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문화가 세상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흔히 ‘본다’는 말을 ‘눈으로 보다’는 뜻으로 쓸 때가 많다.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장을 보러간다’는 말에서의 ‘보다’는 ‘눈으로 보다’는 뜻으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물건을 둘러보고(시각), 만져도 보고(촉각), 냄새도 맡으며(후각), 맛도 보는(미각) 등 오감으로 느끼며 행하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장보기는 일종의 짧은 여행과도 같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작품을 본다고 하지만 재질감을 느끼고 있고, 미세한 붓터치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림 속에 표현된 시대를 엿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보다’는 오감을 대표하여 오감을 총칭하거나 다른 감각을 대신하여 쓰이고 있다.
특히 TV가 등장하고 관련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스크린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영상문화는 ‘본다’는 인류의 행동을 오감을 총동원한 복합적인 능력(共感覺, synesthesia)으로 바꿔놓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래학자 존 나이츠비츠(John Naisbitt)도 그의 새로운 책 「마인드 세트(Mind Set)」에서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첫 번째 화두로 ‘영상문화(Visual Culture)'를 꼽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경쟁이 치열해지는 글로벌 마케팅 시장에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해 제품과 소비자의 욕구를 연결하는데 있어서 스크린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고 주목하여 자세히 살펴왔던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러브마크(Lovemarks)」의 저자 사치&사치의 CEO인 케빈 로버츠이다. 그는 스크린을 통해 단순히 정보의 전달만이 아닌 감성적 공감대가 널리 형성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는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영상문화의 3가지 요소, 시각적 요소(Sight), 청각적 요소(Sound), 동적 요소(Motion)가 결합하여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그동안 단순히 ‘스토리텔링 기법’이라는 막연한 용어로 정의되던 개념을 '시.소.모.(SiSoMo)'라는 신조어로 정의하고 그것을 통해 본 세상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 그림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책 「시.소.모.(SiSoMo)」이다.
사실 시소모라는 개념을 제대로 표현하기엔, 책이라는 매체는 부적합하다. 시소모 중 시각적 요소(Sight)만 책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각적 요소(Sound)나 동적 요소(Motion)는 소리를 담은 저자의 글이나 동작을 담은 몇몇 사진을 통해 조금씩 맛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글보다는 사진자료가 많아 읽어내는 데는 별로 긴 시간이 들지 않는다. 대신 이 책을 읽을 때 연극대본의 지시문을 읽듯이 ·앞서 언급한 ‘오감을 총동원한 복합적인 능력(共感覺, synesthesia)’을 최대한 활용하면 책 속의 사진이 눈앞에 살아 움직이고 글자 속에 숨겨진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그 이상의 시소모 책 저자는 1926년 영화<돈 주앙>에서 시소모의 시초를 찾았다. 돈 주앙 이전의 영화들이 모두 무성영화로서 소리가 없는 이미지의 연속-일명 ‘활동사진’이라 불리던 초기영화는 시소모가 추구하는 통합적 감수성과 그 영향력을 전달해 주기엔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 TV 등 스크린이 달린 영상을 소리 없이(특히 어떤 자막도 없이) 바라보라. 나름대로 영상언어를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Context)을 오해할 수 있게 된다. 시소모 중 소리(Sound)는 스크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택의 SKY IM-8300 뮤직폰 광고-‘소리가 생각을 지배한다‘편-를 보면 소리의 중요성을 바로 알 수 있다. 그 광고의 컨셉이 소리에 따라 보이는 영상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로맨틱한 음악(Ilya의 "Bellisimo")과 함께 어느 남자의 손이 엎드려있는 알몸을 쓰다듬는다. 이내 에로틱한 교감이 이루어지듯 두 남자끼리 야릇한 미소의 표정을 주고받을 때, 그 느끼한 노래는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잠시 후 카메라의 시선이 Zoom out 되자 두 남자는 다름 아닌 레슬링 경기 중 우리가 ’빠떼루’라 부르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와 동시에 TV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섹시한 음악은 바로 헤드셋을 한 채로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이 헤드폰을 귀에서 떼자마자 현장의 열기와 함성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나오는 카피문구, “소리가 생각을 지배한다.”
오래전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이 예견했듯이 디지털 시대에 소리가 다시 중요해 지고 있다. 정보를 담은 텍스트가 인터넷을 뒤덮고 있고, 홍수라고 할 만큼 글자가 넘쳐나고 있는 이 때, 청각의 매체인 소리가 다시 대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초래한 감각적 편향성, 즉 시각에의 과도한 의존이 인간고유의 상상력과 감각적 예민함을 쇠퇴하게 하는 반(反)진화에 대한 반성이 이 시대에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컨텐츠를 살펴보면 시각, 청각에 촉각, 미각, 후각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됨으로써 맥루한이 말한 통감각(統感覺, Sensus commuis)에 수렴(Convergence)하는 쪽으로 인간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듣기의 영역이 회복됨으로써 글읽기(Text Reading)뿐 아니라 영상언어(Visual Language)에 있어서도 인식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지고 깊어지며, 글자에 숨겨진 다양한 뉘앙스까지 분별해 낼 수 있는 예민함으로 21세기 감성산업, 마음산업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리하여 저자가 지적했듯이 시소모가 없는 광고로서는 21세기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세상을 내 편(Fan)으로 만드는 힘, 시소모 2002년 6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시소모의 힘을 경험했었다. 한국팀의 경기가 있는 시간만 되면 4천만이 하나 되어 스크린 앞에 앉아 목이 터져라 우리 선수를 응원했었다. 대형스크린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모여서 우리 선수가 넘어지면 같이 아파했고, 골이 들어가면 모두가 얼싸안고 그 기쁨을 공유했다. 경기장 안에서도, 경기장 밖에서도 하나 된 한민족의 큰 힘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모든 국민이 이렇게 한마음이 되도록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고 큰 공명장을 일으켜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이룩했다. 이것이 시.소.모.(SiSoMo)의 힘이다.
