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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루투갈 파티마 성모 발현 성지(聖地)
파티마는 리스본 북쪽 141km 지점에있는 작은 소도시이다.
이 도시가 유명해지고 순례객이 많이 오는 이유는
1917년 5월13일부터 10월 13일 까지 6차례
성모님께서 코바 디 이리아(평화의 들)에서
양치기 세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신 기적때문이다.
파티마의 어린이들에게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은
세계 제1차 대전 중인 1917년 여름이었다.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주민들은 대개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또 소농이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들과 가축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도 양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세 아이들은 비록 가난했으나 순진했고 티 없이 맑은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10세이었고,
그녀의 나이어린 사촌 동생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가 곧 그들이다.
그들은 루치아의 책임아래 양을 쳤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즐겨 바쳤다고 한다.
1916년 여름에는 한 천사가 몇 차례 발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1917년 '코바다 이리아' 에서 양을 치던
세 어린 목동들이묵주기도를 바친다음
돌맹이로 집짓기 놀이를 하고 있을때 갑자기 섬광이 비추어서
그들은 번개가 치는줄 알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을때
태양보다 더 눈부신 여인이 하얀 묵주를 걸고 서 있었으며
기도를 많이 할 것과 5개월 동안 매월 13일 같은 시간에
'코바다 이리아' 에 와줄것을 부탁하셨다
어린 세목동들은 약속대로 8월만 빼고 6월, 7월, 9월, 10월에 약속대로
그곳에서 성모님을 만난다
[성모발현 당시의 국제정세]
제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루투갈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파티마(Fatima)에서
발현할 때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흰 옷에 망토를 걸치고 묵주를 든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 선 모습이었다.
성모님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칭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였다.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영성체 할 것을 요청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과 평온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하였다.
1917년 10월에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이들해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며,
1942년 10월에 교황 비오 12세는 전 세계,
특히 러시아를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에게 봉헌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평화를 위한 호소와 간구를 반복해서 기도했으며
1917년 5월에는 성모 마리아께
세계의 세계의 평화를 중재해 주실 것을 직접 호소하였다.
교황의 이러한 호소가 있은지 바로 1주일 뒤에 포루투갈의 파티마에서
성모 마리아의 첫 번째 발현(1917.5.13)이 있었다.
발현 당시의 파티마는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약 70마일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으며, 10세의 루치아와 루치아의 사촌 동생들이자 남매인
7세의 히야친타와 9세의 프란치스코에게 발현하였다.
[포르투갈의 천사]
그러나 그 이전 해인 1916년 봄에 이들 세 어린이들은
성모 마리아를 만날 수 있는 일종의 준비단계로
초자연적인 만남을 처음으로 경험한바 있다.
양떼를 돌보고 있던 어느 날,
이들은 빛으로 만든 것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한 젊은이를 보았으며
그는 자신을 '평화의 천사'라고 소개한 다음 자신과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그런 다음 여름철에도 그 천사는 다시 나타나 세 어린이들에게
포르투갈에 평화가 깃들도록 기도하고 봉사하라고 말했다.
가을철에도 세 어린이들은 양떼를 돌보다가
바로 그 천사를 또 보게 되었으며,
천사가 들고 있는 성배는 빵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빵에서는 핏물이 성배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천사는 허공에 성배를 놓고는 그 앞에 꿇어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빵조각을 루치아에게 먹으라고 주었고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에게는
성배를 마시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자비한 사람들에 의해 끔찍하도록 학대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라.
그들의 죄악을 치유하고 하느님을 위로해 드려라."
그 천사는 사라지기 전에 엎드려 기도했다.
세 어린이들은 이러한 사건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천사의 방문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성모발현]
첫 번째 발현(1917.5.13)
1917년 5월 13일 세 어린이는 코바다이리아(Cova da Iria)로 알려진
작은 지역의 목초지에서 양떼를 돌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묵주기도를 할 때에
이들은 갑자기 번쩍이는 빛과 같은 밝은 섬광을 보게 되었고
뒤이어 맑고 푸른 하늘에서 또 다른 섬광을 보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루치아는 이렇게 회상했다.
"올려다보았을 때, 한 부인이 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옷은 태양보다 더 밝았고,
탄산수를 담은 크리스탈 컵보다 훨씬 더 맑고 강렬한 빛을 발산했으며,
타오르는 햇빛으로 빛났습니다."
