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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사 작품들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미숙한 글솜씨이지만
한번 나름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카논에 관한 것은 카광도사님의 카논 10주년 글에 써진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1999년~2007년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작품은 그 사회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때 일본의 상황을 보면 90년대부터 계속된 장기침체로 인해
중산층이 붕괴되고 양극화가 진행되어 사회가 불안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경제 상황은 접어두고 그럼 이 사회 배경을 토대로
이 작품들이 탄생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논을 보겠습니다.
카논에 나오는 주인공 유이치의 상황을 보죠.
부모님이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간 상태에서 이모인
아키코의 집에 맡겨집니다. 자식을 친척 집에 맡겨가면서
굳이 외국에까지 나갔다는 것은 집안 경제 사정이 녹록치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이치가 생활하는 나유키네 집도 그리 사정은 좋지 않습니다.
일단 아버지가 없어서 편모 가정이고 어머니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러다닙니다. 16년동안 같이 생활한 나유키도 어머니의 직업을 모릅니다.
그 말은 그렇게 떳떳한 직업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 해볼 수 있습니다.
아유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는
상태인데 게임이나 애니 어디에서도 아유의 아버지나 친척 내지 보호자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유가 깨어나고 나서도 보호자는 안 나오고 아유는 유이치를 따라가는걸로 리메이크 애니에 나옵니다.
그 말은 아유도 제대로된 보호자도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마코토는 애초에 여우로 나오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동물인만큼 제대로 된 배경이 있었을
턱이 없었다는건 자세히 덧붙이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시오리는 집안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안에 불치병 환자가 있는데 가정 환경이
안정적일 수 없다는걸 카오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마이는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걸로 나옵니다.
이 쪽도 편모 가정인 셈이죠.
유일하게 사유리만 제대로 된 배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에어를 보겠습니다.
주인공 미스즈는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에게도 버림당한채 친척에게 맡겨집니다.
유키토는 인형 움직이는 기술 하나로 떠돌아다니는 좋게 말하면 방랑자요, 나쁘게 말하면 거지입니다.
미나기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상태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는 상태고 그 어머니는
정신병 증세를 보입니다.
카노는 부모님이 다 없는 상태에서 언니 히지리와 둘이서만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기득권층에서 소외된 사람들이고 소외된 바닷가 시골이라는 배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어의 주제가 '가족'인데 역설적이게도 등장인물들의 가족은 모두 비정상적으로 뒤틀려있습니다.
또 카논이 '기적'이라는 요소를 통해 소외된 현실을 덮고 주인공과 여주인공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에어는 병마에 시달리던 여주인공이 사망함에 따라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미나기나 카노의 경우는 배드엔딩이 아니긴 합니다.
카노 같은 경우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에 가깝고 미나기도 마찬가지지만 미나기는 그 뒤의 전개를
생각해본다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나기가 미치루를 만날 수 있다고 한들 미치루와의 우정은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미나기의 가족은 다시 합쳐질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미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
자식까지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족 관계는 회복의 가능성을 보이지 못한채
끝났다는 점에서 진정한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머편에 대해서도 덧붙이자면 칸나는 본래 신과 같은 대접을 받고 지냈으나
권력 다툼에 밀려 도망치다 희생된 존재라는 점은 에어를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죠.
원래 칸나는 고귀한 신분에서 권력에서 소외되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밑바닥이었던 기존의 인물들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역시 소외된 자라는 위치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않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고
그 밑에 있던 우라하나 류우야도 숨어 살면서 지내는 신세가 되죠.
클라나드를 봅시다.
이건 전에 어떤 분의 글에서도 나왔습니다만
여주인공 나기사와 주인공 토모야의 이야기 자체가
하층민과 하층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나기사의 집은 작은 동네에서 빵집을 하지만 그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어머니 사나에가 과외까지 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나가는 가정입니다.
토모야도 설명할 것도 없이 편부 가정에 아버지는 막노동과 잡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지만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토모야는 전형적인 불량학생으로 커가죠.
토모야의 친구 스노하라도 비슷했기 때문에 서로 끌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위의 누가 불량하다고 하든 뭐라고 하든 자신들끼리 재밌게 놀면 그 뿐이라는
공통적인 생각이 그 둘을 가깝게 해주었습니다.
