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山行기(09-2)
-전남 광양시 가야산을 다녀와서-
24절기 중에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 절기인 소한(小寒)이 지난지도 벌서 4일째가 되었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우리속담이 있을 정도로 대한보다 소한이 더 춥다고는 하지만 며칠째
소한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번추위로 눈도 내렸고,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의 살림처럼 우리를 한없이 음 추러들게 만든 추운날씨도 계속되었으니
소한으로써는 할 짓 다한 셈이다.
지난주 馬山 무학산 山行때도 날씨가 무척 추웠는데, 오늘도 아침기온이 꽤 추운날씨다.
기상예보로는 오늘 오후부터는 기온이 더 떨어져 호남지방에는 눈이 내릴 것 이라고 했다.
요즘은 낮이 짧아서 산행버스를 타기위해 새벽에 집을 나설 때면 잠에서 덜 깬 도시의 형상을 그대로 볼 수가 있다.
거리에는 온 밤을 밝힌 가로등불이 정지된 도시의 환영처럼 남아 피곤한 낯빛을 띄고 있고, 숨어있는 어둠의 잔영(殘影)들은
새벽과 어울려 그 특유의 눅눅함을 토해내고 있는 도시에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실핏줄처럼 뻗어있는 골목길 안으로 도시전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바뿐, 그러나 성실한
발자국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오는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신문을 배달하는아이, 우유와 요구르트를 보급해 주는 아줌마,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있는 미화원아저씨, 심야근무를
마친 피곤한 근로자를 태우는 버스기사 등등.
이런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도시에 역사는 창조되고 우리들의 일상은 기록되는 것이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어느 보일러공의 일기)
-팡팡-
누가
하루를 시작하는 여기
새벽에 문을 열어줄 수 있을까?
우리가 기억해 두지 않으면
이내 잊혀 질 일상(日常)들 까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소중하게 기록하려는
사관(史官)의 심정으로 나는 서 있다.
너를 맞으려
새벽의 문을 열 때면
졸리 운 천사들의 눈망울은 하늘가득하며
어둠에 베일이 걷히기 전에
승천하려는 용의 기운만이 대지에 가득하다.
삼라만상이 나를 닮은 듯
또한 닮지 않았듯이
세상일이 내 마음이요 생각뿐이로다.
응축된 氣를 한 곳으로 모아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인에 산고(産苦)로
너의 굉음은 터져 나오고
분출하는 화염은 동관(銅管)타고 흐르는 피되어
이마에 맺힌 땀방울로 번져가며
잠자는 모두의 가슴에 사랑에 밀어를 나누게 한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꿈꾸며 아름다운 동화를 듣고 있다.
네가 가쁜 숨 몰아쉬며
역사에 책무를 다 하려 할 때쯤
동트는 아침은 거리에서부터 부산을 떨며 다가오고 있다.
신문을 배달하는 아이, 우유아줌마,
쓰레기를 수거하는 미화원아저씨로
새벽은 그렇게 아침을 출산하고 있다.
수고하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있기에
우리들의 아침은 상쾌할 뿐이다.
오늘 산행할 산은 호남정맥의 줄기를 이어받아 당당하게 솟구쳐 있는 가야산(497.3m)이라고 한다.
광양시청 뒤에 우뚝 선 가야산은 광양시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는 교통, 지리적요건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山頂에 서면 남해바다를 비롯해 백운산과 지리산까지도 한눈으로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는 산이기에 그렇다.
남해바다의 올망졸망한 섬들은 마치 넓은 호수 위를 떠도는 연잎처럼 가슴으로 다가온다.
밤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광양제철소와 여천공단에서 내뿜는 불빛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산업현장의 살아있는 꽃으로, 우리들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하며,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듯 아름답다고 한다.
또한 가야산은 호남의 전문산악인들에게는 암벽훈련장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 남쪽사면에 위치한 가야암장은 동벽, 中央벽, 적벽, 서벽 등 여러 암장으로 나뉘어있고 루트도 여러 개 개척돼 있다.
오늘산행코스는:-
중마동 1주차장에서 출발 -가야암장(적벽) -가야산정상 -중복도로 2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짧은 거리다.
