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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재(薦度齋)의 의미>
‘천도재(薦度齋)’란 사람이 죽어 그 영혼이 내생의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도록 그 가는 길을 인도하고,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이끌어주는 불교의식을 행하는 행위를 말한다.
천(薦)은 천거함을 의미하고 도(度)는 가는 길 또는 가는 방법을 의미한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부처님과 스님께 올리는 공양이나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불공의식을 ‘재(齋)’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법회(法會)⋅독경(讀經)⋅시식(施食)⋅불공(佛供) 등을 베푼다.
그리하여 죽은 영혼들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태어나도록 기원한다.
말하자면, 망자의 영혼[영가(靈駕)]을 좋은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의식이다.
천도재는 인도에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6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유교적인 조령숭배(祖靈崇拜) 사상과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이 절충된 것으로
중국식 밀교(密敎)에 의해 성립된 불교의식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식(施食)---어떤 기도든 회향할 때 반드시 행하는 의식이 시식이다.
시식이란 베풀어 먹인다는 뜻이다. 각 사찰에서는 기도를 회향할 때
반드시 시식을 거행해서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이나 아귀들에게
기도 공덕을 널리 베풀어 회향한다.
시식(施食)이란 지옥에서 굶주린 고통 받는 가엾은 고혼들에게
공양물을 베풀어 그들의 원한을 달래는 일이다.
의식에서 시식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바로 저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 49일까지, 즉, 칠칠재(7ㆍ7齋)를 올리는 49일간
영혼이 머무는 곳을 중음(中陰) 혹은 중유(中有), 중간계(中間界)라고 부른다.
이 기간은 명부시왕전(冥府十王殿)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기간으로,
죽은 이가 생전에 행한 선과 악을 바탕으로 다음 세상에서의 인연,
즉 다음 세상의 생(生)이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7일마다 시왕을 바꾸어 가며 심판을 받는데,
49일 동안 일곱 번 심판을 받는다.
이때의 영혼을 흔히들 중음신(中陰神)이라고 하며,
아직 사후 인생이 결정 안 된 불귀의 혼(魂)인 셈이다.
착한 일을 많이 한 자는 극락으로, 악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깨달음을 얻어
윤회고(輪回苦)를 벗어나지 못하면 계속해서 육도(六道)를 헤매게 된다.
해탈하지 못한 이들의 다음 생은 선업과 악업의 심판에 따라
매 7일마다 시왕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49일째 되는 날에 최종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49재를 가장 중요시하는데, 명부시왕 중 지하의 왕으로 알려진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심판하는 날이 바로 49일째 되는 날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49재를 치렀다.
이와 같이 49재(四十九齋)란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재(齋)를 올려 죽은 이가 그 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칠칠재(七七齋)라 부르기도 하고, 이를 통틀어 천도재라 한다.
천도재를 행하는 것은 생전의 업식(業識)으로 인해
생에 집착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영가에게 무상(無常), 무아(無我)이며,
일체가 공(空)하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일러줘서,
생전의 업식에 꺼들리지 않고 밝은 지혜를 얻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기 위한 것이다.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사상에서도 이 49일 동안에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그 후손들이 정성을 다해 재를 올리면, 죽은 부모나 조상이 후예들의 공덕에 힘입어
보다 좋은 곳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또 그 조상의 혼령이 후손들에게 복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죽은 지 49일 동안은 이미 목숨(命)은 끊어졌을지라도
정신(혼령)만은 생전 그대로여서 황망히 떠나온 길에 대한 두려움과 온갖 환영에
시달리며 보내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망자가 비록 생전에는 많은 죄업을 지었지만
이 49일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어느 곳에 환생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49재는 영혼에게 불법(佛法)을 들려주고
삶의 무상(無常)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는 더 없이 소중한 의식이 된다.
가족들은 망자를 위해 부처님께 축원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마지막 배려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유족들이 이 기간 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불공을 드리고 재를 올려
선근공덕을 지으면 악업이 소멸돼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으므로
가족들은 매 7일마다, 특히 49일이 되는 날은 큰 재를 지내
죽은 자가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기원하고, 산 자도 이를 통해 생사의 슬픔을 잊기도 한다.
불교 상례(喪禮) 중 가장 특이한 탈상(脫喪)이 49재라는 천도의식이다.