코토미는 후원자 덕으로 경제 사정은 힘들지 않아보이지만 부모님을 여의고
넓은 집에서 항상 혼자 사는 그 생활은 정상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코토미가 소외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경제 사정이 넉넉하고 손꼽히는 천재로 전형적인 엘리트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런 코토미가 토모야와 가까워진건 자신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인 존재
에 대한 끌림 때문인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후코는 집안 사정은 자세히 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언니 코코의 결혼식을 통해 추측해보자면 결혼식에 가까운 지인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는건 별로 넉넉하지 않다는걸 알 수 있고 그것은 코코의 남편 직업을
통해서도 볼 때 별로 여유있는 경제 사정은 아니었을 것이고 후코네 집안도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쿄우나 료우의 경우 구체적인 집안 사정은 알 수 없을 듯 합니다.
토모요의 경우 경제 사정은 둘째 치고라도 한때 부모님이 이혼까지 갈 뻔하고
토모요 에프터에서는 아버지와 내연녀 사이에 자식까지 있는데다가
토모야와 토모요가 단칸방에서밖에 살 수 없었다는 것은 토모요의 집안 경제 사정이
녹록치 않았고 가정 환경도 꽤 불안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플라네타리안은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지만
소외된 자라는 기본 구조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먼저 플라네타리움의 안내 로봇인 유메미는 도시가 파괴된지 오래고
플라네타리움에 찾아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만
여전히 자신의 업무를 계속합니다.
마지막에 유메미의 말에서도 나오지만 자신도 자신이 더 이상 이곳에서
할 일은 없다는걸 알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존재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었기에
억지로 외면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도 하루하루 생명을 걸고 고물을 모아 파는 고물상으로
에어의 유키토와 거의 비슷해보이지만 더 극단적으로 몰려있습니다.
게다가 이름도 모습도 게임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 근근이 살아가며 언제 죽을지 모르고 죽어도 아무도 기억해주지도 않는
그런 삶을 상징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소외된 두 명은 일종의 존재하지 않는 낙원을 찾아 도시 탈출을 감행하지만
결국 그 가치가 다한 유메미도, 이름조차 없는 보잘것 없는 존재에 사는 것만이
목적이었던 주인공도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기계의 손에 최후를 맞습니다.
토모요 에프터를 보겠습니다.
앞에서 토모요의 가정이 불안정했고 토모요와 토모야가 스스로 단칸방에서
살 수 밖에 없던 것을 통해서 볼 때 경제 사정도 안 좋았다는 것은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토모야는 직업이 수리공인데 클라나드와 거의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이른바 3D업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타카후미에 카나타에 토모까지 같이 생활하고 있는데 버는 사람은 토모야 혼자니
경제 사정이 결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카나타도 아버지가 사망하고 보호자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길거리에 주저앉아있다가
토모야와 같이 생활하게 되고 같이 생활하고 있는 동안에도 보호자에게서 연락이 오거나
보호자가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토모도 불륜을 통해 태어난데다 어머니는 불치병으로 먼 산골 마을에 요양을 가 있는 상태입니다.
결국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긴 하지만 어머니가 곧 사망할 것은 거의 당연하고 그 뒤로는
시골 마을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리라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작품은 계속 흘러 토모야가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수술 실패로 인해 사망하게 됩니다.
Key사 작품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 중 하나인데 소외된 자들은 다 병이나
기타의 요소로 인해 천천히 죽음을 맞는다는 점이 여기서도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작품에서 줄곧 보이던 비현실적인 요소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카논, 에어, 클라나드, 플라네타리안, 토모요 에프터 캐릭터들의 가정 형태와 경제 사정, 기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카논-
유이치: 부모님 외국에서 돈 범, 친척 집에서 생활, 얹혀사는 형태
나유키: 편모 가정, 가난하진 않으나 넉넉친 않음, 가면증 있음
아유: 모친 사망, 기타 보호자 확인되지 않음, 오랜 식물인간 상태로 정신연령 떨어짐
시오리: 가정 내에 불치병 환자의 존재로 인해 가정 환경 불안할 것으로 추측, 경제 사정 확인되지 않음, 불치병 환자
마코토: 가족 없음, 특별한 경제적 수단 없음
마이: 편모 가정. 어머니와 어렸을 때부터 떠돌아다니는 생활. 경제 사정 녹록치 않을 것으로 추측.
사유리: 국회의원 딸, 가족 형태 확인 불가능, 동생의 사망으로 인한 일종의 컴플렉스 있음.
-에어-
미스즈: 모친 사망, 이모와 함께 생활, 경제 사정 녹록치 않음, 정신병으로 인한 불치병 있음.
미나기: 부모님 이혼, 편모 가정, 경제 사정 확인 불가능, 어머니 정신병.
카노: 부모님 없음, 언니와 함께 생활, 경제 사정 그리 좋지 않을 것으로 추측.
-클라나드-
나기사: 가정 형태는 정상적, 경제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 본인이 지병이 있음.
