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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판부면 금대봉(金臺峰:보름가리봉,885m)을 가다.
글 쓴 이 牧 鉦 高 達 五
7월22일, 삼복(三伏) 더위에 절기(節氣)는 대서(大暑)다. 차에 오르니 처음 오신분들이 상당히 많으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간의 안부를 여쭈니 인정이 따사롭다. 산꾼들은 더위쯤이야 아랑곳 하지 않으시니, 오늘따라 앉을자리가 모자란다.(47명)
군위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을 들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산천(山川)은 푸르다 못해 검푸르고, 넓은 광장에는 차와 사람들로 넘쳐나서 그야말로 차산인해(車山人海)로다!
연일 뉴~스에서는 “유럽발 경제위기”를 떠들고, “수출둔화와 내수시장”의 불경기를 경계하지만 현실에서는 별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슴니다.
차는 신나게 달려서 안동 부근을 지날 때부터 나리던 보슬비는 점~점 굵어져서, 단양휴게소에 이르러서는 제법 많이도 내린다. 일기예보(日氣豫報)에서는 한때 소나기가 올것이라드니, 어째 궂은 비가 내리는가...!
차창에 때리는 비가 오락가락 하니, 등산(登山)을 걱정하는 회원님들의 수가 늘어난다. 내심(內心)은 노심초사(勞心焦思) 긴장되고 걱정되지만, ‘산행지(山行地)에 도착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위로를 드리면서... 간절히 염원(念願) 합니다. “오늘 일정(日程)이 순조롭게 진행(進行)되기를...”
남산님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아서 일까? 원주시 판부면(板富面) 부근에 이르니 나리던 비가 서~서히 멈추고 날씨는 구름이 덮여서 그만 그만하여 되려 좋슴니다!
금대리(金垈里) “아흔아홉골” 입구에 도착하니 시계는 10시20분을 조금 지나있다. 필자(筆者)의 구령으로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출발기점인 구암사(龜巖寺) 방향으로 오름니다.
몇걸음을 나아가니 머리위로는 “금대1터널”로 지나가는 “중앙고속국도”의 “철교량”기둥이 어찌나 우람차고 높은지...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기둥같으다! 머리위로 달리는 차소리가 쌔~앵~ 쌩~ 마치 “젯트기”가 나르는 소리처럼 요란하도다!
계곡 입구에는 여기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러채의 전원주택과 식당들이 보인다. 장마로 계곡물은 불어서 맑고도 시원하게 철~철~ 넘쳐흐른다.
10여 분을 올라 등산(登山)기점에 이르니, 왼편의 높은 언덕위에는 “구암사”가 언~뜻 언~뜻 보이고, 2층집 옆 개울에는 5~6명의 야영객이 모여 고기를 꿉고있어, 살쩜타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한다.
아름다운 대자연은 우리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라, 만물(萬物)이 다 함께 누려야 할 것일진데... 조심! 조심! 모든님들이 개울을 건너 “아흔아홉골”로 오르시니... 선두와 후미는 끝간데를 모르겠도다!
20여 분을 올라도 ‘투구봉(526m)’ 방향으로 오르는 능선길을 발견치 못하고, 선두는 계속 “도삿골(아흔아홉골)” 계곡으로만 진행하시니, 중간 후미는 뒤따르기에 바쁘시다! 본래 계획은 투구봉, 제1전망대, 제2, 제3전망대 방향으로 능선을 타고 올라 ‘도삿골’로 하산(下山) 하려던 것인데... 도리가 없슴니다 그려!
금대봉(金臺峰:무명봉:보름가리봉, 885m) 일대는 세속(世俗)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등산로(登山路)는 희미하고 태고적 원시림과 대자연의 신비함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오염되지 않고 향기롭기 그지없다!
계곡수(溪谷水)는 1급 청정수(淸淨水)요! 수풀은 넘쳐나고, 향기는 천지(天地)에 가득합니다 그려! 날씨는 구름이 덮혀서 시원하고, 깊은 계곡에는 냉기(冷氣)가 서려있어 여름철 산행지로는 더 없이 좋슴니다!
계곡을 중심으로 이쪽 저쪽 건너 가면서 30여 분을 올랐을까? 등산 개념도(槪念圖)에 ‘치마폭포’라는데 실제 그 모습이 흰 ‘비단치마’를 펼쳐놓은 듯 하며, 계곡이 깊어갈 수 록 녹음은 더욱 짙어서 온몸에 대자연의 향기가 베어듬니다.
어떤곳은 며칠전 지나간 태풍 “카눈”의 영향인지 거대한 나무가 뿌리채 뽑혀 넘어져 있다. 대자연의 위력은 실로 대단해서, 우리 인간들의 힘으로는 속수무책입니다. 인간의 발길이 잘 닫지않는 길을 오르는 재미도 쏠쏠하고, 이름모를 나무들과 기화요초(琪花瑤草)들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슴니다.