사람이 죽은 지 1주일마다 한 번씩 심판을 받는 날 7 ‧ 7재를 치르게 되며, 이를 49재라 하고,
그 뒤에는 100일재(百日齋), 소상재(小祥齋), 대상재(大祥齋)까지
열 번에 걸쳐 살아 있을 때 지은 선⋅악의 업을 심판받게 되는 날 재를 지낸다.
그래서 시왕(十王)이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의식이다.
요즈음은 가정에 빈소를 차리지 않고 사찰에서 49재를 모시면서 빈소 역할까지 겸한다.
그래서 요즘은 7 ․ 7재의 여섯 번은 생략하고 마지막 49재만 행하기도 한다.
불교(밀교)에서의 육도윤회(六道輪迴) 사상에 따른 해석에 의하면,
모든 중생은 육도, 즉 천상(天上)ㆍ인간(人間)ㆍ축생(畜生)ㆍ아수라(阿修羅)ㆍ
아귀(餓鬼)ㆍ지옥도(地獄道) 등 여섯 세계를 윤회하고 있으므로
죽은 가족이 이 중 이른바 삼악도(三惡道; 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는 기도 행위가 49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천도재는 우란분재, 기도와 더불어 또 하나의 대표적인 기복행위라는 것이다.
기도가 ‘기독교 따라 하기’의 일종이라면, 천도재와 우란분재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에 의해 행해지는 밀교적(密敎的)인 불교의식이다.
어느 것이든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비불교적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천도재라는 용어가 없다.
그런데 대승경전의 경우,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경전이 조성되는 경향이 짙었다.
인도에서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고,
인도의 대승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됐을 때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때 그 때 시대적 요청에 따라 중국에서 조성된 경전을 위경(僞經)이라 한다.
----경전 근거----
49재에 관한 전거(典據)는 <지장경(地藏經)>에서 찾을 수 있다.
“지장보살님이 말씀하시되, 장자여 내가 지금 미래 현재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위력을 이어서 간략히 이 일을 설하리라.
장자여 미래 현재 모든 중생들이 명을 마칠 때를 다다라서
한 부처님 이름이거나, 한 보살의 이름을 얻어 듣게 되면
죄가 있고 없음을 불문하고 다 해탈을 얻으리라.……
죽어서 모든 이가 7⋅7 49일 안에는 업보를 받지 않았다가 49일에 이르면
비로소 업에 따라 과보를 받나니, 만일 죄인이 이 과보를 받으면
천백세 중에 헤어날 길이 없나니 마땅히 지극한 정성으로 49재를 베풀어 공양하되,
이같이 하면 목숨을 마친 이나 살아 있는 권속들도 함께 이익을 얻으리라.“
이와 같은 <지장경>의 구절을 비롯해, <법화경>, <아미타경>, <약사여래경> 등의
사상에 근거해서 봉행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불교의 윤회관이 중국의 시왕사상과 결합하면서 나타난 의식이다.
그리고 천도재와 우란분재(盂蘭盆齋, Ulambana)의 근거가 되는
<목건련경>, <우란분경>, <지장보살본원경>, <부모은중경> 등이 모두 위경이다.
위경 중에는 부처님 가르침을 보다 널리 확장하고자 하는 뜻에서 편찬된 것도 있지만,
위와 같이 부처님 근본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이미 인도에서 밀교 발전과 더불어 힌두화한 내용이 중국에 들어와서
더 노골화된 그런 내용의 위경이 상당 수 있다.
이런 위경에 의해 미혹한 중생을 현혹시키는 변질된 불교의식 몇 가지가 있다.
• 49제(四十九濟)---사람이 죽은 후 49일간 중음신(中陰身)으로 있으면서 염라대왕으로부터 7일마다 한번씩 7번의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때 스님이 염불로 법문을 해주어서 영가를 맑게 하고 영가를 대신해 변호의 역할로 염불로 변론을 하면서 재를 지내주는 천도재이다.
• 영산재(靈山齋)---영산재도 불교 천도재의 일종으로,
현세에서 부처의 세계를 표현하는 의식으로 <법화경>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산재는 하늘과 땅의 영가(靈駕)와 모든 성인(聖人)을 맞아들이는 의식에서 시작해
부처의 영적 세계의 사고방식을 표현하는 봉송(奉送) 의례로 마무리된다.