세 어린이는 너무나 놀라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한 채
발현의 빛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 그 부인은 미소 지으며
"두려워하지 마라,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 어린이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열 살의 루이아는
"어디서 오셨나요?" 라고 물었고, 그 부인은 하늘을 가리키며
"천국에서 왔단다"라고 말했다.
루치아는 다시 "무엇을 원하세요?"라고 물었고, 그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이 매 달 13일 이 시각에 여섯 달 동안 여기에 오라고 말하러 왔단다.
그런 다음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주마.
일곱 번째에도 여기도 돌아올 것이다."
그런 다음 루치아는 자신들 셋 모두가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물었고
그 분은 그렇다고 말했다.
그리고 루치아와 히야친타는 천국에 갈 수 있겠지만,
프란치스코는 우선 로사리오 기도를 많이 바치라고 말했다.
또한 "하느님께 너희들 자신을 기꺼이 바칠 수 있고
모든 고통을 참을 수 있겠느냐?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보속행위로
너희들을 보내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많은 고통을 받겠지만
하느님의 은총이 너희들을 위로할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회상한 루치아에 따르면,
그 부인은 이렇게 말하자마자 자신의 손을 펴서
세 어린이들에게 '빛'을 내려 주었으며 그 빛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고 전쟁이 끝날 수 있도록
날마다 묵주기도를 바쳐라"고 말하고는
그 부인은 허공에 올라 안보일 때까지 동쪽으로 이동했다.
세 어린이는 함께 모여 그 부인이 말한 대로
자신들을 희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했으며,
점심을 굶기로 마음먹고는 묵주기도 5단을 모두 바치면서 기도했다.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루치아는 그렇지 못하였다.
이웃 주민들의 태도 또한 회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세 어린이는 그 부인이 말한 대로 많은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두 번째 발현 (1917.6.13) ]
같은 해 6월 13일 세 어린이가
그 부인이 나타났던 털가시나무 가까이에 함께 갔을 때,
대략 50명 정도의 사람들도 코바다이리아에 모여들었다.
지난번에 나타났을 때에 그 부인이 루치아에게
"너희들이 다음 날 13일에 여기에 다시 오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글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다음에 말해주마" 라고 말한 것처럼,
세 어린이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에 뒤이어
곧바로 섬광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루치아는 성모 마리아께 자신들을 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간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저는 곧이어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를 천국으로 데려가겠습니다만,
당신께서는 이곳에 몇 번 다시 오실 수 있도록 얼마동안만 머물러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저를 알릴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시기를 바라십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약속드립니다.
하느님의 왕관을 찬양하기 위해 제가 꾸미는 꽃처럼,
이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루치아 성녀가 자신의 체험을 고백한
1927년 편지에는 마지막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저는 여기 혼자 남아 있어야 하나요?" 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을 때 루치아는 아주 슬펐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아냐, 얘야, 많은 고통을 받았니?
성심을 잃지 말거라.
절대로 너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나의 성모성심은 네 은신처가 될 것이고
하느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이때 성모발현의 목격자인 마리아 카레이라는
루치아가 당시에 성모 마리아께서 떠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소리쳐 울었는지 말한 바 있다.
카레이라 자신도 '멀리 날아오르는 로켓'과도 같은 소음을 들었으며
나무 위의 작은 구름조각을 보았다.
따라서 7월의 성모발현에는
이삼천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발현 (1908~1919) ]
7월 13일 세 어린이는 코바에 모였으며 털가시나무 위호
어떻게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부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루치아는 그 부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성모마리아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들이 다음 달 13일에도 이곳에 오기를 바란다.
로사리오의 성모를 위해 날마다 로사리오 기도를 계속 바쳐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종전을 위해서,
성모만이 너희들을 도우실 수 있을 것이다."
루치아는 다시 또 그 부인이 누구인지를 물었고
모든 사람들이 믿도록 하기 위해서 기적을 내려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매 달마다 이곳에 오너라.
10월이 되면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주마.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기적을 행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루치아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몇 가지를 더 간청하자
성모 마리아께서는 몇몇 사람들만을 고쳐줄 것이라고 대답했으며
그러한 은총을 받으려면 모두들
로사리오 기도를 바쳐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죄인들을 위해서 너희들 자신을 희생하거라
특히 희생을 할 때에는 이렇게 수없이 기도하거라.
