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계계곡은 7∼8월에 개장하여 2만명이상의 피서객이 몰려오고 있으며 15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 시설과 야영 및 민박이 가능함
○ 입장료 : 7월과 8월만 징수
성인 1,000원, 청소년 군인 700원, 어린이 500원
(단체입장시 성인 700원, 청소년 군인 500원, 어린이 300원)
○ 교통편
ㅇ 대구,북대구IC → 의성IC(봉양) → 금성 → 가음(현리방향) → 빙계계곡
ㅇ 의성읍, 금성면에서 가음면 현리행 시내버스를 이용, 일일 2회 (소요시간 40분정도)
ㅇ 대구,동대구,청량리역 → 탑리역 → 가음(버스이용,현리행) → 빙계계곡(3회)
※ 가음면 소재지에서 춘산방향으로 5분정도 가다보면 빙계군립공원 이정표가 있음.
○ 주차시설 : 2,000㎡ (150대 수용)
○ 현지숙박 : 야영 및 민박 가능
○ 인근 관광지
금성산 수정사, 공룡발자국화석(천연기념물), 오층석탑(국보제77호)
빙계온천, 산운대감마을, 조문국사적지(경덕왕릉, 고분군)
○ 연락처 : 건설과 054)830-6341 춘산면사무소 054)830-6456
경북 8승의 하나로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삼복 때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 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으로 빙계(氷溪) 3리 서원(書院)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용추, 물레방아, 바람구멍, 어진바위, 의각, 석탑, 얼음구멍, 부처막을 빙계팔경이라 하며, 계곡 안쪽에 자리한 보물 제327호 오층석탑은 높이 8.15m의 대형탑이며, 화강석으로 조성된 고려초의 석탑이 있다.
마을 건너편에 수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무수한 바위는 1933년 10월 4일 경북도내 경북팔승의 하나로 뽑혔으며, 계곡 가운데 돋보이는 높이 10m, 둘레가 20m 정도의 유난히도 큰 바위에 빙계동(氷溪洞)이란 커다란 글씨가 새겨진 건 임진란 때 여기 들른 명장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란 얘기도 있다. 그 옆에 단 하나의 큰 바위 위에는 경북 팔승지일 이라고 새긴 아담한 돌비(石碑)가 자리잡고있다.
경북 8승의 하나로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제1경 빙혈(氷穴)
마을 뒷산 산기슭의 바위 아래 너덧 명이 들어 설수 있는 방 한칸 만한 넓이의 공간이다.
여기선 입춘(入春)이 되면 찬 기운이 나고 한여름엔 얼음이 얼어 있다. 입추(入秋)가 지나면 차차 녹아 동지(冬至)에는 볼 수 없고 훈훈한 바람이 나온다.
제2경 풍혈(風穴)
동구 도로 변 바위와 바위 사이에 뚫린 좁고 깊은 곳으로 여름엔 찬바람이 나오고, 겨울철은 훈훈한 더운 바람이 일고 있다.
그 근방 크고 작은 바위 사이엔 거의 같은 현상이 일어 나는 편이다.
제3경 인암(仁岩)
옛날 서원(氷溪 書院)터 앞에 위치한 나비 1.2m, 높이 2.4m가 넘는 큰 바위다.
그 전면에는 햇빛으로 인해 정오가 되면 어질 인(仁)자 모양의 그늘이 나타나 세상 인심을 선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제4경 의각(義閣)
임진란 때 윤은보(尹殷甫)가 모재, 회재(晦齋) 두 분의 위패를 청송 주왕산(周王山)으로 모셔 들어가 7년 동안 삭망시 향화를 이어와 잘 피난시켰다가 평란 뒤 서원에 안주케 했다.
그 공으로 의사라 일컬음을 받고 그이 갸륵한 의리를 기려 비와 이 전각을 세워 의사각(義士閣) 이라고 불린다.
제5경 수대(水碓)(물레방아)
시냇물을 이용해 매일 많은 곡식을 찧던 규모 큰 물레방아가 있었다가 오래 전 자취를 감춰 버렸고 그 빈터 가까이 대한불교법화종 소속 빙계정사(氷溪精舍)가 세워져 신도들의 발길이 잦다.
제6경 석탑(石塔)
빙산사 구지(氷山寺 舊址)에 당시 (신라말 내지 고려초) 이뤄진 5층 모전(模塼) 돌탑으로 보물 3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7경 불정(佛頂)
불정봉(佛頂峰) 꼭대기에 움푹 파인 데로, 그 옛날 부처가 용과 싸울 적에 찍은 쇠스랑 자국이란 설이 전한다.
제8경 용추(龍湫)(용소)
개울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 시냇물이 굽이치는 곳에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는데 현재 거의 메워졌다. 부처와 싸운 용의 머리가 부딪쳐 파인 데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