영산재는 한국 불교에서 거행되는 가장 수준 높고 가장 큰 규모의 의식이다.
영산재의 목적은 모든 중생과 영가가 부처님과 불법을 숭앙해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돕기 위해 거행된다.
법화사상에 따라 석가모니불이 설법하던 영산회상(靈山會上)을 상징적으로 설정하고
지내는 의식으로서, 의식을 행하는 장소가 일시적으로 영산회상이 돼,
영혼은 이곳에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고 극락왕생하게 된다고 한다.
다른 천도재보다 규모가 크고 장엄한 불공이 행해지는데,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해마다 서울 서대문 태고종 사찰인 봉원사(奉元寺)에서 연행되고 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돼 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 수륙재(水陸齋)---수륙재란 물에 빠져죽은 영혼이나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귀신들과
배고파 굶주리는 아귀(餓鬼)들을 달래며 위로하기 위해 좋은 날을 받아
주로 바닷가 백사장이나 강가에서 큰 단을 만들어 괘불을 걸고 부처님을 모시고 하는 큰 천도재이다.
이 의식은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에 의해서 시작됐다고 한다.
불교에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무제는 유주무주
(有住無住:떠도는 넋)의 고혼들을 널리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의식문(儀式文)을 지어
천도재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비록 억불정책에 의해
불교의식이 유교의식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조는 진관사(津寬寺)를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해
크게 재의를 행하고, 1395년(태조 4)에는 석왕사(釋王寺) 등에서
고려 왕씨(王氏-왕족)의 영혼을 달래는 수륙재를 베풀었다고 한다.
• 예수제(豫修齋)---사람이 죽은 후에 천도재를 지내주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을 때 미리 천도재를 지내는 것으로 ‘생전예수재’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지은 과보와 업장을 소멸하는 의미도 함께 있으며,
매 윤년에 절에서 합동으로 천도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천도재(薦度齋)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재(豫修齋)는 살아 있는 사람의 미래,
즉 자기 자신의 죽은 후의 왕생극락을 미리 기원하는 의식이다.
죽은 뒤에 자손들의 기원에 의해 극락왕생을 바라느니보다는
자기 자신이 살아 있을 적에 스스로 자기를 위해 미리 공덕을 쌓는 것이다.
자신의 사후 일을 미리 보증해 두는 천도재이다.
• 수자령(水子靈) 천도재---수자(水子)란 물속에 아기란 말인데,
어머니 양수 안에 있었다고 해서 수자라 한다. 유산, 사산, 낙태 등으로
어머니 뱃속에서 횡사한 아기의 영혼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자령(水子靈)을 위로하기 위해 천도재를 지낸다는 말이다.
헌데 ‘세포기억설’이란 게 있다. 장기 세포에도 기억 능력이 있어
이식수술을 할 때 기증자의 특성이 일부 따라간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60대 할머니가 2003년에 심장 이식을 받은 후,
미술에 문외한이던 이가 갑자기 그림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는데,
기증자가 아마추어 화가였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로, 낙태 시술시 태아가 이리저리 피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하는데,
탯줄로 연결된 태아의 아픈 기억이 세포기억설과 같이
엄마의 잠재의식 속으로 이동돼 저장될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잠재의식 속의 기억이 어떠한 이유로 살아난다면 수자령이 발동했다고 볼 수 있고,
그로 인해 몸이 아프든지 안 좋은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 생길 수도 있다.
불교에서는 수자령을 천도하는 수자지장보살(水子地藏菩薩)이 있을 정도로
영가천도에 비중을 두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행위로 수자령이 천도가 되는 것인지,
잠재의식 속에 기억이 지워지는 것인지,
마음속에 항상 존재하는 아픔을 치유해 위안을 얻는 것인지, 과학적인 이론을 펼 수는 없다.
같은 낙태 경험자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여성들은
아무 영향이 없는 반면, 죄책감에 사로잡힌 여성들의 경우에는 영향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 구병시식(救病施食)---구병시식은 다른 말로 구명시식(救命施食)이라고도 한다.
구병시식이나 구명시식은 같은 의미로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음식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즉, 병든 환자가 병을 완전히 치유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불ㆍ보살의 신묘한 가피력으로 축귀(逐鬼)하는 것을 구병시식이라 부른다.
구명시식은 병에 걸린 사람을 위해 사찰에서 행하는 일종의 제례의식이다.