'오, 주 예수님, 저희들의 희생은 주님의 사랑을 위해서 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에 대해 반대하는
죄인들을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옥의 비전]
훗날 루치아는 성모 마리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두 손을 들어 올리자
거기에서 쏟아지는 빛줄기가 지구를 꿰뚫는 것 같았으며
자신들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있는 악마들과
잃어버린 영혼들로 가득 차 있는
끔찍스러운 지옥의 비전을 보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지옥의 비전이 바로 파티마의 첫 번째 '비밀' 부분이었으며
그러한 현상은 상당히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세 어린이가 올려다 보았을 때,
성모 마리아께서는 슬픈 얼굴로 친절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가련한 죄인들의 영혼이 가는 지옥을 너희들은 보았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나의 성심에 대한 헌신을 세상에 세우기를 바라신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면,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을 것이고
평화가 올 것이며 전쟁이 끝나게 되겠지만,
사람들이 하느님을 공격하는 것을 끝내지 않는다면,
비오 11세 교황의 재임기간 동안 더욱 나쁜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알 수 없는 빛으로 빛나는 밤을 보게 될 때,
전쟁, 기근, 교회와 성부에 대한 박해 등 그 죄악으로
세상을 벌하시고자 하는 하느님께서 너희들에게 보여주시는
위대한 징표라는 것을 알기 바란다."
"이러한 벌을 모면하기 위해 나의 성심에 러시아의 성변화와
첫 번째 토요일마다 영적 회개의 교감이 일어나기를
간구하기 위해 다시 오게 될 것이다.
나의 간청에 귀를 기울인다면 러시아는 패망할 것이고
마침내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러시아는 전 세계에 그 잘못을 펼치게 될 것이고
전쟁을 유발할 것이고 교회를 박해하게 될 것이다.
선량한 사람들이 순교하게 될 것이고
성부께서는 훨씬 더 많은 고통을 받으실 것이며
수많은 나라들이 전멸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의 성심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성부께서는 나에게 러시아를 박해하시게 될 것이고,
러시아는 성변화하게 될 것이며
평화의 시대가 세상에 찾아오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파티마의 두 번째 비밀 부분이 끝나게 되며
다음과 같은 말씀과 함께 세 번째 비밀 부분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에서는 믿음의 도그마가 언제나 유지될 것이다..."
처음 두 부분의 비밀은 1942년이 되어 공식적으로 알려졌지만,
세 번째 비밀은 2000년 6월이 되어서야
최근에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프란치스코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세 번째 비밀을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로사리오 기도를 바칠 때마다
각 단계의 신비를 암송하면서 이렇게 기도하거라.
'오 저의 예수님, 우리를 용서하시고
지옥의 불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모든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끄시고
특히 가장 고통받는 영혼들을 이끄소서.'"
그리고는 더 이상 루치아에게 말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멀리 멀리 사라지셨다.
[네 번째 발현 1917.8.13]
8월 13일이 가까워지자, 성모발현에 대한 이야기는
반-종교적인 지역 신문에까지 전파되었으며
이러한 점은 포르투갈 전역이 파티마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편견과
부정적인 보고가 성행하게 된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8월 13일 아침 빌라노바 데 에루렘의 시장 아르투로 산토스는
성모발현을 목격한 세 어린이를 납치하기까지 하였다.
시장은 납치한 어린이들에게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비밀'이 무엇인지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시장의 위협과 돈을 주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은 그 비밀을 폭로하기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날 오후 어린이들은 지방감옥에 갇혔으며
죽이겠다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들 어린이들은
비밀을 폭로하기보다는 차라리 죽기로 결심했다.
8월 19일 루치아, 프란체스코, 히야친타는
파티마에서 가까운 발린호스(Valinhos)에 모였으며
오후 늦게 이들이 성모 마리아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성모님은 루치아에게 "코바다이리아로 다시 가서
날마다 로사리오 기도를 계속하거라"고 말씀하셨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또한 기적을 행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전 세계가 믿게 될 것이며, 세 어린이가 납치되지 않았더라면
그 기적은 훨씬 더 위대한 것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주 슬픈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주 많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죄인들을 위해 희생하거라.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도,
이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다음 성모님께서는 공중으로 떠올라 동쪽으로 향한 수
멀리멀리 사라지셨다.
