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를 문화의 대상으로 보면 마고 캐릭터라는 관념의 생성이 가능해진다. 말하자면 문화상품으로서의 의미와 이미지 생성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로서 마고 캐릭터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것이 있는데, 마고대신과 마고삼신이라는 종교적 관념에서 놓여나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 관념에서 문화적 관념으로 가려면, 초월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타협적인 종교적 관념에서 보편성이 있고 합리성 있고 대중성이 있는 문화적 관념으로의 전이가 필요한데, 마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마고의 종교적 관념은 극복되지 않는다.
▲ 홍산紅山문화 출토유물 곰. 홍산문화 출토유물은 곰으로 상징되는 한웅시대를 나타내는 유물이다. 당시에 곰은 토템의 대상물이었다. |
| 이렇게 특정 종교가 세탁하여 보여주는 마고의 종교적 의미와 이미지를 비종교적 의미와 이미지로 바꾸지 않으면 문화관념 생성에 타격을 받게 된다. 따라서 마고의 캐릭터화는 생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마고가 특정 종교로부터 끊임없이 미신으로 신화로 우상으로 공격당하는 이유는 이렇게 마고에 대한 고정관념화 된 편견과 폄하를 극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마고에 있다기고 하기보다 특정 종교가 마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성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마고의 역사와 특정 종교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이런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역사적 관점에서 마고의 역사를 보면, 마고의 역사는 14,000~12,000년 사이이고, 특정 종교(불교, 도교, 기독교)의 역사는 2천년전의 역사에 불과하다. 특정 종교는 마고가 내세운 선교仙敎(삼신교三神敎)와 비교할 때 1만년의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지 못한다. 역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2천년의 일천한 역사를 가진 특정 종교가 마고를 신화로 몰고 미신으로 몰아 매도한다면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마고문화의 역사는 마고역사가 시작된 1만4천년을 뛰어넘어 십만 년, 혹은 백만 년 이상으로도 확대가 가능하다. 다만 고고학적인 발굴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사정이 이렇다 하더라도, 종교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려는 인간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대안종교로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인디언의 곰전사춤 (사진제공 미국의 James Park). |
| 그렇다면 마고를 어떻게 하면 우리 곁에 모셔 둘 수 있는 것일까? 이 점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마고를 우리의 곁에 모셔두려면 마고를 역사인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고가 삼신이라는 초월적 종교적 관념에서 자유스러워져야 역사적 인물로의 환생이 가능해 진다. 그래야 마고상을 제대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고 종교는 인간을 미혹시킨다. 인간을 미혹시키는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념이다. 영원히 사는 초월적이고 비가시적인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인간을 결부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등장시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떠들어대는 일이 기독교 신학자들이 해 온 일이다.
설사 그것이 유일무이한 단하나의 절대적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증명해 줄 인간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인간은 어리석기 때문에 강력한 권력이 나와서 협박하고 우겨대면 끌려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초월적 관념의 대리자가 예수님처럼 만들어지고, 이러한 신화적 사건을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인 인간은 똑똑바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기원전이니, 기원후니 하는 시대구분의 관념도 가장 성공한 똑똑바보 관념으로 볼 수 있다.
▲ 곰술통인데 단군왕검 탄생의 이미지가 있다. 꿩은양가羊加에서 분파한 치족雉族이다. |
| 우리는 예수님 생존 당시의 유태인들과 로마인들이 합작으로 왜 예수님을 처형했는지 생각해 보려 하지 않는다.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생계와 권력과 사회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처형하였다. 이런 사실을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섭리로 처형했다고 떠들어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마고를 인류 최고의 신으로 등극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고를 인류최고의 신으로 등극시키려면 우선 예수시대처럼 정부의 종교탄압이 극성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팔장을 끼고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니 종교탄압이란 요원할 것이다.
또한 마고 신봉자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처럼 기득권세력과 충돌하여 마고를 이슈화하고 스스로 순교자가 되지 않으면 아니 되는데, 그럴 가능성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마고 신봉파들에게 이러한 도발의지가 없다는 것은 마고 아바타화가 불가능하다는 말과 같다.
지나인에게서 지나인이 마고를 어떻게 캐릭터화 하는가를 예로 들어 보기로 한다. 지나인의 신화에 마고가 도를 닦았다고 전해 오는 산이 하나 있다. 그 산이 모주 동남쪽에 있는 고여산이다.(牟州東南姑余山) 그런데 지나인이 말하는 마고는 인류의 시조 마고가 아니라 건창인建昌人 마고를 말한다. 인류의 시조 마고의 년대를 뚝 떨어뜨려 후대의 인간으로 만든 것이다.
