24회(회장 이순신), 26회(회장 강석광)등은 이미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고 이를 계기고 27회 이후의 후배 기수들도 봄날의 새싹을 틔우듯 서서히 그 조직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조직을 기반으로 내가 총무를 맡은 다음해인 1993년에 개최한 총동창회 체육대회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족구. 축구, 릴레이, 줄다리기, 배구 등의 단체 종목을 통하여 기수별 참가율을 높이고자 하였으며 종합 1,2,3위 외에도 입장상, 모범 기수상 등을 통하여 체육대회의 분위기를 띄우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조금 속이 보이긴 하지만 부상을 모두 현금으로 수여하다 보니 기수별 참가의욕이 해마다 증폭하는 것 같았다.
현금으로 지급하면 기수별로 뒤풀이하면서 친목을 또 한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이 적중한 것이다.
이렇게 나의 총무 초창기 2년간은 많은 동문들이 결집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집중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2. 총무 중반기(총동창회 튼튼한 반석 굳히다)
돌이켜 보건데 1994년 8월 14일은 우리 금계중학교 총동창회가 튼튼한 반석을 굳혀가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날이 된 것 같다.
선배가 먼저 회장을 해야 된다는 명분을 중시하던 제4회 권기호 선배님이 총동창회 회장으로 선출된 날이기 때문이다.
회장님이 바뀌었지만 나는 총무를 연임해야 할 상황이었으며, 그로부터 8년간 권기호 회장님을 보필함으로서 나의 총무생활은 무려 10년간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기간에 총동창회 활성화를 위한 세 번째 과제인 총동창회 기금이 확충되었다.
권회장님은 금융인답게 총동창회 기금조성에 대하여 매우 감각이 뛰어났다.
총동창회장 수락 연설에서 “동문들이 기금을 모우는 만큼 내가 그 금액을 내겠다”라는 명쾌한 제안을 하였다.
동문이 천만원을 모우면 권회장님이 천만원을, 3천만원을 모우면 권회장님도 3천만원을 쾌척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러자 동문 중에서 한 사람이 역 제안을 하였다. “권회장님이 내는 만큼 동문들이 기금을 모우겠습니다”였다.
순간 긴장이 흐르는 것 같더니 권회장님의 답변은 또 한번 명쾌했다.
“그럼 내가 2천5백만원 내지”
내 손에 땀이 흥건하였다. 지금도 큰 돈이지만 1994년 당시 2천5백만원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이제부터 동문들이 2천5백만원을 만들어야 한다. 합하면 5천만원 !!
금계중학교 총동창회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 이다.
그 다음날 권회장님은 2,500만원에 대한 약속을 지켰고, 동문들 몫인 2,500만원을 조성하기 위하여 손수 위촉하신 부회장단으로 하여금 각 100만원씩의 분담금을 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권중인, 김진현, 조대원, 채수오, 이재성, 이대영 부회장이 각각 100만원, 박근식 50만원, 계덕용, 황진섭 감사도 각각 30만원의 기금을 쾌척하였다.
이 또한 권회장님의 역량이라 아니 할 수 없으며, 분담금을 감당해 주신 분들에게 대한 마음의 빚 또한 권회장님의 몫이라 하겠다.
나는 1회에서 30회 까지 기수별로 각 50만원씩의 분담금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해마다 모교 중학생들이 내는 졸업비를 모우고 또 모았으며 모여지는 돈은 모두 정기예금을 들어 이자를 늘려가며 오매불망 5,000만원의 기금을 달성하려 안간힘을 썼다.
1997년에 시작된 IMF로 인해 국내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히려 정기예금을 통해 이자를 늘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영주 한신상호신용금고의 정기예탁 금리는 무려 20%에 육박했으니 말이다.
꿈에 그리던 5,000만원 총동창회 기금이 달성되었다. 아니 그를 초과달성하여 총 5,870만원의 기금을 조성하였다.
3. 후반기(후배에게 바톤을 넘기다)
금계중학교 총동창회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신 역대회장님과 회장단 동문님들, 그리고 선, 후배 동문님들께 크나 큰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제 5대 이국성 회장님, 제6대 이만화 회장님, 제7대 이기섭 회장님께서도 총동창회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고, 현 유재하 회장님께서 헌신적으로 노력을 하고 계심을 보고 참으로 마음이 든든함을 느낀다.
이제 와서야 바로 내 뒤를 이어 동창회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던 사람좋은 사무국장 故 길왈헌 동문의 명복을 빈다.
지금은 서상호 후배가 사무국장을 하면서 우리 금계중학교 총동창회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OFF-LINE 뿐만 아니라 ON-LINE에서도 전국 각 지역의 동문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면서 우리 금계중학교 동문의 저력을 결집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60년사 발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오랜 숙원사업인 月桂門 복원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참으로 훌륭한 후배이다.
돌이켜 보건데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다.
5,000만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던 어느 해, 모교 교장선생님께서 校庭에 설립자이신 故 계삼정 이사장님의 흉상을 세웠으면 하고 제안해 오셨을 때 총동창회에서 수용하지 못했던 일이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후배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厚하게 주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모교 선생님들에게 그럴싸한 식사 한번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간
그 기간으로 다시 되 돌아 갈 수는 없겠지만
만약 만약에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조금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번 모교는 영원한 모교
金鷄中學校의 무궁한 발전을 바란다.
첫댓글 정말 아름답고 좋은 글입니다.
일도 많이 했고 그만큼 글도 빼어나게 잘 쓰셨구요. 동창회 역사의 산증인임을 감사드립니다.
풍초 48회 김인순
언제 보아도 온화한 학자의 기품을 지니고 동문들의 신망을 받고있는 자랑스런
우리동문 최 교장님의 발자취는 동문史에 길이남을것입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