항구를 끼고 있는 전형적인 도시의 山처럼 가야산도 광양시를 품에 끌어 앉고 병풍처럼 둘러 서있는 형세가 산은 높지 않아도
시민들의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곳이다,
요즘 산행의 추세가 산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좋은 산을 찾는 것도, 山間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자동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산의 높이나 산행거리는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는 점도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산행이사와 버스기사 간에 착오가 있어 만남의 장소가 서로 엇갈려 下山후 길에서 기다리는 촌극도 있었고,
새로 참여한 회원 두 사람의 개인행동으로 버스 안에서 여러 사람이 기다리는 불편함도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 산행이 짧은 것은 오전에 산업도시 광양과 광양시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광양제철소를 시찰하는 일정 때문이었다.
우리는 광양제철소홍보관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홍보영화도 보았고, 산행버스에 회사 홍보직원이 함께 탑승해 시내에 산재되어
있는 會社유관시설물을 설명 받고 항만부두도 구경했다.
제철소의 건설목적, 생산능력, 이익의 사회 환원에 대한 설명을 세세하게 들었으며, 생산 공장 한 곳에 들려서는 제품이 만들어지는 현장도 직접 보았다.
오늘은 山과 산업시찰을 겸한 건강과 지식을 얻는 실리적 산행으로 매우 유익한 하루였다.
우리에게 일상의 새벽을 여는 근면한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민족의 장래와 국가발전의 전환점에서 역사의 새벽을
열었던 선견지명과 용기를 지닌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런 선구자적 지도자가 있었기에 제철공장이 건설되고 오늘의 광양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광양시는 전남 南東부에 위치한 도시로 1995년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통합되어 도농통합市 가 되었다.
광양제철소의 立地가 결정된 1981년 전까지는 광양만을 중심으로 김, 조개류의 양식업이 활발했으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산업구조가 2, 3차 산업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우리나라 철강공업의 중심지이자 해외무역의
전진기지로서 발전해왔다.
이 지역은 1989년부터 광양군 골약면 앞바다(지금의 광양시 중마동 일대)를 메워 도시로 조성하고, 국내 최대 규모인
컨테이너항의 건설과 함께 도시화가 가속화되었다.
모든 공업의 소재가 되는 제철산업 및 연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광양 제철소는 포항제철의 제2제철소로 1981년에 광양만 일대로 立地가 결정되었다,
입지결정 과정에서 아산만지역과 상당한 경합이 있었으나. 광양만으로 제철단지가 유치된
이유는 이 일대의 수심이 깊어 양호한 항만조건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인근의 여천, 순천 공단과 연계하여 공업단지를
개발함으로써 경제기반이 취약한 호남지역에 공업기반을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광양공업단지는 제철소를 위한 전용공업항을 가지고 있으며, 광양港에 컨테이너 부두를 포함한 대규모 항만이 들어섬에
따라 해상교통이 편리해졌다.
남해고속도로를 통하여 호남,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며, 순천을 통하여 경전선, 전라선과 연결된다.
광양제철단지의 총면적은 9.836㎢이며, 광양 제철소에서 약 1.2km 거리에 철강연관 산업의 집단화를 통해 철강제품 생산성을
제고시키기 위하여 1.572㎢ 규모의 광양연관공업단지가 개발되었다.
연관단지 내에는 광양제철의 전, 후방 연관 산업체 및 운송업, 기타 편익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2009년 1월 9일)
첫댓글 산들님, 보내주신 쪽지 잘 받았습니다. 감기 걸리셨다구요. 하루빨리 쾌차하셔서 존경하는 산들님의 존안을 뵙고싶습니다.
팡팡님이 붓을 들어 산행기를 다시 쓰게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님의 문장력은 많은사람을 매료시킵니다.. 일찍이 문학을 하셨으면 대성할수 있었을텐데 애석하군요. 나는 감기도 좀 심하고 찬바람을 조심하라고 하니 당분간은 산에 못 나갈것 같읍니다. 핑게 삼아 서울 딸네 집에 와서 쉬고 있습니다. 여기는 자료도 없고해서 산행안내도 카페에 올리지 못할것 같네요. 그동안 산행기나 잘 읽고 있을게요..
팡팡님의 산행일기는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이제는 빠지지 마시고 회원들을 위하여 산행기 꼭 올려주세요. 항상 감사힙니다.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