‘모주동남고여산’이라는 데에 비밀이 숨어 있다. 금문에 들어가 보면 ‘모주동남고여산’의 의미가 밝혀진다.
▲ 곰을 의미하는 웅자의 변화. 우禹자는 고비를 의미하는 웅자가 변화여 완성된 문자이다. |
| 모주牟州는 옛날에 모이국牟夷國이 있었던 땅으로 볼 수 있다. 모이국이 있었던 땅을 지금은 산동반도에 있는 래무시萊蕪市라 한다. 래무시에 래산萊山이 있다. 래산은 래이족萊夷族이 살았던 산이다.
고여산姑余山에서 고姑는 마고로 볼 수 있는 말이다. 여余는 처음 제사祭祀를 창안한 중여곤衆艅鯀이라는 분을 의미하는 문자이다. 중衆은 돼지를 잡아 놓고 천문을 살피는 관리라는 뜻이다. 그가 살피는 천문은 해,달,북두칠성 이다. 천문의 삼신三神이다. 그러므로 고여산은 중여곤이 천문을 살펴 마고에게 제사지낸 산임을 알 수 있다.
여余자를 좀더 살펴 보면, 여餘와 여艅로 발전한다. 여餘는 제관 중여곤이 밥을 올려(헌반獻飯) 제사지낸다는 뜻이고, 여艅는 중여곤이 배(선船)의 형상으로 생긴 술잔 작爵에 술을 담아 헌주獻酒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부여夫餘(조선의 서울을 중여곤의 후손들이 부여라 하였다. (부여란 메를 올려 제사지내는 제관을 의미하는 문자이다.)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성백제시대 백제 사람들은 서울을 메를 올려 제사지내며 곰(웅熊, 고비)라 하였다. 서울에서 마고에게 제사지냈으므로 마고를 의미하는 곰(고비)이라 하였던 것이다.
탁록전쟁에서 치우천왕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가 선교를 버리고 도교를 창설했을 때 마고를 대체하기 위하여 서왕모를 내세웠다. 마고는 직녀성에서 온 여신이라는 뜻인데, 서왕모는 ‘서쪽에서 온 왕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지나인이 서왕모를 마고의 라이벌로 내세운 이유가 서왕모가 하는 일에서 밝혀진다. 서왕모는 천상의 여신으로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지 못하게 갈라놓는 일을 하였다. 이 말은 도교가 백성들이 선교로 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마고가 계셨다는 삼신산은 어디에 있었을까?
마고신화와 관련이 있는 산이라면 모두 다 삼신산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산 중에서 모주牟州에 있는 고여산姑余山이 삼신산일 가능성이 높다.
①. 삼신산이 발해만에 있다고 했으므로 먼저 삼신산으로 볼 수 있는 산은 마고전설이 남아 전해 오는 고여산이다. 발해연안과 인근 도서에 살던 사람들이 마고의 후예들인데, 풍이, 오이, 발이, 래이, 회이, 우이 등의 이름으로 불렸던 사람들로, 동이족과 지나족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 마고의 후예들에 의하여 마고는 구원의 여인상으로 받들어 모셔졌다.
▲ 청동기시대의 곰술통. 단군왕검 탄생의 이미지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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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장자莊子 제1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막고야산邈姑射山을 두 번째 삼신산으로 볼 수 있다. <산해경>에서 막고야지산邈姑射之山이라 하였다.
" 막고야 산에는 신인(神人)이 살고 있는데, 그의 피부는 마치 얼음이나 눈처럼 희고, 몸은 처녀처럼 부드러우며, 곡식은 먹지도 않고 바람을 들이키고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타고 천지의 밖에서 노닌다.” 邈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 綽約若處子 不食五穀,吸風飮露 乘雲氣 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③. <산해경>의 해내북경海內北經에 나오는 열고야산列姑射山을 삼신산으로 볼 수 있다. 열고야산은 막고야산 즉 삼신산의 다른 이름이다. 봉래 방장 영주 세 곳을 합하여 삼신산이라고 하는데,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발해 가운데에 삼신산이 있다고 하였다.
막고야산의 막고는 마고를 뜻하고, 야는 율려의 11번째의 율인 무야無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막고야산은 마고가 무야를 궁음宮音으로 하여 만든 음악을 연주하는 산이라는 뜻이다.