시원타고는 하나 그래도 대서(大暑)의 날씨는 어쩔 수 없어서... 우거진 숲사이로 가끔씩 강열한 태양빛이 새어드니, 잠시 잠시 온몸으로 더위가 느껴져서 개울물에 손을 씻으며 세안(洗眼)하니... 시원타 못해 손이 다 시림니다 그려!
1시간여를 올라 ‘와폭(臥瀑)’ 부근에 이르니, 폭포라고 하기엔 많이도 왜소(矮小)하며, 그래도 계곡내에서는 제일 뛰어난 풍광이요! 경사가 완만하여 이름에 걸맞다는 생각을 하며, 계곡이 깊고 짙은 수풀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슴니다.
그럭 저럭 오르다 쉬고 쉬다 오르며, 합수점(合水點) 부근에서 모두들 함께 쉬어 갑니다. 필자를 비롯해서 노장(서부장)님, 김해진님, 행복님, 김진여심보살님, 박현숙님, 황회장님, 홍부회장님, 구윤서님, 이진학님 등 이 모여 가져온 과일과 음식들을 나눠드시며 얼마를 쉬다 다시 오름니다.
‘도삿골고개’로 오르는 등산길은 지난 장마에 쓸려서 거의 알아보기 힘들며, 선발대로 4~5명이 오른 뒤를 이어 20여분을 올라 고개 능선(도삿골고개)에 도착하니, 시계는 12시45분을 가르킨다.
박번 산대장을 비롯하여 선두구룹 5~6명에게 ‘금대봉’ 주위의 적당한 곳(중재)에서 중식을 할 것을 당부드리며, 20여 분을 기다려 다시 중간 후미의 회원님들과 합류하여 모두들 함께 중식을 드심니다.
모든님들이 다 한자리에서 점심을 드시는데, 디카맨 김장길님이 보이지 않아서 필자와 황회장님이 번갈아 연락을 해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휴대폰에 음성메세지를 남기고 박현숙님에게 여쭤봐도 모르신다.
식후 삼거리 부근과 금대봉(보름가리봉, 885m) 일대의 지리적 배경과 전설을 상기(想起)해 봅니다.
이곳 금대봉(보름가리봉:무명봉,885m)은 ‘영월지맥’의 치악산 남대봉, 시명봉(1,187m) 부근에서 서남쪽으로 한지맥이 흘러나와 벼락바위봉(937.6m), 수리봉(910m)을 거쳐 금대봉에 이르고, 다시 백운산(1,086m), 옥녀봉, 천등산, 관모봉을 지나 고봉(459m)에서 그 맥을 충주호(남한강)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백운지맥이라 한다.
이 곳 등산은 금창리에서 출발하여 벼락바위봉, 화본재, 수리봉, 한엿고개, 삼거리봉을 경유하여 도삿골고개에서 ‘아흔아홉골’로 하산하는 것이 좋은데... 삼복중(三伏中)의 등산이라 부득이 단축하여 등산하다 보니, 다 볼 수없슴이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아울러 금창리 부근의 “찰방(察訪)고개”와 ‘벼락바위봉’에는 아름답고도 애절한 전설이 있어 잠시 옮겨 봅니다.
12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1441~1457)은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淸泠浦)로 유배되어 17세에 독배(毒杯)를 마시고 죽임을 당했다. 한양에서 영월까지 160Km를 일주일 동안 걸어서 가는데, 이 곳 금창리 ‘찰방망이고개’를 넘어 황둔리(黃屯里) 솔치재, 영월 눈물재를 지나 다시 주천(酒泉)으로 해서 청령포에 도착했다 한다.
당시 걸어 넘었던 수많은 고개중에 하나인 “찰방망이고개”에는 바위절벽이 벼락을 맞은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벼락바위봉(938m)’과 하늘이 노(怒)하고 땅이 슬퍼하여 벼락이 쳤던것이라고 전해오며, 또 옛날길로 역골에 신림역(神林驛)이 있었을 때 찰방(察訪:조선시대 역참을 관리하던 종6품관)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그 밖에 원주 원(元)씨가 이곳에 묘(墓)를 쓰고 찰방(察訪)이 났다고 하여 ‘찰방망이’라고 부른다 합니다.
연하여 금대봉(보름갈이봉,885m)이나, 제3전망대에서 맑은날에는 동으로 치악산 일대와 감악산, 석기암봉, 제천의 용두산, 멀리는 소백산 일대까지 다 조망(眺望)할 수 있다고 하나 우거진 숲과 짙게 깔린 운무(雲霧)로 인하여 다 볼 수 없슴이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울고 넘는 찰방고개는 어린님의 한이 서렸구려
뉘라서 그 심정(心情)을 알며 또 위로할 것인가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다 뜬구름인 것을...
치자(治者)는 모르고 있으니 벼락이 칠 수 밖에!