사람이 병이 들어 병원치료로서도 잘 났지 않을 때나
접신(接神), 빙의(憑依-귀신 들리는 것)가 돼, 원인 모를 여러 가지 증세의 병들로 앓거나
그로 인해 집안이 이상하게 뭔가 잘못 돼가는 이러한 경우에
조상 천도재(薦度齋)와 더불어 별도의 의식을 행해서 이 고통에서 헤어나게 하는 의식을 말한다.
즉, 귀신병이라고 하는 빙의 현상에 의해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행하는 불교의식이다.
그러나 이 구병시식은 아무나 치르는 의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귀신들을 다루는 의식이므로 그만한 법력이 있어서 치르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효험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미신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다.
•우란분재(盂蘭盆齋, skt. Ulambana)---‘우란분(盂蘭盆)’의 원어는
산스크리트어 ‘울람바나(Ullambana)’이다.
이 울람바나를 중국에서 우란분(盂蘭盆) 혹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 소리 번역하기도 하고,
구도현(救倒懸)이라고 의역하기도 한다.
우란(盂蘭)은 도현(倒懸), 즉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뜻이며, ‘분(盆)’은 구제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란분[구도현(救倒懸)]이란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우란분공(盂蘭盆供)이란 죽은 사람이
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제하기 위해
후손들이 음식을 마련해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것을 말하는데,
우란분공을 하는 천도재를 우란분재(盂蘭盆齋)라 한다.
즉, 우란분이란 생전에 지은 무거운 죄업으로 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려 심한 고통을 받을지라도,
이 날 시방의 스님들을 청해 모시고 맛있는 음식으로써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란분재는 흔히 백중(伯仲)이라 부르는 음력 7월 15일에 사찰에서 거행한다.
이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백중과 우란분절은 아무 관계가 없다. 백중은 민속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음력 7월 15일은 불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날이다.
매년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3개월 동안은 하안거(夏安居)기간이다.
이 하안거가 끝나는 날인 음력 7월 15일에는 자자(自恣, pavārana)가 행해진다.
자자란 안거 동안에 있었던 행위에 대해 서로 충고하고 참회하는 의식을 말한다.
그리고 출가자는 안거를 마쳤기 때문에 승려의 나이[僧臘]가 한 살 많아진다.
이른바 승려의 생일인 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수행을 점검해 보는 뜻 깊은 날이다.
그날이 백중인 것은 우연의 일치일 따름이다.
<우란분경>에 의하면, 부처의 십대 제자 중에 신통력이 뛰어난 목련(目連) 존자는
어머니가 선행을 닦지 못해 아귀도에 떨어져 배가 고파 피골이 상접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목련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으나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새까맣게 타서 먹을 수가 없었다.
목련이 비통해하며 그 원인을 물으니 세존께서 죄업의 뿌리가 너무 깊어
그렇게 된 것이므로 시방의 여러 승려들의 위신력(威神力)만이 구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모든 승려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점검하는 자자(自恣)를 행하는 7월 15일에,
과거의 7세 부모와 현세의 부모 중에 재앙에 빠진 자가 있으면
밥을 비롯한 백 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을 우란분(盂蘭盆)에 담고
향과 촛불을 켜서 승려들에게 공양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 수행하고 교화하는 모든 승려들이 이 공양을 받으면,
현재의 부모가 무병장수하며 복락을 누리고, 돌아가신 조상은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 끝없는 복락을 누린다고 했다.
“이 우란분재의 요지는 승재(僧齋) 혹은 승공(僧供),
즉 재가자가 출가자에게 공양을 올리는 공덕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승재의 의미는 퇴색되고, 이 날 천도재를 지내는 것으로 잘못 정착됐다.
그리고 우란분재는 불교의 효(孝)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부모에 대한 효는 365일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 특별한 날에만 실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齋)와 제사(祭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재와 제사를 혼동하고 있다.
재(齋)는 재계(齋戒)를 말한다. 이를테면 재가자가 특정 월(特定月)과 특정 일(特定日),
즉 삼장육재일(三長六齋日)에 여덟 가지 계율인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제사(祭祀)는 ‘신령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표하는 예절’을 말한다.