후코: 가정 형태 확인 불가능, 코코의 결혼 시나 코코 남편 요스케의 직업으로 미루어 보아 넉넉하진 않을 듯함, 본인이 식물인간 상태로
인해 정신연령이 떨어짐.
코토미: 부모님 없음, 경제 사정은 여유가 있는 것으로 추측, 부모님의 사망 이후 컴플렉스 있음.
토모요: 부모님의 불화로 가정 환경 불안정, 경제 사정 어려운 것으로 보임.
쿄우, 료우: 가정 형태와 경제 사정에 대해 알 수 없음.
-플라네타리안-
주인공: 가정 없음, 생계 불안정, 고물상.
유메미: 가정 없음, 쓸모가 다 한 로봇.
-토모요 에프터-
토모야: 클라나드와 동일.
토모요: 클라나드와 동일.
타카후미: 토모요와 동일.
카나타: 아버지 사망, 특별한 보호자 확인되지 않음.
토모: 불륜으로 태어남, 마지막에 불치병인 어머니와 산골에서 지냄.
이상을 통해 보면 카논, 에어, 클라나드, 플라네타리안, 토모요에프터에는 가정 형태가
비정상적이고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가정이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위 작품들은 하층민 사이의 사랑과 생활에 관해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각각 차이가 있는데
카논은 그러한 비정상적이고 곤궁한 상황을 비정상적인 요소인
'기적'이나 인물들의 조금 정상에서 벗어난 성격을 통해 덮어버립니다.
결국 인물들 사이의 사랑이 가장 중요하고 그 주위의 현실은 가능한 그 속에
감추어서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에어는 카논에 비해서 훨씬 심화된 불안하고 빈곤한 상황에 인물들이 놓여있습니다.
카논은 그나마 중소도시가 배경이지만 에어는 작은 시골 마을이 배경입니다.
게다가 주인공의 가족 형태 및 경제 상황도 훨씬 불안정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카논에서와 같은 '기적'이라는 요소를 통해
그러한 현실을 기피하려고 하지만 결국 여주인공의 죽음을 통해서
카논처럼 현실을 덮거나 감추기보다 그 현실을 더 보여주려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층민들의 현실이 어떠한 방법, 비현실적인 요소를 쓰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클라나드에서는 본편의 스토리는 카논의 진행 방식과 유사하되
'기적'이라는 요소를 가능한 배제하고 있고
에프터 스토리에서는 결혼 후의 생활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더 자세히 그리고 있습니다.
그 방식은 가히 현실에 더 가깝습니다.
단칸방에서 둘이 살다가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가고 주인공 토모야도
수리공으로서 근근이 살아가는 생활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결국 나기사도 우시오도 죽음으로 끝남으로써 에어와 유사하지만
마지막에 시간을 돌려 다시 부인과 자식과 함께 사는 생활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결국 클라나드에서도 카논같은 비현실적인 힘을 빌려 나름대로의 행복을 되찾는다는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결국 클라나드도 현실을 주인공의 주관적인 행복이나 여주인공 및 자식의 소생으로
덮어버린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플라네타리안에서는 기존의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꿈꾸다
실패해 사망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결국 현실을 탈출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수 밖에 없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꿈꾸어도
현실은 현실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토모요 에프터에서 특이한 점은 소외된 자인 토모요와 토모야가 똑같이 소외된 자인
산골 마을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기존의 작품에서 보이는 비현실적 요소를 통한 현실 도피나 외면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형태를 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비록 자신의 세대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다음 세대인 토모를 통해서
희망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소외된 자들인 이들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론 구체적인 대안 제시나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같은 것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긴 합니다.
이러한 기본 구조를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결국 현실의 도피 내지 외면은 비현실적인 힘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작품 속에서 소외된 자들이 현실의 구조 속에서 그러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하지도 않으며 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토모요 에프터에서는 부분적인 노력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 드러나긴 하지만
그것은 아직 구체화되어있지 않은 자라나지 않은 실낱같은 희망이고
기존의 체제에 적극적으로 반항하지도 않고 체제에 순응해 사회가 자신들에게
부여하는 지위를 그대로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닙니다.
결국 이것은 비현실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소외된 자들은
그저 구조에 순응하면서 생계를 겨우 이으며 가정을 보존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쩌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소외된 자들을 위해 잠시라도 현실 도피의
시간을 제공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항상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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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계님이 지나치게 어두운 쪽으로만 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키사가 현실의 어두운 면에 좀 더 촛점을 맞추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It's a woderful life' (토모요 앺터 부제) 라고 하니 키사의 진짜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현실은 힘들고 괴롭지만 행복한 척 하라는 뜻인가?
나유키: 가면증 → 기면증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