중재에서 3~4명은 금대봉(보름갈이봉) 정상으로 가고, 나머지 분들은 ‘아흔아홉골계곡’으로 하산(下山) 합니다.
하산길은 가파르고도 질퍽해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으며, 어떤 님들은 엉덩방아를 찧어서 얼룩 덜룩 합니다 그려! 30여 분을 걸어 나리니 계곡의 여러곳에 그 옛날 화전민(火田民)들이 일궈서 밭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여러군데 보이며, 이끼낀 돌 축대가 우거진 수풀에 가리워져서 알아보기도 쉽지 않슴니다.
조선 초기부터 고려의 유신(儒臣)들이 원주 일대로 숨어들어 그들의 은둔처이기도 하며, 또 삶의 터전으로 일궈왔던 밭이기도 합니다. 조선 순조1년(1801)에 ‘신유박해(辛酉迫害)’때 천주교도들이 원주일대로 숨어들어 화전민으로 밭을 일구거나 토기를 구워서 그들의 생계를 연명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예로 “배론성지”는 오늘날 관광명소가 되어 있으며, 그들은 주로 옥수수, 감자, 팥, 조, 귀리 등을 심어 삶을 연명하였는데... 이끼 낀 돌너덜에 그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있슴니다. 또 보름갈이봉(금대봉)이라는 이름도 당시 이 일대의 화전민들이 돌너덜 밭을 일구는데 보름이나 걸렸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라고 하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럭 저럭 오를 때 쉬었던 합수지점을 지나 회원님들은 저마다 편하고 좋은곳에서 땀으로 얼룩진 몸을 씻으며, ‘도삿골계곡’에서 삼복의 한더위를 식힘니다! 필자도 적당한 곳에서 몸을 씻으니, 어찌나 개울물이 찬지 한기가 다 느껴집니다.
출발기점에 도착하니 시계는 16시가 다 되어간다. 하산길에 들리기로 한 구암사(龜巖寺)에 들어서니, 출입문이 닫혀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도량(道場)을 둘러 봅니다.
대웅전(大雄殿)은 근래에 지어진 듯 고색(古色)어린 멋은 없으며,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형식이다. 뒷산은 거북이 머리형상이며 바로 그 기슭에 세워져서 “구암사(龜巖寺)”라는 사명(寺名)이 충분히 이해가 되며, 백호는 허약하나 청룡은 우람하고도 잘 감싸주고 있어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하고 있슴니다.
좌향은 정북향(오좌:午坐)으로 현공풍수(玄空風水)의 8운기(2004~2023)에 해당하여 쌍성회좌(雙星會坐)로서 그리 좋은 좌향(坐向)은 못됨니다.
법당에 들어 간단히 참배를하고 물러 나오니, 주지스님은 출타중이시고 보살님과 견공(犬公)께서 반갑게 맞아 주심니다. 허허(虛虛)로운 맘으로 산문(山門)을 벗어나니, 삼복더위도 저만큼 물러나는 것 같슴니다.
골(谷)이 깊어서 ‘아흔아홉골’이라 했던가
숨어든 민초들의 수도처라 ‘도삿골’인가
이름도 형상도 다 허망한 것이라 하는데
좋다 나쁘다는 또 무슨 소설(小說)인가!
단기 4345년(서기 2012년) 7월 22일
원주시 판부면 금대봉(보름가리봉, 885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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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님들! 잘계시죠? 덥고 바쁘다는 핑계로 '등산후기'가 많이 늦었슴니다. 특히 사진자료를 이용해주신 황회장님과 김해진님, 또 처음뵙는 원장(바위산)님의 좋은 자료를 활용할 수 있어서 감사드림니다. 더운날씨에 남산님들! 편히 잘 계시기를 바람니다.
좋은 정보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새삼 깊은 골짜기의 시원함을 느낍니다~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수고 하셨습니다^^*
박회장님 더운날씨에 잘 계시는지요? 요즘 날씨로는 "아흔아홉골"이 간절히 생각납니다. 장문의 글을 보시느라
애쓰셨슴니다. 내내 잘계시길 바람니다.
아흔아홉골의 명성만큼 계곡이 깊고 수량이 풍부하여 대서인 날에 오르는데 큰 도움이 되였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천금을 얻고 건강을 얻고 더 무엇을 바라겠어요.
항상 산행후기를 올려 주어서 다시 회상 할 수가 있으니 고맙고 감사함을 전 함니다.
황회장님! 더운날씨에 장문의 글 읽으시느라 애쓰셨슴다. 졸문에 댓글까지 달아 격려해 주시니 고맙슴니다.
항상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애쓰심에 감사드리며, 내내 건강하시길 바람니다.
산행후기 정말 잘 읽고 갑니다
대단 하십니다 안산 즐산 하시고 건강 하세요
해국화님! 반갑슴니다. 한동안 카페에 들리지 못해 늦게 인사올림을 널리 해서(海恕)하시옵고,
졸문의 장문을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