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의 기준점이 인천 앞바다라는 사실을
- 수준원점(水準原點) -
우리나라 백두산 높이가 ‘해발 2천7백44m’이고 한라산 정상은 ‘해발 1천9백50m’ 등인 것은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이 들어온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 ‘해발’이란 단어가 들어간다. 산뿐만 아니라 고층건물의 높이를 말할 때도 흔히 ‘해발 ○○○m’라고 한다. 국내 최고 높은 건물 높이를 말할 때도 ‘해발’이란 말을 쓴다. 즉 해발이란 ‘높이’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발은 바다를 기준으로, 즉 땅이 아닌 바다수면이라는 것이다. 기준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를 뜻한다. 따라서 백두산 꼭대기가 바다로부터 2,744m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지라 하더라도 지역마다 높낮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산이나 시설물의 높이를 재면 정확성을 기할 수 없다. 따라서 지도에서 어떤 지점의 높이를 표시할 때 바닷물의 표면을 0m로 보고 그보다 얼마나 높이 있는가를 재는 것이다. 물은 수평을 유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재는 기준이 ‘수준원점(水準原點)’이다. 수준원점은 국토의 높이 등 지형을 측정할 때 반드시 쓰는 기준점인 셈이다. 어느 지점이 ‘해발 몇m’라고 할 때 그 해발의 기준점을 말하는 것으로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 이 해발은 어느 바다를 기준으로 할까?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바다의 수면은 밀물과 썰물 때 보통 5∼6m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심할 때는 8∼9m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해수면의 차이는 부산, 인천, 청진 등 위도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4계절 또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가 인천 앞바다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몇 안가는 간만의 조수차이가 큰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력발전의 최적지로 꼽히기도 한다.
여기에서 해발 높이(0m)를 정할 때, 물이 가득 차는 만조 시의 수면과 물이 밀려나간 간조 때의 수면의 중간선을 해발 0m로, 그 기준 지역이 바로 우리 국토의 중간 위도에 위치한 인천 앞바다이다. 이 인천 앞바다의 바닷물이 제일 많이 빠졌을 때와 제일 많이 들어찼을 때의 그 중간을 기준으로 삼아서 해발고도를 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해발고도인 인천 앞바다의 밀물과 썰물 사이 가운데 그 중간을 어떻게 알까? 수준원점은 만조 때 수면과 간조 때의 중간점을 표시한 것으로 만조와 간조가 장소와 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중간점을 산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원칙은 바다 높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겠지만 바닷물도 높이가 일정하지 않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기 때문. 이로 인해 인천 앞바다의 밀물 때와 썰물 때 바다 높이를 평균낸 뒤 그것을 0m로 정하고 있다.
인천에 있는 수준원점은 1913~1916년 검조장(檢潮場․해수면 높낮이를 관측하던 기관)이 4년간의 해수면 높이를 꾸준히 측정해서 평균치를 얻어냈다. 이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일정한 높이의 지점을 골라 수준원점(水準原點)으로 삼고, 이곳을 국토 높이 측정의 기준으로 정해 수준원점을 바닷가인 인천시 중구 항동1가 2에 설치했다. 바다 상의 해발 기준점을 육지로 옮겨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후 이를 기준으로 국토의 높이를 측정했음은 물론이다.
이 ‘대한민국 수준원점’(문화재 제247호)이 있는 곳이 인천시 남구 용현동 253번지 인하공업전문대학이다. 7호관(도서관) 뒤편에 땅을 단단히 다진 뒤 박아놓은 대리석 기둥이 있다. 기둥 중앙에 십자(十字)로 해발고도 26.6871m 지점(수준원점)이 표시돼 있다.
왜 바다가 아닌 대학 캠퍼스에 수준원점이 설치돼 있을까.
연이은 바다매립으로 이 수준원점을 더이상 바다 옆에 두기 어렵게 되자 더 떨어진 육지로 옮기는 방안이 논의됐다. 이때 이전 대상지로 떠오른 것이 인하공전 캠퍼스였다. 캠퍼스가 용헌동산에 위치한데다 해발 20~30m의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놓여있고 지반이 단단한데다 관리하기에도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준원점은 1963년 12월 항동 바닷가에서 인하공전으로 옮겨졌다. 대학 후문 남동쪽 항공기가 전시된 바로 아래로, 공터에 원통형의 시설물(높이 3m46㎝, 넓이 2.2평)이 있고 가운데 수준원점 표석이 있다.
그러나 인하공전은 바다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바닷물의 높이와 같을 수는 없다. 이곳에 설치된 수준원점은 바다 평균 높이로부터 26.6871m 위에 있다. 이에 따라 수준원점을 해발 0m 지점에 설치하지 않고, 해발 26.6871m 지점에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국토지리정보원은 수준원점을 출발지로 릴레이식으로 높이를 비교해 가며 국토 전역에 2㎞ 간격으로 수준점들을 설치했다. 이를 기준으로 바다가 보이지 않는 오지(奧地)에서도 높이를 잴 수 있다. 따라서 고도계를 구입하여 처음으로 고도를 맞출 때, 그곳에 가서 정확히 해발 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국립지리원은 수준원점 바로 옆에 별도의 수준원점 4개를 만들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백두산의 높이는 우리나라 사회과부도를 비롯, 대부분의 서적에는 2,744m로 기록된 반면, 북한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서적에는 2,750m로 남한의 기록보다 6m 더 높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 기록은 2,749.2m(또는 2,749.6m)로 기록되어 있다.
이 해발고도 즉 수준원점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 나라마다 해발고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인천 앞바다의 수면을 기준으로 하여 수준원점을 정한 것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원산 앞바다의 해수면을, 중국은 천진 앞바다의 해수면을 기준으로 수준원점을 정하여 고도를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백두산의 높이를 비롯, 남․북한의 산높이 기록이 다른 것은 이러한 까닭에 기인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