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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물의 형태를 띤 불이다. 시원한 액체를 목구멍으로 집어 넣었는데 속은 뜨거워진다. 술을 마시는, 그러니까 불을 삼키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오직 인간만이 해롭거나, 혹은 이롭지 않은 음식을 먹어 치운다.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을 구분하는 식료품이 술이다.
일전에 나는 해장음식을 술자리의 완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지표음식인 만큼 해장음식 또한 그 반열에 놓여 있다. 해장음식을 탐하는 집요함의 정도에 따라 그의 인간적 완성도를 가늠할 수 있다. 술을 마신 다음날에는 부지런히, 꼭 해장음식을 찾아 여행을 떠나자. 사람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도리다.
해장음식은 ‘국’이거나 ‘탕’이다. 술의 특성을 물구나무 세우면 해장국(탕)의 조건이 도출된다. 해장국은 불의 형태를 띤 물이다. 그럴수록 좋은 해장국이다. 뜨거운 액체를 목구멍으로 집어 넣었는데 속은 시원해진다. 콩나물, 황태, 동태, 생태, 대구 등 해장국계의 지존들이 모두 이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해장국을 담는 그릇은 한결같이 뚝배기이다. 불의 형태를 띤 물을 담는데는 유리나 플라스틱 종류를 쓸 수 없는 법이다.
인기 높은 해장음식 중 하나가 생태탕이다. 한국에 유통되고 있는 생태의 대부분은 러시아산이다. 식당 메뉴판 원산지 표시 부분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러시아산’ 글자를 보며 나는 차갑고 푸른 동해 북쪽 바다를 떠올린다.
생태 본연의 물고기 이름은 명태이다. 명태의 이명 중 하나가 북쪽 고기라는 뜻을 지닌 북어(北漁)이다. 차가운 바람에 말린 명태가 황태이다. 냉동과정을 거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동태와 생태로 나뉜다. 해장국계의 지존인 동태, 생태, 황태는 그 기원이 똑같이 명태이다. 차갑고 푸른 북쪽 바다, 가 명태의 서식지이다. 생태탕을 먹는 우리의 행위는, 차갑고 푸른 북쪽 바다를 퍼올려 마시는 것과 같다. 몸 속에 이글거리고 있는 불을 끄는 데 딱 좋은 소화(消火)음식이 생태탕이다.
생태탕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맑은 것과 매운탕처럼 약간 텁텁한 것으로. 광산구 선운지구 선운중학교 가까이에 있는 윤가네 생태탕은 맑은 종류에 속한다. 뚝배기에 생태 한 마리가 온 놈으로 나온다. 미더덕과 바지락이 알맞게 담겨 바다맛을 내준다. 생강 한 조각과 청량고추가 비린내를 잡으면서 동시에 향을 발산시킨다.
거개의 생태탕이 쑥갓을 야채향신료로 쓰는데 굵은 부추를 얹어 놓는게 윤가네의 특징이다. 부추는 특별한 향을 내지 않는다. 쑥갓향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 레시피 같다. 국물은 얼큰하고 시원하다. 곁들여 나온 무청을 집된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이 상쾌해진다.
술꾼들에게 좋은 생태탕 집은 구원과도 같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마냥 흥분되는 일이다. 애용하는 생태탕 집이 몇 군데 있다. 특성이 저마다 다르다. 윤가네 또한 고유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 국물맛이 좀 더 입체적이고 무청의 상큼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윤가네만의 특성이다. 물론 매우 사사로운 견해이다.
광산구 선운지구는 새로 생겨난 ‘작은’ 신도시이다. 작기 때문에 주는 이점이 많다. 그 이점 중 하나가 ‘작은’ 식당들이 하나둘씩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큰 신도시 수완지구에는 작은 식당들이 없다. 대형화·고급화된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판다. 저렴한 가격의 음식점이 있다면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맛이다.
고유한 제 맛을 갖고 있는 윤가네 생태탕은 7000원이다. 신도시의 작고 깔끔한 식당에서 1만 원 내면 3000원 남겨 주는 가격으로 몸 속의 불을 시원하게 끌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축복의 시간을 보낸 뒤 도보로 3분 거리에 황룡강 둔치 공원을 걸으면 축복은 가장 아름답게 완성된다.
전화 062-941-3555
이정우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