▲ 한성백제시대에 삼각산은 삼신산을 의미했고 한성은 마고를 의미하는 곰으로 불렸다. |
| 마고는 한중일韓中日 삼국이 모두 공유하는 구원의 여인상이다. 풍이족이 구려족九黎族으로 불리던 시대에, 구려족에서 하화족이 분화해 나가면서, 하화족은 마고를 금모낭낭金母娘娘으로 부르다가 서왕모西王母로 바꾸어 불렀을 것으로 본다.
곰은 단군왕검 때에 와서 검으로 변하였다. 검은 곰이고, 곰은 한자로 쓰면 고마固麻이다. 고마는 우리글 곰을 한자로 바꾸기 위하여 풀어 쓴 것이다.
남제사南齊史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북두칠성은 그 음이 백제어로 곰이다. 한자로 고마固麻로 풀어 쓴다.
[남사백제전南史百濟傳]([康熙字典] 부수-麻 1622쪽 國際文化出版公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남사는 南齊史이다.
百濟國號王所都城曰固麻邑曰첨魯如中國言郡縣也
백제국호왕소도성왈고마읍왕첨로여중국언군현야
백제의 국호는 왕이 머무르는 도성으로 하는데, 고마읍이라고 하고, 첨로라고도 하고, 중국말로 군현과 같다.
위 글에서 고마固麻는 우리글 곰을 한자로 바꾸기 위하여 고마로 풀어 쓴 것이다. 이글은 백제의 도성이 ‘곰’으로 불렸다는 증거이다. 첨로첨魯의 ‘첨’은 단군왕검의 검儉과 같은 뜻으로 쓴 말이다. 두 말 다 ‘처음’이라는 뜻이다. 이들 문자는 모두 다 마고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말의 중요한 점은 마고를 계승한 조선과 백제가 국조(國祖)를 마고로 하였다는 점이다.
고마를 처음 쓰기 시작한 때는 소서노와 그의 아들 온조가 하북 위례성을 세웠을 때이다. 하북 위례성을 북한北漢이라 하였는데, 北漢은 광주廣州의 옛 이름이다. 하북 위례성의 백제 이름이 우리말로 곰이고, 한자음으로 固麻라고 썼다. 하북 위례성의 중심에 마고사당麻姑祠堂을 지어 좌정시키고 이를 곰 즉 固麻라고 했으므로 국도의 이름이 된 것이다.
웅진熊津은 곰나루(지금의 公州)의 한자화 이다. 마고는 지방마다 사당을 지어 모시는데, 이 사당을 할미당 또는 삼신당이라고 하였다. 할미는 한어머니라는 뜻이다.
▲ 조선왕조 명종 때 격암 남사고는 성주산, 소래산, 노고산을 하나로 묶어 삼신산이라 하였다. 그는 이곳을 ‘메시아 도부신인’이 태어나는 미래의 유토피아로 보았다. |
| 마고 아바타로서의 곰
천문에서 마고와 동일시되는 별은 베가성으로 불리는 직녀성이다. 베가성이란 서양사람의 말이 아니라 풍이족시대에 우리 조상이 쓰던 말로 ‘베를 짜는 집안 여자별’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한자화 하여 직녀성이 된 것이다.
우리 조상은 상고시대에 절이나 사찰로 불리는 절을 짓기 전에는 동굴을 절로 하였다. 그러므로 굴과 절은 같은 말로 볼 수 있다. 지금도 곰굴이나 범굴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곰굴은 모신(할머니 신) 즉 여신에게 제사지내던 절이었고, 범굴은 남신(할아버지 신)에게 제사지내던 절이었다. 지금도 종교인들이 토굴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토굴이 태초의 절이었기 때문에 이 태초의 절을 찾아가서 기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① 우리 신화와 역사 기록에 麻姑가 처음 등장하는 때는 신라 내물왕(奈勿王) 때이다. 당시의 재상 朴堤上(363-419?)이 징심록澄心錄 15誌를 지었는데, 5誌 부도지符都誌에 인류문명인의 시조로 나온다.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마고가 등장하는 때가 지구의 운동으로歲差運動으로 지구가 뒤집어져 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바다가 되고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던 때라고 한다. 혹은 헤성과의 충돌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다고도 한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14,000년 전으로, 대빙하기의 말기의 혹독한 추위가 걷히어 가던 때이다.
이때 남태평양 상에서 무 대륙이 침몰하고, 대서양에서 아틀란티스가 침몰했는데, 무 대륙 침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 대륙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마고로 유추하고, 아틀란티스 침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틀란티스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멜기세댁으로 유추한다.