이제까지 이들 세 어린이들은 기도와 참회에 대한
성모 마리아의 호소를 철저하게 받아들였으며,
그 호소에 답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포르투갈의 찌는 듯한 여름 더위 속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수 시간씩 기도했으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오랫동안 걷기도 했다.
또한 죄인들을 위한 헌신으로
자신들에게 그렇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던 비전,
지옥으로부터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다섯 번째 발현: 1917. 9.13]
9월 13일에는 굉장히 수많은 군중들이
모든 곳에서 파티마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정오쯤 되어 세 어린이가 도착했으며 늘 그랬듯이
밝은 빛의 섬광이 있은 후에 그들 모두는
털가시나무 위에 서 계신 성모 마리아를 보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루치아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종전을 위해 로사리오 기도를 계속하거라.
10월에 우리들의 주님께서 오실 것이고 '슬픔의 성모'(Our Lady of Dolours)와
'카멜의 성모'(Our Lady of Carmel)도 함께 올 것이다.
성인 요셉은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서 아기 예수와 함께 나타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네 희생에 기뻐하고 계신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밧줄에 감겨 잠들기보다는
대낮에 그 밧줄을 입고 다니기를 원하신다."
그런 다음 루치아는 저주에 대한 청원을 간청했으며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렇게 말씀했다.
"그래, 몇 사람들만 치유하겠지만 모두 다 치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10월에는 기적을 행할 것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믿도록 할 것이다."
아주 슬픈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께서는
"아주 많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죄인들을 위해 희생하거라.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도,
이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성모님께서는 공중으로 떠올라
동쪽으로 향한 후 멀리멀리 사라지셨다.
[여섯 번째 발현: 917.10.13]
성모발현의 기적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포르투갈 전역에 걸쳐 성모발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성찰을 야기했으며
저널리스트 아벨리노 드 알메이다는 반종교적인 신문 <오 세쿨로 > (O Seculo)에
성모발현의 전반적인 사건에 대해서 냉소적인 기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10월 13일 저녁나절 파티마의 산골마을을 강타한 끔찍스러운 태풍에도 불구하고
코바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포르투갈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몰려들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맨발로 걸어가면서 로사리오 기도를 암송했으며
모두 다 코바 주변으로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다음 날 아침나절에 날씨는 다시 나빠져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전쯤 되어 세 어린이가 털가시나무에 도착했을 때
성모 마리아께서 그 이전에 그들에게 발현했듯이 빛의 섬광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루치아는 성모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여쭙자 성모 마리아께서는
"내 이름으로 이곳에 성당을 짓기를 원한다. 나는 로사리오의 성모이다.
날마다 언제나 로사리오 기도를 계속하거라.
전쟁은 끝나가고 있으며 병사들은 곧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또 루치아는 자신의 간청을 말씀드렸고
성모 마리아로부터 사람들이 치유나 가톨릭으로서의 개종을 원한다면
우선 자신들의 삶을 고쳐야만 하고
자신들의 죄악을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해야만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훗날 루치아는 또한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시에 매우 슬퍼보였으며
"더 이상 우리들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공격하지 말거라.
하느님께서는 이미 너무 많이 공격받으셨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그런 다음 성모 마리아께서는 공중에 솟아오르시면서
태양을 향해 두 팔을 펼치셨고
발현시마다 그랬듯이 점점 더 찬란하게 빛나며 사라지시면서
세 어린이들만이 목격했던 다양한 비전들을 보여주셨다.
[태양의 기적]
1917년 10월 13일 성모발현과 동시에
수많은 군중은 진정한 기적을 목격하게 되었다.
시커먼 구름떼가 갈라지면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은 상당히 쉽게 직접 볼 수 있을 만큼 짙은 회색빛 원반처럼 보였다.
지역신문 <오 세쿨로> 에 기고했던 알베리노 데 알메이다는
파티마에 대한 자신의 냉소적인 기고문에서
상당히 다른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대한 군중이 태양으로 향해 돌아서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었다.
태양은 구름으로부터 벗어나 정점에 달해 있었고
어두운 은빛의 쟁반처럼 보였으며 조금의 불편도 없이
누구나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했다.