불교에서 봉행하는 49재나 천도재는 제사가 아니다. 이것은 모두 재계(齋戒)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불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제도나 의례 가운데
붓다의 본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원래의 뜻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인도어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간혹 어떤 것은 중국에서 의도적으로 바꾼 것으로 보이는 것도 발견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란분재(盂蘭盆齋)이다.” - 마성 스님
그런데 ‘어머니를 구한 목건련 존자 이야기’가 나오는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은
중국에서 만든 위경(僞經)이라고 한다. 따라서 부처님이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천도했다는 것은
인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후대 중국에서 지어낸 이야기인 것이다.
중국의 유교문화에서의 효사상을 고취시키고 민간 신앙 이야기를 받아들여
꾸며낸 이야기란 것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 외에 천도재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위경도 있다.
<정토우란분경(淨土盂蘭盆經)>, <목련문경(目連問經)>, <지옥경(地獄經)>,
<염라왕경(閻羅王經)>, <염라왕설면지옥경(閻羅王說免地獄經)>,
<예수십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 <지장보살경(地藏菩薩經)>
※천도제(薦度祭)와 천도재(薦度齋)가 있다.
천도재란 부정한 것을 없애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재계(齋戒)의 의미가 있는 재(齋)라는 글자를 넣어 천도재(薦度齋)라고 하는 것이 맞지만
주로 사용하는 용어는 제사의 의미가 있는 제(祭)를 넣어 천도제(薦度祭)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천도제(薦度祭)는 무속인들이 하는 것으로 한이 있는 망자를 위로하고
그 한을 풀어주어 떠나게 하는 제사의식이다.
보통 정상적인 죽음이 아닌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게 해준다.
사고사이거나 너무 이른 나이게 죽었거나, 남으로부터 해침을 당했거나 이런 경우에 한다.
천도재(薦度齋)는 절에서 하는 것으로 여기서 재(齋)는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천도재는 삭발염의(削髮染衣)한 스님이 신묘한 진언으로 영가를 불러
관욕의식으로 목욕을 시킨 다음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의 말씀으로
육신(肉身)이란 허망한 것이니 이승의 미련이나 집착을 모두 끊어버리고
무상(無常)의 도리를 깨닫도록 법문(法門)을 설하면 영가는 이 법문을 알아듣고
깨달음 얻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망자에게 부처님 말씀을 들려주어 탐ㆍ진ㆍ치를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는 의식이다.
따라서 재에 참석한 사람도 마음과 행실을 선하게 해야 한다.
대개 재는 죽은 사람보다 재를 올리는 산 사람에게 더 큰 공덕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적어도 재를 올리는 기간 동에는 나쁜 마음을 먹거나
나쁜 행실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재를 지내고 난 뒤에도 그런 것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를 지낸 공덕이 7이라면 1은 망자에게 나머지 6은 재를 올린 사람에게 간다는 말이 있다(믿든 말든).
그런데 불가에선 영가재 혹은 천도재를 지내는데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적게는 2~3백만 원, 많게는 몇 천만 원을 부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재를 지낸다고 반드시 천도가 되느냐 하면,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저 재 지낸 후 집안이 무탈하면 “아 천도재를 지내서 무탈한가보다”
이렇게 자기 위한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업으로 인해 발생한 천형이나 귀기로 인해 발생한 신병(무병)은 천도재만으론 해소가 안 된다.
소위 빙의(憑依)가 된 상태면 천도재, 영가재를 지내더라도
얼마 후 다시금 원래대로 재빙의 되는 경우가 흔하다.
죽은 망자의 갈 길은 천도재나 영가재만으론 해소가 안 된다.
본인의 생전의 업대로 귀결되므로 해본들 무용한 것이다.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의 산자의 바람대로 천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막대한 경비를 들여 천도재를 지내고, 사찰에서는 일종의 영리사업으로 배를 불리는 형국이니
괜히 아까운 비용만 날리지 말라는 말이다.
천도재야말로 전혀 부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종의 미신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다음은 시조 시인으로 유명한 오현 스님(1932~2018, 일명 무산)께서
천도재에 대해 법문을 하신 내용이다. 이를 보면, 천도재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일이 아닌 일면도 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어느 때 여행을 하시다가
한 무더기의 뼈를 보시고는 걸음을 멈추시고 큰 절을 올렸다. 그 때 옆에 있던 한 제자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거룩하신 분이 무슨 까닭으로 뼈 무더기에 절을 올리십니까?”하니,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보기에는 뼈 무더기일 뿐이지만 이 뼈 무더기의 주인이
과거 전생에 나의 부모일 수도 있고, 형제 또는 일가친척, 이웃, 제자, 도반, 내지 스승일 수도 있다.”고
하시고는 그 뼈 무더기를 화장하고 그 주위를 청정하게 치웠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천도를 왜 해야 하며
천도가 얼마나 좋은 일인가를 마음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사실 좀 별난 신도들이 와서 말한다.