마고는 인도 등 동남아시아의 사원에 보관되어 있는 토판에 쇄기문자로 기록되어 있고, 멜키세댁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영원히 죽지 않는 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
② <부도지>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 마고는 두 딸 궁희와 소희를 낳았고, 궁희에게서 청궁과 황궁이 태어나고, 소희에게서 백소와 흑소가 태어난다.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원시인이 아닌 문명인으로 불리는 인류는 이분들의 후손이 된다. 우리는 황궁의 후손으로, 황궁에게서 유인이 태어나고, 유인에게서 한인이 태어나고, 한인에게서 한웅이 태어나고, 한웅에게서 단군왕검이 태어난다. 마고에서부터 단군왕검까지의 역사가 1만년이다.
③ 이후로 마고에 대한 기록은 우리 역사 곳곳에 나온다. 마고는 태초의 하늘에서는 직녀성이고, 북두칠성에 좌정하여 곰으로 불린다. 큰곰별자리와 작은곰별자리가 이리하여 생긴다. 마고의 자손은 칠성의 자손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곰은 단군왕검 때에 와서 검으로 변한다. 검은 곰이고 곰은 한자로 쓰면 고마固麻이다.
固麻는 풀어 쓰면 囗자 안에 古자를 써서 固자를 만들고 달리 麻자를 써서 만든 문자이다. 이 문자는 囗자 안에 姑자르 넣어 만들어야 하는 문자인데, 女자를 띄어내어 麻자로 독립시킨 문자이다. 그러므로 女자와 麻자를 같은 뜻의 문자로 볼 수 있다. 이때의 麻자는 女를 의미하는 麻자이다. 女를 의미하는 麻자는 母자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女 麻 母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④ 삼각산 기슭에 소서노와 온조 모자가 백제를 세울 때, 이곳을 한자로 위레성慰禮城이라고 하였다. 인수봉에 우레가 치므로 우레성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바꾸어 쓰다 보니 위례성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표기는 그리스의 최고신 우라노스가 우레신이라는 점, 그의 아들 제우스가 제우사帝雨師로 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화학자들에 따르면 신화시대에 전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이 있었고, 단 하나의 공용어인 인공언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당시에 전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은 풍이족을 추축으로 한 한국桓國, 인공언어로 풍이족의 언어인 한국어桓國語가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라노스나 제우스나 우례성은 모두 풍이문자의 변형문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고마를 처음 쓰기 시작한 때는 소서노와 그의 아들 온조가 하북 위례성을 세웠을 때이다. 하북 위례성을 北漢이라고 하였는데, 北漢은 廣州의 옛 이름이다. 하북 위례성의 백제 이름이 우리말로 곰이고, 한자음으로 固麻라고 썼다. 하북 위례성의 중심에 마고사당麻姑祠堂을 지어 좌정시키고 이를 곰 즉 固麻라고 했으므로 국도의 이름이 된 것이다.
▲ 화이의 서왕모상.마고를 대체하기 위하여 서왕모를 내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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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고려시대의 기록은 좀더 확실하다. <高麗史36卷-世家36-忠惠王>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戊辰宰相會百官及國老欲署名呈省書國老多不至事
竟未就王傳車疾驅艱楚萬狀未
至揭陽丙子薨于岳陽縣. 或云遇 或云食橘而
國人聞之莫有悲之者小民至有欣躍以爲復見更生之日.
初宮中及道路歌曰:"阿也麻古之那從今去何時來?" 至是人解之曰: "岳陽亡故之難今日去何時還?"
王在位前後六年壽三十.
무진일, 재상들이 백관들과 나라의 원로들을 소집하여 원나라 중서성에 제출할 서한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나라의 원로들 대부분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성사하지 못하였다.
왕(원에 납치되어 후에 살해당하게 되는 충혜왕)은 전거傳車(역마)에 실려서 급히 달려가는 도중에 천신만고를 겪으며 계양까지 가지 못하고 병자일에 악양현에서 죽었다. 혹은 “독살되었다”하고, 혹은 “귤에 중독되어 죽었다”고도 하는데, 본국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가난한 백성들은 기뻐 날뛰면서 이제 다시 갱생할 날을 보게 되었다고까지 말하였다.(주, 이 글은 친원파親元波의 기록을 조선 초기에 고려사를 편찬하는 사람들이 다시 폄하한 글이므로 왜곡되고 훼손된 글이라고 보아야 한다)
▲ 멕시코의 마고상. 오른쪽 벽에 명두(천부삼인)와 불사전이 걸려 있어 마고상으로 보게 한다. |
| 처음에 궁중과 항간에서 노래가 유행되기를, “아아 마고지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고 하였다. 왕은 전후하여 재위 6년이며 수명 30세이었다.