막 시작되고 있는 일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고함소리가 들려왔고 가까이에 있는 관중들이
'기적이야! 기적!' 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경이로움에 놀란 군중들, 모자를 벗고 서 있던 분명히 성경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열심히 하늘을 주시하던 군중들의 눈앞에서, 태양은 요동쳤으며
모든 우주법칙의 밖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움직였다.
목격자들의 전형적인 표현에 따르면 태양이 춤추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사람들이 목격했던 것을 서로 묻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양이 요동치고 춤추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실했다.
다른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태양이 '거대한 회전불꽃'처럼 스스로 빙빙 돌았으며
그 빛으로 지구를 불태우기라도 할 듯이 지상 가까이로 내려오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양이 연속적으로 색깔을 바꾸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리아 카레이라같은 다른 목격자들 역시 태양의 기적의 놀라운 변화를 이렇게 증언했다.
"태양은 노랑, 파랑, 하양 등 서로 다른 색깔로
모든 것을 변화시켰고 뒤흔들리면서 요동쳤습니다.
마치 사람들 위로 떨어지려는 회전불꽃과도 같았습니다.
'모두들 죽게 될 거야, 죽게 될 거라고!' 사람들은 소리쳤습니다.
마침내 태양이 요동치기를 멈추나 우리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살아 있으며 세 어린이가 예견했던 기적은 틀림없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좀 떨어진 곳에서 태양의 기적을 목격했으며 따라서 이들의 목격은
그 어떤 집단적인 허상의 유형에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재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흥미롭고도 중요한 점은
태양열이 강렬하게 사람들에게 내려쪼치게 되어
그들의 옷과 땅을 메마르게 하는 효과를 보였으며
따라서 지난 밤 폭우로 젖은 옷을 대략 10분 안에
완전히 말린 후에 집으로 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목격자 세 어린이들의 삶]
[프란치스코의 죽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인 1918년 가을 유행성 독감이 유럽을 휩쓸었으며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도 감염되어 쓰러지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어느 정도 회복되어 건강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했을 때에 예언하신 것처럼
그는 자신이 어려서 죽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건강상태는 다시 나빠지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모든 고통을 인간의 죄악과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에 대해 하느님을 위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공하였으며
점점 더 약해져서 기도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종부성사 받은 다음 날인
1919년 4월 4일 1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히야친타의 죽음]
히야친타 역시 길고 긴 겨울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으며
조금 회복되기는 했지만 급성 기관지폐렴으로 더욱 악화되었으며
가슴에는 종양까지 나게 되었다.
1919년 7월 에우렘의 병원으로 이송되어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았지만
별다른 효과 없이 상처를 드러낸 채 그해 8월 집으로 돌아왔다.
1920연 1월 치료를 위해 리스본으로 이송되었으며
그곳에서 화농성 늑막염과 감염된 갈비뼈 등을 진단받게 되었다.
같은 해 2월 재차 병원에 입원하여 두 개의 갈비뼈를 제거하는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았으며 그 결과 매일같이 치료를 해야만 하는
커다란 상처가 남게 되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2월 20일 저녁 교구사제를 불러 히야친타의 고해를 듣도록 하였지만
그 사제는 다음 날 히야친타의 종부성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돌아갔다.
자신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며
성모 마리아께서 그날 밤 가족과 멀리 떨어진 채 혼자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말씀했다고 히야친타가 교구사제에게 아무리 간청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히야친타는 1920년 2월 20일 밤 세상을 떠났으며
시신은 파티마로 옮겨져 프란치스코와 함께 묻혔으며,
그 후에 코바다이리아에 세워진 성당으로 옮겨졌다.
[루치아가 경험한 또 다른 성모발현]
복원된 레이리아(Leiria) 교구의 신임주교는
루치아를 파티마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 까닭은 루치아가 감내해야만 하는 성모발현의 목격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고 루치아가 없을 때에
수없이 방문하는 순례자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루치아의 어머니는 루치아를 멀리 떨어진 학교로 보내는 데 동의했으며
1921년 5월 극비 속에서 루치아는 포르토(Porto)로 향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성 도로시회' 소속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가 있었다.
훗날 루치아는 '카르멜회'에 가입하기 전에 '성 도로시회'의 수녀가 되었다.