“천도재는 왜 지냅니까? 사람들이 죽으면 그만이지 귀신이 있습니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부처님께서 뼈 무더기를 천도하신 경문을 말하기도 하고,
백장야호(百丈野狐)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한다.
백장(百丈懷海, 749-814) 선사께서 설법을 하실 때마다
백발노인이 법당 구석에 앉아 고개를 수그리고 법문을 듣고 가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법문이 끝나도 가지 않고 백장 선사를 찾아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
“저는 사람이 아니올시다. 옛적 가섭불(迦葉佛)의 재세 시 이 절의 주지였습니다.
그때 어느 학인이 저에게 묻기를,
수행을 많이 한 도인(道人)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에 제가 대답하기를 불락인과(不落因果-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인과에 얽매이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대답을 잘못했기 때문에 500년 동안 야호(野狐)의 몸이 돼 이렇게 지내게 됐습니다.
청컨대 스님께서 한 마디 말로 야호를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면서 정색을 하고 물었다.
수행을 해서 철저히 깨달은 도인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이에 백장 스님이 답했다.
“불매인과(不昧因果-인과에 얽매인다)”라고 말하자,
그 말끝에 노인은 대오(大悟)해 인사하고 말하기를,
“저는 이미 야호의 몸을 벗어나서 뒷산에 있으니 스님께 바라건대
죽은 승려를 보내는 절차로 장사지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사라졌다.
이에 백장 스님은 유나(維那)로 하여금 대중에 고하기를,
“식후에 죽은 승려의 장례식이 있다.”고 했다. 이때 대중이 수군거리기를,
“대중이 모두 평안해서 열반당에 한사람의 병자도 없어 죽은 이가 없을 텐데
어째서 죽은 승려의 장례가 있다고 할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식후 백장 스님은 대중을 데리고 뒷산으로 올라가서 바위 밑에 이르러
지팡이로 죽은 야호를 끄집어내어, 그 노인의 유언대로 망승의 예를 다해
정성껏 다비를 하고 천도를 해 주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짧은 설화 속에서 굳이 다른 법문을 듣지 않아도 천도를 왜 해야 하는지,
인과가 무엇인지, 왜 법문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지, 그 까닭을 깊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
허긴 크고 작은 불사가 따지고 보면 다 천도이다.
절 지을 때 쓰는 시멘트 한 포대, 기와 한 장에도 영가 축원이 깃들어 있다.
일제 때 부산 선암사(仙岩寺)의 혜월((慧月, 1862-1936) 스님께
어느 때 어떤 신도가 천도를 해 달라며 소 한 마리 값을 주고 갔다.
그런데 혜월 스님은 시장 보러 가는 길에 길가에서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 있는 젊은 여자를 봤다.
혜월 스님이 그 여자 가까이 가서 우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그 여자는 빚더미에 집이 넘어가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혜월 스님은 소 한 마리 값을 몽땅 그 여자에게 주고 그냥 절로 다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재주가 절에 와서 보니 영단에 공양도 떡도 과일도 올려있지 않고
혜월 스님 하신다는 법문이,
“영가야, 배고프냐? 너 먹을 것은 집 없는 불쌍한 사람에게 다 줬다.
조금만 참거라. 내일 모레 큰 재가 있다, 그 때 너도 청할 테니 실컷 먹고 가거라.
너 전생의 빚을 갚은 것이지 그냥 준 것은 아니다. 빚을 갚고 나니 얼마나 좋으냐?
빚이 있으면 빚쟁이 등쌀에 못산다. 괴롭다.”
이러고 있었는데 그 신도님도 보통 신도님이 아니라
그 후 선암사에 아주 대시주를 했다고 한다.
그 영가도 업보를 벗었다고 자기 가족에게 선몽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가를 위해 적선을 해 주는 것이 바른 천도법이라는 의미가 조금 숨어 있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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