<고려사>에는 이렇게 고려가 계승한 나라가 ‘마고지나’임을 밝히고 있다.
⑥. 古韓語 연구자들은 우리 말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에 쓰이는 고마가 마고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에 ‘神 같다’는 표현으로 썼는데, 오늘날 ‘고맙’다는 표현으로 의미가 바뀌었다고 한다. ‘곰 같다’→‘검 같다’→‘신 같다’로 보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神을 かみ라고 한다. かみ는 우리 말 검(神)의 일본어화이다.
우리말의 ‘곰삭았다’는 말은 ‘무르익었다’는 말인데, 곰처럼 되었다는 말, 단군신화에서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인내하여 여자로 환골탈퇴換骨脫退할 때가 되었다는 뜻에서 왔다고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꼼꼼히’ 라는 말도 곰+곰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꼼꼼히’ 라는 말에는 ‘인내하며 차근차근 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 역시 단군신화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 마고성에서 추방당한 마고의 자손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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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우리 음악의 고유한 이름을 매昧라고 한다. 매는 북두칠성에 소속한 별이다. 매를 친다, 두드린다는 의미가 있다. 두드린다는 ‘斗(북두칠성)에 드린다’는 의미이다. 곰에게 드린다는 뜻이기도 한다. 곰은 검이다. 검에게 드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에게 드린다는 뜻이 된다. 매는 신의 의미로 쓰는 마고에서 나온 것이다. music은 마고에서 온 것으로 본다.
▲ 마고의 자손 도부신인桃符神人. 도부신인은 미래에 태어날 인류의 메시아이다. 한일韓日 두 나라에 복숭아에서 도부신인(일본에서는 모모타로)이 태어난다는 비의秘義가 있다. |
| ⑧. 엄마의 마나 어머니의 머는 마고에서 온 것으로 본다. 따라서 母가 麻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역사 중국사편입연구와 관련하여
① 현재 중국은 5년에 걸쳐 200위엔(우리돈 3조원)을 투입하여 한국의 강단사학의 연구성과물을 수거하여 조선족 역사 학자를 주축으로 한 <한국 고구려사 중국사 편입을 위한 연구>를 서두르고 있고,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는바, 이를 <東北工程>(동북아프로젝트)라고 한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면, 우리의 역사는 중국의 변방역사로 전락하게 되는데, 한국을 중국의 속국, 변방국가로 자리매김을 하자는 데에 목적이 있다.
② 중국은 앞으로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동북공정>은 이때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북한지역을 중국화 하려는 음모를 노출하는 것으로, 북한이 고구려를 계승하였고, 고구려를 계승한 북한이 멸망하였으므로, 북한 땅은 당연히 고구려의 역사를 귀속한 중국에 속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펴게 될 것인 바, 정부나 국민 모두가 이때를 대비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③ 마고는 우리의 시조로 조선, 고구려, 백제, 고려를 통하여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으므로, 마고의 역사를 복원해야만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할 수 있는 대항논리의 구축이 가능해진다.
▲ 마고전설이 얽혀 있는 팽매바위. 팽매바위는 마고가 던져버린 바위라는 뜻인데, 화순의 고인돌군의 초입에 있다. 돌의 생김새가 곰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의미심장하다. |
| 마고의 변음인 곰이나 고마를 처음 쓴 사람이 소서노召西弩이다. 그는 마고신앙인 할미신앙 즉 삼신신앙을 후손에게 남겨준 사람으로, 고주몽을 도와서 고구려를 세웠고, 그의 아들 온조를 도와서 백제를 세웠다. 인류 역사에서 한 여자가 두 나라를 세운 예는 동서고금에 없다.
우리가 이 위대한 소서노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의 역사로 편입하고자 했을 때, 대항논리의 중심에 소서노가 서있으므로, 소서노를 대한문학의 신으로 영신한 문학인들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역사와 조상에게 충성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소서노가 처음 세운 백제의 도성 이름의 어원이 되는 마고를 우리가 서울문학에 씀으로써 대한민국의 문학인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④ 아울러 마고상을 남산에 있는 <문학인의 집>이나, 국도 서울의 주산인 삼각산 자락에 현신하게 하여 우리 역사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⑤ 문화민족은 각 민족이 국민적 사표가 될만한 구원의 여인상을 가지고 있는바, 중국의 서왕모, 일본의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 유태인의 마리아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시조 마고를 우리 구원의 여인상으로 내세움으로써 정신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취약한 이 부분을 보강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