1952년 12월 10일 스페인의 폰테베드라 수녀원에 있을 때
루치아는 또 다른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성모발현을 목격하게 되었다.
성모 마리아는 루치아에게 자신에 대한 보속으로 5개월 동안
첫 번째 토요일에 고해, 영성체, 묵주기도 5단 암송 및
15분 동안 묵주기도의 의미에 대한 묵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은총을 약속했다.
1929년 6월 `13일에 루치아는 투이(Tuy)에 있는 수녀원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었으며
거기에서 루치아는 성삼위일체를 나타내는 또 다른 성모발현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루치아는 성모 마리아께서 1917년 성모발현 시에 그랬던 것처럼
교황이 세계의 모든 주교들을 규합하여 러시아를 성변화시켜
자신의 성심에 돌아오도록 할 것을 강조하는 말씀을 들었다.
1938년 1월 25일 이상한 빛이 북유럽의 하늘을 뒤덮었다.
그것은 북극광, 즉 북극의 오라가 특별하게 빛나는 것이라고 설명되었지만,
루치아 수녀는 그것이 '알 수 없는 빛' 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성모 마리아께서 7월에 발현했을 때에 언급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그것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형벌을 의미했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느님께로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대 교황과 파티마의 관계]
1942년 교황 비오 12세는 전 세계를 성모 마리아의 성심에 봉헌했으며
1952년 러시아의 성변화와 회개를 똑같이 촉구했지만,
그 어느 것도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의 요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세계 주교들의 '윤리적 총체성'을 규합하게 된 이러한 주교단의 성변화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파티마는 1979년 5월 13일 교황이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를 시성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로서 가경자로 선언했을 때 로마 교황청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즉위 기념일인 2000년 5월 13일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를 복자로 선언함으로써
파티마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였다.
동시에 교황은 파티마 비밀의 세 번째 부분의 구체성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에게 새 천년을 봉헌하였다.
파티마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생전에 원했던 대로
교황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주교의 파티마 인정]
그동안 가톨릭교회에서는 1917년에 일어난 성모발현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으며
주교 코레이아는 1922년 5월에 이르러 교서에서
성모발현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였다.
1930년 코레이아 주교는 성모발현에 대한 또 다른 교서에서
다음과 같이 짧지만 중요한 진술을 포함하여 파티마에서의 사건을
상세하게 기술함으로써, 이 문제를 재차 언급하였다.
" (1) 이 교구에서 1917년 5월 13일부터 1917년 10월 13일까지 있었던 파티마의 교구
코바아이리아에서 세 명의 목동들에게 있었던 비전의 중요성과 믿음의 가치를 선언한다.
(2)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의 공경을 공식적으로 허락한다."
[발현일지]
(1) 발현장소 : 포르투갈, 파티마
(2) 발현 날짜 : 1917년 5월 13일 ~ 10월 13일
(3) 발현 목격자 : 양치기 어린이 루치아 도스 산토스(10세),
프란치스코 마르토(9세), 히야친타 마르토(7세)
(4) 메시지 : "나는 로사리아의 여왕이며 이 자리에 성당을 세워주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회개하고 죄의 사함을 간청해야 하며,
더 이상 주님의 마음을 상해드리지 않도록 하라"
(5) 치유와 기적 : 10월 13일 마지막 발현 때 포르투갈 7만 군중이
태양의 기적을 목격했으며 이를 모두는 비에 흠뻑 젖었지만
모두들 10여분 뒤에 깨끗하게 물기가 말랐다.
(6) 발현의 특징 : 발현 때마다 조금씩 모습은 다르지만
흰 옷에 흰 망토를 걸쳤고 손에는 묵주를 들고 있었다.
(7) 발현지의 특성 :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로
태양의 기적과 6차례에 걸친 성모발현이 있었다.
(8) 조사과정 : 레이리아의 주교는 오랜 조사와 검토를 한 뒤에
로사리오의 성모 공경을 허가했다.
(9) 공인 날짜 : 1930년 10월 13일 (태양의 기적 13년 후)
로사리오의 성모 대성당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 북쪽에는
1928년5월에 건축을 시작하여 1953년에 봉헌된
네오 클래식 양식의 성모 발현기념 대성당(파티마 바실리카)이 우뚝 서있습니다.
