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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빈대
- 은유시인 -
내 살아오면서 ‘빈대’란 하찮은 미물로부터 꽤나 시달림 받았던 기억이 두 번 있다.
한번은 20대 초에 잠시 일했었던 서울 수유리 소재 영세업체 ‘신성금형’이란 금형공장 안 낡고 비좁은 합숙소의 냄새나는 이불 속에서, 또 한 번은 부산 처음 내려와 꽤나 허름한 왜식주택 2층 다다미방에서 녀석들의 극성에 하루라도 편히 잠잘 수 없었던 게 마냥 엊그제 같기만 하다.
오랜 기간 몸소 체험해본 덕택에 놈의 생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빈대 얘기를 하다 보니 떠오르는 귀찮은 미물이 또 있다.
마냥 부끄러운 얘기라 할 수 있겠지만, 어렸을 적엔 ‘이’라는 미물을 온몸에 두루 키워봤었고 또 어른이 되어서도 ‘사면바리’라는 것을 잠시 동안 사타귀 숲에서 키워봤었다. 그러고 보니 ‘나란 인간은 원래부터 청결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괜히 민망한 느낌이 든다.
이나 사면바리, 빈대 모두는 청결치 못한 처지에 몸에 기생하며 피를 빨아먹고 덤으로 가려움증마저 주는 그야말로 악질적 해충이다.
그중에 이나 사면바리는 그 크기나 모양새에 있어서 앙증맞다든가 오동통한 모습이 귀염성이라도 있고, 손톱으로 ‘탁!’ 터뜨릴 수 있는 묘한 즐거움도 선사한다. 하지만 빈대란 놈은 눈 씻고 찾아보려도 귀염성은커녕 온 몸에 닭살 돋는 혐오감만 주는 미물이며, 신문지 등에 싸서 터뜨려도 여간해서는 ‘탁!’소리가 나지 않기에 터뜨리는 즐거움마저 얻을 수 없다.
빈대는 꼭 밥 알갱이 하나를 납작하니 눌린 크기로 갈색인지 거무튀튀한 색인지 분간이 안 된다. 하여튼 피를 잔뜩 빨아먹은 놈의 몸 색깔은 얼핏 붉게 보이고, 스믈스믈 기어가는 꼬락서니나 생김새는 영 밥맛이다.
놈은 낮에는 어디론가 숨어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밤만 되면 어느새 기어 나와 온몸을 공략하기를 이보다도 더 민첩하다.
참 기분 나쁜 것이 목덜미든 얼굴이든 따끔거리는 순간 손바닥으로 탁치면서 더듬어보면, 영락없이 밥 알갱이 눌린 부피만큼의 질감이 느껴지며 순간 톡 쏘는 듯한 노린내가 풍겨오는 것이다.
좁은 틈새마다 그 납작한 몸을 숨기니 틈새가 존재하는 한 초가삼간을 다 태우려 들지 않는다면 빈대는 여간해서는 박멸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엔 그렇듯 혐오스러운 ‘빈대족’들이 너무 많다.
약한 자의 등골을 빼먹고 사는 악질 인간들만 빈대족이 아니다. 자신의 수고로움에 비해 월등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간교한 빈대족이 그렇고, 눈먼 돈이라 하여 공적자금을 제 돈 갖다 쓰듯 쓰는 도둑심보의 빈대족이 그렇다.
그 외에도 가짜 물건들을 만들어 팔아먹는 사기성 짙은 빈대족, 오염물질을 하수구에 몰래 내다버리는 철면피한 빈대족, 약속과 신의를 밥 먹듯이 어기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후안무치한 빈대족, 그저 영계라면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군침을 흘리는 섹스중독을 앓는 빈대족 등등 그 종류나 수효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 빈대족들은 진짜 빈대보다 수천 배, 수만 배 인간들에게 더 큰 패악을 저지르는 진짜 악질빈대인 것이다.
연일 언론들은 그런 ‘빈대족’들을 들춰내지만, 워낙 그러한 빈대족들이 많다 보니 온 누리가 마치 빈대족 세상인 양 이젠 틈새로 숨으려드는 수고로움조차 감수하려들지 않는다.
어쩌면 뻔뻔하다 못해 더 당당해지려하는 것 같다.
마치 빈대 낯짝 세우려는 듯이 말이다.
빈대족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상, 이 세상은 절대로 정화될 수 없다. 초가삼간을 태워서라도 보다 강력한 빈대족 박멸대책이 나와야할 것이다.
빈대족들이 없는 세상, 당신은 상상이라도 한번 해봤는가?
- 끝 -
(200자 원고지 11매 분량)
2004/02/10/1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