또한 시소모는 스크린을 통해 우리를 모두 지구촌 한 가족으로 만들어 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40억 인구가 시소모를 통해 인류공통의 축제를 누렸다. 아테네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에서도 밤잠 설쳐가며 스포츠를 통한 인류애의 실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년 미국 카트리나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모습이 시소모를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전해지면서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이 모여 지금 뉴올리언스 지역 부흥에 쓰여 지고 있다. TV스크린에서든, 핸드폰 액정에서든 시소모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닌 그 정보에 대한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며 가슴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느끼고 행동하게 만드는 인류공통의 경험이 되고 있다. 그렇기에 시소모가 있는 곳에는 희망의 커뮤니케이션과 변화를 촉발하는 행동이 뒤따름으로써 시소모는 인류 공통의 언어인 동시에 기술이 되고 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소니(Sony)의 2005년 연차보고서(Annul Report)를 보면 ‘The Sony Challenge: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화두로 소니의 미래를 위한 기술이 나와 있다. 예전 땐 그냥 단순히 콜롬비아 영화사나 Playstation 등을 기반으로 영상컨텐츠 전문기업으로 포지셔닝 하는구나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소니는 벌써 ‘시소모 기업(SiSoMo Company)’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니가 보여주는 기술 중 거대한 실사영화관(The Laser dream theater)이 있었는데 아마 TV 등 작은 스크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웅장한 현장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솔직히 작은 스크린은 사진처럼 그 크기를 보여주지 않고 다만 관계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에 보면 작은 스크린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퍼키스의 딸이 2살 때 코끼리에 심취했다고 한다. 어린이 동화책이나 TV를 보다가 코끼리만 나오면 열광하면서 몇 시간이고 쳐다보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딸을 데리고 동물원에 갔더니 정작 코끼리 우리에서는 코끼리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하더란다. 딸애가 본 코끼리는 커봤자 어른 얼굴 크기였기에 실제 거대한 코끼리를 앞에 두고도 자신이 본 코끼리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끼리 우리에서 몇 십 미터 떨어져서야 비로소 코끼리를 제대로 보게 되었다는 일화가 나온다.
소니는 앞으로 이런 시소모를 창조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거대한 바다에서 고래가 솟구치는 장면을 핸드폰 액정으로 보는 것과 실제 포경선 위에서 파도를 헤치며 실제로 본다는 것은 그 느낌과 감동이 천지차이 일 것이다. 여기서 소니는 미래의 시소모를 발견한 것이다. 27m의 고래를 디테일한 것까지 담아내는 영상기술을 바탕으로 그 광대한 스케일의 현장을 그대로 가져와 감상할 수 있는 거대한 극장 스크린을 개발한 게 아닐런지. 아이맥스 영화를 본 사람은 기존 영화관이 시시해서 못 간다고 한다. 그만큼 경험할 수 있는 감성의 폭과 깊이가 차이나기 때문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 되려면 시소모를 통해 스크린 밖의 실제 세상까지 담아낼 수 있는 높은 감성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미래 시소모의 핵심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You-Tube, 시소모 검색엔진 흔히 유튜브는 UGC(User-Generated Content)의 대표적인 사례로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Google에 인수된 지금부터는 시소모 검색엔진으로 명명해야 할 것이다. 유튜브는 더 이상 단순히 개인 동영상의 저장소가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제작되는 시소모가 모이는 허브이며 미래 시소모를 위한 다양한 문법(SiSoMo Literacy)을 창조하는 곳이 되었다. 강력한 Google의 검색능력과 맞물리면서 '뭔가 표현해 봤자 아무도 몰라줬던' 숨겨진 시소모들이 '뭔가 표현하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2분이라는 제한 시간 때문에 다양한 시소모 영상문법이 실험되고 있다.
예전엔 공식 공모전이나 오디션을 통해 재능이 발굴되었다면, 시소모 시대에는 유투브를 통해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요한 파헬벨 ‘Canno’ 록버전 연주를 유투브에 올려 뉴욕타임즈에까지 이름을 올린 임정현씨가 좋은 예가 되겠다. 지금 유투브에 가서 여러분 회사에 필요한 시소모를 가진 인재를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지구촌을 감동시킬 시소모를 통해 여러분 기업의 이미지나 제품이 불멸의 브랜드가 되는 방법이 유투브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간략히 소개한 「시.소.모.(SiSoMo)」는 저자가 직접 시소모라는 프리즘에 분광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영상문화를 경험하고 기록한 여행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세상은 시소모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새삼 재발견하게 되면서 내 주변의 다양한 시소모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 뛰쳐나왔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은 땐 늘 옆에 메모지를 두기 바란다.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대표처럼 20억 짜리 메모를 쓰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