중앙 종탑은 65m이며 성당 안 제단 좌우에는
성모님 발현을 체험했던 복자 하친다 마루토와 복자 프란체스코 마르토의 무덤이있습니다.
루치아는 1928년 갈리시아 지역 투이(Tuy)에 있는 성 도로시 수녀원에 입회하였다가,
1947년 코임브라에 있는 맨발의 갈멜 수녀원으로 수도회를 옮겼고, 2005년에 선종했는데
2006년 2월 유해를 파티마 대성당 안 제단 측랑에 옮겨 모셔졌습니다
성지 입구에 2007년 세워진 삼위일체 대성당..
요한 바오로 2세는 81년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 발현 기념일인 5월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총격을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이듬해 5월13일 감사 기도차 파티마를 방문했을 때 다시 일어난
스페인 광신도의 암살기도도 모면한 뒤 파티마에 깊은 애착을 보여왔다.
교황은 이날 파티마에서 전세계 60만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모의 계시가 있은 지 2년 만에 폐렴으로 사망한
프란치스쿠와 하친타에 대한 시복식을 집전했다
1917년 5월13일 성모 마리아가 포르투갈 파티마의 양치기 어린이 3명에게 발현해 전했다는
이른바 ‘파티마의 계시’ 가운데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마지막 계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암살 기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바티칸 당국은 “파티마의 세 번째 계시는 총격을 받고 땅바닥에 쓰러진
흰옷 차림의 사제에 관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교황청은 성모 마리아로부터 계시를 받았던 양치기 어린이 2명에 대한
시복(諡福)식을 거행하기 위해 파티마를 방문한 교황의 요청에 따라 이를 공개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은, 이외에 ’태양의 기적’으로도 유명하다.
발현 시 7만 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10분간 태양이 기기묘묘하게 변하는 등,
광선의 잔치가 연출되었다.
1930년 10월 13일 교회는 공식적으로 발현 사실과 기적을 인정하였다.
파티마 광장 왼쪽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 있었던 자리에는
1919년 4월 28일 작은 경당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1920년 5월 13일 동정이신 성모상을 모셨고,
1921년 10월 이 경당에서 미사를 봉헌 할 수있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경당에서 서쪽으로 광장을 지르는 약 2백여m의 대리석 길은 '참회의 길'이다.
이 길은 무릎으로 기거나 온몸으로 오체투지를 하며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공간이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려는 수많은 이들의 아픈 걸음들이 만들어낸
거울같이 반들반들한 흔적 위에 대성당의 불빛이 완전히 다 담겼다.
경당 옆에는 촛불을 봉헌하는 곳이 있다.
많은 촛불이 저마다의 염원을 안고 조용히 타오르고 있다.
봉헌소 앞에는 자율판매대가 있어 초를 구입하여 봉헌할 수 있도록 했다
참회의 길끝에서 대성당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이는 교황 바오르 6세이다.
위에서 언급한 성모의 세 번째 비밀은 루치아가 직접 문서로 작성하고 봉인해서
1957년에 로마의 교황 비오 12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 문서를 처음으로 읽은 사람은 1960년의 교황 바오로 6세였다.
당시에 그 모습을 지켜본 교황청의 직원에 의하면,
바오로 6세는 이 문서를 읽고 나서 새파랗게 질렸다고 한다.
과연 '세 번째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광장 한 쪽에는 베를린 장벽(Berlin Wall)이 있다.
성모마리아가 러시아(당시 소련)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고,
결국 독일이 통일되고 러시아가 붕괴되는 등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에 감사하는 뜻으로 세워놓았다.
성모님 발현은 1917년 5월13일 부터 10월 13일까지 모두 여섯 번이었는데
다만 8월에만 '코바다 이리아' 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발현셨다
이유는 성모발현에 의심을 하는 정부관리에게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했기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곳 '발린 호스' 에서 발현하셨다
성모님 발현 사례 1 - 파티마 (Fatima)파티마의 성모 ( Our Lady of Fatima )
103년 전 파티마 성모가 인류에 전한 메시지는?
파티마 성모 마리아 발현 1 : 천사의 발현
파티마 성모 마리아 발현 2 : 성모님의 발현
파티마 성모 마리아 발현 3 : 세 목동의 삶